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내 행복을 좌우한다"
친구와 잘 지낼 때 행복함 느끼고 다 있는 게 본인한테 없을 때 불행
"친구보단 자존감 갖는 게 급선무"
지난달 27일 한국방정환재단은 ‘2011 한국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보고서’를 펴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대한민국 어린이의 행복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3년 연속 꼴찌’를 차지했기 때문. 이에 앞서 지난 5월 29일엔 서울시가 유니세프(unicef·유엔국제아동긴급기금) 행복지수 항목을 바탕으로 매긴 ‘서울형 학생행복지수’ 결과가 발표됐다. 이에 따르면 서울 지역 초등생의 행복점수는 75.1점. 역시 ‘매우 행복’인 80점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였다.우리나라 어린이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 그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정의는 뭘까?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려면 어떤 점이 바뀌어야 할까? 끊이지 않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소년조선일보 독자 네 명을 긴급히 소집했다. 참석자는 김강원 군(경기 부천 계남초등 5년), 이정훈 군(서울 도곡초등 5년), 이현재 군(서울 염경초등 4년), 정재연 양(서울 장월초등 4년·이상 가나다 순). 다음은 이들이 들려준 ‘어린이 행복론(論)’을 정리한 것이다.
Q. 어떨 때 제일 행복해?
A. “친구랑 잘 지낼 때” vs. “‘지금의 나’에 만족할 때”
어린이가 행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뭘까? 네 어린이의 의견은 ‘친구관계’와 ‘자존감’으로 팽팽하게 맞섰다. 정재연 양은 ‘친구관계’ 쪽에 한 표를 던졌다. “친구가 있으면 외롭지 않아요. 가족과 싸워도 하소연할 곳이 있고 따돌림 당할 염려도 없잖아요.” 이현재 군의 ‘보물 1호’는 휴대전화다. 휴대전화만 있으면 멀리 있는 친구와도 언제든지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 “외톨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할 때도 휴대전화가 있으면 안심이 돼요.”
한국방정환재단의 조사 결과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보고서에 따르면 ‘친구들이 놀리거나 무시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20.8%였다. ‘친구관계에서 오는 열등감’을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꼽은 응답도 25.9%나 됐다.
백종화 비고츠키 아동청소년가족상담센터 소장은 “실제로 상담을 요청하는 초등생의 상당수가 원만하지 못한 친구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이호분 연세누리 소아청소년정신과 원장은 “친구관계를 중시하는 현상은 사춘기에 접어드는 초등 고학년생에게서 더욱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반면, 김강원 군과 이정훈 군은 ‘자존감’을 행복의 첫 번째 요건으로 꼽았다. “행복은 현재의 자신에게 만족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모든 조건이 갖춰져 있어도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다면 불행하죠.”(이정훈 군) “물론 실패를 겪고 나면 불행한 것처럼 느껴져요. 그럴 때마다 ‘한두 번 실패에 내 가치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라고 되뇌이는 게 중요해요.”(김강원 군)
Q. 공부와 행복의 관계는?
A. “98점 받으면 99점 ‘미련’, 부모님 기대 제일 부담”
‘공부’와 ‘행복’의 상관관계를 묻는 질문에 네 어린이는 “공부는 잘해도, 못해도 행복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김강원 군은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가 특히 심하다”고 털어놓았다. “아무리 잘 봐도 100점이 아니면 안심할 수 없어요. 98점을 받으면 99점 받은 친구 얼굴이 떠오르거든요.”
이정훈 군도 김 군의 얘길 거들었다. “문제가 20개짜리 시험에서 두 문제만 틀려도 90점이죠. 어른들은 ‘그만 하면 잘했다’고 하시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아요. 등수로 따지면 줄잡아 150등은 내려가버리거든요.” 정재연 양 역시 시험에 대한 부담이 상당했다. “시험 망친 게 화가 난다기보다 엄마를 실망시켜드리는 게 너무 죄송해요.”
우리나라 초등생의 학업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방정환재단 보고서에서 한국은 교육성취도를 측정하는 ‘교육 영역’에서 127.8점을 받아 1등을 차지했다. 하지만 ‘주관적 행복’ 부문에선 꼴찌를 기록했다. 세계 어떤 나라보다 성적이 뛰어나면서도 그다지 행복해하지 않는 우리나라 어린이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결과다.
백종화 소장은 “성적 스트레스가 유난히 큰 어린이를 조사해보면 대부분 부모의 불안 증세가 심하다”고 지적했다. “그런 부모일수록 ‘내 아이가 남의 아이보다 무조건 나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자신도 모르는 새 자녀에게 끊임없이 전달합니다. 물론 그 이전에 하나의 기준으로 아이들을 줄 세우는 교육제도도 문제죠.”
Q. 물질적 행복의 기준은?
A. “또래 친구 대부분이 갖고 있는 건 내게도 있어야”
물질적 풍요로움과 행복 간의 관계도 궁금했다. 네 어린이는 “갖고 싶은 걸 다 갖는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한 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친구 중에 신기한 전자기기도 많고 그랜드 피아노까지 갖고 있는 애가 있어요. 그런데 그 친구 표정이 늘 행복해 보이진 않던데요.”(이정훈 군) “제가 제일 소중히 여기는 물건은 엄마가 사주신 샤프펜슬이에요. 비싼 건 아니지만 저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 담겨 있잖아요. 그건 억만금을 줘도 살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정재연 양)
하지만 좀 다른 의견도 있었다. 김강원 군은 “아무도 안 갖고 있는 물건을 혼자 갖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다 있는데 내게만 없는 물건’ 역시 없는 게 좋다”고 말했다. “우리 반엔 매번 신기하고 새로운 물건을 갖고 오는 친구가 있어요. ‘부모님이 용돈을 많이 주시는구나’ 생각하지만 딱히 부럽진 않아요. 하지만 그 반대 상황이 되면 기분이 달라져요. 다들 갖고 있는 물건을 나만 안 갖고 있다는 걸 아는 순간 주눅 들죠.” 이현재 군은 “사고 싶은 걸 다 살 순 없지만 절반 정도는 갖출 수 있어야 만족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선경 한울가족상담센터 소장은 어린이들이 느끼는 ‘물질적 행복’의 기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초등 고학년 어린이의 경우, 물건을 갖는 것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해당 물건을 매개로 친구들과 감정을 나누는 게 훨씬 중요하죠. 그맘때 아이들이 또래 사이에서 유행하는 물건에 유난히 집착하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따라서 이 시기 자녀를 둔 부모님은 그런 특성을 헤아려 적절히 대응하는 게 중요합니다.” 소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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