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14일 월요일

'세계 최고 컴퓨터 英才'가 서울대에 입학할 수 없다면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문병로 교수가 한 언론에 '세계 최고 컴퓨터 천재인 경기과학고 3학년 윤모군이 서울대 입학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을 고발하는 기고를 했다. 문 교수는 작년 대학교수가 과학고 영재와 함께 연구하면서 가르치는 특별 프로그램에서 1년간 윤군을 지도했다.

윤군은 7월 24일~8월 2일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세계 83개국 322명의 고교생 컴퓨터 영재들이 참가해 실력을 겨룬 '국제정보올림피아드(IOI)'에서 6개 과제 모두 만점을 받아 단독 1위를 했다. 고교생 올림픽에 해당하는 이 대회에서 한국 대표팀 4명 가운데 3명이 금메달, 1명은 은메달을 따 러시아·중국·미국을 따돌리고 종합 우승을 했다. 윤군은 아시안게임이라 볼 수 있는 아시아·태평양 정보올림피아드(APIO)에서도 3년 내리 금메달을 땄다. 윤군은 성인·대학생들과 실력을 겨룬 대회(Codeforces)에서도 2등, 4등을 했다. 세계선수권대회라고 할 수 있는 이 대회에서 '최고 전문가(grand master)' 타이틀을 따낸 한국인은 성인·대학생까지 통틀어 윤군뿐이다.

윤군은 11일 접수가 마감되는 서울대 수시 입학 전형에 지원했다. 그러나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입학이 가능할지는 불투명하다는 것이 문 교수 설명이다. 서울대는 1차 서류 전형에서 2~3배수를 걸러낸 후 2차 논술 면접에서 최종 합격자를 가린다. 1차 서류 전형에선 학교생활기록부, 자기소개서, 교사추천서 등을 제출하게 돼 있다. 문제는 윤군이 자신의 국제·국내 올림피아드 수상(受賞) 경력을 어느 서류에도 쓸 수 없다는 사실이다. 교육부 지침에 따라 생활기록부에는 교내 대회가 아닌 외부 대회 수상 사실을 기재하지 못하게 돼 있다. 자기소개서, 교사추천서에 그런 경력을 쓰면 불합격(不合格) 처리해야 한다.

경기과학고는 교육부가 정한 커리큘럼에 구애받지 않고 대학처럼 학점식으로 가르치는 과학 영재고이다. 학생들은 대부분의 과목에서 A학점을 딴다. 그러나 윤군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공부에 몰두했고 겨울방학 때 2주, 올림피아드 참석 전엔 4주 동안 합숙 훈련을 했다. 기말고사도 치르지 못하는 바람에 일부 B학점 과목들이 있다. 서울대 1차 서류 전형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윤군 지도 교사에 따르면 작년에도 정보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땄던 다른 과학고 출신 배(裵)모군이 서울대에 응시했다가 떨어진 일이 있었다. 미국 명문 MIT 입학처 직원은 우수 학생 발굴을 위해 카자흐스탄의 정보올림피아드대회까지 찾아와 윤군에게 '우리 대학에 지원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서울대 공대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교육부가 대입 서류에 국제대회 입상 경력을 기재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대학들이 입학 전형에서 수상 경력을 참조하게 되면 학원들이 과학올림피아드반(班), 수학올림피아드반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교육이 기승을 부린다는 우려 때문이다. 과열 입시가 불러오는 부작용이 심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규제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학들이 고교 학과 점수나 골고루 잘 따는 공붓벌레만 합격시키고 누구나 인정하는 세계 최고 영재는 뽑을 수 없다면 그런 대학에서 국가 미래를 걸머질 혁신적 인재가 성장하기를 기대하는 건 요원한 일이다. 사실 국내 대학들이 윤군 같은 천재를 발탁한다 해도 빌 게이츠 같은 인물로 키워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우리 대학의 낙후한 커리큘럼, 폐쇄적 연구 풍토를 감안하면 윤군 같은 영재들은 자기 잠재력을 더 키울 수 있는 선진국 명문대에 가는 게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길이 유망한 젊은이들을 이렇게 밖으로 내모는 교육 환경에서는 대한민국을 부강(富强)한 나라, 경쟁력 갖춘 선진국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꿈은 포기해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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