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9일 일요일
베게너의 대륙이동설 100주년
1880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난 베게너는 베를린과 하이델베르크, 인스부르크 등 여러 도시의 대학에서 물리학, 기상학, 천문학을 공부했다. 1902~1903년에는 우라니아천문대에서 조수로 일하기도 했다. 1905년 천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기상학에 관심이 많았던 베게너는 두 살 위인 형 쿠르트와 함께 린덴버그항공전망대에서 일하며 기구를 이용한 기상관측분야를 개척했다. 1906년 베게너 형제는 직접 기구를 타고 무려 52.5시간을 머무르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 해 베게너는 그린란드 탐사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 뒤 세 차례 더 그린란드를 찾았고 결국 그곳에서 목숨을 잃게 된다. 요즘도 산악인들이 등정을 하다 사망하는 소식이 간간히 들리지만 100년 전에는 훨씬 더 위험했다. 첫 탐사에서도 대장을 비롯해 세 명이 사망했다.
1908년 마부르크대에서 강사로 있으면서 베게너는 기상학을 비롯해 다양한 지구과학 분야를 연구했고 그 과정에서 대륙의 형태와 관련한 흥미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즉 남아메리카 대륙의 동부 해안선과 아프리카 대륙의 서부 해안선이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교묘하게 일치했던 것. 어쩌면 둘이 한 대륙이었다가 쪼개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 베게너는 연구에 착수했고 지질학, 고생물학 분야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꽤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베게너는 1912년 1월 6일 프랑크프루트 지질학회 모임에서 대륙이 이동한다는 가설을 처음 발표했고 이 해 관련 논문 세 편을 썼다. 그리고 두 번째 그린란드 탐사를 떠났다. 당시 탐사대장 피터 코흐가 다리골절을 당해 베게너는 그와 함께 둘이서 그린란드 북동부에서 겨울을 나기도 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베게너도 징집돼 참전했지만 큰 부상을 입고 후방에서 기상업무를 보게 됐다. 이 때 집필한 책이 그 유명한 ‘대륙과 해양의 기원’이다. 이 책에서 베게너는 대륙이동설을 본격적으로 논하면서 오늘날 서로 떨어져 있는 대륙들이 과거 한 덩어리로 붙어있던 초대륙을 판게아(Pangaea)라고 불렀다.
혁명적인 주장을 담고 있는 책이었음에도 전쟁 중이라 별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1922년 내용을 대폭 보완한 3판이 나오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해 독일을 넘어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륙 이동설의 영어 번역어 continental drift가 나온 것도 이 해다. 그럼에도 대륙 이동설에 대한 반응 대부분은 환호가 아니라 격렬한 반대였다. 당시 지질학의 권위자들은 대륙이 이동한다는 발상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베게너는 지질학자가 아니라 기상학자였다.
물론 흥미로운 지질학 증거와 고생물학 증거가 꽤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그 거대한 대륙이 움직인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설득력있는 메커니즘이 없었다. 베게너 자신이 제안한 메커니즘 역시 역부족이었다. 즉 지구의 자전으로 인한 원심력이나 외부 천체의 작용에 의한 세차는 대륙을 움직이기에는 너무 약한 힘이었다. 게다가 베게너는 대륙 이동 속도가 1년에 2.5미터라고 가정했다. 이는 훗날 밝혀진 2.5센티미터보다 너무 큰 수치였다.
1929년 베게너는 세 번째로 그린란드를 탐사했다. 다음해 진행할 대규모 탐사를 위한 예비조사였다. 1930년 네 번째이자 마지막이 된 그린란드 탐사를 떠난 베게너는 11월에 조난됐고 이듬해 5월 시체가 발견됐다.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보면서도 결국 탐사의 유혹을 극복하지 못한 결과다.
판 구조론으로 이어져
베게너는 용감한 탐험가이자 탁월한 기상학자로 일생을 마쳤지만 그 뒤 한 세대 만에 혁명적인 지질학자로 부활했다. 그 사이 그의 대륙 이동설을 지지하는 여러 관측결과들이 축적됐기 때문이다. 즉 1950년대 들어 해저 지각의 잔류지자기 방향이 시대에 따라 바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앞서 1930년대 영국의 지질학자 아더 홈즈는 대륙이 이동하는 원동력의 메커니즘을 제안했다. 즉 지구 내부 방사성 동위원소의 붕괴열로 맨틀이 대류를 일으키면서 지각이 이동했다는 것.
1960년대 들어 대륙 이동설은 판 구조론으로 발전한다. 즉 지각은 10여개의 판으로 이뤄져 있고 판이 이동하고 충돌하면서 각종 지질학적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 전 세계의 화산대와 지진대가 판들이 만나는 지점과 일치한다는 게 밝혀지면서 오늘날 판 구조론은 널리 받아들여지는 정설이 됐다.
1930년 10월 영하 60도의 그린란드에서 동료 라스부스 빌룸센과 개 두 마리가 끄는 썰매를 타고 캠프로 이동하던 베게너는 식량이 떨어지자 개 한 마리까지 잡아먹는 극단적인 상황에 직면한다. 그의 시체는 빌룸센이 가매장한 상태로 발견됐고 당시 23세였던 빌룸센 역시 직후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 데 그의 시체는 결국 찾지 못했다. 나이 오십에 죽음을 앞둔 베게너가 한 세대 뒤 자신의 학설이 지질학계의 종의 기원에 해당하는 명성을 얻게 될 지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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