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2차 규제개혁 장관회의에서 쏟아진 요구 사항 가운데 식용 곤충의 범위를 확대해달라는 한국곤충산업협회 회장의 주문에 눈길이
쏠렸다. 그는 소고기 1kg을 얻으려면 사료 12kg이 필요하지만, 곤충을 이용하면 단 1kg의 사료만으로 같은 양의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다며
식량 자원으로서 식용 곤충의 장점을 역설(力說)했다. 이미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도 2013년에 발행된 「식용 곤충: 식량 및 사료 안보
전망(Edible insects: Future prospects for food and feed security」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2050년이 되면 세계 인구가 90억에 달해 현재의 2배 정도 식량이 필요하다며 곤충을 미래 대체 식량으로 제시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번데기와
동충하초, 메뚜기 등을 먹어왔듯이, 곤충은 인류가 오래전부터 애용해온(?) 고단백 전통 음식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먹고 있는 곤충의
종류가 무려 2천 종이 넘는다. 식용 곤충에는 메뚜기, 귀뚜라미, 개미, 벌, 잠자리, 딱정벌레 등 우리에게 친숙한 것들이 많지만, 바퀴벌레나
파리 같은 혐오 곤충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바퀴벌레와 파리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것들과는 조금 다른 생물 종이다.
분류학적으로 절지동물 강(綱)에 속하는 동물인 곤충은 머리와 가슴, 배 세 부분으로 나뉜 몸통에 세 쌍의 다리와 2개의 더듬이를 가지고 있다. 종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식용 곤충의 주요 구성 성분은 45~70%의 단백질과 20~30%의 지방, 5~10%의 탄수화물, 그리고 키토산 및 비타민과 각종 무기질 등이다. 특히 귀뚜라미와 메뚜기, 바퀴벌레 등이 단백질 함량이 높다. 예컨대, 나방이나 나비의 애벌레 100g을 먹는다면 성인 1일 섭취 단백질 권장량의 76%를 채울 수 있고 하루에 필요한 비타민 양의 전부를 얻을 수 있다. 식용 곤충의 에너지 함량은 건조중량 100g당 약 500Kcal로, 열량 면에서도 기름기가 많은 돼지고기를 제외한 다른 육류와 견주어 손색이 없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최근 미국 뉴욕에서 소고기 대신 말린 귀뚜라미를 튀겨 빵 사에 넣은 ‘귀뚜라미 버거’가 등장해 의외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식품기업 첩팜스(Chirp Farms)와 엑소(Exo)는 튀긴 귀뚜라미 가루를 주원료로 만든 에너지 바를 시판하고 있는데, 이런 에너지 바 1개에는 귀뚜라미 약 35마리가 들어 있다. 영양학적 가치 외에도 식용 곤충은 기르는 과정이 친환경적이고 경제적이다. 곡물과 육류 생산을 위한 경작지와 목초지가 필요 없고 에너지 소비량과 온실가스 배출량도 상대적으로 미미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벌레를 먹는다는 심리적인 거부감을 극복할 수 있다면 곤충은 영양과 경제, 환경 측면에서 그 어느 식품보다 뛰어난 식재료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식용 곤충의 소비를 본격적으로 확대하기 전에 과학으로 풀어야할 중요한 과제가 있다. 철저한 안전성(위험성) 검사와 이에 따른 식품 안전성 기준의 마련이 그것이다. 식용 곤충의 잠재 위험성은 크게 내인성과 외인성 요인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내인성 위험 요인으로는 영양소의 흡수 또는 대사를 방해하는 물질인 항영양소(antinutrient)와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알레르겐(allergen)을 들 수 있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식용 곤충에서 항영양소의 함량은 매우 낮아서 사람이 섭취했을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 누에처럼 일부 곤충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 누에의 고치에는 비타민 B1인 티아민(thiamine)을 분해하는 효소 티아미나아제(thiaminase)가 들어있는데, 이 효소가 공교롭게도 열에 강하다. 이런 특성 때문에 조리과정에서 활성을 잃지 않은 효소가 우리 몸에 들어오게 되면, 비타민 B1이 분해되어 결국 비타민 부족에 의한 질환이 생길 수 있다. 게다가 새우나 게와 같은 다른 절지동물과 마찬가지로 곤충도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다. 곤충의 알레르겐은 물림(쏘임)과 접촉, 분비물 등의 흡입 또는 섭취를 통해 체내로 들어오는데, 접촉과 흡입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식용 곤충을 기르거나 다루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알레르겐에 노출될 위험이 가장 크고, 식용 곤충 식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전 알레르기 반응 검사도 필요하다. 또한 식용 곤충에 존재하는 병원성 미생물에 의한 감염과 식중독 등의 사례가 보고되고 있기 때문에 식용 곤충의 외인성 위험 요인도 반드시 고려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감염 예방은 물론이고 유통 과정에서 해당 식용 곤충 제품의 안정성을 위해서도 식용 곤충에서 미생물을 제거할 수 있는 쉽고도 효과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또한 농약이 살포된 지역에서 포획된 곤충에는 농약 성분이 들어있을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던 규제 개혁 요구에 대해서, 농림축산식품부는 흰점박이꽃무지 애벌레(굼벵이)와 장수풍뎅이 애벌레, 귀뚜라미 성충을 내년까지 식품 원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메뚜기와 번데기, 백감장(누에) 그리고 지난 7월에 임시 허가를 받은 갈색거저리 등 4종이 식용으로 허용된 상태였다. 우리나라 곤충시장 규모가 2020년이면 무려 2000억 원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처럼 우리 정부도 곤충산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니, 머지않아 곤충은 이를 키우는 사람이나, 먹는 사람 모두에게 사랑받는 날이 올 것 같다. 위에서 제기된 문제점들이 모두 해결된 상태에서 그런 날이 온다면 <설국열차>에서 보았던 거무튀튀한 단백질 바는 영화 속 장면이 아니라 일상이 될 수 있겠다. 기왕에 곤충을 먹게 된다면, 꼬리칸에 탄 승객만이 아니라 열차에 탄 모든 사람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기를 바란다. 식충(食蟲)은 어디에도 있으니까. |
연세춘추 |
2016년 4월 20일 수요일
식용 곤충에 대한 어느 미생물학자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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