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초장기선전파간섭계(VLBI)를 활용한 우주전파 관측을 통해 우주의 숨겨진 비밀들을 밝혀내기 위한 노력이 가속화되고 있다. VLBI는 먼 거리에 다수의 전파망원경을 설치하고 우주전파가 각 망원경에 도달하는 시간의 차이, 즉 지연시간을 정밀 분석하여 전파 발신원의 위치를 찾는 우주전파 관측네트워크다.
예컨대 수십억 광년 떨어진 은하의 블랙홀에서 방출되는 전파를 VLBI로 관측·분석하면 그 블랙홀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다. 또한 이 방식을 확장해 은하의 형성과 진화, 별의 사멸을 비롯해 우주의 기원을 밝혀낼 다양한 연구의 수행이 가능하다.
이런 엄청난 네트워크가 우리나라에 설치돼 있다.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이 그 주인공으로서 세계 최초로 동시에 4개 채널을 이용해 우주전파를 관측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
특히 천문연은 연구원 내에 동아시아 VLBI 연구센터를 설립하고 한·중·일 3개국에 설치된 VLBI를 연계한 관측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센터에서 생산된 자료는 3개국 공동연구에 활용되고 있으며, 관측된 우주전파 신호를 융합하는 핵심 장비인 상관기(우주전파신호 합성장치)의 설치를 완료하고 중심센터로서 허브 역할을 수행 중이다.
선진국도 못이룬 쾌거
KVN은 서울 연세대학·울산 울산대학·서귀포 탐라대학 등 3곳에 설치된 직경 21m의 전파망원경을 활용, VLBI 기술로 하나의 천체를 동시 관측하는 총 500㎞ 규모의 최첨단 관측 시스템이다. 쉽게 말해 KVN은 3곳의 전파망원경을 하나로 묶으면서 마치 한반도 크기의 초거대 전파망원경을 운용하는 것과 동일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참고로 망원경이 클수록 해상도는 좋아진다. 만일 KVN을 저궤도 위성이 위치한 해발 500㎞ 상공에 올려놓고 지표면을 촬영했다고 가정할 경우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는 3㎜급 해상도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망원경에 유입된 우주전파는 반사경과 필터를 거쳐 주파수별로 분리된 후 각각 22㎓, 43㎓, 86㎓, 129㎓의 4개 수신기로 인도되는데 이것이 바로 천문연 한석태 박사팀이 독자 개발한 KVN만의 독보적 4채널 동시 관측시스템이다. 상대적으로 저주파수인 22㎓의 우주전파가 지구의 대기를 통과하면서 변형되는 정보를 이용, 고주파수 우주전파의 변형을 보정하는 초고주파 우주전파관측망의 핵심기술이라 할 수 있다.
한 박사는 이에 대해 "광학 관측 분야에서 레이저 같은 인공 광원을 이용해 대기의 움직임을 보정해주는 적응광학 기술과 비슷한 원리로서 국제특허를 출원해 놓았다"고 전했다.
전 세계 전문가들은 이를 초고주파 영역인 86㎓와 129㎓에서도 천체 관측을 가능케 해준 세계 최고의 기술로 손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천문강국들조차 지금껏 지구 대기에 의한 변형을 보정하는 기술을 확보하지 못해 86㎓와 129㎓의 우주전파 관측망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VLBI가 외눈으로 관측을 한 것이라면 KVN은 4개의 눈으로 동시에 관측하는 것과 같다. 한층 폭넓고 다양한 정보를 취득할 수 있다는 얘기다. 덕분에 KVN은 천체 위치 정밀 측정, 항성의 진화, 메이저 전자파 방출 원리 조사, 중력렌즈나 활동성 은하핵 등의 우주 초미세 구조 연구, 한반도의 미세 지각변동 검출에 활용할 수 있는 다각적 능력을 보유하게 됐다. 또한 은하 중심부에 있다는 초거대 블랙홀, 21세기 천문학의 숙제인 암흑물질 등의 연구에도 획기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루 50TB 이상의 데이터 생성
일반적으로 연구용 전파망원경 구축에는 약 1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KVN 또한 지난 2001년 착수해 2008년 3대의 망원경을 설치했고, 2011년 부대장비의 구축을 완료했다.
천문연에 의하면 최대 애로사항은 예산과 인력 부족이었다. 3대의 전파망원경을 설치하려면 각각의 장소에 부지를 구입하고 전기, 수도, 가스, 전화 등의 기반인프라를 구축해야하기에 상당한 예산투입이 불가피하다. 그래서 천문연은 전국의 대학과 지방자치단체들을 대상으로 부지를 무상 제공할 곳을 물색하는 방식으로 타개책을 찾았다.
