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4일 화요일

논술은 나중에, 생활 에세이로 시작하라

우리나라 글쓰기 교육은 논술이 중심이다. 하지만 논술은 글쓰기 흥미를 떨어뜨리고 두려움만 안겨주기 십상이다.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에세이라면 글쓰기가 친숙해질 수 있다. 이번 겨울방학 때 에세이에 도전해보자.
대입 시험에서 논술이 주요 전형으로 자리잡으면서 우리나라의 글쓰기 교육은 논술에 초점을 맞춘다. 대학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과 중학생들까지 논술 준비에 매달리는 게 현실이다. 깊은 사고와 폭넓은 배경지식, 논리적 구성력 등을 요구하는 논술은 글쓰기의 기초를 닦아야 할 초·중등 시기의 학생들에게 자칫 글쓰기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고, 막연한 두려움만을 안겨줄 수 있다. 대구 성서고등학교 강성규 국어교사는 “글쓰기 교육이 논술 중심의 입시 교육으로 흘러가다 보니 학생들은 제대로 뜻도 모르는 현학적 용어를 써가며 자기의 목소리가 아닌 누군가 가르쳐준 내용을 형식적 논리만을 갖춰 쓰며 판에 박힌 글쓰기 연습만 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서울 영등포여자고등학교의 박종호 국어교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부터 자기만의 느낌과 생각을 담아 표현해보는 ‘생활 속 글쓰기’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논리적 글쓰기로 이어지는 것”이라며 “이런 과정을 생략한 채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바로 논술 쓰기에 들어가는 것은 글쓰기의 순서가 뒤집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성규 교사는 “‘시험문제’라는 부담으로 떠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과 밀접한 일상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고민해보는 글쓰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국어교과서 작품읽기: 중1 수필>(창비)의 엮은이로 참여한 박종호 교사는 “누군가 가르쳐준 지식을 재구성하는 글쓰기가 아닌, 생활 속에서 직접 보고 느낀 것을 표현하며 자기 자신을 ‘글쓰기의 중심’에 세워보는 경험, 즉 ‘앎과 삶이 일치하는 글쓰기’로 에세이를 써 볼 것”을 권했다. 논리적 글이 도달해야 할 소통이나 공감 역시 글쓴이의 구체적인 경험에서 출발해야 글을 읽는 이에게도 ‘맞아, 이건 내 문제야’라는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

에세이는 명사의 전유물?

에세이라고 하면 흔히 경륜과 학식을 갖춘 나이 지긋한 어른이 삶에서 우러나온 지혜와 교훈을 담아 쓰는 글이라는 선입견이 존재한다. 에세이를 경수필과 중수필로 나누어 경수필은 생활 속의 체험을 가벼운 문체로 자유롭게 쓰는 것이라 하고, 중수필은 지적 무게와 깊이를 담아 사회적인 메시지를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쓰는 것이라고 구분 짓기도 한다. 이는 청소년에게 에세이는 쓰기에는 까다롭고 적당치 않은 장르의 글이라는 편견으로 이어진다.

장동석 출판평론가는 “에세이를 명사들의 전유물처럼 여기거나 거대한 담론을 담아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에세이에 대한 고정관념일 뿐”이라며 “연암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가 당대의 식자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하인인 창대와 장복과 겪었던 고생담과 길에서 만난 할머니와의 대화 등을 가볍게 적어 내려간 여행기로도 당대 사회를 꿰뚫었다는 점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공자 왈, 맹자 왈’과 같은 무겁고 딱딱한 이야기가 아닌 생활 속에서 길어낸 작고 소소한 이야기가 인간의 심성에도 더 잘 맞고, 개인 삶의 변화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12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청소년 생활 에세이 공모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서울 명지고 1학년 박혜원양은 “에세이라고 해서 딱히 교훈을 담아야 한다거나 사회적 성찰을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글쓰기가 더 쉬울 것”이라고 했다. 실제 박혜원양의 수상작 <야, 틴트 있냐>는 ‘외모 지상주의’라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논리적 근거나 사회적 성찰 대신, 자신과 친구들, 학교 선생님의 일화 등 생활 속 경험 등을 모아 글로 풀어냈다. ‘항공사 승무원이 되고 싶고, 외모를 예쁘게 가꾸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 읽혀져 내내 웃음이 나왔다’는 심사평은 진솔한 삶의 경험을 담은 글의 매력을 잘 보여준다.

