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30일 화요일

수학은 자연을 그린 추상화

실제로 국제사회는 21세기에 들어 수학과 기초과학을 더욱 중시하는 분위기이다. 올해 초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최고의 직업으로 ‘수학자’를 꼽았다. 취업정보사이트 커리어캐스트닷컴은 WSJ와의 인터뷰에서 “수학 스킬은 기회의 장을 열어주는 열쇠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이미 오래 전에 국제수학연맹(IMU)은 2000년을 ‘세계 수학의 해’로 선포하였고 유네스코도 당시 세계 수학의 해 관련 행사를 위하여 2만 달러를 지원하였다. 특히 미국에서는 21세기를 맞이하며 ‘클레이 수학연구소(Clay Mathematics Institute)’가 설립되었고 21세기에 연구해야할 수학 문제로 각각 백만 불의 상금이 걸린 7개의 밀레니엄 문제들을 내걸었다. 미국 정부는 또한 수학, 과학, 기술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STEM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칼라비-야우 공간과 거울 대칭

2000년 봄, 클레이 수학 연구소는 ‘거울 대칭(mirror symmetry)’을 주제로 한 봄 학교를 개최하였다. 그 결과 하버드대 물리학교수 바파(Vafa) 등을 위시한 8명의 당시 강연자는 40여개 장으로 구성된 930여 쪽에 이르는 수학과 물리학을 넘나드는 방대한 강의노트를 남겼다.

거울 대칭이란 ‘끈 이론(string theory)’에서 다루어지는 개념으로 서로 다른 물리체계가 어떤 특별한 방법에 의해 동형(isomorphic)이 될 때 나타나는 물리 현상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에 수학이 강력하게 개입된다.

1970년대, 기하학자 칼라비(Eugenio Calabi)는 어떤 공간은 ‘초대칭(supersymmetry)’이라 불리는 일종의 내재적 대칭성을 갖는다는 추측을 한다. 그는 사실 캘러 다양체(Kähler manifold), 리치 곡률(Ricci curvature) 등의 어려운 수학 용어를 사용하였고 그래서 그의 추측은 피상적으로는 물리학과 무관해 보였다.

그리고 하버드대 수학교수 야우(Shing-Tung Yau)는 수십 년에 걸친 연구로 칼라비 방정식을 만족시키는 공간을 만드는 방법을 찾아내었다. 그 방법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칼라비-야우 공간(Calabi-Yau space)’이다.

6차원 칼라비-야우 공간의 2차원 단면 ⓒ 위키피디아
6차원 칼라비-야우 공간의 2차원 단면 ⓒ 위키피디아

끈 이론은, 세상 만물을 구성하는 입자를 구성하는 기본 입자가 아주 작은 끈과 같은 진동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물리학 이론이다. 그런데 이 이론이 양자역학과 어우러지기 위해서는 ‘시공간(spacetime)’이 초대칭과 같은 대칭성을 가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시공간을 10차원 공간으로 가정한다. 이때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은 4차원이고 그 4차원의 공간을 구성하는 기본입자인 끈에 해당하는 공간이 6차원의 칼라비-야우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칼라비-야우 공간의 쌍대성(duality)이 거울 대칭을 설명한다. 자세한 내용은 야우와 나디스(Nadis)의 책 ‘심연의 공간의 모습(The Shape of Inner Space)’(Basic Books, 2010년)를 참조한다. 이렇게 21세기에 최첨단 수학과 물리학이 조우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수학과 물리학의 조우는 인류 문명의 발전을 일으키는 동력으로 작용할 기세이다.

수학은 자연을 그린 추상화  

수학사 또는 과학사를 읽어보면 수학과 물리학은 불가분의 관계이면서도, 헤어졌다가 만나기를 반복한다. 사실 19세기 이전까지는 수학과 물리학의 구분조차도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1900년대에는 이들 두 분야가 독자적으로 발전하여 각자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입자물리학에서의 양-밀즈 게이지 이론과 수학의 번들이론이 연계되며 다시금 수학과 물리학이 만나게 되었다. 칼라비-야우 공간과 거울 대칭이 그러한 예이다.

수학은 과학의 언어라고 한다. 우리는 언어를 가지고 상황을 기술하기도 하고 마음을 그려내는 시를 쓰기도 한다. 수학도 자연 현상을 기술하기도 하고 그를 인식하는 우리의 생각과 방법을 시처럼 그려내기도 한다. 그런데 그림 중에는 화가의 마음 내지는 핵심내용만을 상징적으로 그려낸 추상화가 있듯이 수학도 자연 현상의 핵심을 기술하는 추상화의 기능을 지녔다.

