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2일 토요일

비누거품 속에 숨은 과학


손씻고 목욕하고 빨래할 때 없어서는 안 되는 ‘비누’. 비누는 기원전 5000년부터 이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은 동물 기름과 목탄을 섞어 끓인 것을 세탁에 이용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비누의 기원이다. 로마시대에는 동물기름과 재를 섞어 비누를 만들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비누의 주 재료는 고래 유지, 쌀겨, 야자수 같은 천연재료였다. 본격적으로 비누를 제조하기 시작한 사람은 1791년 프랑스의 르블랑이다.



그렇다면 기름과 재가 만나서 어떻게 비누가 만들어지는걸까. 동물기름은 지방이다. 지방은 지방산 세 분자와 글리세롤 한 분자가 결합해 만들어진 에스테르 결합이다. 에스테르는 강한 염기인 수산화나트륨과 만나 지방산의 나트륨염 3분자와 글리세롤을 형성한다. 지방산의 나트륨염이 바로 비누이며, 에스테르가 강한 염기와 만나 비누를 형성하는 반응을 비누화 반응이라고 한다. 반응식은 다음과 같다.












비누로 때가 씻기는 원리



 



[그림2 - 비누는 물속에서 꼬리는 안쪽으로, 머리는 바깥쪽으로 배열되기 때문에 공 모양의 미셀을 형성한다.]







비누는 어떤 원리로 때를 씻어내는 것일까. 지방산의 나트륨염인 비누의 구조를 보면, 머리 부분은 물과 친한 친수성기, 꼬리 부분은 물과 친하지 않은 소수성기로 이뤄져 있다. 비누의 이러한 구조로 인해 비누는 물속에서 독특한 구조로 배열된다. 물 표면에서는 친수성인 머리 부분이 물 안쪽을 향하고, 소수성인 꼬리 부분이 바깥쪽을 향한다.



물에서 비누의 배열은 <그림 2>와 같다. 비눗물이 뿌옇게 보이는 이유는 비누가 물에 녹아 무수히 많은 미셀을 형성해 빛을 산란시키기 때문이다. 비누는 이러한 구조로 인해 물과 기름을 섞이게 하는 계면활성제로 작용한다. 물과 기름이 용해되는 것이 아니라 골고루 분산된 상태다. 비누로 때를 뺄 수 있는 것도 계면활성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기름때는 물에 잘 녹지 않는다. 비누를 묻히면 때가 잘 빠지는데 이것은 비누의 친유성기가 때와 강하게 결합해 때 주위를 둘러싸기 때문이다. 비누 분자로 둘러싸인 기름때는 잘게 쪼개져서 물속에 분산돼 미셀을 형성한다. 공 모양의 미셀은 섬유에 달라붙거나 뭉치지 않기 때문에 물에 떠 있다가 씻겨 나간다.



그런데 지하수로 빨래할 때는 비누로 세탁이 잘 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지하수는 센물이기 때문이다. Ca2+이나 Mg2+이 녹아 있는 물을 센물이라고 하고, 그렇지 않은 물을 단물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사용하는 수도물은 단물이다. 센물에서 비누는 앙금을 만드는데, 그 반응식은 다음과 같다. 앙금이 된 비누는 계면활성제로 작용할 수 없기 때문에 세탁 효과가 없어진다.








합성세제와 비누의 차이점





요즘은 다양한 합성세제가 개발돼 비누 대신 사용된다. 합성세제를 처음 개발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과 관련이 있다. 당시 독일은 연합군에 의해 무역이 봉쇄돼 전쟁 물품을 제조하기가 어려웠다. 폭약의 원료로 기름이 쓰여서 기름으로 비누를 제조하는 것을 금지했다. 기름을 대신해서 석탄을 원료로 부틸나프탈렌 술폰산나트륨을 합성했다. 이것이 최초의 합성세제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을 거쳐 미국에서는 ABS(알킬벤젠술폰산 나트륨)를 합성했다. ABS 세제는 세척력이 우수했지만 큰 부작용이 있었다. 1950년 독일에서 ABS 세제에 의해 생긴 거품으로 인해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는 세제의 사용량이 증가한 것도 있지만 ABS 세제의 화학 구조 때문이다. 물속에 있는 미생물은 탄소화합물을 분해해 정화하는 능력이 있는데, ABS 세제처럼 가지 달린 탄소화합물은 쉽게 분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ABS 세제 대신 개발된 것이 LAS(선형 알킬벤젠술폰산 나트륨)세제다. LAS 세제는 ABS 세제보다 분해 속도가 빠르지만,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서는 LAS 세제 또한 분해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환경오염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끓는 돌’을 아시나요





