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1-2] 제시문 (나)와 (다)에서 ‘제약적 비전’과 ‘무제약적 비전’의 차이점을 기술하시오. 글의 분량은 띄어쓰기를 포함하여 500(±50자)로 할 것.(30점)
(나)
먼저 제약적 비전에 대해 알아보자. 아담 스미스는 제약적 비전의 본질을 구체화할 수 있도록 인간의 본성에 대해 묘사했다. 경제학자로 유명해지기 거의 20년 전인 1759년, 스미스는 철학자로서 ‘도덕적 감정에 대한 이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진으로 거대한 중국 제국이 모든 주민과 함께 갑자기 사라져버렸다고 가정하고 중국과 전혀 관련이 없는 유렵의 인간성 좋은 사람이 이 끔직한 재난에 대한 소식을 듣고 어떻게 반응할지 생각해 보기로 하자.
나는 우선 그가 불행한 중국인들의 재난에 아주 강한 슬픔을 표현하고 삶의 불확실성에 대해 매우 우울한 생각들을 하게 될 것이며 한순간에 사라져버릴 수 있는 인간의 모든 노고의 허망함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리라 상상한다.
또한 그가 이론적인 사람이라면 중국의 재난이 유럽의 통상 및 일반적인 세계 무역의 사업에 미칠 영향과 관련해 많은 것을 논리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고상한 철학을 끝내고 인도주의적인 감정들을 일단 그럴 듯하게 표현하고 나면 마치 그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었다는 듯이 편안하게 자기 일을 시작하거나 쾌락을 추구하고 혹은 휴식을 취하거나 기분 전환을 하려 할 것이다.
자신에게 일어난 가장 사소한 재난이 더 현실적인 불편을 가져다준다. 만일 내일 자기의 새끼손가락을 잃게 된다면 그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다시 보게 되지 않는다면 수백만 동료 인간의 파멸에 대해서는 아주 편안한 마음을 잠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스미스는 인간의 본성이 도덕적 한계와 자기중심주의 성향을 지니고 있음에 대해 슬퍼하지 않았고 인간의 그런 본성이 변해야 한다고 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인간의 도덕적 한계와 자기중심주의 성향이 스미스의 비전에서는 삶의 고유한 사실로 다루어졌다.
위의 예에서 어떤 유럽인이 중국인들의 고통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해도, 스미스에 따르면, 그 유럽인의 그런 감정은 중국인들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으며 단지 그렇게 느끼는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 뿐이고, 결과적으로 그가 느끼는 고통은 전혀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리하여 스미스는 “우리 인간의 본성은 우리 자신의 슬픔을 스스로 감당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본성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슬픔을 줄여 줄 수 있는 정도의 자극 이상으로 다른 사람들의 슬픔에 동참할 것을 명령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스미스의 이러한 인간 본성에 대한 견해는 사회 변화에 대한 견해로 이어졌다. 그는 인간 사회의 바람직한 더 나은 상황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인간의 본성이 변화될 수 있다고 보고 그 본성을 어떤 상태로 변화시키려고 하기보다는, 인간의 본성은 놓아두고 사회적, 도덕적 제약 안에서 바람직한 도덕과 사회 이익이 가장 잘 효과적으로 산출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데에 힘을 쏟았다.
스미스의 비전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키기 위해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는 사회적, 도덕적 제약 내에 존재하는 가능성을 잘 이용할 때 사회와 도덕의 근본적인 변화는 가능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스미스는 “인간이 행동할 때 자신의 자연스럽고 본질적인 감정을 따르는 성향이 있지만, 그렇다고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보다 아주 파렴치하고 맹목적으로 더 좋아할 수는 없다.”는 점을 빼놓지 않았다.
물론 스미스는 실제로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타인의 더 큰 이익을 위해 자신들의 이익을 희생하는 경향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서라기보다는 자기 이미지나 내적 욕구를 위해서라고 보았다.