수학은 언어 기능만이 아니라 인류의 문명을 창조해내는 사고능력과 창의력을 이끌어내는 기능도 지녔다. 수학은 그렇게 인류 문명과 문화를 창조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세상을 바꾸는 수학

인류 문명과 문화의 바탕에 수학이 내재하였듯이 수학은 세상을 바꾼다. 수학은 마치 배추 같은 원재료와 같아 그것에 어떠한 양념을 입히고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 맛깔스런 김치가 되기도 하고 보기에 좋은 김치가 되기도 한다. 수학에 어떻게 옷을 입히느냐에 따라 의미와 형상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수학은 세상을 좋은 세상으로 바꾸어 준다. 그러한 이야기들은 이미 출판되어 있는 책들로부터 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세상을 뒤흔든 일곱 가지 생각(Seven Ideas That Shook The Universe, 1985)’, ‘천재들과의 여행(Journey through Genius, 1990)’, ‘세상을 바꾼 다섯 개의 방정식(Five Equations That Changed the World, 1995)’, ‘미지의 세계를 찾아: 세상을 바꾼 열일곱 개의 방정식(In Pursuit of the Unknown: 17 Equations That Changed the World, 2012)’ 등의 책들이 그러하다. 또한 ‘세상을 바꾼 방정식 이야기(The Universe with Zero Words, 2012)’라는 책도 올 여름쯤 번역‧발간될 예정이다.

21세기는 ‘정보화 사회’라고 한다. 이는 인터넷의 발달과 컴퓨터의 보급 때문이라고 생각되기는 하지만, 사실 그 기저에는 수학이 자리한다. 에디슨과 먼 친척인 섀논(Claude Shanon)은 1877년부터 1984년까지 미국의 전화 산업을 주도하던 벨(Bell) 회사의 벨 연구소(Bell Labs) 소속 엔지니어였다. 그는 1945년 벨 연구소 내부 논문 ‘통신 수학 이론(A mathematical theory of communication)’을 썼고 1948년 논문으로 출판하여 외부에 그 내용을 공개하였다.

논문의 주요 쟁점은 노이즈가 있는 통신 채널을 통해서 원하는 만큼 정확한 정보 교환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였다. 그는 통신 채널이 수용할 수 있는 정보량을 측정할 수 있는 방정식을 제시함으로써 정보화 시대를 활짝 열었다. 그러한 방정식은 코딩이론의 기초가 되었고, 효과적인 코딩방법의 개발은 정보 산업을 급격이 발전시켜 30년 전과는 전혀 다른 현재의 일상생활을 만들어주었다.

정보이론을 상징하는 방정식 Ian Stewart, 「In Pursuit of the Unknown: 17 equations that changed the world」, Basic Books, 2012, Chapter 15, 265쪽
정보이론을 상징하는 방정식. 출처: Ian Stewart, 「In Pursuit of the Unknown: 17 equations that changed the world」, Basic Books, 2012, Chapter 15, 265쪽

수학은 이와 같이 물리학이나 컴퓨터과학, 정보과학과 같은 다른 학문이나 산업과 만나 의미와 모습을 갖추면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인류의 문명과 문화를 바꾸고 결국 세상을 바꾼다.

수학 발전은 수학의 대중화부터

우리는 수학을 서양 문물로 여기며 그들을 따라 하기에 급급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ICM의 개최국으로 국제수준에 걸맞은 수학의 학문수준을 갖추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앞으로는 우리의 수학문화를 만들어가며 세계 문명의 발전을 주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 수학자들이 더욱 분발하여야 하겠지만 국가의 지원도 필요하고 국민의 응원도 필요할 것 같다.

특히 국민의 응원이 힘이 될 수 있는데, 그것이 수학의 대중화이다. 수학이 대중화되면 차츰 수학의 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고 국가 산업의 발전을 위한 길도 열릴 것이며, 21세기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들도 자연스럽게 양성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번 서울 국제수학자대회 개최를 기회로 삼아 국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수학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볼 일이다.

그러면서 수학의 주어진 조건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이는 일종의 인과론과 원칙주의의 성향을 배워, 사회 구성원 각자가 본분을 지키고 서로를 배려하는, 그렇게 사회질서가 지켜지는 훌륭한 선진 사회로 발돋움하여,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기를 기원한다.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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