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2일 토요일

식물 속 천연색소를 찾아라


색띠 만드는 크로마토그래피


먼저 식물 색소 분리에 최초로 성공한 츠베트의 실험에 대해 알아보자. 그는 잎의 색소를 석유 에테르에 녹인 다음, 석회석 가루를 채운 유리관에 통과시켰다. 용매인 석유 에테르가 흘러내려가며 색소가 이동했다. 이때 여러 가지 색소가 각각 조금씩 다른 속도로 내려가 색띠를 형성했다. 색띠는 빨강, 오렌지, 혹은 황색 등으로 분리됐다. 초록색으로만 보였던 잎의 색소 용액이 여러 가지 색으로 분리된 것이다. 츠베트는 이 기술을 ‘크로마토그래피’라고 했다. 그리스어로 색을 뜻하는 ‘chroma’와 기록한다는 뜻의 ‘graphein’이 결합한 말이다. 오늘날 이 기법은 다른 가루나 흡수력이 좋은 종이로 대체되며 생물과 화학의 중요한 연구 도구가 됐다.



우리가 간단히 해볼 수 있는 크로마토그래피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거름종이처럼 흡수력이 좋은 종이와 수성펜을 준비해보자. 종이 끝 1.5~2cm 지점에 수성펜으로 작은 점을 찍고 끝 부분을 물에 담가 놓는다. 그러면 물이 그 종이 분자 사이의 틈을 타고 올라가며 수성펜의 색이 분리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흡수된 물이 잉크와 만나면 그 잉크를 녹여서 같이 끌고 올라가는 것이다.



왜 색깔 성분마다 끌려 올라가는 길이가 각기 다르게 나타날까. 색소마다 종이에 달라붙는 정도가 다르고, 전개시킬 때 사용하는 액체에 녹는 정도도 다르다. 색소의 분자량에 따라 움직이는 거리도 달라진다. 이러한 이유로 전개시키는 용액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색소가 움직이는 거리가 다르게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 용매의 전개 거리당 색소의 이동거리의 비율을 비교하는 것이 정확하다. 이것을 전개율이라고 하며 그 식은 다음과 같다.




잎 속에 숨겨진 색



식물의 잎은 대부분 녹색이다. 왜 녹색일까. 우리가 잘 알다시피 잎에 있는 엽록소 때문이다. 엽록소는 엽록체 속에 있는 색소로 가시광선의 영역 중 초록색 파장을 반사시켜 잎을 초록색으로 보이게 한다. 하지만 식물 속에는 엽록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근, 토마토, 수박, 옥수수 등이 오렌지나 빨강 계열의 색을 띠게 하는 색소인 카로티노이드도 있다. 시든 잎이 황갈색으로 보이는 이유도 바로 카로티노이드 때문이다. 카로티노이드는 식물에서 합성돼 꽃, 열매, 잎 등에 축적되는 색소로 물에 잘 녹지 않는다.



또 다른 색소로는 안토시아닌이 있다. 안토시아닌은 연분홍, 빨강, 보라, 남색까지 다양한 색을 만들어낸다. 검은 콩, 체리, 자두, 블루베리, 적양배추 등에 많이 포함돼 있다. 안토시아닌은 물에 잘 녹는다. 검은 콩을 넣은 밥이 색이 바뀌고 적양배추를 삶은 물이 보라색이 되는 것도 물에 잘 녹는 안토시아닌 때문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이러한 색소들이 있는데도 잎이 녹색으로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녹색으로 보이게 하는 엽록소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광합성을 통해 영양분을 만들어내는 엽록체, 그리고 그 속에 있는 빛의 수용체인 엽록소는 식물이 광합성을 하는 한 당연히 많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울긋불긋 단풍의 비밀



