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9일 일요일

누가 우월한가?

대부분 사람들은 우월해지기를 원한다. 우월해 지는 것은 무엇일까? 우월해진다는 것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인가? 권력을 갖는 것인가? 많이 아는 것인가? 우리는 재산을 가진 사람들, 권력을 가진 사람들, 또는 지식인들이 그것을 잘못 사용하여 사회적으로 비난 받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모든 사람들이 존경할만한 진짜 우월한 사람은 ‘나’를 넘어서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 (심리학자 아들러의 용어를 빌리자면) ‘사회적 관심’을 갖는 사람이 아닐까? 즉 우리의 이웃들, 우리 국가, 우리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사람 말이다. 그렇다면 ‘공동의 선’에서 ‘<<공동>>은 어디까지를 포함하는 것인가?
인류 역사를 살펴볼 때 사람들은 자신과 남을, 자기 가족과 다른 가족을, 자기 나라와 다른 나라를 구분하여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도 스페인과 유럽인에게는 이익을 주었지만 신대륙에 거주한 원주민에게는 아픔을 주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세계평화를 지키기 위해 원자폭탄을 개발하려는 목적으로 추진된 맨하튼 프로젝트도 연합군의 위세를 자랑하게 하였지만 일본에게는 많은 민족을 잃고 국토가 폐허가 되는 슬픔을 주었다.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는 무법자?
위대한 탐험가로 소개된 콜럼버스는 네 번에 걸친 항해를 통해 신대륙 발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비단과 황금, 향료가 많다고 믿었던 일본(지팡구)과 중국(카다이), 인도 등의 신비한 동양의 땅에 가기위해 여러 번 왕께 자신의 신대륙 탐사 제안서를 제출하였다. 그 결과 마침내 1492년 스페인의 왕과 왕비와 산타페 협약을 체결하고 항해를 시작했다. 그 협약을 통해 콜럼버스는 총독의 지위를 약속받았고 발견된 지역으로부터 얻어지는 모든 이익의 10%를 취득하고 앞으로의 교역활동에 대해 최고 1/8의 자본참가권을 승인받았다.
1492년 8월 3일, 산타마리아 호, 핀타 호, 니냐 호 3척에 90~120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황금과 향료가 나는 신대륙 탐사 항해를 시작하여 쿠바 섬, 히스파니올라 섬(지금의 아이티 섬)에 도착했다. 1493년 3월 일부 선원들을 히스파니올라 섬에 두고 스페인으로 돌아가면서 쿠바와 히스파니올라 섬에서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담배와 해먹을 유럽에 가지고 돌아와 전파했다. 다시 1493년 9월에 더 많은 배(17척)에 더 많은 승무원(1200~1,500명)을 태우고 다시 히스파니올라 섬으로 갔다. 그러나 섬에 도착한 그와 일행은 향료와 황금을 발견하지 못하였고, 히스파니올라 섬에 남아 있던 스페인 선원들의 약탈과 강제 노역, 폭행으로 울분이 터진 원주민의 반란으로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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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네이버
유럽인들에게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하여 새로운 탐험과 정착의 기회를 제공한 위인’이며 이러한 공로로 인해 지금까지 세계 여러 나라의 교과서에 콜럼버스는 용감한 탐험가로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콜럼버스가 발견한 땅의 원주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콜럼버스는 어떤 사람인가? 콜럼버스가 발견한 땅에는 이미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고 그 원주민에게 콜럼버스는 원주민을 약탈하고 강간하고 강제노역에 동원한 무법자요 학살자였다. 원재훈의 인물세계사에는 콜럼버스가 도착할 때 그곳에 사는 원주민들은 온순하고 작은 창외에는 무기도 없었으며, 태도도 호의적이었다고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스페인에서 온 선원들이 그들을 폭행하고 마구 대하고 노예로 팔아넘기자 그들도 저항하였다.
