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9일 토요일

패턴의 과학 '수학의 모험

숫자의 발견으로 인류는 논리적 사고를 향한 첫 번째 도약을 시작했다. 수를 다루게 되하면서 인류는 자연과 사회의 복잡한 패턴을 수학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고대 인류는 자연에서 발견한 패턴에서 감탄과 경이로움을 느꼈기 때문에 이는 신의 섭리라고 생각했다. 이는 신의 섭리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수학은 종교가 바라보는 동일한 대상을 논리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발전했다. 이번 호에서는 자연과 사회가 어떻게 수학의 대상이 됐는지 살펴보자.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만약 당신이 수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할 것이다.
-토머스 멜서스,1798년 ‘인구론’에서.

자연은 수학적이다

1970년대 영국의 과학자들는 뉴턴의 머리카락을 분광기에 넣는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그결과 뉴턴의 머리카락에서 정상수치보다 40배나 많은 수은이 검출됐다. 이 결과가 사실이라면 아침에 생각난 아이디어를 잊지 않기 위해 하루 종일 침대에 앉아 있었다고 하는 뉴턴의 특이한 습관은 수은중독이 일으킨 신경계통의 장애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왜 뉴턴은 수은중독에 빠질 만큼 과도한 중금속 실험에 매달렸을까?

아마도 뉴턴은 자연과 우주의 비밀을 밝혀 줄 단서를 찾고자 한 것 같다. 자연의 패턴 속에서 신의 아이디어를 캐내고자 했던 그의 생각은 1687년에 출판된 혁명적 저작 ‘프린키피아-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의 서문에서 드러난다. “나는 자연과학이 자연의 수학적 원리를 밝히는 일이라고 본다.” 뉴턴이 발견한 우주의 비밀, 그가 훔쳐 본 신의 아이디어는 수학이었다.

뉴턴이 살던 당시에는 행성의 운동이 정확한 원의 형태로 움직인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갈릴레오나 케플러 같은 뉴턴 이전의 과학자들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행성의 운동은 타원을 그렸다. 뉴턴은 행성의 타원궤도를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설명했다.

행성의 타원궤도 방정식은 자연현상의 모델에서 출발했다. 포물선을 그리도록 축구공을 차 올릴 경우 공은 수평방향으로는 등속운동을 하지만 수직방향에서는 속도가 변한다. 공은 처음에는 빠른 속도로 올라가지만 포물선의 정점에 가까울수록 위로 솟구치는 속도는 느려진다. 그리고 포물선의 정점에서 공이 잠깐 멈추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점점 속도는 빨라진다.

뉴턴은 수직방향으로 변화하는 속도의‘비율’이 일정하다고 가정했다. 가령 축구공이 그리는 포물선을 10단계로 나눈다면, 공이 각 지점을 통과할 때마다 올라가면서 느려지는 속도의 비율과 내려오면서 빨라지는 속도의 비율은 일정하다. 100단계로 나눠도 각 지점의 변화비율은 동일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뉴턴은 미분과 적분이라는 수학적 개념을 발견했다. 뉴턴에 따르면 물체가 수직방향으로 등가속도 운동을 하는 이유는 지구가 아래에서 끌어당기는 힘(인력)이 항상 일정하기 때문이다.

뉴턴은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는 끌어당기는 힘이 있으며 이는 우주 어디에서나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행성의 궤도가 타원을 그리는 이유도 태양과 행성 사이에 일정하게 작용하는 힘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축구공이 지면에서 멀어질수록 일정한 비율로 속도가 줄어드는 것처럼, 태양에서 멀어질수록 태양의 인력은 일정한 비율로 줄어들기 때문에 행성들은 타원궤도를 그린다.

뉴턴은 물체의 질량과 가속도 그리고 힘의 관계를 수학적 원리를 통해 설명함으로써, 자연현상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 즉 운동(변화)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문을 열었다. 특히 그가 미적분의 개념을 통해 설명한 운동법칙과 중력법칙은 다른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출발점이 됐다. 열전도의 비율, 음파의 파동 방정식, 전자기파의 발견, 그리고 무엇보다 물체의 질량과 에너지 사이의 관계를 나타낸 아인슈타인의 방정식(E=mc²)은 뉴턴이 목표로 했던 자연에 대한 수학적 이해에 기초를 두고 있다.

사회는 수학적이다

천문학자 아돌프 케틀레(1796~1874)는 모든 우주에 적용되는 뉴턴법칙이 사회에도 적용됨
을 밝혀 낸 최초의 과학자이다. 정부가 설립한 천문대의 대장을 맡고 있던 케틀레는 뉴턴의 계산값에 근거해 행성을 관찰하던 도중 실수로 오차가 계속 발생하고 있음에 주목했다. 오차값을 확인해 본 결과 일정한 분포의 패턴이 나왔는데 이는 오늘날 정규분포(normal distribution)라고 알려진 종형 그래프를 그리고 있었다.