스미스에게 자기 이미지나 내적 욕구 같은 개념들은 가장 저렴한 심리적 비용을 들여 효율적으로 도덕적 임무를 수행하게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인 셈이다. 이는 인간을 변화시키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기보다는 일련의 ‘균형’을 꾀하는 도덕적 인센티브 체계라 할 수 있다.
즉 스미스는 인간 본성의 차원에서 직접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고, 일종의 경제적 차원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고자 한 것이다. 스미스에 따르면, 경제적인 이익이라는 것은 대개 경쟁의 압력과 개인적 이익이라는 인센티브가 지배하는 시장을 통해 나타난다.
(다)
한편 18세기 책들 중에서 윌리엄 고드윈의 <정치적 정의에 관한 고찰>만큼이나 아담 스미스의 인간간과 극명한 대조를 보이는 책도 없다. 고드윈의 견해만큼 분명하고 지속적이며 체계적으로 인간에 대한 무제약적 비전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은 없다.
고드윈은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가 미덕의 실체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으며, 그 미덕이 인간을 행복에 이르게 하는 길이라고 했다. 즉 고드윈은 인간의 오성과 기질로 사회에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고드윈의 인간관은 인간이 행동하고 있는 현재 시점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었다. 그의 인간관은 인간의 잠재력에 인간을 두어 인간을 바라보았다. 고드윈의 비전에 따르면 인간은 타인의 필요를 자신의 것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보는 능력이 있으며, 따라서 자신이나 가족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을 때조차도 일관되고 공평하게 행동할 수 있는 존재다.
물론 고드윈이, 현재에 자기중심적 행동을 보이는 인간의 모습 그 자체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는 그런 자기중심적 성향이 인간의 불변적인 본성은 아니라고 보았다.
즉 인간은 타인의 보다 큰 이익보다 자신의 보다 작은 이익을 우선시할 수 있는데, 이러한 자기 이익에 대한 편애는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데서 나온 것이지, 그것이 인간의 불변하는 본성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에게 인간의 본성이란 “바뀌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만들어져야 할 것”이 된다.
고드윈은 사회적으로 고안된 인센티브를 무가치하고 불필요한 임기응변적 조치라고 경멸했다. 그는 인센티브에 의해서 인간의 이기심에 의한 부정적인 측면이 약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이기심이 더욱 조장되어 문제가 커진다고 보았다.
어느 쪽으로 노력해야 하는가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은, 사람들이 심리적 혹은 경제적 보상 차원에서 옳은 일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옳은 일이기 때문에 그 옳은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인간의 도덕적 잠재력에 대해 무제약적 비전을 갖고 있는 고드윈은 사물의 현재 상태에서 가장 즉각적인 효과가 있는 것에 몰두하지 않았다. 진짜 목적은 더 고차원적인 사회적 의무감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개발이었다.
곧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인센티브가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훨씬 고차원적인 사회적 의무감에 대한 개발을 늦추는 것이니, 그만큼 인센티브의 이점이라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고드윈의 비전에서 “보상에 대한 기대와 처벌에 대한 두려움은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이며 정신을 개선시키는 데 해가 된다.”
- 제시문 (가), (나), (다)의 출처 : 토머스 소웰,『비전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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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분석은 자신의 언어와 시각으로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제시문 (나)와 (다)에서 ‘제약적 비전’과 ‘무제약적 비전’의 차이점을 기술하라고 한다. 이는 단순히 제시문을 요약하라는 것이 아니라 분석하라는 문제이다.
분석은 요약과는 다르다. 요약은 제시문이 사용한 핵심 개념과 제시문이 사용한 논리를 그대로 살려서 줄이는 것이다. 간혹 자신의 언어를 동원할 수도 있지만, 그럴 때는 제시문의 언어와 논리를 훼손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 반면에 분석은 자신의 언어와 자신의 시각으로 하는 것이다.
