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환 감독이 말하는 기특한 학생들, 답답한 현실
체력도 강한 일본의 수재들 - 初中高때 선수들 수업 꼭 참여, 야구도 공부도 둘 다 잘하게 돼… 프로실력 도쿄대생 나올수 있어
체력은 약한 한국의 수재들 - 우린 운동과 학업 병행 못해, 운동 잘하는 서울대생 못나와 당연히 실력차이 날 수밖에
이감독 "그래도 고맙다" - 5회 전부 콜드게임으로 졌지만 수재들의 땀 흘리는 모습 감동… 9회까지 경기해보는 게 소원
"올해는 어떻게든 9회까지 버텨보려고 했는데…. 이번에도 실패했네요."20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실에서 만난 이광환(63) 서울대 야구부 감독은 지난 16일 도쿄대 야구부와의 정기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서울대 야구부는 일본 교토에서 열린 도쿄대와의 정기전에서 4대21, 7회 콜드게임(점수차이가 크면 경기를 중단하는 것)으로 패했다. 2005년부터 시작된 양교 야구부의 정기전 전적은 이것으로 서울대의 5전 전패. 모두 콜드게임으로 졌다.
"패인이 뭐냐"고 묻자 이 감독은 "실력이 하늘과 땅 차이인데 따로 패인이라고 할 게 없다"고 했다. 이 감독은 이 말을 하면서 웃었지만 프로야구 통산 618승에 빛나는 노 감독의 눈은 "분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도쿄대에 매번 밀리는 현실이 분한 듯했다.
서울대 야구부는 '운동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의 모임'에 가깝다. 프로를 목표로 어려서부터 야구 글러브를 낀 엘리트 선수들을 영입하는 체육특기생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우리 야구부는 첫째가 공부, 둘째가 야구인 팀"이라고 했다.
그러나 서울대 야구부를 콜드게임으로 누른 도쿄대 야구부도 체육특기생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도쿄대 야구부는 한국 엘리트팀 못지않은 실력을 갖고 있다. 이 감독은 "경기를 해보니 실력이 굉장했다. 우리나라 엘리트 대학 야구팀들 중에서도 상위 클래스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승패를 가른 차이는 교육 제도에 있었다. 일본은 엘리트 스포츠맨을 지향하는 학생들도 고교 때부터 일반 학생들과 거의 똑같은 수업을 받는다. 한국처럼 운동 선수라고 공부를 건너뛰는 일이 없다. 그러다 보니 도쿄대에 들어갈 만큼 성적이 좋은 학생들 중에도 뛰어난 선수가 나오게 된다. 지금까지 도쿄대 출신으로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선수가 5명이나 된다.
초·중·고등학교에서 학업과 운동을 병행할 수 없는 여건인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수업을 빼먹고 훈련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한국 고교 야구 선수들은 체육특기생제도가 없는 서울대에 입학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나마 이 감독이 부임한 뒤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지난 6월 전국대학야구 하계리그에서는 두 번이나 9 대8, 한 점차 접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 감독은 서울대의 전력에 대해 "중학교 1학년 수준의 팀이 중학교 2학년 수준의 팀으로 향상됐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서울대 야구부가 1승을 거두는 것은 프로야구팀이 10년 연속 우승하는 것과 비슷할 정도로 어렵다"면서 "서울대 야구부의 공식적인 목표는 콜드게임으로 패하지 않고 9회까지 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환경에서도 수재들이 땀을 흘리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감동을 받는다"고 말했다.
서울대 야구부의 연전연패에 대해 한 보직 교수는 "사람의 교육은 지력(智力)과 체력이 5대5로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한국의 수재들은 체력이 약하거나, 운동을 못하는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운동할 아이와 공부할 아이를 나누는 교육 시스템이 이런 상황을 만들어 냈다는 얘기다.
한 서울대 관계자는 "이대로라면 서울대 야구부는 도쿄대에 100년 연속 콜드게임으로 패할지도 모른다"며 "우리도 성적으로 서울대에 들어온 뒤 정식 프로야구 선수가 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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