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KBS ‘도전 골든벨’에 출연, 최연소(16세)로 골든벨을 울린 이수홍군. 이듬해 또다시 최연소로 서울대 수학과에 입학해 주목 받은 그는 스스로 천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 평범하게 보내며 공부를 놀이처럼 즐겼기 때문에 지금까지 스트레스 받지 않고 공부하고 있다고. 그의 어머니 허종숙씨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은 것이 수홍이를 우등생으로 키운 비결”이라고 말한다. |
천재는 하늘이 내리지만 그를 키우는 것은 사람이다. 현재 서울대 수리과학부에 재학 중인 이수홍군(18)은 2년 전 최연소로 서울대에 수시합격을 한 상태에서 KBS ‘도전 골든벨’에 출연, 마지막 50번째 문제를 풀어내 최연소로 골든벨을 울려 주목을 받았다. 중학교를 1년 만에, 고등학교를 2년 만에 졸업하고 서울대에 입학할 정도로 뛰어난 머리를 가진 이수홍군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그렇게 공부를 잘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의 어머니 허종숙씨(48)도 아들을 천재로 키운 비결에 대해 질문을 받기는 마찬가지. 그럴 때마다 허씨는 “수홍이는 어릴 때부터 천재는 아니었다. 놀면서 공부에 즐거움을 느끼게 도왔더니 자라면서 스스로 그렇게 됐다”고 답한다. “아이를 낳기 전부터 전 항상 ‘공부는 놀이와 같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아이를 낳을 무렵 유행하던 교육법들이 있었는데 그것에 휘둘리지 않고 제 어린 시절을 떠올리거나 주변 사람을 보고 느낀 점을 토대로 아이를 키우자고 다짐했죠. 위로 오빠가 셋이라 조카가 많았는데 아이들이 크는 걸 유심히 지켜봤어요.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눈을 반짝이며 지식을 습득하던 아이들이 사교육을 시작함과 동시에 그런 영민한 부분들을 잃는 것 같았죠. 공부가 목적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수홍이는 마음껏 놀 수 있게 해줬어요.” 수학 분야에서 특출난 능력을 보인 반면 국어 영어 사회 등 일반지식은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수홍군이 골든벨을 울릴 수 있었던 데는 이런 어머니의 노력이 있었다. 어린 시절 퀴즈 프로그램을 유난히 좋아했던 수홍군을 지켜본 허씨는 퀴즈 프로그램을 가족이 함께 시청하며 답에 대해 이야기하는 등 자연스레 지식을 습득하도록 배려했다. “이런 말은 듣기에 거북할 수 있지만 퀴즈 프로그램을 많이 보면 출제 경향을 알 수 있어요. 일반인들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상식은 한정돼 있거든요. 골든벨 문제도 학교 공부만 한 아이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지만 어릴 때부터 신문을 즐겨보고 퀴즈 프로그램도 꼬박꼬박 챙겨본 수홍이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았던 거죠. 최종 경쟁자가 떨어지고 마지막 남은 대여섯 문제를 혼자 풀 때 수홍이는 신기하게도 문제 앞부분만 듣고도 답이 떠올랐대요. 물론 운이 좋기도 했고요(웃음).” 아무것도 가르쳐주려 하지 마라 최연소로 서울대에 입학한 아이라면 조기교육은 필수였으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허씨는 의외로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한다. 공부만 잘했던 사람들의 인생이 그리 성공적이지 않은 경우도 있음을 알기 때문에 아들이 공부를 조금 잘한다고 대우받다가 인격 장애를 겪는 것보다 평범하게 자라기를 원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집이나 냉장고와 벽면 여기저기 붙어 있는 한글기호표나 구구단표 같은 것도 붙이지 않았다. “한글과 숫자를 일일이 짚어가며 가르쳐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때가 되면 자연스레 익히게 될 것이라고 믿었거든요. 수홍이는 숫자에 관심이 많았는데 하루는 옆집에 놀러 갔다가 구구단표를 보고는 ‘엄마 저게 뭐야?’라고 묻더라고요. 덧셈을 쉽게 하기 위해 만든 곱셈표라는 설명과 함께 간단한 원리를 설명했더니 매우 신기해하며 그날 저녁 혼자서 달력 뒷면에 구구단표를 빼곡히 적어 자기 방에 붙여 놓았죠. 그때 호기심이 수홍이를 스스로 공부하게 만든다는 걸 알았어요.” 수홍군은 어린 시절 특정 분야에서 두드러진 능력을 보이기보다 일단 관심이 가는 분야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보였다. 특히 종이접기와 팽이 돌리기, 요요 등에 빠져 고수가 됐을 정도. 종이접기 책을 한 권 사주면 조심스레 한 페이지씩 넘기며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뚫어지게 본 뒤 하나하나 직접 만들어보았다. “그렇게 다 만들고 나면 다른 책을 사달라고 졸라대곤 했는데 그때 바로 사주지 않고 ‘정말 그 책이 꼭 필요하니?’라고 물어본 뒤 얼마 후에 사주겠다고 약속을 했죠. 한 번쯤 욕구를 제지시키면서 더 강한 욕구를 스스로 느끼도록 한 거예요. 그러면 책을 사줬을 때 끈기를 가지고 집중력 있게 할 거라 생각했고 그 결과 수홍이는 무언가를 해나가는 요령과 즐거움을 스스로 터득한 것 같더라고요.”
