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사회 이끌 청소년이 꼭 알아야 할 것들”
언제부턴가 제 이름 앞에는 늘 ‘세계적인 미래학자’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저를 ‘족집게 예언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펴낸 책이 미래의 변화상을 족집게처럼 맞혔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는 점쟁이도 예언가도 아닙니다. 다만 현재의 현상과 흐름을 분석해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의 사회와 경제를 예측하는 학자일 뿐입니다. 미래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리 경험이 많고 똑똑한 사람일지라도 어떤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를 예측하는 건 어렵습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변화가 심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건 무모하기까지 한 일일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누구나 미래를 미리 엿보고 싶어 합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두려워하기도 하고, 또 미래는 좀 더 멋진 세상이 될 거라는 기대로 장밋빛 꿈을 꾸기도 하면서 말이죠. 저 역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늘 관심과 의문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직접 몸으로 현장에서 부딪히기도 하고 많은 사람과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전 세계를 발로 뛰어다녔죠. 작가를 꿈꾸던 소년에서 세계적 미래학자로 성장하기까지 일곱 살 때부터 제 꿈은 작가였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조부모님, 친척들이 한데 어울려 사는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여러 세대의 경험과 사회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접하며 자랐고 자연스럽게 작가를 꿈꿨죠. 하지만 ‘작가는 가난한 직업’이라고 생각하신 부모님은 제 꿈을 반대하셨습니다. 그때 제 삶의 멘토가 돼준 건 시인이던 숙모와 출판사에 다니던 숙부였습니다. 두 분은 저를 격려해줬고, 특히 숙모는 제가 열네 살 때 “좋은 작가가 돼라”며 ‘유의어 사전’을 선물해주기도 했습니다. 그 배려와 관심이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저는 아직도 그 사전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두 분의 격려 덕분에 저는 작가의 꿈을 이어갈 수 있었고, 고등학교 시절엔 학교 신문사에서 일했습니다. 사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신문사에서 언론 관련 과목을 수강하지 않았다며 절 기자로 받을 수 없다고 했던 거죠.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저는 “기자가 될 수 없다면 신문 만평이라도 그리겠다”고 우겼습니다. 그리고 신문사에 들어간 이듬해 편집국장이 됐죠. 뉴욕대에 진학한 뒤엔 직접 문학잡지를 창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작가가 된 건 아닙니다. 저는 졸업 뒤 대학시절 만나 지금은 제 아내가 된 하이디와 함께 공장에 취업했습니다. 대졸자는 아무도 취업하지 않는 자동차 부품공장의 단순 기능공이었습니다. 하이디는 항공기 공장에서 일했죠. 소설 ‘분노의 포도’를 쓰기 위해 실제 포도농장에서 일했던 작가 존 스타인벡처럼 보통의 미국인이 살아가는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전 결코 잊을 수 없는, 지금도 제 삶의 가장 소중한 경험이 된 5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자동차와 비행기 엔진, 백열전구 등을 생산하는 일을 했는데, 주물공장의 송수관 속을 기어다니기도 하고, 착암기로 바위에 구멍을 뚫는 힘든 육체노동도 했습니다. 생산현장을 밑바닥부터 체험한 거죠. 실직의 설움을 겪은 적도 있습니다.
