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비즈니스 리더 되려면 인재들 도전의식 자극해야…기업 내부만 들여다봐선 안 돼
미국 하버드 대학의 경영대학원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Harvard Business School)'은 MBA(MBA·Master of Business Administration·경영학 석사)란 단어를 처음 만들어낸 곳이다. 1908년 첫 강좌를 개설한 후 107년간 10만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
제프리 이멜트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 보잉의 제임스 맥너니 전(前) 회장, 맥 휘트먼 휴렛패커드(HP) 최고경영자(CEO),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 존 폴슨 폴슨앤드컴퍼니 회장, 인튜이트 공동 창업자인 스콧 쿡 등이 모두 이곳을 거쳐 갔다.
최고(最古)의 기록과 함께 최고(最高)라는 명성 역시 가지고 있다. 'US 뉴스 & 월드 리포트'지(誌)가 내놓는 글로벌 경영대학원(MBA) 순위에서 최근 10년 동안 단 한 차례(2011년 2위)를 제외하고는 1위 자리를 지켰다.
지원하는 사람은 연평균 1만명이다. 이 가운데 인터뷰를 거쳐 최종 합격하는 숫자는 1000명 안팎에 불과하다. 낮은 합격률에도 전 세계에서 인재가 몰려든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동문 가운데 32%가 미국 출신이 아니다. 현재 167개국에서 졸업생을 냈다.
지난 21일 서울 YBM 본사에서 니틴 노리아(Nohria)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학장을 만났다. 그는 이 학교 동문회 참석차 서울을 방문했다. 인도 이민자 출신의 노리아 학장은 지난 2010년 7월부터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학장을 맡고 있다.
그는 비즈니스 리더가 가져야 할 것으로 '조직원들에게 영감(inspiration)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꼽았다. 비전을 제시하고, 조직원들이 능동적으로 따라오게 만들 수 있는 리더가 있어야 기업이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은 오랫동안 많은 비즈니스 리더를 배출해 왔습니다. 비즈니스 리더 양성에 특별한 방식이 있습니까.
"케이스 스터디를 할 때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당신이 비즈니스 리더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습니다. 우리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만들려 하지 않습니다. 비즈니스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리더를 키우려고 합니다. 한마디로 기업을 경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리더를 만드는 것입니다. 통계를 내보니,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한 직후 창업에 뛰어드는 비율이 5~7%로 나타났습니다. 대략 50명 정도이니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학교를 떠난 지 25년이 지난 졸업생들을 살펴보니 절반가량이 자기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전문가가 아닌 기업가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경쟁력입니다."
―비즈니스 리더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무엇일까요?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능력입니다. 세상이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첨단 기술이 변화의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좋은 비즈니스 리더라면 기업 내부만 들여다봐서는 안 됩니다. 기업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어떤 기업이 성장하고 있는지, 경제 상황은 어떤지, 소비자들은 무엇을 원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그다음에 비전을 제시해야 하죠. 중요한 것은 리더가 비전을 제시한 후 조직원들이 스스로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능한 인재들의 도전 의식을 자극해야 합니다. 목표를 명확하게 세우고 달성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해야 합니다. 지금 같은 시대에 망설임은 사치입니다. 구성원 하나하나가 책임 의식을 갖고 움직여야 합니다. 기업가 정신이 충만한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 ▲ 제프리 이멜트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 제임스 맥너니 보잉 前 회장,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맥 휘트먼 휴렛패커드(HP) 최고경영자, 스콧 쿡 인튜이트 공동 창업자.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리더였습니다. 물론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아마존을 만든 제프 베저스도 비슷한 예입니다. 저는 뉴욕타임스지(紙)가 아마존의 기업 문화를 비판하는 기사를 쓰기 2주 전 아마존을 방문했습니다. 제가 만났던 아마존 직원들은 자기 책임 아래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든다는 사실에 굉장히 고무되어 있었습니다. '소프트 스킬'이 비즈니스 리더의 덕목으로 강조되고 있는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직원들에게 무조건 친절하고 상냥한 리더가 좋은 리더일까요? 구글을 보세요.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목표 의식을 심어주고, 성과를 요구합니다. 그 결과 구글은 지금도 성장하고 있습니다."
노리아 학장<사진>은 '직원들에게 영감을 주는 능력' 외에 비즈니스 리더에게 필요한 것으로 '직관(intuition)'을 꼽았다. 비즈니스 리더라면 기업들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 마케팅에 첨단 기술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고,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직관이라고 말했다. 노리아 학장은 "기술이 정말 많은 것을 바꿔놓고 있는데,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리더가 직관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지 않은가요?
"단순히 감에 의존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비즈니스 리더가 직관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은 복잡합니다. 예를 들어 수백만달러 투자를 놓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가정합시다. 시장 상황도 고려하고, 투자가 성공할 가능성 못지않게 실패할 가능성도 감안해야 합니다. 사실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비즈니스 리더들은 비슷한 경우를 찾아 참고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유사 케이스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업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 케이스를 묶어서 분석하거나, 객관적인 데이터를 수집해서 판단을 내리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기술을 이해하는 데 상당히 유용한 방법입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는 '직관' 입니다."
―그런 종류의 직관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요?
