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9일 수요일

종교는 과학을 도울 수 있을까?

우리의 목표는 정보를 모으거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데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결국은 사람들의 고통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우리 각자가 어떤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는지 찾는데 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에서

지난 봄 필자는 한 기관에서 과학강연을 했다. 청중들이 과학과 특별히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좀 걱정을 했는데, 너무 지루해서 못 견디겠다는 반응은 안 나온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나 당시 청중 가운데 한 분에게서 이메일을 받았다. 그때 강연을 잘 들었다며 책을 한 권 선물하고 싶으니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잠시 망설였지만 그 기관이 기관인지라 별 일은 없을 것 같아 알려줬다. 그리고 며칠 뒤 책이 왔다. 궁금해 바로 열어본 필자는 책 제목에서 ‘창조과학’이란 단어를 보고 가슴이 덜컥했다. 어떤 책인지 묻지도 않고 경솔하게 주소를 알려준 자신을 탓했다. 물론 필자가 개인의 순수한 호의를 ‘과학이 되려는 종교’의 집요한 시도라는 구조적인 문제로 확대해석한 것일 수도 있다.

문득 지난 2012년 정부와 출판사들이 창조론자들의 교과서 진화론 삭제 청원을 받아들이면서 일어난 해프닝이 떠올랐다. 학술지 ‘네이처’에 ‘한국, 창조론자 요구에 항복하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리면서 우리나라 과학계는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결국 청원 수용은 번복됐다). 당시 “그냥 무시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는 한 진화생물학자의 이메일을 받은 필자는 내키지 않았지만(시간낭비로 느껴져서) 관련 기사를 쓰기도 했고, 이게 계기가 돼 이듬해 출간된 ‘청소년이 꼭 알아야 할 과학이슈 11(시즌2)’라는 책의 1장 ‘진화론 논쟁’을 집필하기도 했다.

과학까지 집어삼키려고 하는(잠재적인 위협을 제거하려는 것일까) 일부 종교단체의 끝없는 탐욕에 질리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만들어진 신’ 같은 책까지 내는 리처드 도킨슨처럼 집요하게 종교의 불합리성을 파헤치려는 의지가 필자에게는 없다. 카뮈의 표현을 빌리자면 ‘부조리한(삶의 끝이 결국 죽음이라는 걸아는) 존재’인 인간에게 종교까지 없다면 죽을 때 어떻게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겠는가? 물론 강한 정신의 소유자인 카뮈는 (그럼에도) “이성을 사용해 끊임없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신의 구원을 기대하지도 않을 것”이며 “바로 지금, 바로 여기의 삶에 충실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6월 18일 회칙 공개해

오늘날에는 주로 일부 개신교가 과학계를 성가시게 하지만 사실 역사를 거슬러보면 가톨릭이 오랜 기간 과학자들을 괴롭혔다. 1632년 ‘천문대화’라는 책을 펴낸 갈릴레이는 이듬해 로마로 소환돼 구금됐다가 지동설 포기를 서약하고 나서야 사면됐다. 당시 갈릴레이가 했다는 혼잣말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가톨릭의 과학계 탄압을 상징하는 말로 남아있다.

로마 교황청은 1992년에야 갈릴레이를 사면했다. 이 소식을 듣고 지동설이 정설이 된 게 언제인데 359년이 지나서야 사면을 한 가톨릭의 완고함에 새삼 놀랐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선배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갈릴레이에게 사과한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용기는 높이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최근 과학계에서 한 종교인에 대한 칭찬이 이어지고 있다. 주인공은 지난해 이 무렵 우리나라를 방문하기도 한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지난 2013년 취임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 파격적인 서민행보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데 돌출발언의 수위도 만만치 않다. 피임과 이혼을 금기시하는 가톨릭의 수장이 “그렇다고 우리가 토끼처럼 자식을 기를 순 없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가 하면 “이혼했거나 재혼한 신자도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과학계의 호감을 산 건 이런 행보나 발언 때문은 아니고 지난 6월 18일 공개한 ‘회칙’ 때문이다. 교황이 수년에 한 번 꼴로 발표하는 회칙은 주로 도덕과 종교에 대한 교황의 입장을 10억여 명의 가톨릭신자들에게 밝히는 문서다. 그런데 ‘라우다토 시(Laudato si')’라는 중세 중부이탈리아어 제목(‘찬미를 받으소서’로 번역)의 이번 회칙은 지구촌 70억 명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우리 공동소유 집(지구)을 보살펴야 한다’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번 회칙은 종교적인 문제가 아니라 기후변화와 환경을 중심으로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진단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찾는 노력을 촉구하고 있다. 회칙은 8개 언어 버전이 있는데 아쉽게도 한국어는 없다. 필자는 영어 버전을 다운받았는데 82쪽이나 된다.

회칙은 서론에 이어 모두 여섯 개 장으로 이뤄져 있다. 필자는 이 가운데 과학과 관련이 가장 높은 1장 ‘지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를 읽어봤다. 1장은 일곱 개 절로 구성돼 있다. 1절 오염과 기후변화, 2절 물 문제, 3절 생물다양성 위기, 4절 삶의 질 추락과 사회의 붕괴, 5절 글로벌 불평등, 6절 미미한 반응, 7절 다양한 의견이다.