그 뒤 저는 노동조합에서 발행하는 잡지에 글을 쓰는 기자로 몇 년간 일하다 능력을 인정받았고, 용접산업 전문지의 기자를 거쳐 한 신문사의 정치담당 기자로 백악관과 의회를 취재하게 됐습니다. 그 덕분에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경험부터 가장 꼭대기의 정치구조를 들여다보기까지,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었죠. 이후 경제 전문지 ‘포천’의 편집장을 거쳐 지난 64년 ‘문화 소비자’를 펴내면서 비로소 전문 저술가로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70년 펴낸 ‘미래 쇼크’가 세계 50개국에서 7백만 부 이상 팔리면서 명성을 얻게 됐습니다. ‘제3의 물결’ (1980) ‘권력이동’(1991) ‘부의 미래’(2006) 등은 그 후 계속 펴낸 책들이죠. 제가 이런 경험을 말하는 것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창의적인 방법이 있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하고자 하는 굳은 의지만 있다면, 누구든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여러 책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뒤 전 노벨상 수상자부터 여성 죄수와 빈민굴에 사는 소년까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 경험은 제가 세계를 단편적인 지식이 아닌 큰 그림으로 보게 하는 데 도움을 줬죠. 그 과정에서, 전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대한 관찰과 분석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눈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꼬마 시절 작가를 꿈꾸던 한 소년이 여든을 바라보는 오늘까지 열심히 책을 쓰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활동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 사색과 독서 통해 통찰력과 미래 읽는 안목 얻어 그럼 이제는 미래에 대해 얘기해봅시다. 제가 ‘제3의 물결’에서 언급했던 ‘프로슈밍(PROSUMING·생산적인 소비활동)은 영어단어이지만 사전에는 없습니다. 생산하다(PROduce)와 소비하다(conSUME)라는 두 단어를 합쳐 제가 만든 단어이기 때문이죠. 저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배울 때 생산자와 소비자를 구분해서 배웠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두 가지 역할을 모두 담당하는 ‘생산적 소비자(prosumer)’가 존재합니다. 우리는 리눅스 OS(Operating System·운영체제)를 통해 이 사례를 알 수 있죠. 리눅스 OS는 원래 핀란드의 한 사람이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OS에 불만을 품고 자신이 사용하기 위해 개발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처럼 새로운 OS를 원하는 이들을 위해 이 프로그램을 무상으로 인터넷에 올렸는데, 수많은 사람이 이걸 다운받아 사용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최근엔 중국 정부가 중국 내 모든 정부기관은 반드시 리눅스 OS를 써야 한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생산은 반드시 이익창출을 위한 것이라는 기존의 경제논리를 따르지 않고 경제에 큰 영향을 주는 일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렇게 세상은 끝없이 변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시각으로 미래를 보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죠. 저는 신문에 칼럼을 쓸 때마다 ‘내일 아침이 아니라 10년 후에 이 글이 어떻게 읽힐까’를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직업을 선택할 때 10년 후 모습을 그려봐야 합니다. 그럼 미래의 직업을 고를 때 어떤 면에 주안점을 둬야 할까요. 저는 시간·공간·지식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래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이 세 가지 개념에 심층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래 사회를 눈앞에 둔 오늘날에도 이미 세상은 나노초(nanosecond·10억분의 1초) 단위로 변화하고 있고, 물리적 거리는 의미를 잃고 있으며, 지금 배운 지식이 미래에도 쓸모 있으리라는 보장조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시간·공간·지식은 물론 기존의 가치와 기준 및 경계가 모호해지는 사회에서 살기 위해서는 창의력과 유연성을 갖춰야 합니다. 미래 사회의 직업을 찾기 위해서도 필수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시간·공간·지식의 세 가지 기반 가운데서 먼저 시간을 살펴봅시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 사회의 변화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입니다. 그에 따라 오늘 존재하는 직업이 언제 없어질지 모르고, 새로운 직업이 끊임없이 탄생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직업을 갖고 평생 갈 수 없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살펴볼 것이 공간입니다. 2050년이 되면 세계인구의 절반, 세계경제의 40%, 세계 정보기술산업의 절반 이상이 아시아 지역에 집중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이 속한 아시아 지역의 성장과 발전에 주목하는 것이 좋습니다. 세 번째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지식입니다. 지식은 ‘미래 경제의 석유’라고 불릴 만큼 중요합니다. 지식은 쓰면 쓸수록 늘어나는 것으로, 요즘 전 세계적으로 1년에 생산되는 지식의 양은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량 기준으로 이런 도서관 1백만 채가 보유하고 있는 도서에 담긴 내용과 같을 정도로 엄청납니다. 물론 이런 지식 가운데는 틀린 것도 있고 심지어 ‘쓰레기 같은 지식’도 있죠. 그러므로 미래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항상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려는 자세를 갖고, 제대로 된 지식을 골라내는 혜안을 가져야 합니다. 그럼 이렇게 미래를 내다보려면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요. 제 경험을 예로 들면, 꾸준히 사색하고 독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거의 책벌레라고 할 만큼 항상 책을 읽습니다. 면도를 할 때도 옆에 책을 둘 정도죠. 제가 이처럼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연구한 것을 짧은 시간 안에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저는 신문중독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신문은 세상의 새로운 소식을 가득 담고 있어 늘 제 호기심을 자극하니까요. 