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일 일요일

"진짜 원하는 것을 하라" '21세 쇼팽' 키운 부모의 한마디

치맛바람’도 ‘금수저’도 없었다. 그저 “이유는 잘 몰라도 나는 잘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는 심지 굳은 소년과 뒤에서 “네가 원하는 것을 하라”고 조용히 응원해 준 부모님이 있었을 뿐이다.
세계 최고(最高) 피아노 콩쿠르인 폴란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21)의 성장 과정은 요란할 것도 화려할 것도 없다.
많은 클래식 영재가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와 헌신 아래 자라난 것과는 전혀 딴판이다.

 
겸양(謙讓)의 부모
조성진의 아버지는 대기업 건설사 간부이고 어머니는 가정주부다. 두 사람 모두 음악을 공부한 적은 없다. 조성진은 몇 년 전 한 월간지 인터뷰에서 “먼 친척 중에도 음악을 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부모 모두 언론 인터뷰를 극구 사양하는 것으로도 이름났다. “어릴 때부터 성진이와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조성진의 아버지는 기자와의 짧은 전화통화에서 “성진이가 어릴 때 음악계에 내보내면서 우리(부모)는 절대 앞에 나서지 않기로 했고 그건 성진이와 함께 의논해서 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 17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조성진. 비교적 늦은 여섯 살 때 피아노를 시작했지만 부모의 묵묵한 응원과 지지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실력을 키워 세계 최정상 자리에 우뚝 섰다. /쇼팽 콩쿠르 2015 제공
아버지는 대기업 간부, 어머니는 주부
회사에서 자식 이야기 안해
친한 동료들이 성금 모아줘도
아버지는 끝내 받지 않아
실제 이번 콩쿠르 직후뿐 아니라 평소에도 조성진의 부모인 것을 거의 알리지 않고 지내왔다고 한다. 조성진의 중학교 시절 음악부장 교사였던 예원학교 이종기 교장은 “학교에서도 워낙 조용한 부모였다”고 했다. “다른 부모님들은 한두 번씩 찾아와 ‘아이를 어떤 콩쿠르에 보내야 하느냐’ ‘어디로 유학을 보내는 게 좋겠냐’ 등을 상의하곤 하는데, 두 분은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교장은 “성진이가 학창 시절 학교 행사 때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연주회 때 와서 지켜보고 끝나고 찾아와 인사만 한 게 전부였다”고 했다.
조성진을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예술의전당 영재 아카데미에서 가르친 박숙련 순천대 교수도 비슷한 말을 했다. “어머니는 항상 성진이를 앞에서 이끌기보다 뒤에서 조용히 챙겨주고 묵묵히 따르는 편이었어요. 몇몇 어머니들은 아이가 어떻게 피아노를 치는지 보고 싶어서 레슨에 들어오기도 하는데, 이분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프랑스 유학 이후에도 그저 함께 다니면서 성진이가 먹고 입는 것을 챙겨줄 뿐이지, 아이의 진로 문제에 직접 개입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조성진 아버지의 회사 동료들도 “그런 유명한 피아니스트를 자식으로 뒀다는 걸 뒤늦게야 알았다”고 말했다. 한 회사 동료는 “워낙 자식 이야기를 남 앞에서 하는 사람이 아닌 데다 아들이 이전에 콩쿠르에서 상을 받아도 얼굴에 기쁜 표시조차 내고 다니질 않아, (조성진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회사에) 많았다”고 했다. 또 다른 회사 동료는 “조씨와 아주 친한 동료 중 몇몇이 주도해서 ‘콩쿠르를 잘 치르라’고 성금을 모아준 적도 있지만 아버지가 끝끝내 받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는 “성금을 받게 되면 아무래도 성진이 이야기가 회사에 널리 퍼질 것을 걱정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조성진 아버지가 다니는 건설사의 그룹 측도 “회사에 이런 유명한 피아니스트를 둔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사보팀에서 글을 써달라고 부탁했으나 이 역시 정중하게 거절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어떤 형식으로든 주위에 폐를 끼치고 싶지도, 주목을 받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는 것이다.
               
