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문용린 교수
누구나 공부를 잘하기 원하지만 모두 공부를 잘할 수는 없다. 원하는 만큼 오르지 않는 성적 때문에 아이는 아이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교육부 장관을 지내고 30여 년간 서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온 문용린 교수는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쓸데없는 고민으로 정력을 낭비하고 있다고 쓴소리를 건넨다.
“아이의 꿈과 소질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명문대 진학만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는 부모 때문에 아이도 힘들고 부모도 불행합니다.” 문용린 교수(62·서울대 교육학과)는 “오랫동안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에 비춰보면 공부는 소질이고 적성인데 많은 부모가 그걸 잊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술, 음악 같은 예능이나 체육은 소질이 있고 적성이 맞아야 그 분야로 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래를 열심히 시키면 아이가 조수미 같은 성악가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거나 달리기를 매일 시키면 이봉주 같은 마라토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는 거의 없다. 하지만 국어·영어·수학 공부는 열심히 시키면 언젠가 잘할 수 있다고 믿는 부모가 많다. “적성이 맞아야 예체능을 할 수 있는 것처럼 공부도 타고난 소질과 적성이 있어야 할 수 있습니다. 책 읽기 싫어하는 아이를 닦달해서 어느 정도 책을 읽힐 수는 있겠지만 책 읽기를 직업으로 하는 학자로 만들 수는 없다는 얘기죠.” 공부에 소질이 없는 아이더러 공부를 하라고 강요하면 자칫 아이는 공부뿐 아니라 인생의 다른 것에도 의욕을 잃을 수 있다고 한다. “초등학교에서 성적이 중간 아래에 있는 아이가 중·고등학교에 가서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면 일류대에 갈 실력이 되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겁니다.” 한 해 수십만 명이 대학 입시를 치르지만 그 가운데 소위 일류대에 들어갈 수 있는 숫자는 제한돼 있다. 그렇다면 일류대 진학에 실패한 아이들은 패배감을 안고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할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 문 교수의 주장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늦어도 중학교에서 공부에 소질이 없다고 판단되면 공부는 남한테 크게 부끄럽지 않고 기본적인 교양과 품위를 갖출 정도로만 하면 됩니다. 대신 아이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분야를 빨리 찾아줘야 합니다.” 너도나도 일류대 진학만 목표로 하는 한 공부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하지만 공부의 목표를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생활인의 교양’으로 잡으면 남을 이겨야 한다는 경쟁의 부담이 없어진다. 공부를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을 바꿔야만 부모의 정신건강에도 좋고 아이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문 교수는 두 자녀의 아버지로서 겪은 자신의 경험도 들려줬다. 큰딸(29)은 경영정보학을 전공하고 현재 서울대 박사과정에 있다. 아들(19)은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해 학교 다닐 때 늘 반에서 운동 잘하는 아이로 꼽혔다. 아들이 중학교 다닐 때 “장래 희망으로 중학교 체육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부모로서 더 욕심을 부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아이의 ‘행복할 권리’를 위해 아들의 결정을 존중해줬다고 한다. 아이에게 자유와 주도권 줘야 소질 발견할 수 있어 자녀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 교수는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알려면 자유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관찰해보라고 조언한다. “아이들의 시간표를 부모가 관리해주는 것은 물론 필요합니다. 학교와 학원, 운동, 독서 등으로 짜인 시간표를 아이가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한편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아이 마음대로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줘보세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보낼지도 모른다. 다소 답답하더라도 주어진 자유시간만은 일절 부모가 간섭하지 말고 계속 놔둬야 한다. 그래야 차츰 자기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시간에 무엇을 선택하는지 관찰하면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또한 아이의 소질을 발견하려면 아이에게 자신의 일에 대한 주도권을 줘야 한다. 부모가 나서서 아이 일을 챙겨주다 보면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다. 노래방에 가서 지정된 노래만 부르게 하고 식당에 가서 부모가 메뉴를 정해준다면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가 무엇인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결코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부모는 아이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어른인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모든 것에 있어 방향을 정해주려고 하기 쉽습니다. 아이에게 주도권을 줘야 부모가 미처 몰랐던 아이의 숨겨진 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공부를 시킨다는 것은 쓴 약을 먹이는 일과 같아서 꼭 필요하고 해야 되는 일이지만 아이는 저항하게 마련이다. 쓴 약을 먹이려면 억지로 입에 털어 넣을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설득을 통해 아이가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 “공부를 잘하고 싶지 않은 아이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 자신이 자기는 공부를 해도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럴 때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대화로 설득하고 합리적인 타협을 해야 합니다. 공부를 하는 목적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양과 품위를 갖춘 인생을 살기 위해서라고 아이의 인식을 바꿔주세요.”
여성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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