"직관은 경험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이 자랑하는 케이스 스터디가 직관을 키울 수 있는 좋은 수단입니다. 모든 케이스 스터디는 앞으로 기업들이 부딪힐 수 있는 실질적 문제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매년 케이스 250개를 발굴해 연구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스타트업 기업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례도 여러 지역에서 나옵니다. 1980년대 케이스 스터디 가운데 미국 외 지역에서 선정된 사례의 비율은 5% 정도였지만, 지금은 60%를 차지합니다. 한국 기업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도 꽤 있습니다. 미국 보스턴에 있는 학생들이 전 세계에 퍼져있는 기업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셈입니다. 저희가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현재 진행 중인 비즈니스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케이스 스터디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케이스 스터디는 결국은 과거의 케이스이고, 실제 활용은 별개 문제가 아닌가요.
"그래서 함께 강조하는 것이 바로 필드 스터디입니다. 실제 비즈니스 상황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푸는 방법을 익혀야 합니다. 하버드 이노베이션 랩(Havard Innovation Lab)이라는 공간이 있습니다. 하버드에 재학 중인 학생이라면 누구나, 어떤 아이디어라도 가지고 와서 창업할 수 있습니다. 한 학기당 팀이 60~70개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창업을 합니다. 예를 들어 신흥국에 진출하는 상황을 가정한 후, 어떤 신상품을 출시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겁니다. 주어지는 기간은 12주입니다. 그리고 그 기간안에 신상품을 실제로 선보여야 합니다. 하버드 이노베이션 랩을 통해 창업한 기업이 벤처캐피털에서 2억달러를 유치한 적도 있습니다."
―최근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이 큽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졸업생들은 글로벌 유수 기업에 가는 것을 선호하나요? 아니면 창업에 뛰어들거나 스타트업으로 가고 있나요?
"최근에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기업에 가는 졸업생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더니) 거의 절반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다음 세대의 구글과 페이스북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직접 창업을 하는 숫자도 꽤 됩니다."
―입학 경쟁률이 꽤 높습니다. 어떤 인재를 우선 선발하나요?
"단순히 학업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선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년 1만여 명이 지원하는데, 그 가운데 면접 대상은 3000명밖에 안 됩니다. 거기서 1000명 정도만 합격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똑똑한 것 이상의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어야 합니다. 책상 앞에서 하는 업무에만 강한 사람들이 있는데, 저희는 이런 사람들을 원하지 않습니다. 비즈니스 리더로서 불꽃이 막 튀어나와야 합니다. 앞에서 비즈니스 리더라면 영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남들보다 뛰어난 직관을 갖춰야 합니다. 틀에 맞춘 인재보다는, 다양한 관점에서 돋보이는 인재를 선발하려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국적의 인재를 선발하는 것도 그런 맥락인가요?
"맞습니다. 글로벌 기업이라면 세계 각국에 진출해야 합니다. 근시안으로는 진정한 비즈니스 리더로 거듭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습니다. 한국 학생도 매년 10명가량 입학합니다. 중국은 20~25명, 인도는 30~40명 정도 입학합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가장 큰 라이벌은 어디인가요?
"첨단 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실리콘밸리와 가까운 스탠퍼드대 MBA가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멋진 라이벌이 있다는 것은 긍정적입니다. 삼성전자도 애플이 있어서 더 발전하지 않았나요? 그럼에도 저희가 갖고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스탠퍼드 MBA 졸업생의 절반가량이 실리콘밸리와 관련된 기업에 가서 일을 합니다. 저희 졸업생은 좀 더 광범위한 분야로 진출합니다.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 가서 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양성에서 강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감합니다. 모든 MBA에 중요한 문제입니다. 비즈니스 리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작은 거짓말이라도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합니다. 폴크스바겐은 배기가스 배출량을 조작했고, 결국 막대한 벌금을 납부해야 할 상황에 처했습니다. 게다가 대기오염의 주범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습니다. 비즈니스 리더는 사회 다른 구성원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신흥국에서 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저렴한 약을 공급한 기업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를 수업 과정에 넣기도 했습니다. 특별한 책임감과 사회에 대한 공감 의식이 비즈니스 리더에게 꼭 필요합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기업들이 MBA 채용을 꺼린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MBA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비즈니스 스쿨'이란 모델이 앞으로 지속될 수 있을까요?
"저는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온라인 결제 서비스 기업 페이팔(Paypal) 창업자인 피터 틸은 대학교 학부 졸업장도 그다지 필요 없다는 얘기를 했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사실 이런 생각은 매우 근시안적입니다. 평균적으로 사람들이 앞으로 얼마나 직장을 다닐까요? 길게는 50년까지 다닐 것입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비즈니스 리더로서 역량을 갖추려면 MBA만 한 곳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온라인 교육이 오프라인 교육을 대체할 것이라는 시각이 있습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은 온라인 교육에 적극적입니다. 저희만이 아닙니다. 와튼도, 스탠퍼드도 모두 온라인 강좌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온라인 교육이 교실 수업을 몰아낼까요? 여러 나라의 사람과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다양성을 경험하는 것이 글로벌 시대 비즈니스 리더의 경쟁력입니다. 그 특별한 경험을 사람들이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교육은 상호 보완적입니다. 온라인 교육은 지속성 관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를 떠난 졸업생들도 다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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