지금도 매일 아침마다 전 세계에서 날아오는 7개의 신문을 손끝이 새까매지도록 꼼꼼히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일본의 요미우리신문도 영어판으로 읽고 있죠.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 탐구와 호기심, 사색과 독서, 그리고 관찰과 분석을 통해 저는 차츰 이 세상에 대한 통찰력과 미래를 읽는 안목을 얻게 됐습니다. “긍정적인 자세로 미래에 도전하세요” 이제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하나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이자 청각장애인이었던 헬렌 켈러의 말입니다. “비관론자가 우주의 비밀을 풀거나, 해도에 없는 지역을 항해하거나, 인간의 정신세계에 새로운 지평을 연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했던 명장이자 미국의 제34대 대통령이던 아이젠하워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관론자는 어떤 전투에서도 승리하지 못했다.” 현재 많은 사람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고, 영화나 소설 등에서 그려지는 미래 사회도 대부분 어두운 얘기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결코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지 말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창조성은 심각한 위기의 순간에 오히려 가장 큰 능력을 발휘하니까요. 또 새로운 부 창출 시스템과 문명은 앞으로 수십억의 인류가 더 부유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열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여러분은 시간이라는 가장 큰 자산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꿈꾸고, 설계하고, 준비할 시간 말입니다. 이 자산을 잘 관리하면서 지금부터 미래에 대비할 폭넓은 지식을 키워가기 바랍니다. ※ 앨빈 토플러 박사는요 1928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뉴욕대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뒤 공장 노동자로 취업해 현 장의 삶을 체험하고, 이후 신문기자로 일하며 저널리스트의 길을 걸었다. 1964년 ‘문화소비자’로 저술 활동을 시작한 뒤 ‘미래 쇼크’ ‘제3의 물결’ ‘권력이동’ 등 미래 관련 서적을 잇달아 펴내며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미래학자로 명성을 얻었다. 과학·문학·법학 등 다섯 개 분야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부인 하이디 여사와 함께 세계를 돌아다니며 경제와 기술의 발전, 사회변화 등에 대한 강연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여성동아
언제부턴가 제 이름 앞에는 늘 ‘세계적인 미래학자’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저를 ‘족집게 예언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펴낸 책이 미래의 변화상을 족집게처럼 맞혔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는 점쟁이도 예언가도 아닙니다. 다만 현재의 현상과 흐름을 분석해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의 사회와 경제를 예측하는 학자일 뿐입니다. 미래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리 경험이 많고 똑똑한 사람일지라도 어떤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를 예측하는 건 어렵습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변화가 심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건 무모하기까지 한 일일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누구나 미래를 미리 엿보고 싶어 합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두려워하기도 하고, 또 미래는 좀 더 멋진 세상이 될 거라는 기대로 장밋빛 꿈을 꾸기도 하면서 말이죠. 저 역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늘 관심과 의문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직접 몸으로 현장에서 부딪히기도 하고 많은 사람과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전 세계를 발로 뛰어다녔죠. 작가를 꿈꾸던 소년에서 세계적 미래학자로 성장하기까지 일곱 살 때부터 제 꿈은 작가였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조부모님, 친척들이 한데 어울려 사는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여러 세대의 경험과 사회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접하며 자랐고 자연스럽게 작가를 꿈꿨죠. 하지만 ‘작가는 가난한 직업’이라고 생각하신 부모님은 제 꿈을 반대하셨습니다. 그때 제 삶의 멘토가 돼준 건 시인이던 숙모와 출판사에 다니던 숙부였습니다. 두 분은 저를 격려해줬고, 특히 숙모는 제가 열네 살 때 “좋은 작가가 돼라”며 ‘유의어 사전’을 선물해주기도 했습니다. 그 배려와 관심이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저는 아직도 그 사전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두 분의 격려 덕분에 저는 작가의 꿈을 이어갈 수 있었고, 고등학교 시절엔 학교 신문사에서 일했습니다. 사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신문사에서 언론 관련 과목을 수강하지 않았다며 절 기자로 받을 수 없다고 했던 거죠.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저는 “기자가 될 수 없다면 신문 만평이라도 그리겠다”고 우겼습니다. 그리고 신문사에 들어간 이듬해 편집국장이 됐죠. 뉴욕대에 진학한 뒤엔 직접 문학잡지를 창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작가가 된 건 아닙니다. 저는 졸업 뒤 대학시절 만나 지금은 제 아내가 된 하이디와 함께 공장에 취업했습니다. 대졸자는 아무도 취업하지 않는 자동차 부품공장의 단순 기능공이었습니다. 하이디는 항공기 공장에서 일했죠. 소설 ‘분노의 포도’를 쓰기 위해 실제 포도농장에서 일했던 작가 존 스타인벡처럼 보통의 미국인이 살아가는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전 결코 잊을 수 없는, 지금도 제 삶의 가장 소중한 경험이 된 5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자동차와 비행기 엔진, 백열전구 등을 생산하는 일을 했는데, 주물공장의 송수관 속을 기어다니기도 하고, 착암기로 바위에 구멍을 뚫는 힘든 육체노동도 했습니다. 생산현장을 밑바닥부터 체험한 거죠. 실직의 설움을 겪은 적도 있습니다.