 

[그림3 - 센물에 세제, 비누, 물을 각각 넣고 고추기름이 묻은 천을 5분간 세탁한 후 모습(위)과 그중 세제를 넣은 센물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모습(아래). 세제를 넣은 경우는 미셀이 형성됐지만, 비누를 넣은 경우는 미셀이 거의 형성되지 않고 앙금으로 인해 뿌옇게 보인다.]



세제의 세척원리는 비누의 세척원리와 같다. 세제 또한 친수성기, 소수성기가 모두 포함돼 있는 계면활성제다. 그러나 합성세제는 비누와 달리 센물에서도 세탁이 잘 된다(<그림 3>). 합성세제가 센물에서도 세탁이 잘 되는 것은 비누와 달리 세탁을 도와주는 보조제가 첨가되기 때문이다. 합성세제의 대부분은 15~30%의 계면활성제와 세제의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70~85%의 보조제로 이뤄진다. 이때 보조제에는 증진제, 표백제, 형광제, 효소 등이 포함된다. 증진제에는 보통 인산염이 많이 이용됐다. 인 성분은 센물의 Ca2+이나 Mg2+ 등을 제거해 센물에서도 세탁 능력이 떨어지지 않게 한다. 그러나 하천의 부영양화를 유발하기 때문에 사용을 제한했고, 현재는 제올라이트가 이용되고 있다(<그림 4>). 제올라이트는 미세한 구멍이 있어 물에 녹아 있는 Ca2+이나 Mg2+을 잡아먹기 때문에 센물을 단물로 바꾼다. 그래서 세제가 물에 잘 녹고 때도 잘 빠진다.



 



 

[그림4 - 제올라이트의 구조를 3D화한 사진. 빈 공간이 많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올라이트는 1756년 광물을 연구하던 크롱스테드가 발견했다. 어느 날 열을 가하자 수증기가 생기는 신기한 돌을 발견해, 이 돌에 ‘끓는 돌(zeolit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제올라이트는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면 1μm2의 면적에 1nm의 구멍이 100만 개나 있다. 천연 제올라이트를 가열했을 때 수증기가 생긴 것은 이 구멍 속에 물이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용도에 따라 다양한 제올라이트를 만들 수 있으며 그 활용도 또한 매우 높다. 제올라이트의 구멍에 은 나노 입자를 담아 섬유에 붙이면 옷에 베인 냄새를 없애는 섬유가 되기도 하고, 수분이나 양분을 넣어 토양 보습제로 사용할 수도 있다. 병원에서는 나노 크기의 바이러스 검출에 사용하기도 한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씨는 국제우주정거장에서 ‘균일한 크기와 모양의 제올라이트 만들기’ 실험을 하기도 했다.



세제에는 단백질과 지방을 분해하는 효소와 함께 증백제가 들어 있다. 표백제와 증백제는 빨래를 하얗게 만든다. 요즘 세제에는 형광증백제가 들어 있다. 형광증백제는 형광등 불빛이나 태양 빛의 자외선을 흡수해서 파란색 형광으로 바꿔 방출하는 물질이다. 형광증백제의 파란빛과 빨래의 누런빛이 합성돼 흰색으로 보이는 원

리다. 누렇게 찌든 옷은 그대로지만, 우리 눈이 깨끗한 흰색으로 착각한다. 형광증 백제는 세제 뿐 아니라 종이, 휴지, 면봉, 흰 셔츠에도 많이 포함돼 있다. 아토피 등 피부질환의 원인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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