콜럼버스가 추구한 황금과 향료가 나는 신대륙 발견은 결국 자신의 부와 명예 그리고 “스페인”을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콜럼버스가 더 큰 ‘공동의 선’을 추구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단순히 “탐험”을 즐기며, 신대륙의 사람인 원주민을 존중하고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는 선에서 그쳤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콜럼버스는 탐험을 떠날 이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향료와 황금이 나는 대륙을 발견하고 그와 관련된 이익을 챙기기로 왕과 협약을 맺고 항해를 시작했으니까…
맨하튼 프로젝트는 세계평화를 지키기 위한 것?
2차 세계대전 중에 있었던 ‘세계평화를 지키기 위해 원자폭탄을 개발한다’는 특명을 가진 맨하튼 프로젝트에 대해 많이들 알고 있을 것이다. 미국의 과학자들, 나치를 피해 미국에 있던 유럽 과학자들, 영국, 캐나다의 과학자들 등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뉴멕시코의 오지에 있는 로스앨러모스에 모여 원자폭탄을 만드는 비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연합군의 승리로 전쟁을 이끌기 위해 독일보다 빨리 핵폭탄을 만들어야한다는 생각으로 핵폭탄 연구에 매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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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원자폭탄이 폭발한 순간과 폭격한 군인들(사진출처: 네이버)
그러나 1945년 4월 30일 히틀러가 지하 벙커에서 자살하면서 유럽에서 전쟁이 끝나자 과학자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였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어떤 과학자는 유럽에서 전쟁이 끝난 것이 확실해 지자 핵무기 개발을 반대하고 맨하튼 프로젝트를 떠났다. 프로젝트의 연구 책임자였던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이 세계를 파괴할 수 있음에 책임감을 느끼고 자신이 개발한 산물이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음에 고뇌하였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던 아인슈타인도 버트란트 러셀과 함께 ‘핵전쟁의 위험을 호소하며 전쟁을 하지 말자’는 호소문을 발표하였다. 1945년 8월 6일에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후 2개월에서 4개월 동안 90,000명에서 166,000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발생했으니 그들이 만든 폭탄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였다. 놀라운 위력의 원자폭탄을 개발하려는 목적은 달성하였지만 맨하튼 프로젝트가 과연 세계평화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을까?
무엇이 옳은가?
콜럼버스는 정말 탐험이 좋아서 아무 보상이 없어도 신대륙 발견을 위한 항해를 하였을까? 아니면 신대륙 발견 결과 돌아오는 황금과 향료에 대한 그의 지분과 그가 얻게 될 총독이란 지위가 신대륙 발견을 위한 탐험을 하게했을까? 창의성과 동기에 대해 연구한 아마빌(Amabile)은 창의적인 산물을 만드는 것은 ‘하고 싶다’는 내적 동기와 함께 ‘내적 동기를 갖도록 도와주는’ 외적 동기 즉 보상이라고 한다. 그러니 콜럼버스는 탐험이 하고 싶기도 했겠지만 그에 따르는 보상이 있어서 더욱 탐험을 즐겼을 것이다. 이러한 보상은 사람의 욕심을 자극하게 된다. 그래서 시작 단계에서는 분명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욕심이 경쟁심리를 자극하고, 명예를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 또는 부를 축적하려는 욕구, 누군가를 지배하려는 욕구를 자극하여 결과는 오히려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경우를 종종 본다.
맨하튼 프로젝트에서도 히틀러의 자살과 일본의 항복으로 전쟁이 종식되었을 때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않았다면 많은 생명이 사라지지는 않았을 텐데, 트루먼 대통령은 원자폭탄의 투하를 지시했다. 그리고 미국이 원자폭탄을 보유하고 초강대국이 되자 다른 나라도 미국을 견제한다는 명목으로 원자폭탄을 보유하였고, 이를 견제하기 위해 원자폭탄 보다 성능이 강한 수소폭탄이 만들어졌다. 이 가공할만한 위력을 가진 과학적 산물은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온 세계를 멸망시킬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도 어디에선가 더 강한 무엇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이렇게 계속 더 강한 것을 만드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인가? ‘공동의 선’을 추구한다고 할 때 과연 어디까지가 <<공동>>인가? 이러한 질문을 독자들과 함께 고민해 보기를 원하며, 여러 형태의 토론의 장을 통해 ‘공동의 선’을 추구할 때 지켜야할 기본적인 지침을 다시 한번 정리하였으면 한다.
사이언스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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