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3일 일요일

제시문 2개를 비교할 때는 ‘항목화’하라

2개의 제시문을 비교하는 문제를 풀어보자. 문제>
제시문 (나)와 제시문 (다)의 견해를 비교하시오.<고려대 2009학년도 모의논술 변형 500자 정도>

(나)
학문 연구에는 얼마나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허위의 길이 숨어 있는가.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오류를 거쳐야 하는가. 그 오류는 진리가 유익한 것보다 천 배는 더 위험하다. 그러니 학문 연구가 불리하다는 점은 불을 보듯 뻔하다. 왜냐하면 오류는 수많은 조합으로 이루어지지만, 진리에는 오로지 한 가지 존재 양식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리를 정말 진지하게 탐구할 사람이 있는가. 설령 최선을 다 하여 탐구한들 어떤 표지를 통해 진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가. 숱하게 다른 의견들 가운데 진리를 제대로 판단하기 위한 기준은 무엇인가. 가장 어려운 것은, 요행으로 우리가 막판에 그 진리를 찾아낸다 한들 누가 그것을 유익하게 사용할 줄 알 것인가.

학문은 그것이 계획하는 목적을 볼 때 무용한 것이지만, 그보다는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결과로 말미암아 훨씬 더 위험하다. 학문은 무위도식에서 태어나 무위도식을 먹여 살린다. 그리하여 만회할 수 없는 시간 손실은 학문이 사회에 필연적으로 야기하는 첫 번째 폐해이다. 도덕에서건 정치에서건 선행을 하지 않는 것은 큰 악이다. 그러므로 쓸모없는 시민은 모두 해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저명한 철학자들이여, 당신들이 연구한 결과물들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 보시라. 학자들과 가장 훌륭한 시민들의 혁혁한 업적조차 우리에게 거의 유익함을 주지 못하는데 국가의 재산을 무익하게 축내는 저 이름 없는 작가들과 무위도식하는 먹물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말해 보시라.

내가 ‘무위도식’이라는 말을 썼던가. 차라리 그들이 무위도식에 그치면 좋으련만! 그러면 그들의 품행은 오히려 더 건전해질 것이고, 사회는 더 평화로워질텐데. 그런데 쓸모없이 미사여구만 늘어놓는 그들은 해로운 역설로 무장하고 사방으로 내닫는다.

신앙의 토대를 흔들어대며 미덕을 파괴하는 그들은 조국이나 종교 같은 오래된 말들을 조소하며, 인간들 사이에 신성한 것으로 남아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모독하는 일에 자신들의 재능과 철학을 바친다.

(다)
갈릴레이 네게 보여 줄 게 있다. 관측의(觀測儀) 뒤를 보렴.(안드레아가 관측의 뒤에서 거대한 목제 프톨레마이오스 천구의(天球儀)를 끌어낸다.)

안드레아 이게 뭐죠?
갈릴레이 천구의다. 그 장치는 천체들이 어떻게 지구 둘레를 도는지 보여준다. 옛날 사람들 생각으로 그렇다는 거야.
안드레아 어떻게 도는데요?
갈릴레이 그걸 조사해 보자. 우선 첫 번째로 할 일은 구조 설명이다.
안드레아 한가운데에 작은 돌멩이가 있네요.
갈릴레이 그게 지구다.
안드레아 그 둘레 여기저기에, 계속 겹쳐지면서, 테가 있어요.
갈릴레이 몇 개나 되지?
안드레아 여덟 개요.
갈릴레이 그건 수정 천구들이다.
안드레아 테 위에 둥근 덩어리들을 붙여 놨어요.
갈릴레이 천체들이지.
안드레아 여기 띠가 있고, 글자가 그려져 있는데요.
갈릴레이 무슨 글자?
안드레아 별들 이름이요.
갈릴레이 어떤 별?
안드레아 제일 밑에 있는 덩어리는, 달이라고 적혀 있어요. 그리고 그 위에 해가 있고요.
갈릴레이 이제 해를 움직여 봐라.
안드레아 (테들을 움직이며) 이거 멋진데요. 하지만 우리는 완전히 갇혀 있네요.
갈릴레이 그래, 그 물건을 처음 봤을 때 나도 그렇게 느꼈다.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 몇 있지. 담장에 막히고 테에 둘러싸여 꼼짝 못하는 꼴이라니! 이천 년 동안 내내 인류는 태양과 하늘의 모든 천체들이 자신의 주변을 돈다고 믿었단다. 교황과 추기경, 제후, 학자, 선 장, 장사꾼, 생선 장수 아낙네, 학생들이 한결같이 그 수정으로 된 구체 속에 꼼짝 못하고 앉아 있다고 생각한 거야.