교훈·성찰 내용 담아야 한다는
그릇된 선입관에서 벗어나야
솔직한 체험담이 감동 끌어내

일상에서 다양한 경험 쌓으면
찾기 어려웠던 글감이 저절로
또래들 글 읽어보는 것도 도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박상률 청소년문학가는 “꾸미거나 감춘 글이 아닌, 아이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솔직담백한 글이 가슴에 와 닿는다”고 말했다. 강성규 교사는 에세이에 대한 이분법적 분류 대신 ‘자기 삶 쓰기’ 정도로 통합해 보는 게 낫다고 말한다.

자기 삶을 그대로 드러내는 글인 에세이의 이러한 특성은 외국 대학이 신입생을 뽑는 주요 전형자료로 에세이를 활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원 민족사관고등학교 윤승길 영어교사는 “외국 대학이 에세이로 제시하는 주제들은 실패한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고,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기존의 상식과 통념에 대해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도전했던 경험이 있는지 등”이라며 “학업 성적과 같은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 학생의 글쓰기 능력과 사회에 대한 가치관, 긍정적인 사고 등을 에세이를 통해 평가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혜원양은 허구적인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내가 보는 세상 그대로를 글로 표현해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것을 에세이 장르만의 장점으로 꼽았다. 박종호 교사는 “자신만의 솔직한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로 다른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 낸 기억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만족감, 자기 안에서의 성장으로 이어진다”며 “자기 안에서 사고하는 데 머물지 않고, 바깥으로 눈을 돌려 타인과 소통하는 법을 익히고, 세계를 다시 돌아보고, 비판하는 능력은 에세이를 통해 쌓아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릉 문성고등학교 3학년 김규린양은 평소 에세이를 즐겨 썼다. 부모님이 중국에서 사업을 하기에 평소 ‘가족’이란 주제에 관심이 많았던 김규린양은 “에세이를 쓰면서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 고교 3년간의 감정을 표현하며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다”며 “에세이 한편을 완성하는 데 적어도 3~4시간 혹은 하루가 꼬박 들다 보니 내 삶을 되돌아보며 성장하는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에세이를 즐겨 썼던 경험은 대학 입학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에도 큰 도움이 됐다. 국문과에 진학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에세이 쓰듯 진정성 있게 자기소개서에 녹여낸 결과, 김양은 2014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특기자전형으로 합격했다. 그는 “초·중·고 학생들이 에세이를 꾸준히 쓴다면 사춘기라는 시간을 좀더 쉽게 이겨내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바로 쓰기보다 동기 부여부터

우리 사회는 자기를 드러내고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자기를 표현하고 고백하면 흠 잡히거나 꼬투리 잡히지는 않을지, 망신당하지는 않을까 두려워한다. 자기 삶의 주변을 글로 옮기는 만큼, 가족이나 주변 인물이 글에 등장할 때 당사자들은 불편해하기도 한다. 초등학교에서 이뤄지는 일기 쓰기 방식도 학생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서울 동신초등학교 이형래 교사는 “일기 쓰기는 지속적으로 글을 쓰게 한다는 점에서 장점이 될 수는 있지만 일기를 읽은 담임교사가 학생 생활지도 측면에서 접근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청소년들이 에세이 쓰기에 바로 돌입하거나 흥미를 갖기도 쉽지는 않다. 박종호 교사는 또래 아이들이 쓴 에세이를 모은 책을 읽는 것부터 자연스럽게 시작해보라고 권했다. ‘이런 이야기라면 나도 쓸 수 있겠다’는 가벼운 동기 부여가 에세이 쓰기의 열쇠가 될 것이란 설명이다.

