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23일 토요일

아인슈타인도 두 번 놀랐을 중력파 검출 성공!

1916년 이미 아인슈타인은 믿기지 않는 것을 주장했다. 오로지 자신의 마당(장)방정식을 근거로 중력 역시 파동을 만들어내야 함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이다. 별이 붕괴하는 경우처럼 질량, 아울러 중력장에서 일어나는 극도의 변화가 시공간을 진동시킬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다. 물론 그 효과가 매우 작을 것으로 생각되기에, 결코 관측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얘기를 덧붙였다.
- 위르겐 네페, ‘안녕, 아인슈타인’(2005)에서


독일 포츠담 천문대장 칼 슈바르츠실트는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자원해 러시아 전선에서 탄도궤도를 계산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1915년 말 슈바르츠실트는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논문을 입수해 읽고 여기 나오는 공식들을 천문학의 여러 상황에 적용해봤다. 그 가운데 하나가 ‘천체 내부에서는 중력이 어떤 모습이 될까?’라는 질문이었고 계산을 하자 이상한 결과가 나왔다.

즉 질량이 아주 작은 부피로 압축될 경우 시공간도 수축되면서 빛조차 빠져 나가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어떤 질량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임계 지점을 ‘슈바르츠실트 반지름’(구형이라고 했을 때)이라고 부른다. 태양의 경우 이 값은 약 1.5km이고 지구는 0.5cm 정도다.

아인슈타인은 이 소식을 듣고 수학적으로는 흥미로운 생각이지만 물리적으로는, 즉 실제로는 그런 천체가 존재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1939년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별의 일생을 연구한 결과 태양보다 질량이 훨씬 큰 별들은 완전히 연소된 후, 즉 핵융합 반응이 끝난 뒤 중력붕괴를 일으켜 이런 천체가 됨을 보였지만 아인슈타인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었다. 아인슈타인이 사망하고 12년이 지난 1967년에야 이론물리학자 존 아치볼드 휠러가 이 천체에 ‘블랙홀’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30년만의 개가

아인슈타인은 중력파를 예견했지만 검출되지는 않을 것으로 봤고 블랙홀은 수학에서나 존재한다고 믿었다. 최근 물리학자들은 블랙홀 병합시 발생하는 중력파를 검출하는데 성공했다. 1921년 42세 때의 아인슈타인의 모습. - 위키피디아 제공
아인슈타인은 중력파를 예견했지만 검출되지는 않을 것으로 봤고 블랙홀은 수학에서나 존재한다고 믿었다. 최근 물리학자들은 블랙홀 병합시 발생하는 중력파를 검출하는데 성공했다. 1921년 42세 때의 아인슈타인의 모습. - 위키피디아 제공







지난 11일 미국 워싱턴DC 내셔널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미국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
(LIGO·라이고) 프로젝트 연구단의 중력파 검출 성공 발표는 물리학뿐 아니라 과학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다.

이번 검출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원리의 위상이 확고해졌을 뿐 아니라 전자기파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던 관측천문학에서 ‘중력파 천문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열렸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앞의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의 이론에서 중력파의 존재를 예측한 아인슈타인 자신은 인류가 중력파를 검출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번 중력파의 근원인 블랙홀은 존재조차도 믿지 않았다.

즉 아인슈타인의 두 가지 관점이 틀렸다는 걸 입증함으로써 그의 이론이 더 확고해진 셈이다. 아인슈타인의 입장에서는 ‘소실대탐(小失大貪)’이라고 할까. 라이고의 보도자료에서 알베르트아인슈타인여구소의 브루스 앨런 소장은 “아인슈타인은 중력파가 검출하기에는 너무 약하다고 생각했고 블랙홀의 존재는 믿지도 않았다”며 “그렇지만 자신이 틀렸다고 유감스러워할 것 같지는 않다”고 조크를 던지고 있다.
 