하지만, 안드레아, 이제 우리는 여기를 떨치고 나가 멀리 여행을 떠나는 거다. 옛 시대는 끝나고 이제 새로운 시대가 왔으니까. 백 년 전부터 인류는 무엇 인가 기다려 온 것 같다. 도시들은 비좁고, 그래서 머리도 그렇다. 미신과 흑사병을 봐라. 그러나 이제는 다르지. 지금 사정이야 어떻든, 계속 그렇지는 않아. 모든 것이 움직이기 때 문이다.

꼬마 친구, 나는 그게 꼭 바다의 배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먼 옛날부터 배들은 해안을 따라서만 기어 다녔는데, 그런데 갑자기 해안을 떠나 온갖 바다로 달려 나갔거든. 우리의 옛 대륙에 소문이 퍼졌단다. 새 대륙들이 있다는 거였어. 그래서 우리 배들이 거기 로 항해하게 된 다음부터, 미소 짓는 새 대륙에서는 이런 말이 돌고 있지. ‘그 무섭던 큰 바다가 실제로는 그저 조그만 물길이구먼.’ 또한 모든 사물의 원인을 찾아내려는 관심이 크게 일어났다.

돌멩이를 손에서 놓으면 왜 아래로 떨어지는지, 또 그걸 높이 던지면 어떻게 올라가는지, 그렇게 매일 무엇인가 발견되고 있어. 백 살 먹은 노인네들까지도 무슨 새로 운 것이 발견됐는지 귀에 대고 소리쳐 달라고 젊은이에게 부탁할 정도야. 지금 벌써 많은 것이 발견됐지만, 아직 발견될 것이 더 많다.

그래서 새 세대들이 할 일이 또 있게 되지. 나는 젊었을 때, 시에나에서 공사장 인부 몇 사람이 화강암 덩어리를 움직이는 것을 본 적 이 있다. 밧줄을 용도에 더 잘 맞게 새로 얽었는데, 그렇게 해서 천 년 묵은 과거의 관습 을 바꾸더구나. 단 오 분 동안 토론을 벌인 끝에 그랬어.

그때, 그리고 그 다음부터 나는 옛 시대가 끝나고 새 시대가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머지않아 인류는 자신들의 거주지, 그러니까 자기들이 살고 있는 천체에 관해 정확히 알게 될 게다.

풀이>이 문제는 원래 “제시문 (나)와 제시문 (다)의 견해를 비교하고, 제시문들을 참고하여 학문의 진보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50점. 1000자)”라는 문제다. 그런데 2011년 고려대학교 논술고사부터 앞 부분의 ‘비교’와 뒷부분의 ‘견해 논술’이 분리돼 출제됐다.

이렇게 하나의 문제가 둘로 분리돼 출제된 것은, 원 문제를 풀 때 학생들이 견해를 비교하는 부분을 소홀히 한 채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기 때문에 답안이 출제의도를 철저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이 문제는 두 제시문의 견해를 비교하는 문단, 자신의 견해를 쓰는 문단 등 2개 문단으로 나누어서 답안을 쓰면 되는 문제다. 따라서 이 문제의 앞 부분, 즉 ‘분석’하는 과제를 분리해서 수행하는 것은 매우 훌륭한 논술 공부가 된다.