케틀레는 이 점에 착안해 사람의 행동이나 사회적 행위에는 일정한 패턴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곧바로 뉴턴의 물리법칙에 대응하는 사회법칙을 발견하는 일에 착수했다. 키, 몸무게, 코의 길이에서부터 출산율, 사망률, 남녀성비, 범죄율에 이르기까지 정규분포는 모든 인간과 사회에 나타나 있었다. 케틀레는 이러한 관찰로부터‘평균인’이라는 수학적 인간의 모델을추론했다. 그에 따르면 평균인이란‘그 시대의평균에 해당하는 사람의 특징을 모두 갖춘 사람’으로 ‘모든 위대함, 아름다움, 선함을 갖춘’정규분포의 집단을 일컫는다.

케틀레가 시도한 수학적 추론에 다소 무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후의 사회연구에 큰 영향을 줬다. 개별적이고 무작위적이라 여겨지던 사람들의 행동은 분명한 사회적 경향과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카를 마르크스는 이윤율의 주기적인 상승과 하강을 분석해 ‘자본의 운동’이라부르는 자본주의의 과학을 정립했고, 에밀 뒤르케임은 프랑스 전역의 자살률을 조사해 자살을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행동이 아닌 사회적 현상으로 입증했다. 이제 사회는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사유의 대상이 아니라 힘과 운동의 패턴을 보여주는 수학의 대상이 됐다.

보이지 않는 패턴 찾기

오늘날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더 이상 4할 타자를 찾아볼 수 없다. 메이저리그 최후의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 이후로 야구에 흥미를 잃었다는 일부 관중들의 아쉬움을 해결하기 위해 다방면의 분석이 이뤄졌다. 왜 4할 타자가 사라진 것일까? 그에 대한 분석으로 투수와 타자의 기량 문제, 야구규칙의 변화, 야구방망이의 재질, 심지어 선수들의 고액연봉과 안락한 생활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지적됐다.

그 중 가장 과학적인 분석을 내놓은 사람이 하버드 대학교의 유명한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이다. 그는 진화생물학자답게 4할 타자를 일종의 ‘변이’로 취급하고 통계적인 방법으로 야구를 분석했다. 그의 결과에 따르면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 메이저리그 평균타율은 2할 6푼으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어떤 해의 평균타율과 그 평균값에서 벗어나는 타율의 값, 즉 표준편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감소하고 있었다.

표준편차의 감소와 변이의 발생빈도가 줄어드는 경향은 정확하게 일치했는데, 굴드는 이러한 현상을 마치 생태계에서 동식물들 간의 균형이 맞추어지는 것(생태학적 균형)처럼 선수들의 기량이 균형점을 향해 달려온 과정으로 봤다. 타율변화의 패턴을 수학적·통계적으로 연구했던 굴드는 그 변화의 규칙성에 감탄했다. 그는 “평균타율과 관련한 표준편차의 감소는 너무 규칙적인 까닭에 마치 자연의 법칙같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오늘날 사회통계학이라 부르는 사회연구 방법은 수학과 물리학을 사회에 적용한 학문이다. 초창기의 사회통계학은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처럼 모든 사회에 적용될 수 있는 단 하나의 원리를 발견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어떠한 사회도 단 하나의 사회법칙을 따르지는 않는다. 뉴턴이 정립한 운동법칙도 원자나 전자 단위의 소립자 세계에서는 중력과 다른 성질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에 적용되지 않는다.

어떤 대상을 확률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우연히 발생하는 사건들 속에서 필연적인 패턴을 찾는다는 말과 같다. 예를 들어 동전던지기에서 앞면이나 뒷면의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은 각각절반이지만, 실제로 동전을 던져보면 그 사건들의 반복은 대단히 불규칙하다. 어떤 경우는 연속 세 번 앞면이 나올 수도 있고, 계속 뒷면이 반복될 수도 있다. 하지만 동전던지기를 백만 스물한 번, 백만 스물두 번 반복하면 결과는 달라진다. 동전의 앞면(뒷면)이 나올 확률은 절반에 매우 가까운 결과로 수렴한다. 따라서 확률론적 사고는 절대적인 ‘법칙’을 세우고 그에 맞춰 자연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발생하는 사건 속에서 법칙을 찾아가는‘과정’이다.

“어떻게 한 시간 동안이나 숲속을 거닐면서도 눈에 띄는 것을 하나도 보지 못할 수가 있나요? 오묘하게 균형을 이룬 나뭇잎의 생김새를 손끝으로 느끼고, 은빛 자작나무의 부드러운 껍질과 소나무의 거칠고 울퉁불퉁한 껍질을 사랑스럽게 어루만집니다. 꽃송이의 부드러운 결을 만지며 기뻐하고, 그 놀라운 나선형 구조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가슴 벅찬 드라마이며, 그 생동감은 내 손가락 끝을 타고 흐릅니다.” -헬렌 켈러, ‘사흘만 볼 수 있다면’


과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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