가을이 되면 빛의 양이 줄어들고 기온이 낮아진다. 봄부터 여름 내내 광합성을 하던 식물은 가을이 되면 겨울나기 준비를 한다. 그 결과가 바로 단풍과 낙엽이다. 추운 겨울이 되면 잎에서는 광합성이 거의 일어나지 못하고 증산작용으로 인한 물 손실, 열 손실이 일어난다. 이는 식물에 해가 된다. 따라서 식물은 겨울을 맞이해 식물 내 수분을 보존하고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잎을 떨어뜨린다. 그 첫 작업이 바로 나뭇잎과 가지 사이에 떨켜층을 만드는 것이다. 떨켜층은 줄기로부터 물의 공급을 막고 잎에서 만든 양분도 줄기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온도에 민감한 엽록소는 기온이 내려가면서 파괴된다. 이때 엽록소와 결합한 단백질이 분리되면서 아미노산으로 분해된다. 이 아미노산이 떨켜층으로 인해 이동하지 못하고 잎에 축적하면서 잎의 산도를 높인다. 높아진 산도는 엽록소를 빠르게 파괴하고, 엽록소에 가려 있던 색소들은 색을 드러낸다.



이때 식물마다 포함하고 있는 색소의 종류와 함유량의 차이에 따라 각각 다른 색으로 단풍이 든다. 엽록소는 온도의 영향을 크게 받지만 카로틴과 크산토필은 온도가 낮아져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은행나무의 잎이나 아카시아나무의 잎은 노란색 계열의 단풍을 선보인다. 카로틴 이외에 타닌이라는 갈색 색소를 가진 참나무나 밤나무, 플라타너스의 잎은 갈색이나 진한 노란색을 띤다.



붉은 단풍은 이야기가 좀 다르다. 다른 단풍들은 엽록소와 함께 존재하다가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드러나는데, 붉은 단풍은 엽록소가 파괴된 뒤 안토시아닌이라는 색소가 새로 합성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안토시아닌은 녹말이 많을수록 생성이 잘 된다. 가을 중 날씨가 화창한 날이 많고 일교차가 큰 해에는 붉은 단풍이 더 예쁘게 물드는데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날씨가 화창하면 떨켜층이 생긴 뒤에도 광합성이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다. 당분이 많이 생기며, 당분이 많으면 많을수록 안토시아닌이 많이 생성된다.



단풍이 온도와 관계 있다면 우리나라는 어디서부터 단풍이 들까. 보통 우리나라의 단풍은 산의 정상부터 시작해 산아래 쪽으로 하루 약 40m씩 내려온다. 그리고 북쪽부터 시작해 남쪽으로 하루 약 25km씩 남하한다. 따라서 10월말쯤이면 전국에서 노랗고 붉은 물이 든 멋진 산을 볼 수 있다.









천연염색에 도전하자



앞에서 말했다시피 우리의 조상들은 식물이 갖고 있는 여러 색을 추출해 생활 속에 이용해왔다. 식물마다 가진 색소가 다르기에 이를 이용해 옷감을 염색하거나 음식의 색을 내는 데 사용했던 것이다. 치자는 노란색, 소목은 붉은색, 쪽은 하늘색으로 염색하는 데 이용했다. 또 느릅나무껍질은 살구색, 밤껍질은 옅은 갈색, 양파껍질은 노란색, 홍화는 분홍색을 내는데 이용했다. 이렇게 천연염색으로 면이나 비단을 염색해 정성스레 관복도 만들고 시집 보낼 딸의 고운 한복과 예단 준비 등에 이용해 멋과 예를 지켰다. 음식에도 모시잎을 이용해서 초록색 송편을 만들거나 송화가루를 이용해 노란색의 송화다식, 갓을 이용해 보라색 갓김치를 만들어서 먹음직스럽고 고급스러운 운치를 더했다. 최근 천연염색이 다시 각광받고 있다. 천연 색은 인공 색처럼 화려하고 진하지는 않지만 순박하고 은은하며 부드럽다. 게다가 염색시 화학재료를 사용하지 않아 항균성도 좋고 피부 트러블이 심한 사람이나 아토피 피부염에도 좋다는 장점이 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부모님의 오래된 손수건을 천연염색해드리면 어떨까.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