2016년 1월 15일 금요일

국어는 '학'보다 '습'이 중요하다

子曰:學而時習之,不亦說乎?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면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이 말은 논어의 학이편에 나오는 너무도 유명한 말이다. 학문의 목적인 '예'는 단지 배운다고 끝나는게 아니라 몸에 완전히 익혀야 비로소 학문하는 즐거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워낙에 공부를 좋아 하셨던 공자님이야 그저 '예'를 몸에 익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우셨는지 모른다. 그러나,  공부한 결과가 '점수'로 평가 받고, 그 '점수'를 바탕으로 '학벌'이라는 자산을 확보해야 하는 오늘날의 피말리는 경쟁 속에서 과연 '학문의 즐거움'을 운운하는 것이 무슨 가당키나 한 말인가? 아마도, 논어의 그 첫구절을 대하는 대부분의 입시생들과 그 부모님들은 그렇게 생각하기 십상일 것이다.

그러나, 2500여년 전의 이 겸손한 사상가의 말을 살짝 비틀어서 유연하게 이해한다면, 우리는 이 말 속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쓸모있는 공부 팁을 어렵지 않게 끌어 낼 수 있다. 특히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한 한다고 해서 늘기는 하는 건지 계속 의심하게 만드는 수능 국어와 같은 교과목에는 아주 유용한 팁을 얻을 수 있다.  다들 공감하시겠지만,   국어가 어떤 과목인가? 모국어로 되어서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아 먹겠는데 보기에 따라서는 이것도 답인 것같고 저것도 답인 것같은 게 국어 아니던가? 또한 국어는 영어처럼 공부한 양에 따라서 성적인 올라주는 담백한 과목도 아닌데다가 수학처럼 정답이 명징해서 뭘 고쳐야 하는지가 분명한 과목도 아니다.  수능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국어는 정말  계륵 鷄肋 같은 과목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공자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서 고난의 '국어'에서 벗어나는 한 줄기 빛을 볼 수도 있다.  말하자면,  공자님의 말씀 속에는  '공신'으로서의  내공이 단순하지만 명확한 방법으로 담겨 있다는 말이다.

우선 '학'과 '습'의 차이를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당연하게도 '학'은 배운다는 뜻이고 '습'은 익힌다는 뜻이다. 오늘날에 맞게 바꾸어 말한다면 '학'은 정보를 체계적으로 받아들여서 그것을 '개념적인 지식'의 형태로 머리에 저장한다는 뜻이고  '습'은 저장된 정보들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할 수 있게끔 체화한다는 뜻이리라. 그런데, 국어에 힘겨움을 겪는 학생들은 대부분은 국어를 '배울'생각만 하지 '익힌다'는 개념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학생들의 국어 공부법은 대충 이렇다. "내가 이번 모의고사에서 시를 3문제가 틀렸어. 이번 겨울 방학에는 시300편 돌파다"...과연 될까?  안된다. 시를 몇 편을 배웠는가하는 것이 국어공부의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어를 열심히 했지만 성적은 오르지 않는다는 학생들은 그렇게 '습'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학'에서 멈춘 경우가 많다. 더 비극적인 것은 그런 습성을 고3 수능때까지 유지하는 경우도 많다는데 있다. 열심히 강의를 듣고 무언가 머릿속에 채워 넣으면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수능 국어 교과목은 '지식'을 묻는 시험이기에 앞서 언어 정보들을 정확하게 활용하는 '능력'을 묻는 시험이다. 즉, 개념적 지식을 아는지 묻는게 아니라 유연하고 정확하게 써먹을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인 것이다. 따라서, 수능 국어는 '배움'을 20%, '익힘'을 80%로 해야 제대로 공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령, 방학 중에 고전시가를 30여편 정도 공부를 했다면 학기 중에는 그것을 반복해서 숙달시키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이다. 모르는 작품이 나오면 어쩌나 하는 불안때문에 계속 새로운 작품만을 배우려 한다면 그것은 이미 배운 것조차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미 배웠던 작품일지라도 그 작품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가능하면 폭넓게 경험해보고 익히는 게 수능 국어 공부의 핵심인 것이다. 수능 국어 고득점자들이 한결같이 수능 국어 기출 문제를 반복해서 풀어 보았다고 말하는 이유가 다 있는 셈이다.

결국, 공자님이 옳다. 더욱이 '때때로' 익혀라라는 말에는 가히 공신다운 내공이 느껴지지 않는가? 다들 알다시피, 아무리 풀어 봤던 문제일지라도 다시 보면 틀릴 수 있는 게 수능 국어 문제만의 매력(?)이다. 따라서, 착각과 오류를 피하는 유일한 길은 그것을 틈나는 대로 보고 익혀서 완전히 나의 문제로 만들어야 한다. 답을 외워도 상관 없다. 중요한 것은 오답을 찾는 자신의 잘못된 습관을 확인하고 교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국어 실패자들은 한 번 틀린 문제를 다시 보기를 싫어하거나 귀찮아한다. 결국 그 학생들은 그 어떤 습관도 교정하지 않은 채 수능장으로 들어간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또 다른 실수들의 반복일 뿐이다. 그러니 제발 공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자. '때때로' 익혀야 공부하는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은 환상이 아니다. 그것은 수능 시험장에서 뿌듯한 기쁨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실인 것이다.

수능 국어 시험 80분 동안 다루어야 하는 글자의 양은 대략 2만 5천자 안팎이다.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더욱이 눈으로만 대충 보면 이해할 수 있는 글들이 아니라 때로는 머리를 싸매고 읽어야 대강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글들이다. 그러니 문제를 풀 때쯤이면 거의 무의식적으로 답을 찍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선택지 하나하나를 정교하게 비교해서 확신을 갖고 찍는 것이 아니라 왠지 답일 것같은 선택지를 고르는 것이다. 그런게 있을 턱이 없지만, 설령 아무리 신통방통한 문제풀이법을 배웠다고 하더라도 막상 시험장에서 튀어 나오는 것은 차마 버리지 못한 '제 버릇'이다. 이 '버릇'을 고치는 공부를 하지 않고 나쁜 버릇 위에 아무리 시간과 공을 들여서 국어 지식을 쌓아봤자 그것이 무너지는 순간한 한 순간이다. 따라서, 공자님의 말씀에 담긴 평범하지만 명확한 진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적어도 수능 국어에서만큼은 '학'보다는 '습'이 성적을 결정짓는 만큼 습관을 고치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되는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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