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17일 일요일

미국의 '인문학 푸대접'

인문학이 찬밥 신세인 건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매트 베빈 미 켄터키주지사가 주정부 예산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했던 '깜짝 발언'이 그랬다. 그는 불문학을 비롯한 인문학 전공생들에게 지급하던 주정부 장학금을 대폭 삭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베빈 주지사는 "불문학 전공자보다는 전자공학도에게 더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면서 "전 세계에서 불문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좋다. 다만 앞으로는 공학도가 받는 납세자들의 보조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도 "대학 지원은 학생 수가 아니라 취업자 수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며 거들고 나섰다. 취업자 수만 놓고 보면 불문학은 도무지 전자공학의 상대가 될 수 없는 처지다.

'인문학을 전공하면 춥고 배고프다'는 속설도 미국 통계에서 확인된다. 최근 미국대학고용주협회(NACE)가 발표한 '대학 졸업자들의 전공별 예상 연봉'이 대표적이다. 기계공학(6만4900달러·약 7500만원)을 필두로 컴퓨터공학(6만1300달러·7000만원), 수학·과학(5만5100달러·6300만원)까지 연봉 상위권은 이공계 차지였다. 반면 인문계에서는 경영학이 5만2200달러(6000만원)로 체면을 세운 정도다. 사회과학(4만6600달러·5300만원)과 인문학(4만6100달러·5300만원), 교육학(3만4900달러·4000만원)은 시쳇말로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최근 오바마 행정부가 7000여곳에 이르는 미국 대학을 평가할 때 졸업 후 연봉도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미 대학들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미 대학 내부에서는 "졸업생 취업률이나 평균 연봉 같은 자료를 학생들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학의 '소비자'인 학생들에게 관련 정보를 최대한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일종의 자성이다.

종교가 모든 가치의 우위에 놓였던 중세 시절 대학은 학문적 자율성을 보장하는 '지적(知的) 피난처' 역할을 했다. 산업혁명과 과학 발전의 근대에는 여러 분야 학문의 기틀을 마련하고 학문적 발전을 이끌었다. 하지만 '청년 실업'이 세계 선진국의 공통 화두인 21세기에는 취업만이 대학을 평가하는 유일무이한 잣대가 되고 있다. 전 세계의 대학은 우리 예상보다 훨씬 더 거대한 전환기에 들어선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인문학 무용론'이 팽배했다고 해도 험한 세파를 헤쳐가야 하는 것 역시 인문학의 숙명이다. 공자(孔子)는 덕치(德治)를 외면했던 춘추(春秋)시대를 원망하지 않았고, 소크라테스는 아테네가 쥐여준 독주(毒酒)를 기꺼이 들이켰다. 이
처럼 당대에는 차가운 외면과 질시에 시달렸지만 후대에는 전범(典範)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야말로 인문학의 짜릿한 반전이다.

세상을 걱정해야 하는 인문학이 자신의 안위만 염려한다면 그처럼 부끄러운 일도 없다. 위기(危機)가 위험과 기회를 모두 포함하는 말이라면 인문학이 존재 가치를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지금은 역설적으로 '인문학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조선일보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