필자는 대학원생 시절인 1991년부터 미국 과학월간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을 구독하고 있는데, 1992년 3월호에 ‘파동 잡기(Catching the Wave)’라는 제목으로 라이고 프로젝트의 출범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 무려 24년이 지나 라이고 프로젝트가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기사를 다시 읽어봤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칼텍과 MIT의 물리학자들이 주도한 라이고 프로젝트는 1987년 출범했는데 1991년 10월 조지 부시 대통령(아버지)의 ‘결제’를 받고 이듬해 미 국립과학재단(NSF)의 연구비가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사업에 들어갔다.

당시 예산은 2억7200만 달러(약 3300억 원이지만 당시 물가를 생각하면 더 큰 돈임)였다. 잡지에 실린 연구진 사진을 보면 사진설명에서 네 명의 이름이 언급돼 있다. 즉 칼텍의 로슈스 보그트 교수(1994년까지 리고 소장 역임)와 로널드 드레버 교수, MIT의 라이너 바이스 교수, 칼텍의 킵 손 교수가 그들이다. 지난 11일 기자회견 자리에는 이 가운데 바이스와 손 교수가 보였다.

미 과학월간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1992년 3월호에 에 실린 라이고 프로젝트 주역들. 위 사진 팔짱 낀 사람이 칼텍의 로슈스 보그트 교수이고 그 오른쪽이 로널드 드레버 교수다. 아래 왼쪽 사진 앉아있는 사람이 MIT의 라이너 바이스 교수이고 오른쪽 사진이 칼텍의 킵 손 교수다.  -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제공
미 과학월간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1992년 3월호에 에 실린 라이고 프로젝트 주역들. 위 사진 팔짱 낀 사람이 칼텍의 로슈스 보그트 교수이고 그 오른쪽이 로널드 드레버 교수다. 아래 왼쪽 사진 앉아있는 사람이 MIT의 라이너 바이스 교수이고 오른쪽 사진이 칼텍의 킵 손 교수다.  -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제공
아인슈타인은 중력파가 검출될 가능성이 없다고 봤지만 많은 후배 물리학자들이 중력파 검출이 가능하다고 믿고 인생을 걸었다. 1957년부터 메릴랜드대 조제프 웨버 교수는 진공 공간에 수톤에 이르는 실린더 막대를 매단 뒤 중력파를 검출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2m짜리 막대 검출기의 정밀도는 10의 16승분의 1m에 이르렀지만 중력파를 검출하기에는 너무 둔감했다.

중력파를 검출하기 위한 35년에 걸친 웨버의 노력은 소득이 없었지만 많은 후배 물리학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했고 1960년대 후반 MIT의 바이스 교수도 웨버의 실험을 생각하다가 중력파를 검출하는데 빛을 이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한편 칼텍의 손 교수는 당시 유력한 후보로 여겨지던 초신성보다는 중성자별쌍이나 블랙홀쌍이 서로 접근해 충돌하며 합쳐질 때 나오는 중력파가 관측 가능성이 더 높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의 이론을 바탕으로 라이고 프로젝트는 미국 북서부의 핸퍼드와 남동부의 리빙스턴에 관측소를(두 곳이 동시에 관측하면 오류일 가능성이 적으므로) 짓고 2002년부터 본격 관측에 들어갔다. 관측소는 각각 4km 길이의 ‘ㄱ’자 모양의 터널로 레이저가 지나가는 길이다.

즉 레이저(빛)는 반은 반사시키고 반은 통과시키는 거울을 지나 각 방향으로 향해 끝에 있는 거울에 반사돼 되돌아 와 검출기에 도달한다. 이때 서로 상쇄간섭이 일어나게 거리가 맞춰져 있어(즉 파장의 절반만큼 위상 차이가 나게) 평소에는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

그런데 중력파가 지나가는 순간 시공간이 왜곡되면서 한쪽 방향이 늘어날 때 다른 방향이 줄어들어(‘ㄱ’자로 만든 이유다) 빛이 이동하는 거리가 변하면서 위상 차이도 변해 상쇄간섭이 일어나지 않는다. 즉 신호가 잡혀 중력파가 검출된다는 말이다. 당시 라이고의 정확도는 10의 18승분의 1m로 양성자(수소원자핵) 크기의 1000분의 1에 불과했다.

