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9일 일요일

과학과 신학을 양자론으로 통합

과학서평 / ‘양자형이상학’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먹고 마시며 자기 일에 만족을 느끼는 것이 제일 좋은 일이며 인간의 운명이다.”
이렇게 말한다면 무슨 돼지같은 쾌락주의자의 형이하학적인 이야기냐고 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구절은 인생의 모든 단맛을 다 보고 쾌락의 늪에 빠져 나라를 위태롭게 했던 어느 왕이 한 말이다. 그 왕은 수 많은 여자들을 그것도 서로 다른 민족에서 온 미인들을 골고루 아내로 맞았던 천하의 호색한이었다.
그렇지만, 이 왕은 세계에서 가장 현명했다는 평판을 받기도 했으니,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모르고 그저 술독이나 육체의 쾌락에 탐닉했던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이 왕이 남긴 말 중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여러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한다.”
많이 공부하는 것이 몸을 피곤하게 한다는 말은 아마도 이중의 뜻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피곤하게 공부하지 말라는 뜻이라기 보다, 사람이라면 몸이 피곤해지기 직전까지 공부에 몰입해야 한다는.
양자형이상학
‘거의 모든 존재의 역사’라는 거창하거나 혹은 오만하게 들리는 부제목을 단 ‘양자형이상학’(Quantum Metaphysics)이라는 제목의 책은 양자물리의 입장에서 지금까지 나온 형이상학의 거의 모든 인물의 주장을 묶어 설명한 책이다. 저자 이성휘는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과 보쿰 대학에서 ‘신과 시간-스티븐 호킹의 인간원리와 과학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성휘 박사는 신학과 과학을 접목하는 시도를 하면서도 매우 따듯한 우주관인 인간원리(anthropic principle)의 입장을 취하는 유신론적 과학철학자이다. 이화여대 감신대 목원대 등에서 외래교수로 강의하다가 지금은 뮌헨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연구하고 있다.
양자론을 모르면 현대적 신(神)을 알 수 없다
저자는 20년 넘게 유럽을 뒤집듯이 살아온 경력을 자랑한다. 자신의 지적 편력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하게 하려는 듯이 방문지 이름을 나열했다. 거의 모든 유럽을 샅샅이 뒤지면서 다녔는데 그저 관광만 한 것은 아니고, 루가노를 방문하면 헤세의 흔적을 찾고 베니스 가는 길에 파두아를 지날 때면 갈릴레오가 교수로 재직했던 파두아 대학을 찾는 식이었다. 그렇게 오래 동안 유럽에 머물면서 공부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행가이드로 생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박사는 형이상학에 이름을 올려놓았던 수많은 유럽학자들의 이름을 비슷하게 나열했는데, 그리고 나서 자신있게 (혹은 매우 거만하게) 내놓은 주장이 “양자론 이해를 통해 새롭게 제시된 양자형이상학적 존재자 이해라야 진정한 현대적 신 이해”라고 목청을 높인다.
저자가 그렇게 자신있게 소리치는 것은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어서이다. 그리고 그런 호기를 부릴만하다고 격려하고 싶기도 하다.
저자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기는 어렵다고 해도 서양철학자와 과학자에 대해 나름대로 이해하고 정리해서 제시하는 내용은 과연 현대과학이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궁금증을 갖는 독자에게는 매우 훌륭한 길잡이가 될 만하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 중요한 점을 찍은 책으로 저자는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마틴 리스의 ‘여섯 개의 수’ 인간게놈을 해독한 프랜시스 콜린스의 유신진화론인 바이오로고스를 주장한 ‘신의 언어’의 핵심 사상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평가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현대 과학이 지금 어느 좌표에 와 있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정리는 과학자로 본 세계관의 변화이다. 과학의 눈으로 보면 저자는 인류가 크게 8차례 세계관의 변화를 알게 됐다고 주장한다.
갈릴레오의 지동설 ⇒ 뉴턴의 만유인력설 ⇒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 코펜하겐 해석의 양자론 ⇒ 빅뱅이론과 우주팽창론 ⇒ 인간원리 ⇒ 마틴 리스의 ‘여섯 개의 수’ 그리고 프랜시스 콜린스의 ‘바이오로고스’라고 그는 주장한다. 이 화살표만 잘 따라다녀도 현대과학의 좌표를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그러나 일반 독자들에게 설득력있게 다가오는 내용은 이런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철학부와 물리학부의 공동 세미나 참석자들은 이미 1991년 제네바 근교의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를 방문했다. 존재의 가장 작은 것을 보기 위해서였다.’
유럽의 철학자와 물리학자들은 25년 전부터 물리학과 철학의 경계를 허물고 발전하기 위해 통섭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는 말인데, 과연 우리나라에서 이런 공동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을까?
물리학과 철학, 신학의 경계는 무너지고 있는데…
접근하는 방향은 달라서 그렇지, 물리학자들이 우주의 기원을 찾는 것이나, 철학자들이 우주의 기원을 찾는 것이나 목적은 비슷하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철학자들이나 신학자들이 우주의 기원이나 신의 존재 여부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신의 속성에 대해 고민하고 주장한 내용들은 근거가 매우 희박하거나 사실인지 아닌지를 가늠할 방법이 없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그런데 현대 물리학의 복잡하고 험난한 여정과 형이상학의 미로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그러므로 이 책은 자기 두뇌를 사정없이 고문에 가깝게 훈련시키거나, 아니면 일생을 인간 존재와 우주와 물리학에 온통 쏟아 넣어서 다른 일에는 매우 둔감하거나 엄청나게 익숙하지 않은, 그렇게 지식의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과학신학이든 인간원리이든, 과연 기독교 신앙을 대체할 수 있을지는 아직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과학적인 설명으로 교회와 신학이 저지른 오류를 바로잡고, 좀 더 이성적이면서도 자세하게 우주와 창조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앙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기독교의 핵심 가치를 규정하는 단어는 이런 것이다. 인간이 지은 죄, 그 죄를 해결하는 방법으로서의 십자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죄를 대신 지고 사망했다가 부활했으며, 이것이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는 그런 구원의 핵심 원리이다.
저자는 죄, 피, 대속, 영생을 과학적으로 설명을 시도하기는커녕  단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았다. 열심히 일하고 재미있게 살다가 천국가기를 원하는 더 많은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기는 어렵겠다.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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