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8일 금요일

입학사정관 전형 5년 한국형 모델 자리 잡으려면


판박이 스펙 걸러내고 '진정성'에서 답 찾아야

자기소개서·교사추천서 위조, 과도한 스펙 경쟁, 모호한 평가 기준…. 이상은 입학사정관(이하 '입사관') 전형 출신 대학(졸업)생이 지적한 입사관 전형의 단점들이다.전·현직 대학 입사관과 주관 부처 담당자에게서 들은 '한국형 입사관 전형'의 현주소를 정리했다. 우리나라 입사관 전형의 모델인 미국 입사관 전형 유경험자가 들려주는 현지 사례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인지도 짚었다.
 
|서류 위조 판별|대교협 '유사도 검색 시스템' 개발
송선진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 대입제도과장은 "자기소개서 대필자는 면접과 '유사도 검색시스템' 등으로 충분히 가려낼 수 있다"고 말했다. 유사도 검색시스템은 자기소개서의 표절 여부 점검을 목적으로 지난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가 개발한 것. 자기소개서 내용이 30% 이상 겹칠 경우 자동으로 걸러낼 수 있다.

미국 역시 한때 입사관 전형 제출 서류의 사실 여부 확인 문제로 홍역을 앓았다. 그 결과, 지난 2003년 미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 격인 SAT(Scholastic Apt itude Test)에 '쓰기(writing)' 과목이 신설됐다. 안홍식 한국뉴욕주립대 부총장(미국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응용수학통계학과 대학원 입학사정위원)은 "SAT에 쓰기 과목이 추가된 이후 대학은 응시자의 자기소개서와 쓰기 점수를 대조하는 간단한 작업만으로 대필 여부를 가려낼 수 있게 됐다"며 "입사관이 원할 경우 SAT 응시 당시 쓰기 시험지를 열람하는 것도 허용된다"고 말했다.

지원자의 제출 서류와 관련, 가장 큰 문제는 확실한 진위 여부를 오로지 본인만 알고 있다는 점이다. 성폭력 사건 가담 사실을 숨긴 채 추천서를 제출, 성균관대 입사관 전형에 합격했던 A군 사례가 대표적이다. 김경숙 건국대 입학전형 전문교수는 "제아무리 유능한 입사관이라도 서류에 언급조차 안 돼 있는 내용 관련 질문을 던질 순 없다"고 말했다. "입사관은 서류 심사 단계에서 추천서와 자기소개서, 학교생활기록부의 기재 내용이 일치하는지 여부를 주의 깊게 살핍니다. 면접 질문도 '서류에 기재된 경력을 확인하는' 수준으로 진행되죠. 따라서 서류 자체의 정보가 정확하지 않다면, 다시 말해 입사관이 (지원자의 제출 서류를 승인한) 출신 고교를 믿지 못하면 입사관 전형은 존립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비용 구조 개선|공교육에 입사관 전문 인력 늘려야

3년 내내 교과서 풀이 중심 교육에 길들여져 온 우리나라 고교생에게 각종 서류를 작성하고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는 일은 생경하다. 하지만 공교육 현장에서 입사관 전형 준비 수험생을 도울 인력은 많지 않은 게 현실. 각종 '입사관 대비 사교육'이 활개를 치는 건 그 때문이다.

송선진 과장은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제도 도입 초기에 생긴 편견일 뿐 현재는 별 문제 없다"고 일축했다. "'스펙이 화려해야 한다' '특수목적고(이하 '특목고') 출신 지원자에게 유리하다' 같은 편견이 전혀 틀린 건 아닙니다. 2010학년도만 해도 입사관 전형 내 특목고 출신 학생 비율이 15.3%나 됐으니까요. 하지만 이듬해 대교협이 (교내 활동 외 다른 스펙은 일절 평가에서 배제하는 내용을 담은) '입사관 운영 공통기준'을 마련, 적용한 이후 특목고 출신 입학생 비율은 3.2%까지 떨어졌습니다." 송 과장은 "교내 경력이야말로 조작하기 더 쉽다"는 일부 반박에 대해선 "교내 수상 실적은 실제 입사관 전형 합격 여부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안홍식 부총장에 따르면 입사관 전형을 '맞춤 공략'한 한국 특목고 출신 고교생의 이력은 미국 대학에서도 슬슬 '약발'이 떨어지고 있다. 그는 "미국 대학 입사관은 판에 박힌 듯 엇비슷한 이력을 지닌 한국 특목고 출신 지원자의 서류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 입사관 전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진정성입니다. 특목고는 학교 차원에서 재학생에게 '스펙 쌓기용' 프로그램을 너무 많이 만들어주기 때문에 자발성 측면에서 의심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남은 문제|모호한 평가 기준·서류 정확성 확보
명확하지 않은 평가 기준도 입사관 전형의 단점 중 하나다. 안홍식 부총장은 "모호한 평가 기준을 핑계로 편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입사관 전형 역시 흡사 로또 같은 평가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스타벅스에서도 면접이 예사로 진행될 만큼 전형 과정이 한국에 비해 상당히 느슨해 보이죠. 하지만 이는 모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서류'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입사관의 직업적 처우에 대한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실제로 현재 활동 중인 입사관의 상당수는 비정규직(연봉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불안정한 신분에 대한 걱정으로 A대학 입사관직을 그만둔 B씨는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사정관을 '단순 일용직'으로 보는 다른 교직원들의 시선을 견디는 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안상헌 한국대학입학사정관협의회장이 밝힌 입사관의 평균 연봉은 석사급이 3500만 원, 박사급이 4500만 원 선이다. 안 회장은 "업무 강도에 비해 연봉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정규직 비율이 늘고 있는 등 상황은 계속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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