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와 상반되는 이타주의 실험결과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 양주(楊朱)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자의 대명사로 곧잘 인용된다. ‘내 몸의 터럭 하나를 뽑는 대가로 천하가 태평해진다 해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말을 남겼기 때문이다.
맹자는 양주의 이 같은 사상을 호되게 비판했다. ‘우물에 빠진 어린 아이를 보고 구해주지 않을 자가 어디 있겠는가’라고 주장한 맹자의 눈엔 양주가 ‘짐승 같은 놈’으로 보였다. 모든 사람들은 원래 착하게 태어났다는 게 맹자의 사상이다.19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는 이처럼 남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행동을 ‘이타주의(altruism)’라고 정의했다. altruism의 ‘altre’는 타인(other)을 뜻하는 프랑스 고어로서, ‘다른’이란 의미를 지닌 라틴어 ‘alter’과 관련이 있다.
이타주의는 생물의 본성인 이기적 진화 형태와는 상반되는 행위이다. 따라서 많은 과학자들은 이타주의가 인간에게서만 나타나는 강력한 특징이자 인간의 뇌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생물학적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이와 유사한 행동이 다른 동물들에게서도 발견되기 시작했다. 인간과 같은 영장류인 침팬지를 비롯해 협동양육을 하는 미어캣, 심지어 탐욕스런 사람으로 의인화되었던 쥐들조차 이타주의를 보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동물들의 이 같은 이타적 행동은 ‘혈연선택’과 ‘상호적 이타주의 이론’ 등으로 설명된다. 혈연으로 맺어진 구성원들이 공유한 유전자를 영속시키기 위해 자기 희생으로 다른 개체에 봉사한다는 이론이 ‘혈연선택’이며, 혈연관계가 없다고 해도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상호 간의 호혜적 행동이나 공생 관계가 ‘상호적 이타주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타주의를 주장한 맹자도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맹자’ 양혜왕 편에 나오는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이 바로 그것이다. 항산이 없으면 항심도 없다는 말로서, 즉 경제적 안정이 없으면 항상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뜻이다.
도덕적 종교의 등장 조건은 ‘에너지 획득’
‘무항산 무항심’은 도덕성을 강조하는 오늘날의 종교(신흥 종교)가 탄생한 배경과도 연결된다. 인류의 초기 역사에서 종교는 의식 일변도였거나 단기적 보상에 기반을 둔 것이 특징이다. 즉, 남을 돕는 도덕성이나 금욕보다는 비나 풍년을 기원하며 신에게 필요한 제물을 바치는 성격이었던 것.
이에 비해 스토아교, 불교, 크리스트교, 이슬람교 같은 신흥 종교는 하나같이 도덕성을 강조한다. 이 같은 신흥 종교가 탄생했던 결정적 시기(BC 800넌 이후)를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축의 시대’라 일컬었다.
파리고등사범학교의 니콜라스 보마 교수팀은 ‘축의 시대’ 이후 도덕적 종교가 어떤 조건에서 발생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역사적․고고학적 자료를 이용한 예측 모델을 설계했다. 모델 분석 결과, 도덕적 종교의 등장을 가장 잘 예측하는 지표는 바로 ‘에너지 획득’이었던 것.
구체적으로 구성원의 에너지 획득이 하루 2만 칼로리 미만인 사회에서는 도덕적 종교가 전혀 탄생하지 않았지만, 2만 칼로리라는 임계점을 넘어서자 도덕적 종교의 탄생 빈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즉, 종교가 의식 일변도에서 벗어나 도덕성을 강조하게 된 계기는 바로 물질적 풍요로움이었다. 이대로 해석하면 이타주의의 선행 조건 역시 ‘항산’이 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와 반대되는 연구결과들이 잇달아 발표되어 주목을 끈다.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팀은 가난한 집 아이들과 부잣집 아이들 중 어느 편이 더 이타주의가 강한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했다. 74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게임을 통해 획득한 토큰을 게임에 참여하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 비밀리에 기부할 수 있게 한 것.
지난 6월에 발표된 이 실험 결과는 예상과 정반대로 나왔다. 부모의 연소득이 많은 아이일수록 기부한 토큰의 숫자가 적은 것으로 나타난 것. 즉, 부잣집 아이들이 가난한 집 아이들보다 순수하게 남을 위하는 이타성이 더 적었던 셈이다. 부잣집 아이들의 이 같은 성향에 대해 연구진은 돈을 지키고자 하는 부모의 행동이 아이에게 그대로 전해진 탓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무종교 집안의 아이가 이타주의 더 높아
지난 6일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게재된 미국 시카고대학 진 데세티 박사팀의 연구결과 역시 우리 상식과는 정반대다. 연구팀은 미국, 중국, 캐나다, 요르단, 터키, 남아공 등 6개국의 5~12세 어린이 1170명을 대상으로 종교가 이타주의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했다.
실험 방법은 가상 학급을 구성한 뒤 각 어린이마다 개별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스티커 10장을 고르게 한 다음 전혀 알지 못하는 다른 급우에게 나눠주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어린이들은 3.3장, 이슬람교 집안의 어린이들은 3.2장을 내놓은 데 비해 특정 종교가 없는 집안의 어린이들은 평균 4.1장의 스티커를 내놓은 것.
더 놀라운 것은 나이가 많은 어린이일수록 내놓은 스티커 수의 차이가 더욱 뚜렷했다는 점이다. 이는 종교적 환경에서 성장한 기간이 오래 될수록 이타주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의 정도가 강했다는 뜻이다.
타인이 저지른 악행을 용서하는 관용적 태도 또한 종교가 없는 집안의 어린이들이 높게 나타났다. 연구진이 실험대상 어린이들에게 어떤 아이가 다른 아이를 일부러 떠미는 행동을 하는 영상을 보여준 결과, 종교를 가진 집안의 어린이일수록 악행의 정도와 처벌의 강도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었던 것이다.
연구진은 실험대상 어린이들의 나이, 사회경제적 상태, 출신국가 등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종교적 차이를 능가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밝혔다.
맹자의 무항산이면 무항심이라는 전제 조건이 잘못된 걸까, 아니면 ‘항산’이라는 비교적 한정된 범위를 요즘의 부자와 종교가 너무 초과해서 나타난 결과일까.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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