물론 부지를 제공한다고 아무 곳에나 전파망원경을 설치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사방이 트여있어야 하며, 우주전파를 간섭할 수 있는 인위적인 전파가 없는 장소이어야만 한다. 그래서 연구팀은 장장 6개월 동안 3개조로 팀을 나눠 전파탐지기를 들고 전국 20여곳의 후보지를 검증했다. 이렇게 연세대, 울산대, 탐라대가 최종 낙점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들어갔다.
그 다음에 직면한 난제는 지구 대기에 의한 우주전파의 변형을 원래대로 보정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존에는 바로 옆에 있는 강한 전파를 발산하는 천체의 우주전파와 비교해 보정하는 방법을 썼지만 제작비용이나 관측시간 측면에서 과도한 투자가 요구된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됐다. 그래서 오랜 연구 끝에 창안해낸 비책이 전파의 변형이 거의 없는 저주파의 정보를 활용해 초고주파의 변형을 복원하는 4채널 동시관측 시스템이었다.
이 방법을 도입해 개발된 KVN은 3곳의 전파망원경을 최적으로 가동했을 때 1초당 1GB, 하루 종일 관측하면 50TB 이상의 데이터가 생성된다.
이 많은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하는 걸까. 눈치챘겠지만 이는 슈퍼컴퓨터 밖에는 감당해낼 수 없는 데이터다. 아니 한·중·일 3개국의 VLBI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니 슈퍼컴을 능가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이에 천문연은 세계 최고 성능의 우주전파 자료처리 장치를 일본과 공동 개발했다. 기존 장치보다 5배 이상 향상된 자료처리 능력을 보유한 녀석이다. 천문연이 동아시아 VLBI 센터를 운영하게 된 이유도 천문연 외에는 3개국의 우주전파관측망 데이터의 동시 처리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천문연은 한·중·일의 협력을 바탕으로 KVN을 향후 동아시아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우주전파관측망의 중심축으로 성장시킬 계획이다. 현재 동아시아 지역에는 우주전파관측망에 참여할 수 있는 전파망원경이 20여개 존재한다. 이들을 모두 아우른다면 직경 6,000㎞의 전파망원경을 구현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이론상 지구저궤도에서의 해상도가 0.7㎜급까지 높아진다.
이외에도 천문연은 초고속 네트워크를 이용한 새로운 방식의 우주전파관측망 운영도 추진 중이다. 관측결과를 하드디스크에 저장하지 않고 초고속 네트워크를 통해 자료처리센터로 전송, 즉시 처리하는 개념이다. e-VLBI라 불리는 이 방식은 선진국들도 시험적으로 시도하고 있으며, 천문연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과 함께 이미 유럽, 호주의 관측망과의 시험관측에 성공한 바 있다.
천문연 박필호 원장은 "거대한 우주의 신비를 밝히는 것은 인류가 가진 무한한 호기심을 풀어가는 일"이라며 "KVN과 동아시아 VLBI 연구센터를 기반으로 국내 과학자들이 인류발전에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한반도 상공 인공위성 추적시스템
우리의 머리 위, 즉 한반도 상공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타국의 정지위성이 떠있다. 지난 2007년 확인된 것만 96개에 달한다. 이것이 지금 당장 위협이 되지는 않더라도 타국이 한반도를 상시 정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잠재적 위협은 지대하다. 지금껏 우리는 이러한 위성들을 추적·감시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한국천문연구원이 레이저로 위성을 추적해 정확한 거리를 측정하는 이동형 인공위성 레이저 추적(Satellite Laser Ranging, SLR) 시스템을 국내 최초 독자기술로 개발, 본격적인 가동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은 단 5초만에 100도 범위의 하늘을 촬영할 수 있다. 또 주야에 관계없이 한반도 상공의 레이저 반사경이 설치된 위성의 정밀한 위치 관측이 가능하다.
천문연 박필호 원장은 "SLR 시스템에 힘입어 우리나라도 독자적인 우주감시체계 구축이 시작됐다"며 "SLR은 위성의 위치를 정밀 추적·관제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구의 정확한 중력상수 결정, 지각과 해수면의 변화 등 지구물리 분야에도 폭넓게 활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천문연은 이동형 SLR에 이어 오는 2015년까지 고정형 SLR 시스템도 추가 개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국제 레이저 추적 네트워크에 참여, 우주선진국으로서의 위상을 제고하겠다는 복안이다.
한편, 현재 SLR 시스템을 갖춘 국가는 미국, 중국, 일본 등 20개국으로 약 40개의 관측소를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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