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4일 화요일

29년째 꾸준히 일기 써온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씨

절대 약해지지 말자고 일기 쓰며 용기 재충전

1년에 300일 이상 해외서 공연 외로움 달래는 친구이자 자기고백

1986년 10월 26일,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오페라 극장. 작은 체구의 동양 여성이 무대에 올랐다. 오페라 '리골레토'의 주인공 '질다'였다.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검은 머리 여자애가 얼마나 해낼까.' 의심스런 눈초리를 보내던 청중들은 금세 질다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세계 무대에 데뷔한 지 25년…. 강산이 두 번도 넘게 변한 그 세월동안 소프라노 조수미(49)씨는 세계 최정상의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지난달 데뷔 25주년 기념 공연을 위해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나 비결을 물었다. 그는 세 가지를 꼽았다. '부모님'과 '친구들', 그리고 매일 습관처럼 쓰고 있는 '일기'였다.
조수미씨가 연습용 피아노 앞에서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다섯 가지 원칙으로 시작한 일기
어릴 적부터 곧잘 일기장에 속내를 털어놓던 그가 본격적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1983년. 서울대 성악과 1학년을 마치고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난 날부터였다. 유학 첫날, 그는 일기장 첫 페이지에 자신만의 원칙 다섯가지를 적었다. '어떤 고난이 닥쳐도 꿋꿋이 이겨내며 약해지거나 울지 않을 것', '절대 약하거나 외로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늘 도도하고 자신만만할 것', '어학과 노래에 온통 치중할 것', '항상 깨끗하고 자신에게 만족한 몸가짐과 환경을 지닐 것', '말과 사람들을 조심하고 말과 행동을 분명히 할 것'.

조수미라는 이름 석자는 우리에게 '노력과 열정'의 대명사다. 언어도 문화도 너무나 다른 유럽 오페라 무대에서 동양 여성이 주인공 자리를 꿰차고, 또한 세계적인 소프라노라는 명성을 얻기까지는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친구들과 밥을 먹거나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제겐 공부였어요.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완벽하게 익힐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정말 바쁘게 살았어요." 유학 첫날 일기장에 쓴 다짐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재 그는 29권째 일기를 쓰고 있다. 유학 첫날부터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일기는 내게 친구같은 존재예요. 외로움을 달래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자기 고백이죠."

조수미씨는 1년에 300일 이상을 세계 각지에서 공연한다. 손끝 하나 움직이기 힘들만큼 피곤한 날도 많을 텐데, 일기를 쓰기 싫은 날은 없었을까?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밥을 먹는 것처럼 일기는 내게 습관이나 다름없어요."

◆음악 이외의 사회 활동에도 공들여
조수미씨는 지난 9월 24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조수미 파크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데뷔 25주년 기념 무대를 가졌다. 콘서트장의 열기는 무척 뜨거웠다.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공원 안의 잔디 마당에 마련된 콘서트 장에서 자유로운 분위기로 클래식을 즐기는 관객들의 표정이 너무 행복해 보였어요."

현재의 조수미가 있기까지 피나는 노력도 있었지만, 남다른 행운도 따랐다. 전설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년)과의 운명적인 만남, 동양인 최초로 리골레토의 질다 역을 맡은 일 등….

지난 25년을 그 누구보다도 바쁘게 살아온 조수미씨. 음악적인 활동 외에도 한국 이미지 홍보대사로서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대한적십자사·유니세프 등과 함께 꾸준히 나눔을 실천하는 일에도 동참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조수미의 아름다운 동행 기금' 운동을 펼치고 있다. 조씨는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문화가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다며, 사회적 약자인 아동(청소년)과 동물을 보호하고 배려하자는 취지로 모금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모금 운동은 동물보호 시민단체인 카라(KaRa)의 동물보호교육센터 특별계좌(우리은행 1005-301-651573)를 통해 진행 중이다. 그는 이미 1억 5000만 원을 기부했다.

조수미씨는 우리 청소년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는 동시에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조언을 잊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을 초록색에 비유하고 싶어요. 나무, 자연, 생명, 희망을 상징하는 초록색처럼 순수함과 따뜻함을 간직한 미래의 리더들로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왔기에 데뷔 25주년이 더 특별할 것은 없다는 그는 앞으로 클래식, 팝, 가곡, 가요 등 다양한 장르를 접목시킨 '백화점' 같은 음반을 제작해보고 싶다고 했다. 앞으로의 25년이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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