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1일 금요일

다같이 돌자, 학교 한바퀴… 영국을 바꾼 '15분의 기적' '데일리마일(Daily Mile)' 프로그램



뛰면 에너지가 생기는 게 느껴져요." 지난 16일(현지 시각) 오전 11시 영국 런던 루이샴 지역에 위치한 세인트조지초등학교. 아이 30여 명이 건물 주위를 걷거나 뛰어서 돌고 있었다. 영상 3도의 쌀쌀한 날씨에도 여기저기서 밝게 웃었다. 아이들이 뒤처지면 교사들이 다가가 "계속해 보자"고 독려했다. 15분 뒤 모든 학생이 결승선에 들어왔다. 3학년 이튼(8)군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힘들지 않다"고 했다. "이렇게 뛰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공부가 더 잘되는 것 같아요." 학생들은 등교할 때 입은 복장 그대로 뛰었다. 교실로 돌아와서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곧바로 수업에 집중했다.
 
하루 15분간 1마일(1.6㎞)씩 뛰거나 걷는‘데일리마일’프로그램에 참가한 영국 초등학생들. 이 프로그램은 7년 전 영국 스코틀랜드의 한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개발했다. /데일리마일재단 제공
이 프로그램은 하루 15분씩, 1마일(약 1600m)을 뛰는 '데일리마일(Daily Mile)' 프로그램이다. 2012년 영국 스코틀랜드 스털링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 비만을 줄여보겠다고 시작했다. 영국은 초등 6학년 학생 셋 중 한 명(34%)이 과체중·비만일 정도로, 아동 비만이 심각하다.

6년이 흐른 지금, 데일리마일 프로그램은 전 세계 36개국, 7000여 학교로 퍼져 나갔다. 영국(5000개교)·벨기에(1000개교)·네덜란드(240개교) 등 유럽뿐 아니라, 아랍에미리트(11개교)·말레이시아(3개교) 등 중동·아시아 학교들도 도입했다. 별도 장비나 복장 없이 하루 15분씩 매일 뛰었을 뿐인데, 체력이 좋아지고 체지방률이 줄어들었다. 영국 스털링대는 2015~2016년 스털링 지역 초등학생 참가자 400여 명의 체지방량이 평균 4% 줄었다고 분석했다.

학업 성적도 올라갔다는 보고도 이어지고 있다. 런던 코퍼밀초등학교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영국 정부가 주관하는 학업성취도평가(SATs)에서 기준치 이상 점수를 받은 학생이 전국 평균보다 과목별로 14~26%포인트씩 많아졌다.
 
영국 정부는 2016년 비만 대책의 일환으로 '데일리마일'을 전국 학교에 우수 프로그램으로 추천했다. 테리사 메이(May) 영국 총리는 지난 5월 국회에서 "데일리마일은 간단하면서도, 운동 안 하는 학생들을 운동하게 만드는 훌륭한 프로그램"이라고 밝혔다. 일간 가디언은 "이미 데일리마일 운동이 세계적인 추세가 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데일리마일' 프로그램 이름은 15분 달리면 대략 1마일(1600m)이 된다고 해서 붙여졌지만, 1마일을 채우는 것보다 매일 15분간 꾸준히 몸을 움직이는 게 더 중요한 원칙이라고 데일리마일 전문가들은 말한다. 수업 전후 하루 15분씩 매일 뛰는 건 학교도, 아이들도 큰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다. 기자가 방문한 세인트조지초등학교는 4~5년 전부터 전교생 230여 명 모두 매일 이 운동을 하고 있다. 이 학교 정규 체육 시간은 일주일에 2시간인데, 학생들은 하루 15분씩 추가로 체력을 다지는 셈이다.

◇수업 시간 집중력 떨어지면 "달리자"
학생들은 15분간 건물 주위를 네 바퀴 돈다. 뛰는 시간은 수시로 변한다. 교사들이 그때그때 학생 상태를 체크해 언제 밖으로 나가 뛸지 정하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 집중력이 떨어진다 싶으면 나가기도 하고, 쉬는 시간에 뛰기도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뛰는 걸 거르지 않는다.

세인트조지학교 측은 "'데일리마일'이 아이들을 바꿔놓았다"고 했다. 6학년 담임 루시 스미스(30) 교사는 "처음에 (매일 뛰는 걸) 힘들어했던 아이들도 달리기를 통해 몸과 마음 모두가 건강해지는 변화를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또 "뚱뚱한 아이들도 절대 뛰는 걸 포기하지 않는다"며 "스마트폰 문제가 전 세계 어디에서나 사회문제이지만, 달리기를 즐기는 아이들은 방과 후나 휴일에도 (스마트폰보다) 뛰어노는 걸 더 좋아한다"고 했다.

이 학교에선 1주일 중 하루 학부모와 교사들도 인근 공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뛴다. 1마일을 뛰면서 부모들끼리 친목을 도모하고, 교사와 아이들 문제 상담도 한다. 학교 관계자는 "부모들도 '아이들 체력이 좋아졌을 뿐 아니라 집중력, 사고력, 문제 풀이 능력까지 향상되는 것 같다'며 매우 좋아한다"고 했다.

◇하루 15분의 놀라운 효과
7년 전 데일리마일이 시작된 뒤, 프로그램의 효과를 입증하는 연구 결과와 성공 사례가 속속 나왔다. 영국 런던의 코퍼밀초등학교가 대표적이다.

이 학교에서는 지난 2016년 4~6월 12주간 5·6학년 학생 76명이 데일리마일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12주가 지난 뒤 참가 학생들의 체력을 측정했더니, 체력 '하위 20%'에 들어가는 학생이 36명에서 12명으로 줄고, '상위 10%'에 드는 아이는 12명에서 29명으로 배 이상 늘었다. 학생들이 하루 달리는 평균 거리도 1659m에서 1976m로 늘어났고, 자신감·자존감도 20% 이상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 측은 "학력도 올라갔다"고 판단하고 있다. 영국 초등학생들은 7세, 11세 때 각각 한 차례씩 정부가 실시하는 '학업성취도평가(SATs)'를 친다. 최고점은 120점, 최저점은 80~85점, 기준점은 100점이다. 100점을 넘어서면 영국 정부가 기대하는 학력 혹은 그 이상에 도달했다는 의미다. 코퍼밀초등학교는 읽기 시험에서는 6학년 학생 92%, 쓰기에선 88%, 수학에선 96%가 100점 혹은 그 이상을 맞았다. 기준 점을 넘어서는 아이들이 영국 전체 초등학교 평균보다 각각 26%포인트, 14%포인트, 26%포인트씩 많았다.

학교 측은 "데일리마일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학생들이 수업에 더 집중하게 됐고, 과제를 끝까지 해내는 능력도 커졌다"면서 "6학년생들은 전국 학업성취도평가를 앞두고서도 데일리마일을 빼먹지 않고 했는데, 결과적으론 굉장히 높은 성적을 거뒀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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