분석형 문제 중 대표적인 것은 ‘비교하라’는 문제다. 논술에서 ‘비교하라’는 것은 통상 공통점과 차이점을 말하는 것이다. 이때, 먼저 공통점을 쓰고 다음에 차이점을 쓰게 된다. 어떤 두 글을 비교하는 것은 두 글이 공통점을 갖고 있으니까 비교가 가능한 것이다.
예컨대 한 제시문은 ‘비전’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데 다른 제시문은 ‘된장찌개 끓이는 법’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면 이 두 글의 비교는 의미가 없다.
이 문제는 ‘비교하라’고 하지 않고 ‘차이점을 기술하라’고 하고 있지만, 차이점을 기술하는 것은 공통점이 존재하므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두 제시문은 공통적으로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변화’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으며 “현실에서의 인간의 본성이 이기심에 바탕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공통점을 인식하고, 차이점을 쓰기 전에 간략히 공통점을 쓰는 것도 글의 통일성을 위해서 나쁘지는 않다.
다음에는 차이점을 써야 한다. 이 부분이 문제가 요구하는 핵심 부분이다. 그렇다면 차이점을 어떻게 써야 할까?
보통 학생들은 제시문 (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반면, 제시문 (다)는 저렇게 말한다는 구조로 쓴다. 제시문이 2개 이므로 2개의 문단으로 쓰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쓰면 단순히 제시문 (나)를 요약한 다음 제시문 (다)를 요약한 결과가 된다. 이렇게 하면 이는 분석이 아니어서, 두 제시문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다.
두 제시문을 비교할 때는 ‘항목화’하라‘분석하라’는 문제에 답함에 있어, 단순 요약이 되지 않고 차이점을 잘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는 항목화를 할 필요가 있다. 제시문들이 무슨 주장을 하는지를 여러 측면으로 나누어서 생각하라는 것이다. ‘분석’이란 ‘나누어서 해석함’이다.
예컨대 “(나)는 A, B, C의 항목에 대해서 a와 b, c라고 주장하는 반면 (다)는 a', b', c'라고 주장한다”라고 쓰는 것보다는 “A 항목에 대하여 (나)는 a를 주장하는 반면 (다)는 a'를 주장한다”, 또 “B항목에 대하여 (나)는 b를 주장하는 반면 (다)는 b'를 주장한다.” “C항목ㅇ 대하여 (나)는 c를 주장하는 반면 (다)는 c'를 주장한다” 식으로 요약하는 것이 독자가 차이점을 잘 알 수 있게 비교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시문이 다루고 있는 주제를 여러 항목으로 나누는 것, 즉 ‘항목화’가 중요함을 알 수 있다.
항목화를 할 때는 2개의 제시문 중에서 이론적으로 잘 정리된 제시문을 갖고 항목화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 문제의 경우는, 제시문 (나)와 (다) 모두 이론적으로 잘 정리돼 있기 때문에 어느 제시문으로부터 항목화를 해도 좋지만, 제시문 (다)가 제시문 (나)를 반박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제시문 (나)를 먼저 읽어서 항목화하는 것이 옳은 문제 풀이 순서가 되겠다.
제시문 (나)는 3개의 문단으로 나뉘는데, 각 문단이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지 그렇지 않은지”,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인센티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논하고 있으므로 이 항목들을 갖고 두 제시문을 비교할 수 있겠다. 제시문 (다)를 보면, “인간에게 사회적 의무감이 필요하며 개발해야 하는지”의 항목을 추가할 수도 있겠다.
이런 작업을 거친다면 다음과 같은 예시답안을 쓸 수 있겠다.
예시답안 1>제약적 비전이나 무제약적 비전 모두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총체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또 두 비전은 모두 “현실에서의 인간의 본성이 이기심에 바탕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변화’, 그리고 인센티브 등의 항목에 대하여 제약적 비전과 무제약적 비전은 대립한다.
우선 제약적 비전은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며 이는 변화시킬 수 없고 변화시키려고 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반면에 무제약적 비전은 현실에서의 인간 본성이 이기적인 것으로 나타난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인간의 진짜 본성은 이타심이라고 주장한다.
