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6일 수요일

주기율표에 이름을 남긴 과학자들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물질은 불과 100여 가지 원소로 이뤄져 있다. 여기에 사람들이 인공적으로 만든 원소를 합쳐야 모두 120가지가 되지 않는다. 12월 1일 국제순수응용화학협회(IUPAC)는 수년 전 만든 인공 원소 2종의 이름을 제안했다. 원자번호 114번은 플레로븀(flerovium, 줄여서 Fl)이고 116번은 리버모륨(livermorium, 줄여서 Lv)이다. 리버모륨은 이 원소를 만든 미국의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를 기념하기 위해 연구소가 위치한 도시인 리버모어(Livermore)에서 이름을 따왔다. 플레로븀은 이 원소를 만든 러시아의 플레로프 핵반응연구소의 설립자인 게오르기 플레로프(Georgy Flerov)를 기려 명명했다. 



1913년 생인 게오르기 플레로프는 러시아의 저명한 핵물리학자로 1942년 구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에게 미국과 독일의 핵무기 개발 경쟁 상황을 편지로 알려 구소련 역시 핵무기를 개발하게 되는데 큰 역할을 한 과학자다. 1957년 자기 이름을 딴 플레로프 핵반응연구소를 세워 1989년까지 소장으로 재직했고 1990년 사망했다. 사후이지만 후학들 덕분에 주기율표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소식을 읽다보니 문득 원소 가운데 과학자 이름을 따 명명된 게 몇 종이나 되는지 궁금해졌다. 퀴륨, 멘델레븀 정도가 떠오르는 걸로 봐서 얼마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원소 작명의 역사를 되짚어보자. ●대부분은 물질 이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엠페도클레스가 4원소 얘기를 했다지만 오늘날 원소의 개념이 과학계에 도입된 것은 18세기 후반 프랑스의 화학자 앙투안 라부아지에에 이르러서다. 따라서 어떤 물질에 부여된 이름 가운데 그 물질이 단일 원소로 이뤄진 경우 그 물질명이 곧 원소명이 됐다. 금이나 은 같은 많은 금속의 원소명이 이런 식으로 정해졌다. 한편 라부아지에 이전에는 당연히 원소일 거라고 생각했던 물은 수소와 산소라는 원소로 이뤄진 복합물질로 밝혀졌다. 수소(hydrogen, H)는 물이라는 뜻이고 산소(oxygen, O)는 부식시킨다는 뜻이다. 즉 해당 원소의 특성을 따서 이름을 지었다. 20세기 들어 과학자들은 자연계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원소를 각종 정제법과 분석법을 동원해 발굴했고 이름을 붙였다. 가장 유명한 예가 퀴리 부부가 찾아낸 폴로늄과 라듐이다. 라듐(radium, Ra)은 빛을 방사한다는 뜻을 지닌, 즉 원소의 특징에서 부여한 이름이지만 폴로늄(polonium, Po)은 퀴리 부인의 조국 폴란드를 기려 명명했다. 최초로 과학자의 이름을 딴 원소는 1944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글렌 시보그 교수팀이 만든 퀴륨(curium, Cm, 원자번호 96)이다. 연구자들은 퀴리 부부를 기려 이런 이름을 붙였다. 그 뒤 새로 확인된 원소에 종종 과학자의 이름을 붙였는데 다음과 같다. 99번 아인슈타늄(einsteinium, Es): 1952년 수소 폭탄 폭발 잔해물에서 발견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을 기려 명명했다. 100번 페르뮴(fermium, Fm): 1952년 수소 폭탄 폭발 잔해물에서 발견했다. 이탈리아 태생의 핵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를 기려 명명했다. 101번 멘델레븀(Mendelevium, Md): 1955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글렌 시보그 교수팀이 만들었다. 주기율표의 창시자인 드미트리 멘델레예프를 기려 명명했다. 102번 노벨륨(nobelium, No): 1957년 스웨덴의 노벨연구소에서 102번 원소를 만드는데 성공했다며 노벨륨이라는 이름을 제안했지만 그 뒤 실험 착오로 밝혀져 철회했다. 1966년 구소련의 플레로프 핵반응연구소에서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름은 그대로 남았다. 103번 로렌슘(lawrencium, Lr): 1961년 미국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에서 만들었다. 입자가속기 사이클로트론을 발명한 미국 핵물리학자 어니스트 로렌스(Ernest Lawrence)를 기려 명명했다. 104번 러더포듐(rutherfordium, Rf): 1966년 구소련의 연합핵연구소(JINR)에서 만들었다. 핵물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뉴질랜드 태생의 영국 물리학자 어니스트 러더포드를 기려 명명했다. 구소련의 과학자들은 구소련 원자폭탄의 아버지인 핵물리학자 이고르 쿠르차토프를 기려 쿠르차토븀(kurchatovium)이라고 명명했으나 논란 끝에 1992년 러더포듐으로 결정됐다. 106번 시보귬(seaborgium, Sg): 1974년 미국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에서 만들었다. 여러 원소를 만든 미국 화학자 글렌 시보그(Glenn Seaborg)를 기려 명명했다. 107번 보륨(bohrium, Bh): 1981년 독일 중이온연구소(GSI)에서 만들었다. 양자역학의 설립자인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를 기려 명명했다.109번 마이트너륨(Meitnerium, Mt): 1982년 독일 중이온연구소(GSI)에서 만들었다. 오스트리아의 핵물리학자 리제 마이트너를 기려 명명했다. 111번 뢴트게늄(Roentgenium, Rg): 1994년 독일 중이온연구소(GSI)에서 만들었다. X선을 처음 발견한 독일의 물리학자 빌헬름 뢴트겐을 기려 명명했다. 112번 코페르니슘(Copernicium, Cn): 1994년 독일 중이온연구소(GSI)에서 만들었다. 지동설을 주장한 16세기 폴란드의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를 기려 2009년 명명했다. 113번, 115번, 117번, 118번은 아직 정식 이름이 부여되지 않은 상태다. 이번 플레로븀이 확정된다고 해도 원소에 자기 이름을 남긴 과학자는 14명에 불과하다. 원소의 명명권은 국제 순수 및 응용화학연맹(IUPAC)과 국제 순수 및 응용물리학연맹(IUPAP) 관할이지만 이들 단체는 원소를 처음 만든 기관에 이름을 지을 우선권을 준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대체로 원소를 만든 연구소가 속한 나라의 이름이나 지명, 과학자 이름을 따서 명명되는 이유다. 이미 웬만한 원소는 다 만들어서 새로운 원소를 만든다는 건 무척 힘든 일이라고 한다. 따라서 아직 이름이 미정인 원소 4개 모두에 과학자 이름을 붙인다고 해도 주기율표 클럽에 가입된 회원수는 20명을 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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