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일 일요일

세계를 홀린 클래식 코리아

올해 주요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연주자들이 잇달아 1위를 차지하면서 한국 음악계의 '저력'에 세계가 놀라고 있다.
조성진에 앞서 임지영(20)은 지난 5월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에서, 피아니스트 문지영(20)은 지난달 이탈리아 부조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세계 유수의 콩쿠르 가운데 미답(未踏)의 고지로 남아 있던 대회를 차례로 등정한 셈이다

올 3大 콩쿠르 중 2개 석권… 한국 음악 역사상 처음
"2015년은 한국 클래식 음악계가 가장 찬란하게 빛난 해로 기억될 겁니다. '세계 3대 콩쿠르' 가운데 퀸 엘리자베스(바이올린 임지영)와 쇼팽(피아노 조성진) 두 대회에서 한국인 연주자가 우승을 차지했어요. 대한민국 음악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신수정 전 서울대 음대학장)
이토록 영롱하고 아름다운 쇼팽이 또 있을까. 지난 18일(현지 시각)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쇼팽 콩쿠르 결선 무대에 첫 순서로 오른 조성진은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했다. 1830년 스무 살 쇼팽은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여인을 그리워하며 이 곡을 썼다. 185년이 흘러 스물한 살 청년으로 쇼팽을 마주한 조성진은 마음을 다한 터치로 수줍게 피어오르는 열정을 그려냈다. /쇼팽 콩쿠르 2015 제공

올해 주요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연주자들이 잇달아 1위를 차지하면서 한국 음악계의 '저력'에 세계가 놀라고 있다. 조성진에 앞서 임지영(20)은 지난 5월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에서, 피아니스트 문지영(20)은 지난달 이탈리아 부조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세계 유수의 콩쿠르 가운데 미답(未踏)의 고지로 남아 있던 대회를 차례로 등정한 셈이다.

5월엔 바이올린 임지영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1위
김선욱·손열음·문지영…
토종 음악도들, 세계로 飛上
◇메이저 콩쿠르도 韓國 독차지
2005년과 2011년에 이어 올해는 우리 음악계가 가장 풍성한 수확을 거둔 해로 꼽힌다. 2005년엔 피아니스트 임동민·동혁 형제가 쇼팽 콩쿠르 공동 3위를 차지했고, 2011년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선 피아니스트 손열음·조성진(당시 2·3위) 등 한국 음악가 5명이 입상했다.
한국 음악계의 눈부신 성장 배경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교육원과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영재콘서트 시리즈가 있다고 음악인들은 입을 모은다. 음악 등 예술 각 분야의 영재를 이른 나이에 발굴(한예종 영재교육원)해서 가르치고, 실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금호영재콘서트)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완비했다는 것이다. 2006년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김선욱,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문지영,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은 모두 한예종 영재교육원을 다니며 한국에서 교육받은 '토종 음악인' 출신이다. 손열음·김선욱 등은 한예종 재학 당시 주요 콩쿠르에 입상한 뒤 독일·영국 등으로 진출했다.


또 금호 영재콘서트 시리즈는 조기 교육을 받은 나이 어린 연주자들에게 실전(實戰) 경험을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음악계는 분석했다. 조성진 역시 2005년 11세 때 금호영재콘서트를 통해 데뷔하고, 15세 때인 2009년 금호아트홀에서 다시 바흐·베토벤의 작품으로 독주회를 열었다. 피아니스트 김대진 한예종 교수는 "독주회든 오케스트라 협연이든 자주 무대에 선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큰 대회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어린 학생에겐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경험"이라고 했다.
클래식 영재 교육의 힘
한예종서 발굴, 체계적 교육…
금호콘서트로 실전경험 쌓아
◇젊은 음악 영재들의 협력·경쟁 풍토도 한몫
한예종에서 함께 공부한 손열음과 김선욱이 세계 유수의 콩쿠르에서 성과를 거둔 것처럼, 젊은 음악인들의 자율적인 협력과 경쟁 풍토도 한국 음악계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동력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출신 학교와 학번에 따른 수직적인 위계질서 때문에 맘껏 기를 펴지 못했던 예전과 달리, 다양한 실내악 활동이나 콩쿠르 경쟁을 통해 일찍부터 수평적인 경쟁·협력 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박선희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팀장은 "음악적으로 고민이 있거나 궁금증이 있을 때 이들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들을 찾아가 물어보고, 선배들은 후배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한다"면서 "선배들의 시행착오를 눈앞에서 보고 자라기 때문에 연주 실력이나 해외 진출 노하우를 일찍부터 습득하게 된다"고 했다.