당시 검출 범위는 중성자별 병합일 경우 6500만 광년을 한계로 봤고 이런 사건이 1년에 한 번 정도는 일어날 거라고 예상했지만 실망스럽게도 2010년에 이르도록 라이고 관측소는 중력파 검출하는데 실패했다.

그럼에도 NSF는 2008년 추가로 2억500만 달러를 배정해 검출기 감도를 열 배 높이는 업그레이드 작업을 진행하게 했다. 이렇게 되면 라이고는 최대 6억5000만 광년 떨어진 중성자별 병합 중력파를 검출할 수 있게 된다. 거리가 열배 늘면 공간이 1000배 늘어나므로 그만큼 검출 확률이 높아지는 셈이다.

2011년 업그레이드 작업에 들어간 라이고는 정확도를 10의 19승분의 1m로 양성자 크기의 1만분의 1로 높였다. ‘향상된(Advanced)’ 라이고라고 이름을 지닌 관측소는 지난해 9월 12일부터 작동에 들어갔고 불과 이틀만인 14일 중력파 신호를 검출에 성공한 것이다.

분석결과 중성자별 병합 보다 더 강력한 중력파가 나오는 블랙홀(각각 태양 질량의 30~40배)의 병합이었다(따라서 13억 광년이나 떨어졌음에도 검출이 됐다). 또 미 남동부 리빙스턴에 있는 관측소가 북서부 핸퍼드에 있는 관측소보다 7밀리초 먼저 검출했기 때문에 중력파가 남반구의 하늘에서 온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010년 가짜 중력파 신호를 검출 실험에서 라이고 관측소가 멋지게 ‘성공’해 업그레이드 후 성공을 예감하게 했다. 당시 검출 신호로 왼쪽이 핸퍼드 관측소, 오른쪽이 리빙스턴 관측소다. - LIGO 제공
지난 2010년 가짜 중력파 신호를 검출 실험에서 라이고 관측소가 멋지게 ‘성공’해 업그레


이드 후 성공을 예감하게 했다. 당시 검출 신호로 왼쪽이 핸퍼드 관측소, 오른쪽이 리빙스턴 관측소다. - LIGO 제공
●5년 전 시뮬레이션의 데자뷔



흥미롭게도 라이고는 업데이트를 위해 가동을 중단하기 전인 2010년 ‘가짜 중력파’ 신호를 검출하는 실험을 수행했다. 당시 이 실험은 라이고 뿐 아니라 유럽에 있는 두 중력파 관측소(이탈리아 피사에 있는 비르고(Virgo)와 독일 하노버에 있는 GEO600도 참여했다.

즉 주최측은 연구자들에게 불시에 가짜 신호가 갈 수 있다고 사전에 양해를 구한 뒤 2010년 9월 16일 신호를 넣었다.

그 결과 두 곳의 라이고 관측소는 상당한 감도로 신호를 검출했다. 반면 팔 길이가 3km로 약간 짧은 비르고는 약한 신호만을 검출했고, 팔 길이가 600m에 불과한 GEO 600은 신호를 잡지 못했다.

당시 라이고 프로젝트는 데이터를 분석해 6000만~1억8000만 광년 떨어진 곳의 블랙홀이 병합할 때 발생한 중력파라고 결론지으며 이 사건을 ‘GW100916’이라고 명명했다. 이듬해 3월 14일 주최측은 이 신호가 가짜임을 발표해 과학자들을 실망시켰지만(물론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겠지만), 라이고가 제대로 작동하는 시스템임을 확인시키면서 이어지는 업그레이드 작업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 참고로 이번 진짜 중력파 사건은 ‘GW150914’로 명명됐다.

라이고 업그레이드 작업이 마무리되던 2014년 7월 17일자 ‘네이처’에 실린 탐방기사(리빙스턴 라이고)를 보면 라이고 프로젝트에 오랫동안 참여하고 있는 칼텍의 스탠리 휘트콤 교수의 코멘트가 나오는데, 그 자신감이 근거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진짜 문제는 우리가 중력파를 검출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빈도로 검출하게 될 것이냐하는 겁니다.”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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