사회를 변화시킴에 있어서, 제약적 비전은 현실에서 나타나는 이기적인 인간 본성을 고정된 것으로 보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보는 반면, 무제약적 비전은 사회 변화를 위해서는 이기적인 인간 본성을 이타적인 것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본다.
또 제약적 비전은 인센티브, 즉 보상에 대한 기대와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사회를 최적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보는 반면, 무제약적 비전은 인센티브를 인간의 정신을 개선시키는 데 해가 되는 것으로 본다.
제약적 비전은 인간의 본성을 넘어서는 과도한 도덕 감정은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반면 무제약적 비전은 고차원적인 사회적 의무감이 필요하며 이를 장기적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본다.(680자)
이렇게 쓰면 글자 수가 넘친다. 따라서 문제가 요구하는 대로 ‘차이점’에만 초점을 맞추고, 마지막 문단을 ‘인간 본성’과 관련한 문단과 합쳐서 다음과 같이 줄일 수 있겠다.
예시답안2>제약적 비전과 무제약적 비전은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변화’, 그리고 인센티브 등의 항목에 대하여 서로 대립한다.
우선 제약적 비전은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며, 이는 자연스러운 것이다"라고 본다. 반면에 무제약적 비전은 "현실에서의 인간 본성이 이기적인 것으로 나타나지만, 인간의 진짜 본성은 이타적"이라고 주장한다.
사회를 변화시킴에 있어서, 제약적 비전은 이기적인 인간 본성을 고정된 것으로 보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본다. 인간의 본성을 넘어서는 과도한 도덕 감정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무제약적 비전은 “사회 변화를 위해서는 고차원적인 사회적 의무감이 필요하며, 따라서 이기적인 인간 본성을 이타적인 것으로 개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 제약적 비전은 인센티브, 즉 보상에 대한 기대와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사회를 최적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보는 반면, 무제약적 비전은 인센티브를 인간의 정신을 개선시키는 데 해가 되는 것으로 본다. (516자)
조선일보
먼저 제약적 비전에 대해 알아보자. 아담 스미스는 제약적 비전의 본질을 구체화할 수 있도록 인간의 본성에 대해 묘사했다. 경제학자로 유명해지기 거의 20년 전인 1759년, 스미스는 철학자로서 ‘도덕적 감정에 대한 이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진으로 거대한 중국 제국이 모든 주민과 함께 갑자기 사라져버렸다고 가정하고 중국과 전혀 관련이 없는 유렵의 인간성 좋은 사람이 이 끔직한 재난에 대한 소식을 듣고 어떻게 반응할지 생각해 보기로 하자.
나는 우선 그가 불행한 중국인들의 재난에 아주 강한 슬픔을 표현하고 삶의 불확실성에 대해 매우 우울한 생각들을 하게 될 것이며 한순간에 사라져버릴 수 있는 인간의 모든 노고의 허망함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리라 상상한다.
또한 그가 이론적인 사람이라면 중국의 재난이 유럽의 통상 및 일반적인 세계 무역의 사업에 미칠 영향과 관련해 많은 것을 논리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고상한 철학을 끝내고 인도주의적인 감정들을 일단 그럴 듯하게 표현하고 나면 마치 그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었다는 듯이 편안하게 자기 일을 시작하거나 쾌락을 추구하고 혹은 휴식을 취하거나 기분 전환을 하려 할 것이다.
자신에게 일어난 가장 사소한 재난이 더 현실적인 불편을 가져다준다. 만일 내일 자기의 새끼손가락을 잃게 된다면 그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다시 보게 되지 않는다면 수백만 동료 인간의 파멸에 대해서는 아주 편안한 마음을 잠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스미스는 인간의 본성이 도덕적 한계와 자기중심주의 성향을 지니고 있음에 대해 슬퍼하지 않았고 인간의 그런 본성이 변해야 한다고 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인간의 도덕적 한계와 자기중심주의 성향이 스미스의 비전에서는 삶의 고유한 사실로 다루어졌다.