그 뒤 저는 노동조합에서 발행하는 잡지에 글을 쓰는 기자로 몇 년간 일하다 능력을 인정받았고, 용접산업 전문지의 기자를 거쳐 한 신문사의 정치담당 기자로 백악관과 의회를 취재하게 됐습니다. 그 덕분에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경험부터 가장 꼭대기의 정치구조를 들여다보기까지,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었죠. 이후 경제 전문지 ‘포천’의 편집장을 거쳐 지난 64년 ‘문화 소비자’를 펴내면서 비로소 전문 저술가로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70년 펴낸 ‘미래 쇼크’가 세계 50개국에서 7백만 부 이상 팔리면서 명성을 얻게 됐습니다. ‘제3의 물결’ (1980) ‘권력이동’(1991) ‘부의 미래’(2006) 등은 그 후 계속 펴낸 책들이죠. 제가 이런 경험을 말하는 것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창의적인 방법이 있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하고자 하는 굳은 의지만 있다면, 누구든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여러 책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뒤 전 노벨상 수상자부터 여성 죄수와 빈민굴에 사는 소년까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 경험은 제가 세계를 단편적인 지식이 아닌 큰 그림으로 보게 하는 데 도움을 줬죠. 그 과정에서, 전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대한 관찰과 분석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눈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꼬마 시절 작가를 꿈꾸던 한 소년이 여든을 바라보는 오늘까지 열심히 책을 쓰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활동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 사색과 독서 통해 통찰력과 미래 읽는 안목 얻어 그럼 이제는 미래에 대해 얘기해봅시다. 제가 ‘제3의 물결’에서 언급했던 ‘프로슈밍(PROSUMING·생산적인 소비활동)은 영어단어이지만 사전에는 없습니다. 생산하다(PROduce)와 소비하다(conSUME)라는 두 단어를 합쳐 제가 만든 단어이기 때문이죠. 저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배울 때 생산자와 소비자를 구분해서 배웠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두 가지 역할을 모두 담당하는 ‘생산적 소비자(prosumer)’가 존재합니다. 우리는 리눅스 OS(Operating System·운영체제)를 통해 이 사례를 알 수 있죠. 리눅스 OS는 원래 핀란드의 한 사람이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OS에 불만을 품고 자신이 사용하기 위해 개발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처럼 새로운 OS를 원하는 이들을 위해 이 프로그램을 무상으로 인터넷에 올렸는데, 수많은 사람이 이걸 다운받아 사용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최근엔 중국 정부가 중국 내 모든 정부기관은 반드시 리눅스 OS를 써야 한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생산은 반드시 이익창출을 위한 것이라는 기존의 경제논리를 따르지 않고 경제에 큰 영향을 주는 일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렇게 세상은 끝없이 변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시각으로 미래를 보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죠. 저는 신문에 칼럼을 쓸 때마다 ‘내일 아침이 아니라 10년 후에 이 글이 어떻게 읽힐까’를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직업을 선택할 때 10년 후 모습을 그려봐야 합니다. 그럼 미래의 직업을 고를 때 어떤 면에 주안점을 둬야 할까요. 저는 시간·공간·지식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래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이 세 가지 개념에 심층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래 사회를 눈앞에 둔 오늘날에도 이미 세상은 나노초(nanosecond·10억분의 1초) 단위로 변화하고 있고, 물리적 거리는 의미를 잃고 있으며, 지금 배운 지식이 미래에도 쓸모 있으리라는 보장조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시간·공간·지식은 물론 기존의 가치와 기준 및 경계가 모호해지는 사회에서 살기 위해서는 창의력과 유연성을 갖춰야 합니다. 미래 사회의 직업을 찾기 위해서도 필수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시간·공간·지식의 세 가지 기반 가운데서 먼저 시간을 살펴봅시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 사회의 변화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입니다. 