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2일 일요일

'미네소타 프로젝트'

1955년 9월 15일 서울대병원 젊은 의사 10여명이 당시 공항으로 쓰이던 여의도에서 미국행(行)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미네소타대학병원으로 연수를 떠나기 위함이다. 1인당 국민소득(GNP)이 66달러 하던 시절이었으니, 그들의 여행 짐은 단출했다. 한국 전쟁 후 어수선한 시점이라 그들이 받은 의학 교육도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지금은 전국 60개 병원에서 심장 수술을 하지만 당시에는 한국의 어느 병원도 심장 수술을 할 실력과 시설이 없었다. 의대 실습실에 전기가 안 들어와 대장균 배양 실험을 가슴 품에 데워서 하던 때였다.

이 젊은 의사들에게 미네소타대학병원은 의료의 신천지였다. 무조건 죽는 줄로만 알았던 선천성 심장병을 거기서는 조기에 진단하고 수술로 살렸으니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다들 전공에 따라 첨단 의료기술을 익혔다. 소아과 의사는 소아 심장병을 진단하고 관리하는 기술을 익혔고, 미생물학을 전공한 의사는 바이러스 배양법을 처음 배웠다.

연수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들은 미국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을 갖고 의학 교육과 진료 시스템을 바꿔나갔다. 그 '소아과 의사'(홍창의·86·전 서울대의대 교수)는 국내 최초로 소아과학 교과서를 펴냈고, 어린이 전문병원을 세우는 데 기여했다. '미생물학 의사'(이호왕·81·전 학술원 회장)는 유행성 출혈열을 일으키는 한탄 바이러스를 세계 최초로 발견한 인물이 됐다. 이들은 1955년부터 1961년까지 진행된 이른바 '미네소타 프로젝트' 출신들이다. 이 프로젝트는 한국 원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미국 정부가 미네소타대학에 의뢰해 시작된 교육 지원 사업이었다. 약 7년에 걸쳐 총 226명의 젊은 교수 요원이 학비와 숙식비를 제공받으며 미네소타대학에서 연수를 했다(이왕준·2006년 서울대 의사학 박사학위 논문). 미 정부 산하 해외활동본부가 내놓은 총 1000만달러의 지원금은 신(新)지식에 목마른 한국 젊은 의사들에게 가뭄 속 단비와 같은 것이었다. '미네소타 출신'들은 국내 전문학회를 이끌고, 대학병원 원장을 맡으며, 한국 의료를 선진화시킨 주역이 됐다. 의학교육과 의사 양성 체계도 독일·일본식에서 미국식으로 바뀌는 계기가 됐다.

요즘 우리나라의 임상의학 수준이 세계적으로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를 바탕으로 이제는 국내 병원들이 해외 환자 유치에 뛰어들고 있다. 정부도 해외 환자 마케팅을 할 수 있도록 의료법을 바꿔가며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의료도 국가간 장벽을 넘어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쪽으로 이동하는 세상이니 상당한 경제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료'라는 것이 산업이기도 하지만 본래 공익의 성격이 강한 분야다.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의 '부자 환자'를 많이 유치하는 것이 당장 국익에 도움이 되겠지만, 국가 이미지와 연계되지 않고는 오래 갈 수 없다. 궁극적으로 현지 의료진과 탄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한국 브랜드의 병원이 해외 곳곳에 들어서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의사·간호사들을 데려다 교육시켜주고, 그 나라의 의료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해야 한다. 우리가 미국 병원으로부터 선진 의료를 전수받은 것처럼 이제 우리의 의료 지식과 기술을 나눠야 한다. 해외 환자를 대거 유치했다고 '의료 강국'이라는 소리를 듣긴 어려운 세상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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