허씨는 아이가 의욕을 가지면 자연스레 끈기를 가지고 매달릴 것이라 믿었고 이를 방해하지 않도록 곁에서 항상 분위기를 만들어주려 애썼다. 또한 흥미로워할 소재들을 곁에서 슬쩍 흘려보고 같이 해보다가 적당한 때 빠져주기를 시도했다. 그러면 수홍군은 혼자 끈기를 갖고 반복적으로 하다가 어느새 엄마를 넘어서는 고수가 돼 있었다. ‘미로찾기’가 그런 경우였는데 하루는 아들에게 간단한 미로를 보여주자 재미있어 했고, 얼마 후 직접 미로를 그려 집에 오는 친척이나 손님에게 풀게 할 정도로 심취했다. 허씨는 “한 가지에 열정을 갖고 깊이 빠져드는 경험과 그것을 해결해가며 기쁨을 누리도록 가만히 기다려주는 것이 진짜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수홍군은 초등학교 때 수학에 깊이 빠져들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서울교대 영재교육원의 입학 시험을 치르게 됐다. 허씨는 시험 준비 차원에서 수홍군에게 4~6학년 수학 문제집을 풀게 했는데 태반 틀리는 바람에 합격은 포기하고 경험 삼아 한 번 보기로 했다. 문제를 끝까지 풀지도 못했다는 아들의 말에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합격자 명단에 수홍군의 이름이 있었다. “원장님께서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 수홍이가 왜 합격했는지 말씀하시더라고요. 다른 아이들은 선행학습으로 깔끔하게 풀이와 답을 쓴 반면 수홍이는 모르는 문제라 할지라도 자기만의 생각으로 답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시험지에 남겼다고 하셨죠. 천재성이 아니라 발전 가능성을 보셨다며 어딘가 핀 들꽃 같은 아이를 인재로 만드는 것이 영재교육원의 설립 목적이라고 하셨어요. 아마도 수홍이의 열정과 끈기가 녹아든 시험지를 지나치지 못하신 거라 생각해요.” 영재교육원에 입학했지만 수홍군의 일상은 달라진 게 없었다. 전과 똑같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풍물반도 하고 체육 활동도 열심히 했고, 각종 대회에 나가고 자주 놀러다니기도 했다. 유일하게 변한 것이 있다면 수업 중 이해하지 못한 내용에서 생기는 의문을 그대로 두지 않고 교수님 연구실로 찾아가 함께 이야기하며 즐겁게 공부해나갔다는 점. 그것이 유일한 공부였다. 앞서 나갔지만 잃은 점 많아, 행복한 사람이 되길 바랄 뿐 수홍군은 수학올림피아드 입상에 대한 꿈을 갖고 꾸준히 공부해 여러 차례 수상의 기쁨을 누렸다. 중학교 1학년 때 영재교육원 선생의 조언으로 과학영재학교 입학시험을 쳤는데 합격 통지를 받았다. 영재교육진흥법 상 중학생이 영재학교 입학허가를 받으면 중학교 3년 과정을 모두 수료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때문에 수홍군은 중학교 1학년 겨울, 영재학교와 일반고등학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허씨는 아들이 일반고등학교에 입학하길 원했고 수홍군도 동의, 이듬해 중앙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여성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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