일상에서 소재를 얻는 에세이는 ‘글로 옮길 만한 특별한’ 글감을 평범한 일상에서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는 부담이 있기도 하다. 이형래 교사는 “세상 일에 대해 관심있게 바라보는 ‘관찰력’이 중요하다”며 “모퉁이에 핀 꽃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상 모든 것이 글쓰기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신변잡기적인 내용부터 사회현상에 대한 고민까지 에세이의 스펙트럼을 넓게 잡아보라는 조언이다. 이 교사는 “어떤 내용에 대해 써 볼 것인가를 고민해 보는 등 학생 스스로 글감을 찾아보는 과정만으로도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덧붙였다.

김규린양 역시 처음 에세이를 쓰려 했을 때 글감을 찾는 것이 어려웠다고 말한다.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찾아가는 등 특별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읽는 이에게 감동을 줄 텐데 자신의 경험은 평범하기만 하다고 걱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규린양은 “상자가 가득 담긴 리어카, 그 리어카를 끌고 가는 할머니의 미소, 리어카에 낀 낙엽이 바스라지는 모습 등 눈을 돌려 주변을 보니 온통 글감 천지더라”며 “보고 듣고 느꼈던 장면을 그때그때 휴대전화 메모장에 짧게라도 적어놓은 후 이를 다른 기록들과 덧붙여 적다 보니 자연스럽게 에세이가 완성되었다”고 말했다.

일상에서 글감을 찾는 습관이 몸에 밴 김양은 강릉 사천의 한과마을에 들렀다가 한과상점의 첫째 아들이 해군사관학교에 차석으로 입학했다는 축하 펼침막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한과>라는 소설을 완성하기도 했다. 작품 <한과>는 올해 강원 청소년 해오름 문학상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방학을 맞은 자녀들에게 에세이 쓰기를 권하고 싶은 학부모라면 쓰기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일상의 경험을 다양하게 해주는 데 힘을 기울이는 게 좋다. 장동석 평론가는 “자녀가 어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파악한 후 이와 관련한 체험 활동을 폭넓게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며 “에세이를 한두 번 썼다고 해서 글쓰기 실력이 확연히 늘어나는 것이 아닌 만큼, 부모부터 느긋하게 다가설 것”을 주문했다. 강성규 교사는 “일상에 젖어 있는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고민해볼 거리’가 있는 치열한 삶의 현장을 찾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박상률 청소년문학가는 “만약 자녀가 자신이 쓴 에세이를 보여줬다면 이는 용기를 내어 부모에게 손을 내민 것인 만큼, 글의 완성도를 따지거나 잘잘못을 다그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우 기자 kyw@hanedui.com


>>> 에세이 쓰기의 요령

① 내 마음에서 나오는 대로 써 본다.
억지로 쓰려 하지 말고,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그대로 담아서 써 본다. 주제나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써 보자.

② 한 문단 쓰기부터 시작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 생각을 한 문단(A4 용지 1/3쪽 분량)부터 쓰기 시작한다. 생각을 모아놓은 단위인 문장을 서너개 이어보면 한 문단이 된다.

③ 나, 이웃, 사회, 세계로 나아간다.
가장 가까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적어 나가다 보면 가족, 이웃, 친구로 넓어지고 그다음에는 저절로 사회, 나라, 세계로 범위를 넓힐 수 있다.

④ 읽고 쓰고 질문하고 비평하기를 멈추지 말자.
사고의 확장은 읽고, 쓰고, 이해하고, 비평하고, 판단하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새로운 상황이나 주제를 두려워하지 말고 책을 읽고, 자료를 찾아보고, 다시 질문을 던져 본다.

⑤ 쓰기는 앎과 삶을 하나로 일치하려는 노력이다.
사고의 확장, 이해와 비평, 판단하기는 모두 앎과 삶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데 필요한 것이다. 글쓰기는 앎과 삶을 하나로 만드는 데 아주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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