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極 빙하 녹아 해수면 상승, 교역중단·식량난 등 문명 몰락
하버드大 교수의 '假想 역사서'
"기후변화, 계속 수수방관하면 전체주의 득세할 것" 경고 던져
다가올 역사, 서양 문명의 몰락
나오미 오레스케스·에릭 M. 콘웨이 지음
홍한별 옮김|갈라파고스|192쪽|1만원
2093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지구상의 문명은 몰락한다. '대붕괴'는 남·북극과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7m나 상승하면서 시작된다. 모든 일은 연쇄적으로 벌어졌다. 뉴욕·도쿄·상하이·암스테르담·함부르크·부산 같은 항구 도시가 물에 잠기면서 교역이 중단됐고, 원유 수송로가 끊기자 공장과 발전소, 자동차가 멈췄다. 세계 곳곳에서 식량난이 터졌지만 바다를 단백질 공급원으로 이용할 수는 없었다. 전 세계 해안가의 원자력 발전소 430기가 물에 잠겨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와 같은 오염 사태가 벌어졌다. '기후 난민'들은 필사적으로 저지대 탈출을 감행하고, 곳곳에서 정부가 전복됐다. 민주주의 체제는 작동을 멈췄다. 강력한 힘을 가진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정치 체제가 대륙별로 들어서 혼란을 수습하고 인류는 새로운 문명기로 접어든다.
'다가올 역사, 서양 문명의 몰락'은 인류의 화석연료 중독이 종말을 부를 수도 있음을 가상의 역사서 형식으로 서술했다. 하버드대 과학사 교수인 나오미 오레스케스와 캘리포니아공대 제트추진연구소 과학기술사가인 에릭 M. 콘웨이가 함께 썼다. 책 속의 화자(話者)인 2393년의 역사학자는 "일찍이 스스로를 '계몽의 자식'이라 일컬었던 서양 문명은 종말을 예측할 능력이 있었음에도 이를 막지 못했다"며 우리에게 연유를 묻는다.
- 기후변화에 따른 재앙이 문명을 파국으로 몰아갈 수 있지만 우리는 경고를 무시하고 있다. 사진은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 인류가 위기를 맞는다는 내용의 재난 영화 ‘투모로우’의 한 장면. /폭스코리아 제공
미래의 역사학자는 현재의 문명을 되돌아보며 서구 문명이 실증주의와 시장근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분석한다. 온난화에 대한 과학자들의 경고는 무성했지만 번번이 검증 요구에 직면해 좌절했고, 화석연료 사용으로 이익을 얻는 신(新)자유주의 '탄소연소 복합체' 세력의 힘은 계속 커져갔다. 그 결과 인류가 맞이하는 미래는 디스토피아적인 전체주의 사회다. 우리의 후손인 역사학자가 '제2중화인민공화국' 국적자로 설정됐다는 점은 시사점이 크다. 몰락 이후, 인류는 좁은 땅덩어리에서 아귀다툼을 벌인다. 곳곳에서 기아와 전염병이 창궐한다. 국가가 막강한 권력을 갖고 곳곳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들은 현재의 중국과 유사한 권위주의 정치 체제가 혼란을 수습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본 듯하다. 기후변화에 대한 경고를 무시한 대가는 바로 전체주의 세력의 득세였던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서양 문명의 몰락'인 것도 그 때문이다.
화석연료 남용으로 지구가 더워지고 있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反論)도 많다. 학자들 중에는 최근의 기온 상승 현상을 중세가 끝나면서 15~19세기 지구의 평균 기온이 낮아지는 소(小)빙하기를 겪은 이후 원상 회복되는 과정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중세에는 무척 온난했다고 한다. 여름철 빙산이 녹는 현상을 환경단체들이 과장했다는 주장도 종종 제기된다.
- 해수면 상승으로 달라진 2300년 무렵의 미국 뉴욕 인근 해안선 가상도. /갈라파고스 제공
또 미국과 캐나다가 석유를 대체하기 위해 셰일 가스 채굴에 몰두하는 바람에 재생 가능 에너지 산업이 타격을 입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셰일 가스는 채굴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와 메탄을 방출시켜 온난화를 가속화시켰다. 강대국들이 매달리고 있는 북극권 자원 개발도 영구 동토층에 갇혀 있던 메탄을 풀어놔 파국을 부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따라서 이 책은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 이 행성에서 벌어지고 있는 위기에 대한 보고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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