아들을 믿고, 스승에 맡겼다
다른 학부모처럼 학교 찾아와
유학·콩쿠르 상의하지 않아
연주회에 와서 인사만 한 게 전부
“남들이 뭐라건 자식을 믿었다”
조성진이 피아노를 치기 시작할 때부터 화려하게 주목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그는 다른 피아노 영재들에 비해 비교적 늦은 여섯 살 때 동네(분당) 피아노 학원에서 친구들과 처음 피아노를 배웠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소나티네를 쳤다. 콩쿠르에 나가는 다른 또래 아이들이 쇼팽을 칠 때였다. 초반엔 콩쿠르마다 떨어졌다. 그런데도 조성진은 부모에게 “피아노를 계속 하겠다”고 말했고, 부모는 그런 상황에서도 “네가 원하면 하라”고만 말했다고 한다.
2005년 11세 때 금호영재콘서트 데뷔 무대에 선 조성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2012년 조성진이 18세 고등학생일 때 인터뷰했던 주간조선 김민희 기자는 “당시 인터뷰에 동석해서 뒤에 조용히 앉아 있던 어머니께 ‘성진이가 그렇게 늦게 피아노를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어떤 심정이었느냐’고 묻자 ‘그저 본인이 좋아하는 걸 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허락했다. 좋은 대학에 보내겠다는 욕심 같은 건 없었다’고 대답하더라”고 말했다. 조성진은 당시 “부모님이 음악을 잘 모르셔서 무조건 저를 지지해주셨던 것도 있는 것 같다. 저 스스로도 나는 항상 잘될 거라는 이상한 자신감과 믿음이 있었다. 언젠간 최고가 될 거라고 믿고 일단 시작했다”고 당시 인터뷰에서 말했었다.
               
조성진은 그 이후 무서운 속도로 실력을 늘려나갔다. 박숙련 교수는 “워낙 부모님이 선생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묻지 않는 스타일이다 보니 스승으로서 더욱 열심히 가르치게 됐다”면서 “게다가 성진이가 뭘 가르쳐줘도 바로바로 습득해서 마치 물을 빨아들이는 스펀지와도 같았다. 가르칠 맛이 나는 아이였다”고 말했다. 예원학교 이종기 교장도 조성진을 ‘연주곡 습득 능력이 유난히 빨랐던 학생’으로 기억했다. “2009년 교내 오케스트라 협연 때 성진이에게 피아노 연주를 맡겼습니다. 연주곡이 쇼팽 콘체르토였다가 나중에 갑자기 그리그 연주곡으로 바뀌었어요. 준비 기간이 무척 짧았는데도 성진이는 금세 익혀서 훌륭하게 소화해냈습니다. 그때 ‘이 학생은 정말이지 무서운 속도로 크는구나’ 하고 생각했었죠.”
조성진 초등학교 졸업앨범
“애 어른 같던 내 친구”
학창 시절 친구들도 조성진을 ‘아이같이 천진난만하면서도 애어른 같은 구석이 있던 아이’로 기억했다. 조성진과 함께 분당 신기초등학교를 다녔다는 이모(21)씨는 “놀이동산 가는 것을 무척 좋아하고, 빵과 만화를 즐겨 찾던 순수한 친구였다. 그렇지만 이따금씩 너무 어른같이 말할 때도 있었다. 또래 아이들과 달리 ‘쉘부르의 우산’ 같은 옛날 영화를 보거나 ..사실을 알고 놀라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2014년 11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조성진의 예원·예고 동창’이라고 밝힌 이가 쓴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성진이에겐 음악이 너무 자연스러운 것 같이 보였다. 마치 숨 쉬듯이 피아노를 쳤다… 약간 4차원이기도 했다. 걔가 친구들이랑 장난치면서 놀 때 난 성진이가 애들이랑 놀아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고 썼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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