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3일 일요일

대입 논술 논제 안에 있는 ‘답안의 구조’를 찾아내라

논술은 어렵다. “정상적인 고교 과정을 마친 학생이라면 누구나 풀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 지금까지 대입 논술 문제에 대한 교과부 당국자나 대학 측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최근 교과부의 한 관계자가 이런 공식적 입장을 과감하게 뒤집는 언급을 했다. “논술은 정상적인 고교 과정에서는 준비하기 힘든, 사교육을 유발하는 전형 요소”라고 말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입장은 그럼 거짓말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보도만 보면, 언급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논술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단, “정상적인 고교 과정에서 준비하기 힘들다”는 말은 동의하기 어렵다. 논술 문제가 지속적으로 출제되자 인천 박문여고 등 많은 고교가 자체적으로 논술에 대비해서 학생들에게 공부를 시키고 있다. 또, 국어 사회 등의 탐구 과제를 충실히 하면서 심화학습을 하면 논술 대비는 충분히 가능하다.

고교 과정에서 논술을 준비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은 고교 교육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당국은 고등학생이 논술 문제를 풀 수 있도록 교육해야지, 교육 과정이 부실하다고 목표를 포기하는 정책을 택해서는 안 된다.

논술을 축소하겠다는 일부의 움직임은, 지금까지 이 사회가 축적해온 훌륭한 교육 방법과 교육적 자산을 하루 아침에 없애려는 시도다. 지성인, 예비 대학생을 위한 조건인 독해력, 논증력과 문장력을 기르기 위해서 대입 논술 문제만큼 훌륭한 교재는 현재 한국에 없다.

그런데 논술의 어려움 중에 하나는 논술 문제가 어떤 것인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 어려움의 핵심은 ‘논제’ 읽기의 어려움이다. 다음과 같은 논제를 보자.

“제시문 <가> <나> <다> <라>에 나타나는, 자율성을 침해하는 타율성의 성격을 각각 비교 ․ 설명하시오.(600자 내외)” /2010학년도 성신여자대학교 수시1차

2번 논제는 보통 이처럼 아주 짧아서, 읽는 데 10초도 안 걸릴 수 있다. 그러나 논제를 그렇게 빨리 읽고 제시문으로 넘어가면 실패하기 십상이다. 출제 교수가 수험생에게 요구하는 사항의 90% 이상이 논제 안에 있기 때문에 이를 정밀하게 분석하지 않으면 그 요구를 알 수 없게 되고, 논점일탈하기 때문이다.

특히 논제 안에는 ‘답안 구조’가 있다. 논제를 잘 읽으면 답안을 몇 개 문단으로 나누어서 어떻게 써야 할지를 알 수 있는데, 이런 정보를 놓치는 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아니, 도대체 이 문제는 무슨 말인가? 제시문 <가> <나> <다> <라>를 비교하라고 했으니 <가>와 <나>, <가>와 <다>, <가>와 <라>, <나>와 <다>, <나>와 <라>, <다>와 <라> 등 총 6개의 비교를 하라는 말일까? 그렇게 하려면 600자는 너무 적다.

‘각각’ 비교하라는 말은 또 무슨 뜻일까? 위에서 한 것처럼 문제를 해석하면 ‘각각’의 의미가 모호해진다. 결국 이 문제는 “제시문 <가> <나> <다> <라> 각각에는 자율성을 침해하는 타율성이 묘사돼 있으니 지문 내에 나타나는 자율성과 이를 침해하는 타율성을 비교하라”는 문제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제시문 <가> <나> <다> <라>를 서로 비교하는 작업은 필요가 없다.

이 문제는 그렇게 각 제시문마다 자율성과 타율성을 비교해야 하므로 4개 문단으로 나누어진다. 그렇다면 각 문단을 150자 정도로 쓰면 되겠다. 또 제시문 안에 이미 자율성과 타율성이 있으므로 이를 분석, 요약하기만 하면 된다.

짧게 출제되는 논제라도 보통 이렇게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그러나 옳바른 해석은 한 가지밖에 없다. 혼란을 야기하는 것은 논제 자체가 가지고 있는 모호성이다. 논제를 길게 쓰면 사실상 답을 다 가르쳐주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출제 교수는 가능한 한 논제를 짧게 쓰려고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무리가 수반되기도 한다.

만약 신문사에서 기자가 썼다면 데스크에게 혼나기 딱 좋은 글들이 대입 논술 논제에는 자주 나타난다. 그러니 수험생으로서는 출제 의도를 필사적으로 분석해내는 수밖에는 없다. 만약 논제가 길게 출제됐다면, 수험생으로서는 ‘힌트가 많구나’하고 반겨야 한다. 그 힌트를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모두 분석해 내서 답안 작성에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논제도 한번 보자.

“제시문 가를 참고하여 제시문 나의 실험 결과를 그 원인과 함께 해석하시오.(400~500자)” /2010 한양대 모의

이 문제는 무슨 뜻일까? 도대체 “원인과 함께 해석하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실험결과의 원인을 쓰고 그 다음에 그 결과를 해석하라는 말일까? 그냥 원인만 쓰라는 말일까? 논제만 놓고 보면 전자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제시문 나의 실험 결과 ▲제시문 가의 관점 ▲제시문 가의 관점에서 본 원인 ▲실험 결과의 해석 이렇게 4개 내용으로 구성돼야 한다.

대입 논술은 이렇게 논제 안에 답안의 구조가 다 있다. 그러므로 그 답안 구조를 파악해내는 일이 급선무다. 이는 제시문을 읽기 전에 먼저 논제만 읽고 수행해야 하는 과제다. 논제를 읽어내기 위해서 내용적으로 제시문을 참조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나 수험생은 기본적으로 “논제 안에서 답안의 구조를 추려내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논술 문제를 대하고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제시문을 읽기 전에 논제를 정밀하게 읽어내는 일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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