그에 따라 오늘 존재하는 직업이 언제 없어질지 모르고, 새로운 직업이 끊임없이 탄생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직업을 갖고 평생 갈 수 없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살펴볼 것이 공간입니다. 2050년이 되면 세계인구의 절반, 세계경제의 40%, 세계 정보기술산업의 절반 이상이 아시아 지역에 집중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이 속한 아시아 지역의 성장과 발전에 주목하는 것이 좋습니다. 세 번째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지식입니다. 지식은 ‘미래 경제의 석유’라고 불릴 만큼 중요합니다. 지식은 쓰면 쓸수록 늘어나는 것으로, 요즘 전 세계적으로 1년에 생산되는 지식의 양은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량 기준으로 이런 도서관 1백만 채가 보유하고 있는 도서에 담긴 내용과 같을 정도로 엄청납니다. 물론 이런 지식 가운데는 틀린 것도 있고 심지어 ‘쓰레기 같은 지식’도 있죠. 그러므로 미래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항상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려는 자세를 갖고, 제대로 된 지식을 골라내는 혜안을 가져야 합니다. 그럼 이렇게 미래를 내다보려면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요. 제 경험을 예로 들면, 꾸준히 사색하고 독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거의 책벌레라고 할 만큼 항상 책을 읽습니다. 면도를 할 때도 옆에 책을 둘 정도죠. 제가 이처럼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연구한 것을 짧은 시간 안에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저는 신문중독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신문은 세상의 새로운 소식을 가득 담고 있어 늘 제 호기심을 자극하니까요. 지금도 매일 아침마다 전 세계에서 날아오는 7개의 신문을 손끝이 새까매지도록 꼼꼼히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일본의 요미우리신문도 영어판으로 읽고 있죠.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 탐구와 호기심, 사색과 독서, 그리고 관찰과 분석을 통해 저는 차츰 이 세상에 대한 통찰력과 미래를 읽는 안목을 얻게 됐습니다. “긍정적인 자세로 미래에 도전하세요” 이제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하나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이자 청각장애인이었던 헬렌 켈러의 말입니다. “비관론자가 우주의 비밀을 풀거나, 해도에 없는 지역을 항해하거나, 인간의 정신세계에 새로운 지평을 연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했던 명장이자 미국의 제34대 대통령이던 아이젠하워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관론자는 어떤 전투에서도 승리하지 못했다.” 현재 많은 사람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고, 영화나 소설 등에서 그려지는 미래 사회도 대부분 어두운 얘기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결코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지 말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창조성은 심각한 위기의 순간에 오히려 가장 큰 능력을 발휘하니까요. 또 새로운 부 창출 시스템과 문명은 앞으로 수십억의 인류가 더 부유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열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여러분은 시간이라는 가장 큰 자산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꿈꾸고, 설계하고, 준비할 시간 말입니다. 이 자산을 잘 관리하면서 지금부터 미래에 대비할 폭넓은 지식을 키워가기 바랍니다. ※ 앨빈 토플러 박사는요 1928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뉴욕대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뒤 공장 노동자로 취업해 현 장의 삶을 체험하고, 이후 신문기자로 일하며 저널리스트의 길을 걸었다. 1964년 ‘문화소비자’로 저술 활동을 시작한 뒤 ‘미래 쇼크’ ‘제3의 물결’ ‘권력이동’ 등 미래 관련 서적을 잇달아 펴내며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미래학자로 명성을 얻었다. 과학·문학·법학 등 다섯 개 분야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부인 하이디 여사와 함께 세계를 돌아다니며 경제와 기술의 발전, 사회변화 등에 대한 강연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여성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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