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2일 목요일

수학, 풀이과정 정리했더니 성적 수직 상승

수능 만점 받은 명덕외고 3학년 최주헌군

공부는 학교에서, 집에선 7~8시간 숙면, 직접 풀어보는 게 중요해 인강은 안 봐

수학, 풀이과정 정리했더니 성적 수직 상승

"수능 영어는 EBS" … 본 지문도 시간 빠듯해

중앙일보
(1) 최주헌군의 책상에는 문제집이 별로 없다. 과목별로 서너권만 집중적으로 공부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반 1등도 한 적 없는데…. 수능 성적표 받고 어안이 벙벙했어요.” 지난달 27일 2014학년도 수학능력시험 성적이 발표됐다. 만점자는 33명이지만 제2외국어(일본어)까지 만점을 받은 학생은 최주헌(서울 명덕외고3)군을 포함해 전국에 2명뿐이다. 최군은 수능 점수 발표 전(11월 15일)에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 우선선발이 확정됐다. 만점 성적표를 받았지만 이미 서울대에 합격한 상태라 딱히 써먹을 일이 없게 됐다. 그러나 최군은 “나에게 만점 성적표는 학창 시절을 성실히 보냈다는 기념패와 같다”고 말했다. 성실함의 결과는 성적표에서 봤지만, 그간의 성실한 과정은 최군 공부방의 책상에서 고스란히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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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초등학교 때부터 읽어온 영어 원서와 정기구독 중인 타임지를 모아놓은 거실 책장. (3)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일주일에 한번꼴로 넷북으로 영화를 봤다. (4) 일일 학습 계획표. 달성하지 못한 것에 △표시를 한 뒤 다음날 반복 학습했다. (5) 만점을 받은 최군의 수능 성적표.

최군의 책꽂이는 헐거웠다. 과목별로 문제집 서너 권과 소설책이 드문드문 꽂혀 있는 정도. 책상 위도 특별한 게 없다. 최군은 “공부는 양보다 질”이라며 “문제집도 여러 권 푸는 대신 한 권을 반복해 보는 걸 좋아하고, 잠을 줄이는 것보다 깨어있는 시간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고 자신의 공부 방법을 설명했다.

학원은 국어와 수학만 다녔다. 인터넷 강의는 한 과목도 듣지 않았다. “수능은 어차피 문제 풀이라 내가 한 문제라도 더 푸는 게 중요하지, 인강에서 강사가 문제 푸는 걸 보고 있는 건 별 소득이 없는 것 같다”는 이유다. 학원이나 인강 대신 최군이 택한 건 학교 방과후 수업이다. 고2 때 방과 후 수업으로 경제 수업을 들었고, 서울대 입시에 반영되는 한국사도 고1 때부터 고3 2학기 때까지 들으며 실력을 쌓았다.

정규 수업은 물론 방과후 수업까지 꼬박꼬박 챙겨 듣다 보니 다른 학생보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긴 편이다. 야간 자율학습도 빼먹은 날이 없고, 주말이나 공휴일, 추석 연휴에도 교실의 자기 책상에 앉아 공부한다. 최군은 “집보다 학교가 편하다”며 “집에 있을 때는 공부하기 싫으면 하루 종일 공치지만, 일단 학교에 가면 아무리 놀고 싶어도 공부부터 하게 된다”고 말했다.

최군이 수험 생활 내내 가장 신경 쓴 과목은 수학이다. 고2 때까지는 아무리 공부해도 80점대에서 벗어나지 못해 골치를 썩였다. 그러다 고3 6월 평가원 모의고사 때 96점, 그리고 9월 모의고사에서 처음으로 100점을 받았다. 수능이 두 번째 100점 기록이다. 스스로 “수학 성적이 신기하게 올랐다”고 말할 정도다.

비결은 최군 책상에 놓인 수학 노트에 있다. 노트에는 고등학교 3년 내내 끼고 살았던 수학 문제집 4권에 담긴 문제들이 꼼꼼하게 적혀 있다. 문제별로 풀이 과정 전체를 정리해가며 풀어놓은 것이다.

최군은 “원래 쓰는 걸 싫어해서 수학 문제 풀 때 식을 안 적고 풀이는 암산한 뒤 답만 적었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공부를 하다 보니 아무리 많은 문제를 풀어도 성적은 제자리를 맴돌았다. 고2 때 수학 학원을 다니다 공부 방법을 바꿨다. “학원 선생님이 여기저기 끄적이듯 풀이해놓은 제 수학 연습장을 보더니 깜짝 놀라더라고요. 노트에 식부터 적고, 풀이과정을 하나도 생략하지 말고 정리하며 풀라고 조언해주셨어요.”