위의 예에서 어떤 유럽인이 중국인들의 고통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해도, 스미스에 따르면, 그 유럽인의 그런 감정은 중국인들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으며 단지 그렇게 느끼는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 뿐이고, 결과적으로 그가 느끼는 고통은 전혀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리하여 스미스는 “우리 인간의 본성은 우리 자신의 슬픔을 스스로 감당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본성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슬픔을 줄여 줄 수 있는 정도의 자극 이상으로 다른 사람들의 슬픔에 동참할 것을 명령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스미스의 이러한 인간 본성에 대한 견해는 사회 변화에 대한 견해로 이어졌다. 그는 인간 사회의 바람직한 더 나은 상황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인간의 본성이 변화될 수 있다고 보고 그 본성을 어떤 상태로 변화시키려고 하기보다는, 인간의 본성은 놓아두고 사회적, 도덕적 제약 안에서 바람직한 도덕과 사회 이익이 가장 잘 효과적으로 산출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데에 힘을 쏟았다.
스미스의 비전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키기 위해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는 사회적, 도덕적 제약 내에 존재하는 가능성을 잘 이용할 때 사회와 도덕의 근본적인 변화는 가능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스미스는 “인간이 행동할 때 자신의 자연스럽고 본질적인 감정을 따르는 성향이 있지만, 그렇다고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보다 아주 파렴치하고 맹목적으로 더 좋아할 수는 없다.”는 점을 빼놓지 않았다.
물론 스미스는 실제로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타인의 더 큰 이익을 위해 자신들의 이익을 희생하는 경향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서라기보다는 자기 이미지나 내적 욕구를 위해서라고 보았다.
스미스에게 자기 이미지나 내적 욕구 같은 개념들은 가장 저렴한 심리적 비용을 들여 효율적으로 도덕적 임무를 수행하게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인 셈이다. 이는 인간을 변화시키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기보다는 일련의 ‘균형’을 꾀하는 도덕적 인센티브 체계라 할 수 있다.
즉 스미스는 인간 본성의 차원에서 직접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고, 일종의 경제적 차원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고자 한 것이다. 스미스에 따르면, 경제적인 이익이라는 것은 대개 경쟁의 압력과 개인적 이익이라는 인센티브가 지배하는 시장을 통해 나타난다.
(다)
한편 18세기 책들 중에서 윌리엄 고드윈의 <정치적 정의에 관한 고찰>만큼이나 아담 스미스의 인간간과 극명한 대조를 보이는 책도 없다. 고드윈의 견해만큼 분명하고 지속적이며 체계적으로 인간에 대한 무제약적 비전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은 없다.
고드윈은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가 미덕의 실체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으며, 그 미덕이 인간을 행복에 이르게 하는 길이라고 했다. 즉 고드윈은 인간의 오성과 기질로 사회에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고드윈의 인간관은 인간이 행동하고 있는 현재 시점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었다. 그의 인간관은 인간의 잠재력에 인간을 두어 인간을 바라보았다. 고드윈의 비전에 따르면 인간은 타인의 필요를 자신의 것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보는 능력이 있으며, 따라서 자신이나 가족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을 때조차도 일관되고 공평하게 행동할 수 있는 존재다.
물론 고드윈이, 현재에 자기중심적 행동을 보이는 인간의 모습 그 자체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는 그런 자기중심적 성향이 인간의 불변적인 본성은 아니라고 보았다.
즉 인간은 타인의 보다 큰 이익보다 자신의 보다 작은 이익을 우선시할 수 있는데, 이러한 자기 이익에 대한 편애는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데서 나온 것이지, 그것이 인간의 불변하는 본성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에게 인간의 본성이란 “바뀌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만들어져야 할 것”이 된다.