회칙은 이런 다양한 이슈들을 과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반영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물론 입장이 다른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쉬운 영어로 담담하게 현실을 기술한 열세 쪽 분량의 1장을 읽으며 필자는 고등학교 영어 독해 교재로 써도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교황은 “환경 악화는 인간성과 윤리성의 퇴화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며 지금의 위기가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의 만연에서 비롯된 것이며 따라서 서구사회가 더 큰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즉 자본의 관점에서는 많은 후진국들이 선진국에 빚을 지고 있지만, 교황이 보기에는 선진국들이 오히려 후진국에 ‘생태적 빚’을 지고 있다는 것. 즉 인간(주로 선진국 사람들)의 활동으로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고 환경이 오염되면서 그 피해를 오히려 후진국 사람들이 더 보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주장은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한다.

지난 6월 18일 발표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은 책으로도 나왔다. - 아마존 제공
지난 6월 18일 발표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은 책으로도 나왔다. - 아마존 제공
●교황이 과학의 구원투수 될까

‘네이처’는 6월 25일자에 회칙을 지지하는 사설을 실었는데, 마치 시의 소절처럼 제목에 각운까지 맞췄다(Hope from the Pope(교황이 보낸 희망)). ‘네이처’가 회칙에 호의적인 건 논의가 철저히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교황의 “과학에 대한 존중과 가감 없는 이해”를 높이 평가한 것이다.

사실 로마교황청은 지난해 1월부터 회칙을 준비하면서 많은 과학자들의 자문을 받아왔다. 지난 4월 28일에는 기후변화에 대한 컨퍼런스를 주관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관련 과학자들과 여러 종교의 지도자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참석했다.

‘네이처’가 회칙에 대해 사설까지 동원한 건 교황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의 대중적 인기는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의 한창 때 인기를 능가한다. 아무리 과학자들이 객관적이고 설득력이 높은 연구결과를 제시해도 대중이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컨퍼런스에 참석했던 미국의 식물학자 피터 레이븐의 말처럼 “정치인들의 동의를 받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문제 자체의 심각성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입증하는 일”이라는 말이다.

실제 회칙의 영향력은 대단해서 지구환경문제의 주범이면서도 해결책은 외면해왔던 미국의 경우도 오바마 대통령이 “이제 미국이 탄소감축과 환경보호를 위한 노력을 이끌어야만 한다”는 발언을 할 정도다. 다음 달 교황이 미국에 가 백악관과 UN본부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이때 회칙에 호응하는 좀 더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네이처’가 회칙 사설을 쓴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올해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일 것이다. 지금까지 수차례 총회가 개최됐고 실천방안이 논의됐지만 기후변화의 주요 ‘기여국’인 미국과 중국의 비협조와 참여한 나라들의 실천의지부족으로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이번 총회는 교황의 회칙에 대한 세계 정치지도자들의 답신이라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거라는 기대가 높다.

●극단주의는 이제 그만

‘네이처’ 7월 30일자에는 교황 회칙과 관련한 데이비드 로지 미국 노트르담대 환경변화연구소 소장의 기고문이 실렸다. 가톨릭계대학에 재직하는 신교도(Protestant) 생태학자인 로지 교수의 글을 읽으면서 필자는 교황의 회칙이 서구사회에서 왜 그렇게 이슈가 되는지를 또 다른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로지 교수에 따르면 교황이 회칙에서 과학적 연구에 기반해 환경문제를 진단하고 이와 관련해 경제시스템의 탐욕스러움과 가난한 사람들의 희생을 거론한 건 보수적인 신교도들에는 도발로 비출 수도 있다. 즉 인간은 신의 형상에 따라 빚어졌고 주변 자연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신성한 권리가 주어졌다는 믿음에 반하는 주장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이 인간을 위해 마련한 자연을 인간이 구제하겠다고 나서는 건 주제넘은 짓이라는 말이다. 미력한 존재인 인간은 지구를 덥게 할 능력도 없고(따라서 지구온난화는 인간활동의 결과가 아니다) 인간이 지구에 대한 신의 계획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품는 자체가 오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환경보호가 결국은 인류복지를 증진하는 길이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범국가적인 노력과 함께 개인의 의지도 필요하다는 교황의 태도는 신에 대한 도전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는 말이다.

로지 교수는 이번 교황의 회칙이 종교와 과학이 화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는 기고문에서 “많은 사람들이 종교와 과학이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내가 생물학자이고 진화를 믿는다고 말하면 ‘그럼 기독교를 믿을 수는 없겠네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쓰고 있다.

로지 교수는 “가톨릭에서 진화에 반대한다는 공식적인 가르침은 없다”며 천지창조설(Creationism)은 최근 신교도가 발명한 것으로, 성서 창세기의 앞 세 장에 대한 극단적인 글자그대로의 해석에 기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노트르담대 생물학과 학부생(85%가 가톨릭)을 대상으로 신앙과 진화 사이에 갈등을 느끼냐는 질문에 절반이 그렇다고 답한다며 ‘믿음이냐 과학이냐’라는 양자택일 문화가 만연한 현실을 개탄했다.

로지 교수는 “신교도 과학자로서, 나의 믿음이 이런 근시안적 극단주의에 의해 왜곡된 상황을 보는 게 괴롭다”고 덧붙였다. 로즈 교수는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동의에 대한 교황의 존중이 과학과 신앙, 정책입안자 사이에서 좀 더 건설적인 대화를 촉진시키기를 바란다”며 글을 마쳤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에서 “해결책에 이르는 길이 하나일 수는 없다”며 “다양한 관점을 존중하면서 전문가들 사이에서 정직한 논쟁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수년 전 교과서 진화론 논란을 취재하며 종교의 맹목성과 독선을 접하고 좀 질린 필자로서는 10억 명이 넘는 신자를 두고 있는 거대 종교의 수장이 ‘이성과 관용, 자비와 절제’를 지닌 사람인 것 같아 무척 다행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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