공부 방법을 바꾼 직후에는 오히려 성적이 떨어졌다. 익숙하지 않은 방법이라 문제 풀이 시간이 더 걸린 탓이다. 그래도 이 방법을 유지한 건 “점수는 떨어져도 실력이 오르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최군은 “내가 뭘 모르는지, 어디서 실수하는지 감이 왔다”며 “이 방법대로 하면 당분간은 시간이 걸려도 결국 성적이 오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군 공부법 중 특이한 건 답안지를 자주 들춰본다는 점이다. 대다수 수학 우등생이 ‘답안지를 절대 보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최군은 “쓰는 걸 싫어하다 보니 늘 가장 짧은 풀이법이 뭔지 고민한다”며 “내 풀이법대로 해서 답이 맞았더라도, 혹시 더 짧은 풀이법이 있는지 답안지를 보며 연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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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년 내내 수학 문제집 4권만 풀었다는 것도 만점자답지 않은 얘기다. 최군은 “좋은 문제 10개를 10번 푸는 게, 수준 낮은 문제집 한 권 푸는 것보다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최군이 얘기한 ‘좋은 문제’는 수능 기출문제다. 깊은 수학적 사고와 지식을 요구하는 문제들이라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답을 찾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최군은 “자율학습 1시간 동안 한 문제만 푼 적도 있다”며 “한 문제당 풀이 방법을 두 가지 이상 완벽하게 숙지할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을 투자해 풀다 보면 쉬운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고 했다.

영어는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영어 원서를 읽은 덕분에 단어를 따로 외우거나 문법책을 들이 파지 않아도 영어 실력을 탄탄하게 쌓을 수 있었다. 최군의 집 거실 한쪽에는 최군이 어려서부터 읽어온 영어 원서와 정기구독하고 있는 미 시사 주간지 타임만 모아둔 책꽂이가 따로 마련돼 있다. 최군은 “한국 소설이나 역사책을 제외하고 무조건 원서로 읽는다”며 “고3 때도 머리 식힐 겸 한 달에 두 권 정도 꾸준히 원서를 읽었다”고 말했다.

원서를 즐겨 읽고, 텝스에서 949점(만점 990점)받은 실력임에도 수능 영어 준비는 따로 해야 했다. 최군은 “수능 영어는 무조건 EBS”라고 강조했다. EBS 교재의 수능 연계율이 70%나 되기 때문이다. 문제 변형이 심한 국어나 수학과 달리, 영어는 EBS 교재의 제시문이 그대로 출제된다. 기출문제보다 EBS를 많이 봐야 하는 이유다. 최군은 “수능 시험날 EBS에서 본 지문이 15~16개 정도나 됐다”고 떠올렸다. 시간 절약은 물론, 아는 문제가 나왔다는 안도감에 안정된 상태에서 독해를 정확히 할 수 있었다.

그는 “평소 영어는 자신 있고 이미 본 지문이 여러 개 출제됐는데도 마지막 문제까지 다 풀기에 시간이 정말 빠듯했다”며 “EBS를 안 봐 전부 다 생소한 지문이었다면 시간이 모자라 꽤 많은 문제를 그냥 찍어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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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학교에서 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자기 방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책상 앞이 아니라 침대다. 최군은 고3 때도 꼬박꼬박 7~8시간씩 잠을 잤다. 비염이 심하고 역류성 식도염에 위염까지 잔병치레를 하는 약한 체질이라 잠을 줄이는 게 쉽지 않았다. 최군은 “고1 때 친구들이 너도나도 3~4시간만 자고 공부한다고 해서 나도 5시간만 잤는데, 두통이 생겨 오히려 공부를 하나도 못 했다”고 말했다. 고2 때부터는 집에 오면 서둘러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집에 와서 복습한답시고 책상 앞에 앉아 어영부영 시간 보내며 잘 시간을 뺏기면, 다음날 하루 전체를 망치기 때문에 “집에선 무조건 잠을 치열하게 잤다”는 것이다.

‘잠 충분히 자고, 학교 수업에 충실하고, 기출 문제 중심으로 문제집 서너 권만 반복해서 풀었다’는 이야기는 해마다 반복되는 수능 만점자의 단골 레퍼토리다. 정말 이런 공부 방법으로 수능 고득점이 가능할까. 최군은 “고3은 멘털(정신) 관리가 정말 중요한 시기”라며 “문제집 많이 사지 않고, 학원에 얽매이지 않고, 잠도 잘 잤다는 건 결국 주변에 휩쓸리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잘 컨트롤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수능 고득점자의 비결은 공부 방법이 아니라 마인드 컨트롤에 있다는 얘기다.

예비 고3에게는 “고3을 일생일대의 위기라거나 절체절명의 순간이라는 식으로 지나치게 긴장하거나 정색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들려줬다. ‘잘해보겠다’는 의지도 좋지만 지나치다보면 스트레스로 이어질 수 있으니 힘을 빼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다. 최군은 “고3 1년은 엄청 긴 마라톤”이라며 “조금 천천히 간다는 생각으로 쉴 땐 쉬고 공부할 땐 집중하는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공부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옆 친구가 하루에 단어 1000개 외웠다면 따라 외우는 애들도 있어요. 그렇게 하다보면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지만, 정작 실력은 하나도 안 늘죠. 자신에게 부족한 것, 해야 할 것에만 집중하면 후회 없는 수험 생활을 보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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