이 문제를 풀 때도,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항목화’가 중요하다. 그런데 제시문 [나]는 체계가 있고 정리된 글인 반면 [다]는 좀 어지럽게 대화가 오고가는 글이므로 제시문 [나]를 기준으로 항목화를 먼저 해보는 게 [다]를 기준으로 항목화하는 것보다 더 쉬운 작업이 되겠다.

제시문 [나]를 살펴보면, 4개의 문단으로 구성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중 첫번째 문단은 “학문 연구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목표에 도달하기 우해서는 많은 오류를 거쳐야 하고, 진리를 찾아내도 그걸 사용하기 어렵다”는 내용이다. 이를 학문의 ‘필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두번째 문단은 “학문이 시간 손실을 가져온다”, 세번째 문단은 “학문이 유익함을 주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이 두개 문단을 ‘학문의 효용’에 대해서 말했다고 정리할 수 있다. 네번째 문단은 “학문이 신앙의 영역까지 침범해서 신성한 것을 파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문단은 ‘학문의 영역’ 혹은 ‘학문의 한계’에 대한 언급이라고 정리된다. 이렇게 정리하면 제시문 [나]는 학문의 필요성, 학문의 효용, 학문의 한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두 제시문을 비교함에 있어서 이렇게 3개의 항목을 기준으로 비교하면 명확한 비교가 될 것이다.

그러면 각 항목에 대해서 하나하나 따져보자. 첫번째 항목에 대해서, [나]는 “학문이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다]는 “학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두번째 항목에 대해서, [나]는 “학문이 시간 손실만을 가져오며 아무런 효용이 없다”고 주장한다. [다]는 “학문이 인류에게 큰 효용을 가져다 준다”고 주장한다.

세번째 항목에 대해서 [나]는 “학문이 신앙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서 [다]가 무엇이라고 주장하는지에 대해서 학생들은 좀 어려움을 겪는다. [나]와 [다]를 대조되게 정리해야 할 텐데 어떻게 대조되는지 정리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우선, [다]가 신앙의 영역을 언급하고 있는지 알아채는 것이 어렵다. [다] 제시문에 나타난 ‘천구의’ ‘교황과 추기경’ 같은 말은 신앙의 영역을 말하고 있다.

둘째, 제시문들이 ‘당위’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한다. [나]는 “학문이 신앙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하는데, ‘침범’이라는 단어에는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당위’의 차원의 의미가 있다. 이런 차원에서라면 [나]와 [다]가 극명하게 대조된다.

[나]는 “학문이 신앙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고 자기 영역 내에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는 “학문이 자기 영역을 확장해서 미신을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제시문이 갈릴레이가 중세의 우주관인 천동설에 대해 반박하는 내용임을 인식한다면 이와 같은 대조는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비교’하는 문제다. 논술에서 ‘비교’란 공통점을 말하고 다음에 차이점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개의 제시문은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을까? 겉으로 보면 각 항목마다 모두 의견이 충돌하고 있으므로 공통점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두 제시문은 모두 ‘학문’에 대해서 논한다는 ‘주제’ 상의 공통점이 있다. 학문의 필요성, 효용, 한계 등에 대해서 두 제시문이 논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공통점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글의 앞 부분에 이 사실을 적시한다면 글의 서론으로 적당하다.