고드윈은 사회적으로 고안된 인센티브를 무가치하고 불필요한 임기응변적 조치라고 경멸했다. 그는 인센티브에 의해서 인간의 이기심에 의한 부정적인 측면이 약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이기심이 더욱 조장되어 문제가 커진다고 보았다.
어느 쪽으로 노력해야 하는가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은, 사람들이 심리적 혹은 경제적 보상 차원에서 옳은 일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옳은 일이기 때문에 그 옳은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인간의 도덕적 잠재력에 대해 무제약적 비전을 갖고 있는 고드윈은 사물의 현재 상태에서 가장 즉각적인 효과가 있는 것에 몰두하지 않았다. 진짜 목적은 더 고차원적인 사회적 의무감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개발이었다.
곧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인센티브가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훨씬 고차원적인 사회적 의무감에 대한 개발을 늦추는 것이니, 그만큼 인센티브의 이점이라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고드윈의 비전에서 “보상에 대한 기대와 처벌에 대한 두려움은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이며 정신을 개선시키는 데 해가 된다.”
- 제시문 (가), (나), (다)의 출처 : 토머스 소웰,『비전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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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분석은 자신의 언어와 시각으로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제시문 (나)와 (다)에서 ‘제약적 비전’과 ‘무제약적 비전’의 차이점을 기술하라고 한다. 이는 단순히 제시문을 요약하라는 것이 아니라 분석하라는 문제이다.
분석은 요약과는 다르다. 요약은 제시문이 사용한 핵심 개념과 제시문이 사용한 논리를 그대로 살려서 줄이는 것이다. 간혹 자신의 언어를 동원할 수도 있지만, 그럴 때는 제시문의 언어와 논리를 훼손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 반면에 분석은 자신의 언어와 자신의 시각으로 하는 것이다.
분석형 문제 중 대표적인 것은 ‘비교하라’는 문제다. 논술에서 ‘비교하라’는 것은 통상 공통점과 차이점을 말하는 것이다. 이때, 먼저 공통점을 쓰고 다음에 차이점을 쓰게 된다. 어떤 두 글을 비교하는 것은 두 글이 공통점을 갖고 있으니까 비교가 가능한 것이다.
예컨대 한 제시문은 ‘비전’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데 다른 제시문은 ‘된장찌개 끓이는 법’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면 이 두 글의 비교는 의미가 없다.
이 문제는 ‘비교하라’고 하지 않고 ‘차이점을 기술하라’고 하고 있지만, 차이점을 기술하는 것은 공통점이 존재하므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두 제시문은 공통적으로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변화’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으며 “현실에서의 인간의 본성이 이기심에 바탕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공통점을 인식하고, 차이점을 쓰기 전에 간략히 공통점을 쓰는 것도 글의 통일성을 위해서 나쁘지는 않다.
다음에는 차이점을 써야 한다. 이 부분이 문제가 요구하는 핵심 부분이다. 그렇다면 차이점을 어떻게 써야 할까?
보통 학생들은 제시문 (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반면, 제시문 (다)는 저렇게 말한다는 구조로 쓴다. 제시문이 2개 이므로 2개의 문단으로 쓰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쓰면 단순히 제시문 (나)를 요약한 다음 제시문 (다)를 요약한 결과가 된다. 이렇게 하면 이는 분석이 아니어서, 두 제시문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다.
두 제시문을 비교할 때는 ‘항목화’하라‘분석하라’는 문제에 답함에 있어, 단순 요약이 되지 않고 차이점을 잘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는 항목화를 할 필요가 있다. 제시문들이 무슨 주장을 하는지를 여러 측면으로 나누어서 생각하라는 것이다. ‘분석’이란 ‘나누어서 해석함’이다.