조성진, '클래식의 올림픽' 쇼팽 콩쿠르 한국인 첫 우승… 쇼팽에 미친 '21세 쇼팽'


세계 최고(最高)의 피아노 콩쿠르에서 신동(神童)이 천재(天才)로 비상했다. 20일 밤(현지 시각)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폐막한 제17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조성진(21)이 1등을 차지했다. 콩쿠르 역사상 한국인 최초 우승이다. 서양 클래식 음악을 대표하는 악기인 피아노 분야 최고 권위의 콩쿠르에서 우승한 것은 "백인들의 아성이던 피겨 스케이팅에서 김연아가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과 맞먹을 만한 감동과 쾌거"(피아니스트 김용배 전 예술의전당 사장)다.
조성진은 폴로네즈(폴란드 무곡) 최고 연주상까지 거머쥐었다. 3만유로(약 3800만원)와 3000유로(약 380만원)를 상금으로 받고, 세계 각지에서 연주할 수 있는 기회도 얻는다. 아시아 출신으로는 당 타이 손(베트남·1980년)과 윤디 리(중국·2000년)에 이어 세 번째 우승이다. 우승 발표 직후 조성진은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콩쿠르에서 우승해 믿을 수가 없다"며 "앞으로 해야 할 연주 준비 때문에 지금 사실 좀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1위가 발표됐던 순간엔 "약간 멍했던 것 같다"며 웃었다.
이번 우승은 41년 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한 피아니스트 정명훈에 이어 한국 음악계 최대 경사로 꼽힌다.


1974년 당시 21세였던 정명훈은 빨간 오픈카에 올라 서울시청 앞까지 퍼레이드를 했다. 조성진의 스승 신수정 전 서울대 음대 학장은 "충분히 상 받을 자격이 있는 연주였다"며 "너무 기쁘고 자랑스러워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뛴다"고 했다. 쇼팽 콩쿠르는 숱한 스타를 배출한 산실(産室)로 정평이 나 있다. 마우리치오 폴리니(1960년), 마르타 아르헤리치(1965년), 크리스티안 지메르만(1975년), 스타니슬라프 부닌(1985년) 등 역대 우승자들은 '피아노의 전설'로 남을 만큼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

조성진은 열다섯 살이던 2009년 일본 하마마쓰 콩쿠르에서 우승했지만,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3위에 이어 지난해 루빈스타인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도 3위에 머물렀다. 수줍음 많고 말수 적은 그는 절치부심하며 이번 대회를 준비했다. 전 세계 16~30세의 연주자들이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오로지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곡으로만 실력을 겨루는 쇼팽 콩쿠르는 그에게 "어릴 적부터 꿈"이었다.
올 초 여기에 나가기로 결심한 조성진은 대회를 앞두고 휴대폰을 없앴다. 카톡과 문자도 끊었다. 일찌감치 출전을 선언한 뒤 9개월간 쇼팽만 연주했다. 최종 심사 발표를 앞두고 쇼팽 콩쿠르협회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쇼팽만 연주하고, 쇼팽처럼 살았다"고 했다. 어린 시절 조성진의 재능을 발견하고 지도했던 박숙련 순천대 교수는 "성진이는 피아노 앞에서 손가락으로만 치는 게 아니라 곡 하나를 두고 관련 책을 수십 권 찾아 읽고, 음반도 100개씩 돌려 듣고, 미술관·박물관에도 자주 가며 다채롭게 공부를 많이 하는 아이였다"고 했다. 조성진은 예원학교·서울예고를 거쳐 2012년부터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쇼팽만 연주하고, 쇼팽처럼 살았다"
9개월간 휴대폰도 없애…
"우승 호명 순간 멍했다"
쇼팽 콩쿠르는 1927년 폴란드 정부가 폴란드에서 태어난 작곡가 쇼팽(1810~1849)을 기리기 위해 시작한 대회다. 젊은 음악팬들 사이에선 일본 만화 '피아노의 숲'에서 주인공이 극적으로 우승하는 콩쿠르로 더욱 유명해졌다. 한국인 참가자 중에선 2005년 공동 3위에 오른 임동민·동혁 형제가 최고 순위였다. 김용배 전 사장은 "쇼팽만의 우아하고 세련된 정서는 동양인이 도무지 흉내 낼 수 없을 거라고 여겼던 유럽 음악계의 선입견을 깼다"며 "한국 음악계로서도 마지막 미답(未踏)의 고지를 등정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결선 무대 첫 주자로 나서 40분간 혼신을 다한 연주
41년前 21세였던 정명훈 차이콥스키 콩쿠르 2위 이은 한국 음악계 '신나는 쇼크'

지난 18일(현지 시각) 결선 무대에 조성진은 10명 중 첫 번째 순서로 올랐다. 조성진은 침착하게 40분에 걸쳐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했다. 소리가 한 음 한 음 살아서 통통 튀고 영롱했다. 몇몇 전문가들은 다른 참가자의 우승을 점쳤지만 조성진은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씩 웃었다. 2위는 샤를 리샤르 아믈렝(캐나다), 3위 케이트 리우(미국)다. 이번 콩쿠르에서 조성진은 본선부터 결선까지 네 차례 무대에 올라 협주곡과 마주르카, 스케르초 등 총 38곡을 쳤다. 조성진의 본선·결선 연주는 다음 달 실황 음반으로 도이치 그라모폰(DG)에서 발매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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