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4일 화요일

논술은 준비 없이 이뤄지는 마법이 아니다


이번 수시에는 유독 지원자가 많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학생부우수자전형 외에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입학사정관전형은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래도 논술전형에 기대를 거는 학생이 많은 것 같다.
수능이 한 달도 남지 않았지만 주말마다 논술이나 구술 면접시험을 치르러 가는 내신과 수능 성적 상위권 학생들이 줄을 잇는다. 3학년 선생님들은 점쟁이도 아니지만, 그 상위권 학생들이 대학별고사를 치르러 가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다.
누가 가능성이 있고, 누가 떨어질 지를. 왜냐하면 준비해온 과정을 알기 때문이다. 준비를 잘 한 학생은 붙고, 그렇지 못한 학생은 떨어진다. 간단한 이치다. 그래도 속으로만 생각하지 겉으로 드러내어 말하지 않는다. 말을 해봤자 학생의 마음만 다칠 뿐이기 때문이다.
논술, 구술 심층면접을 개별 학교 선생님들이 자체적으로 준비해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몇 년 전에 판가름 났다. 90% 이상의 관계자들이 확언한다. 마찬가지로 교육청 등 공적 프로그램만으로 논술 준비를 끝낸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라는 점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현재로선 학교 프로그램만으로, 교육청 프로그램만으로 명문대 대학별고사를 통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말도 많은 논술을 없애든지, 대한민국 모든 상위권 학생이 공교육 범위에서만 논술 준비를 하도록 강제한다면 모를까, 논술이 마법이 아니고 로또가 아닌 이상 제대로 준비 안 한 학생이 합격할 수는 없다.

그런데 많은 상위권 학생들이 제대로 준비를 안 하고도 논술고사를 통과할 수 있다고 호연지기를 발휘하는 것이 문제다. 비공식적인 집계지만, 논술 전형 응시자의 거의 절반이 허수라고 한다. 이 점은 다른 근거를 댈 것도 없이 학교 현장에서 매년 반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전혀 또는 거의 준비 안 된 학생들까지 원서를 접수하고 시험을 치르는 것을 목격한다. 3학년 초에 준비를 시작한 학생은 그나마 옹호할 수 있다. 6월 평가원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고 나서, 더 한심하게는 9월 초 수시 원서 접수를 하고 나서 논술 준비를 하겠다고 나서는 내신·수능 최상위권 학생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빠르게는 1학년부터, 늦게는 2학년 여름방학부터 논술 준비를 시작한 학생들의 수가 전국적으로 논술 전형 모집정원의 2배수를 넘는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일까?

논술 준비에서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심한 것도 문제다. 서울 등 수도권 학생들은 '언제 어디서나' 유비쿼터스 적으로 양질의 논술 교육을 받을 수 있는데 지방 학생들은 정시 모집을 지향하며 열심히 수능 공부에만 매진한다. 그것도 자기 주도적으로.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있는 그 쟁쟁한 강사들을 지방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다. 주말을 이용해 서울 학원에 갔다 왔다 하는 일부 학생들이나,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으로 서울 유명 재수 종합반 학원 소속 베테랑 강사 등을 초빙해 편안하게 논술 준비 기회를 제공하는 일부 학교 학생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대다수 지방 학생들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에 따라 모집정원의 70% 이상을 학생부와 논술, 구술 심층면접 등으로 뽑는 수시모집의 정책 방향이 바뀌지 않는 한 '경향(京鄕)의 격차'는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본다. 거기다가 지금의 2학년이 치르는 2013학년도 입시부터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들은 기존의 특목고 학생들과의 경쟁에 더해 자사고, 자공고 등 자율고 1기 학생들과의 경쟁까지 감당해야 한다. 단편적인 문제지만 자율고 간에도 논술 등 대학별고사 준비를 어떻게 잘 하고 못 하느냐에 따라 입시 성적이 갈릴 것이고, 전국 자율고의 서열까지 정해지리라고 예측한다.

대학 입시 전형 다양화의 측면에서 보면, 논술은 정시모집 수능 우선선발이 그렇듯이 상대적으로 내신 성적이 불리한 학생도 자신이 원하는 명문대에 합격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정시에 수능 성적만으로 합격하기 힘든 위상의 학교나 학과에 합격할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을 부린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대충 얼렁뚱땅 준비해놓고, 또는 아무 준비도 없이 그 마법이 작동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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