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4일 화요일

'든사람' '난사람'이 아니라 '된사람' 만드는게 교육…'학무지경’(學無止境)

중국의 사자성어 중 '학무지경’(學無止境)'이란 말이 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뜻으로, 최근 우리사회의 화두가 된 '평생학습'이란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100세 시대가 되면서 '꾸준히 익히고 배우라'는 사회의 요구는 거세지고 있지만, 이를 위한 콘텐츠 개발이나 시스템 구축 등의 상황은 열악하기만 하다. 최근 들어 한국방송통신대학(이하 '방송대')이 새롭게 주목받는 이유도 이런 차원에서다. 매년 6000여명의 졸업생들이 다시 배움의 문을 두드리는 곳, 새로운 정보를 익히기 위해 매년 1000여명의 편입생들이 찾는 곳이 바로 '방송대'이다.

20일 서울 종루구 대학로 한국방송통신대 총장실에서 만난 조남철 방송대 총장은 "고령화 시대에 평생학습이 화두로 떠올랐지만 우리는 이미 40년 전부터 '평생학습 세대'를 만들기 위해 앞장서왔다"며 "방송대가 가지고 있는 경험, 성과, 열정, 노하우를 가지고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학습권', '공부권'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조 총장은 단순히 학생들의 진학을 돕거나 전문기술을 가르치는데 '대학'에 목표를 두지 않는다. "합리적인 비판 정신과 건강한 의식을 갖춘 시민들을 양성하는 것"이야말로 방송대의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차원에서 방송대는 우리 사회에 의미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추진해왔다. 지난 해부터는 국내 대학생활이 생소한 탈북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예비대학생 과정을 선보였다. 이들의 대학중도 탈락을 막고 대학생활 적응을 돕는 프로그램으로, 해당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지난 2011년부터는 학사 학위가 없어 승진·급여 등에서 불이익을 받는 미국 뉴욕 거주 한인 간호사를 대상으로 방송대 간호학과에 편입해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도입해 올 2월 46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조 총장은 앞으로 "약 800만명에 이르는 재외동포들도 자신이 사는 거주지에서 방송대의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할 계획"이다. 설명을 하는 조 총장의 입에서 연신 "뿌듯하다", "자랑스럽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한국에서 다른 어느 대학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대학이 방송대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방송대의 위상이나 중요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그에 많이 못 미치고 있는듯 하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지만 아무나 졸업시키지 않는 대학이 우리 대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대에 대한 '편견에 기초한 기대'가 있다. 보통 국립대학의 예산에서 국고가 차지하는 비율은 46~57% 수준이지만 방송대는 25%에 불과하다. 우리 대학이 원격대학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니까 등록금과 경비도 적게 드는 '저비용대학'이라는 편견이 있다. 물론 방송대는 적은 비용으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대학이긴 하지만 그 '적은' 비용을 너무 적게 잡고들 있다. 영국의 원격대학 'OU(Open University)'는 학생수는 우리와 비슷하지만 교수 수는 10나 더 많고, 등록금도 일반대학 수준이다. 전국 13개 지역대학의 학장 보직이 필요한데도 외부에서는 이에 대한 필요성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55만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방송대는 대학교육의 보편화라는 관점에서 대학의 본연의 기능 중 하나에 가장 충실한 대학이 아닌가 싶다.
-방송대를 한번이라도 거쳐 간 사람들을 모두 합치면 300만명 가까이 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방송대의 가장 큰 사회적 역할 중 하나는 건강한 시민을 길러냈다는 점이다. 이런 합리적인 비판 의식을 갖춘 시민들이 우리 사회의 산업화, 민주화에도 크게 공헌했다. 최근에 3학년이 된 학부생과 대화를 했는데, 아주 기분 좋은 경험을 했다. 이전에는 그냥 신문이나 뉴스를 봤는데, 이 학교에 오고 나서는 그 이면의 것들을 생각하게 됐다고 하더라. 현상의 겉만 보다가 뒤를 보게 되고, 또 보려고 하는 시민의식을 갖춰나가게 되는 것이다. 자랑스러운 대학이다.

▲가장 많은 입학생 규모를 자랑하는데, 예전과 비교하면 최근의 입학생들은 어떻게 다른가?
-예전에는 대학을 못 간 사람, 대학에 들어갈 수 없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방송대 졸업생들도 굉장한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 근래 들어서는 대학교육 기회가 확대되면서 이런 분위기가 많이 줄었다. 대신 한 번 배운 지식만으로는 살아남을 수가 없으니까 새 지식과 정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4년제 대학을 나오고도 매년 한 1000명 정도가 다시 우리 학교로 들어온다. 한해 졸업생 1만5000명인데, 이 중 3분의 1은 재입학생들이다. 학생들이 우리 대학의 교육과정에 대해서 만족도가 높다는 뜻이 아닐까. 전공을 10개 이상 들은 학생이 있을 정도다.

▲앞으로 방송대가 지향하는 점은?
-탈북대학생 교육, 한인 간호사 편입과정 등은 우리 대학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통일부하고도 양해각서(MOU)를 맺고, 향후 통일 이후의 이북 동포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에 대한 매뉴얼도 개발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방송대는 다른 대학에 비해 훨씬 더 사회에 대해서 열려있는 대학이다. 모든 대학이 나름대로의 존재 이유가 있지만 우리대학은 조금 더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나이 든 사람부터 젊은 사람까지 이른바 노·장·청이 바람직한 배움의 공동체로 가는 모습이 보기가 좋다. 향후 방송대에 사회적으로 어떤 노력과 지원이 필요하나?
-방송대는 교수가 학생들로부터 배우고 감동을 받는 경우가 많다. '교학상장(敎學相長가르치면서 배운다)'을 실천할 수 있는 학교다. 올해 들어서 정부가 나서서 평생교육시대를 열어가겠다고 했는데, 평생학습과 관련해서는 이미 우리대학이 주도적으로 해왔던 것들이다. 방송대의 노하우가 우리 자신만을 위해 쓰이기보다는 전 사회를 위해 쓰일 수 있도록 국가가 좀 더 지원해야 한다. 이직 및 실직을 한 사람들에게 국립대에서 헐값으로 또는 비용을 받지 않고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교육복지 차원에서 필요하다. 우리의 평생학습 시스템을 계속 발전시킬 계획이다.

▲총장님이 좋아하는 책은?
-전공과 관계없이 자주 읽는 책은 김산의 아리랑이다. 30대의 젊은 지식인이 조국을 뺏긴 상태에서 타국에서 겪는 고뇌가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근현대사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또 1930년대 대표 작가로 채만식의 소설도 추천한다. 1930년대는 일제의 식민지배 기간이 20년이 넘어가는 시기인데도 그의 소설에서는 조선의 미래에 대한 낙관이 보인다. 그 낙관적 근거가 건강한 사회주의다. 디지털 시대로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얕은 지식을 얻는 데에만 익숙해져있다. 지식만큼이나 지식을 얻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책읽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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