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1일 금요일

"땀 흘리기 싫어" 여학생 93% 하루 1시간도 운동 안한다

운동부족, 여학생이 더 심각
주 5회 운동, 남학생의 3분의 1… 방과후 운동량도 OECD 꼴찌
비타민D결핍 위험, 남학생의 1.7배… 여학생 3명 중 1명은 우울증 경험
 

서울 강남구 A고 1학년 김은주(가명·16)양은 지난 한 달간 한 번도 땀나게 뛴 적이 없다. 학교 10분 거리에 살아 등·하교 때 20분씩 걸었지만 방학이라 그마저도 안 걷는다. 학기 중에 체육 시간에도 주로 벤치에 앉아 있지 신나게 몸을 움직인 기억은 없다. 김양은 "땀 흘리는 게 제일 싫다"며 "다이어트는 안 먹는 걸로 한다"고 했다. 키 160㎝, 몸무게 55㎏이라 겉보기엔 날씬하지만 동네 헬스클럽에서 체지방률을 재보니 30%가 넘었다.
 
지난 11월 27일 오후 대구 경북여고 체육관에서 1학년 2반 학생들이 킨볼(Kin-ball) 수업을 하고 있다. 킨볼은 지름 1.2m짜리 가벼운 공을 주고받는 구기 종목으로, 누구든 쉽게 즐길 수 있도록 캐나다에서 개발된‘뉴스포츠’의 일종이다. 기자
여학생들의 운동 부족이 위험 수준에 다가가고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 점점 운동량이 줄어 청소년이 되면 대부분 김양처럼 아예 안 걷고 안 뛰는 생활에 젖는다. 보건복지부가 작년 6~7월 전국 중1~고3까지 6만명을 조사한 결과, 여학생 중 하루 한 시간씩 주 5일 이상 운동한 사람 비율(7.1%)이 남학생(20.3%)의 3분의 1을 겨우 넘겼다. 한국 청소년의 방과 후 운동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꼴찌지만 특히 여학생은 더 심하다. 주 3일 이상 팔굽혀펴기나 윗몸일으키기 같은 근력 운동을 한 학생도 여학생(10.5%)이 남학생(35.2%)의 3분의 1이 채 안 됐다.

◇여학생, 왜 운동 안 하나
한국 사회는 으레 '여학생은 안 뛰려니…' 하지만 지난해 영국에선 여학생 운동 부족이 사회문제가 됐다. 인디펜던트지는 "영국 내 8~15세 여학생들의 스포츠 활동 시간이 남학생 절반에도 못 미친다"며 "운동 부족은 정신 건강, 성취 동기 저하로 직결된다"고 보도했다. 취재팀이 만난 서울시내 여학생 20명은 하나같이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학원에 지친 탓이 컸다. 중1 김예형(가명·13)양은 "책 7권이 든 학원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게 유일한 운동"이라고 했다. 남녀공학이 늘다 보니, 사춘기 신체 변화가 신경 쓰여 운동 자체가 싫어졌다는 여학생도 많았다. 중3 조지영(가명·15)양은 "달릴 때 가슴이 흔들리면 누가 볼까 봐 신경 쓰인다"고 했다.
 
선진국들은 여학생의 스포츠 참여를 독려하는 각종 정책을 펼쳐 왔다. 미국이 1972년부터 시행 중인 '타이틀 나인'법이 대표적이다. 여학생 체육도 예산·시설 모든 면에서 남학생과 똑같이 지원하는 게 핵심이다. 이 법이 생긴 뒤 미국 여학생 스포츠 참여율은 열한 배 늘어났다.

여학생 운동 부족이 만성화되면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성조숙증 진단을 받은 어린이 환자가 11년간 15배 늘었다고 했다(2006년 6400명→2017년 9만5500명). 절대다수가 여학생이다. 영양 과잉에 만성적인 운동 부족이 겹친 탓이다. 경인교대 연구팀은 10대 여학생의 비타민D 결핍 가능성이 같은 또래 남학생의 1.7배라고 했다. 여학생의 33.6%가 우울증을 경험했다는 정부 통계도 있다. 이는 남학생(21.1%)보다 훨씬 많다.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비만, 성조숙증, 성인병 모두 운동이 최고의 처방"이라고 말했다.

◇마음껏 뛰면 집중도 잘해
전문가들은 "재미있게만 가르치면 여학생도 얼마든지 운동에 빠져든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27일 오후 찾은 대구 경북여고가 대표적이다.

이 학교 운동장은 걷고 달리는 여학생들로 북적였다. 점심시간 강당에서 수십명이 테니스, 배드민턴, 탁구를 쳤다. 고2 박동빈(17)양이 "빨리 밥 먹고 뛰어오지 않으면 자리가 없어서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경북여고는 10년 전 체육 교과서 커리큘럼을 과감하게 버렸다. 대신 철저하게 '재미 위주'로 갔다. 학생들은 1학년 땐 골프·킨볼, 2학년 땐 테니스·탁구·티볼, 3학년 땐 배드민턴을 배운다. '헬스 피티' '방송댄스' 같은 방과 후 활동도 한다. 고1 이정현(16)양이 "중학교 땐 체육 시간에 벤치에만 앉아 있었는데, 지금은 체육이 가장 좋다"고 했다. 이내은 체육부장은 "일주일에 3번 50분간 아침 운동을 시켰 저체력 학생 비율이 5개월 만에 10%에서 4.5%로 줄었다"며 "움직일수록 피곤한 게 아니라, 뇌가 맑아져 집중이 잘된다"고 했다.

영국 비영리단체 '청소년 스포츠 트러스트'(YST)는 "여학생들의 어린 시절 운동량과 미래의 성공 확률 사이엔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어린 시절 운동하는 습관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직결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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