예컨대 “(나)는 A, B, C의 항목에 대해서 a와 b, c라고 주장하는 반면 (다)는 a', b', c'라고 주장한다”라고 쓰는 것보다는 “A 항목에 대하여 (나)는 a를 주장하는 반면 (다)는 a'를 주장한다”, 또 “B항목에 대하여 (나)는 b를 주장하는 반면 (다)는 b'를 주장한다.” “C항목ㅇ 대하여 (나)는 c를 주장하는 반면 (다)는 c'를 주장한다” 식으로 요약하는 것이 독자가 차이점을 잘 알 수 있게 비교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시문이 다루고 있는 주제를 여러 항목으로 나누는 것, 즉 ‘항목화’가 중요함을 알 수 있다.
항목화를 할 때는 2개의 제시문 중에서 이론적으로 잘 정리된 제시문을 갖고 항목화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 문제의 경우는, 제시문 (나)와 (다) 모두 이론적으로 잘 정리돼 있기 때문에 어느 제시문으로부터 항목화를 해도 좋지만, 제시문 (다)가 제시문 (나)를 반박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제시문 (나)를 먼저 읽어서 항목화하는 것이 옳은 문제 풀이 순서가 되겠다.
제시문 (나)는 3개의 문단으로 나뉘는데, 각 문단이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지 그렇지 않은지”,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인센티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논하고 있으므로 이 항목들을 갖고 두 제시문을 비교할 수 있겠다. 제시문 (다)를 보면, “인간에게 사회적 의무감이 필요하며 개발해야 하는지”의 항목을 추가할 수도 있겠다.
이런 작업을 거친다면 다음과 같은 예시답안을 쓸 수 있겠다.
예시답안 1>제약적 비전이나 무제약적 비전 모두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총체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또 두 비전은 모두 “현실에서의 인간의 본성이 이기심에 바탕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변화’, 그리고 인센티브 등의 항목에 대하여 제약적 비전과 무제약적 비전은 대립한다.
우선 제약적 비전은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며 이는 변화시킬 수 없고 변화시키려고 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반면에 무제약적 비전은 현실에서의 인간 본성이 이기적인 것으로 나타난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인간의 진짜 본성은 이타심이라고 주장한다.
사회를 변화시킴에 있어서, 제약적 비전은 현실에서 나타나는 이기적인 인간 본성을 고정된 것으로 보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보는 반면, 무제약적 비전은 사회 변화를 위해서는 이기적인 인간 본성을 이타적인 것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본다.
또 제약적 비전은 인센티브, 즉 보상에 대한 기대와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사회를 최적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보는 반면, 무제약적 비전은 인센티브를 인간의 정신을 개선시키는 데 해가 되는 것으로 본다.
제약적 비전은 인간의 본성을 넘어서는 과도한 도덕 감정은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반면 무제약적 비전은 고차원적인 사회적 의무감이 필요하며 이를 장기적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본다.(680자)
이렇게 쓰면 글자 수가 넘친다. 따라서 문제가 요구하는 대로 ‘차이점’에만 초점을 맞추고, 마지막 문단을 ‘인간 본성’과 관련한 문단과 합쳐서 다음과 같이 줄일 수 있겠다.
예시답안2>제약적 비전과 무제약적 비전은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변화’, 그리고 인센티브 등의 항목에 대하여 서로 대립한다.
우선 제약적 비전은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며, 이는 자연스러운 것이다"라고 본다. 반면에 무제약적 비전은 "현실에서의 인간 본성이 이기적인 것으로 나타나지만, 인간의 진짜 본성은 이타적"이라고 주장한다.
사회를 변화시킴에 있어서, 제약적 비전은 이기적인 인간 본성을 고정된 것으로 보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본다. 인간의 본성을 넘어서는 과도한 도덕 감정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무제약적 비전은 “사회 변화를 위해서는 고차원적인 사회적 의무감이 필요하며, 따라서 이기적인 인간 본성을 이타적인 것으로 개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 제약적 비전은 인센티브, 즉 보상에 대한 기대와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사회를 최적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보는 반면, 무제약적 비전은 인센티브를 인간의 정신을 개선시키는 데 해가 되는 것으로 본다. (516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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