이렇게 분석을 한다면 다음과 같은 예시답안을 쓸 수 있겠다.
예시답안>제시문 [나]와 [다]는 학문의 필요성과 효용, 그리고 학문의 한계 등을 놓고 서로 대립한다. 제시문 [나]는 진리에 도달하려면 수많은 오류를 거쳐야 하며 그 오류는 학문이 유익한 것보다 훨씬 위험하므로 학문 연구는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다]는 학문이 많은 진실을 깨닫게 해 주므로 인류에게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나]는 또 진리를 진지하게 탐구할 사람도 없고 진리를 찾았다고 해도 진리임을 확신할 수도 없으며 진리를 유익하게 사용할 수도 없으므로 학문 연구는 시간 손실만을 가져오는 무용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는 2000년 동안 천동설을 믿던 인류가 진리를 발견하는 성과를 내고 있으며 학문의 효용은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나]는 또한 학문이 ‘신앙’이나 ‘조국’ 등 신성한 모든 것을 파괴하는데 이는 잘못된 일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다]는 천동설처럼 종교에 의해서 왜곡된 이론을 학문이 바로잡고 있다며 학문의 영역이 앞으로 더욱 넓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513자)
비평>참고로 대학측에서 발표한 학생 우수답안을 보자.
[우수답안의 사례]제시문 (나)와 제시문 (다)는 학문의 진보에 대한 상반된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제시문 (나)는 학문의 연구가 사회를 진보적인 방향으로 이끌기보다는 학문 연구의 결과물들이 사회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학문의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많은 위험과 오류를 감수해야 하며 여러 다른 의견들 가운데 참된 진리를 선별할 수 있는 선명한 척도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진리를 찾아내더라도 그것을 유익하게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비해 제시문 (다)에서는 학문의 진보적 발견이 인류에게 매우 긍정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학문이 진보하여 지동설이 발견되자 이천 년 동안 천동설을 굳게 믿고 있었던 인류에게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다.

제시문에서는 학문의 진보에의 욕구가 신항로 개척을 계기로 확산되었으며 그 이후 여러 과학적 발전은 결과적으로 인류가 더 유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기여했다.(455자)
이 부분에 대해서 대학측은 “학문 연구에 부정적인 관점을 보여주는 제시문 (나)의 요지와 긍정적인 관점을 보여주는 제시문 (다)의 견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또한 글의 서두에 두 제시문의 관점을 간단명료하게 비교 제시한 방법, 즉 두괄식 구성을 선택한 점도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비교해도 비교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학생 예시답안은 항목을 나누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학문이 인류에게 유용한가 그렇지 않은가”에만 집중하게 됐고 이에 따라 ‘학문의 한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이는 두 제시문이 다투고 있는 쟁점 중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놓친 결과가 된다. 이렇게 쟁점을 놓치면 비교 분석 이후에 자신의 견해를 논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하나의 중요한 결격 사유가 생기게 된다.

제시문 [나]와 [다]를 비교하고 자신의 견해를 제시할 때, 양측이 주장하는 옳은 부분을 모두 다 따올 수 있으면 어느 주장에도 치우치지 않는 종합적인 자신의 견해를 형성할 수 있다. 그럴 때 비교적 설득력이 모자란 [나]의 견해 중에 의미있는 부분을 언급할 수 있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나]의 견해 중에 “학문이 종교의 영역을 침해하면 안 된다”는 부분은 유일하게 설득력이 있는 부분이랄 수 있겠다. “인간이 학문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계속돼야 하지만, 그러나 인간이 모든 것을 이성으로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고 ‘신앙’의 영역은 영원히 인간에게 중요한 영역으로 남을 것이다”라는 주장을 [나]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다.

이런 주장을 담아야 제시문 [나]의 존재 이유가 있게 된다. 학생 답안의 전문을 보면 [나]의 견해는 하나도 채택하고 있지 않은데, 이렇게 되면 이 문제가 [다]만 제시문으로 주고 “이 견해에 찬성하는 논술문을 작성하라”라고 한 것과 마찬가지의 문제가 되고 만다.

위의 우수 학생 예시답안을 보면, 지금까지 ‘비교 분석’ 문제를 수행함에 있어서 수험생이 ‘항목화’를 한 경우는 거의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앞으로 이런 경우에 ‘항목화’를 할 수 있다면 분석적이고 정밀한 비교를 할 수 있을 것이고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더욱 다양한 내용을 담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다른 답안과 차별화되는 답안, 채점관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는 답안이 될 것이다.
조선일보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