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교육청은 세계를 이끌어갈 '우수 글로벌 융합 인재 육성'을 목표로 수학, 과학, 예술, 체육, 인문사회, 문예창작 등 20개 분야에서 1만9000여명의 초3~고3학생을 대상으로 영재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영재교육은 영재를 대상으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영재를 찾아내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데 영재교육을 받을 초등학생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서울시교육청은 항상 원칙을 어겨 왔다.
영재교육진흥법 시행령 제11조 2항에 따르면 '영재교육기관의 장은 … (중략) … 선정심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영재교육대상자로 선정'하도록 되어 있으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영재교육기관에 지원조차 하지 못한 채 학교에서 먼저 걸러진다.
학교에서 추천한 아이들 가운데 교육지원청이 영재교육 대상을 선발하기 때문에 시행령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교육지원청은 학교별로 '추천 제한 인원'을 두고 있다. 인원에 맞지 않으면 추천서를 학교로 돌려보내기도 한다.
또 동 시행령 11조 1항에 따르면 '재학중인 학교의 장이나 지도교사의 추천서를 첨부하여 영재교육을 받고자 하는 영재교육기관의 장에게 제출'하도록 되어 있으나 담임교사의 추천서를 제출해도, 학교장이 추천하지 않으면 추천서를 받지 않고 있다. 이는 명백히 시행령을 위배한 사례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교육청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시행령을 위반하며 행정 편의대로 영재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영재교육 대상 추천인원' 제한하는 교육지원청
이러한 교육지원청의 행정 편의로 인해 영재성을 보이는 학생이 영재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거기에다가 공정하지도 않다. 서울시 교육청은 학교의 학급수에 따라 교육지원청에 지원하는 학생의 수를 제한하고 있다.
학년에 1~3개 학급이 있는 경우 1명만 추천할 수 있고, 4개 학급이 있는 경우가 되면 2명을 추천할 수 있다. A학교의 경우 3개 학급의 학생이 120명 가까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3개 학급이라는 이유로 교육지원청에 지원할 수 있는 학생은 1명뿐이다. 반면, B학교의 경우 4개 학급의 학생이 100명 정도인데도 2명이 지원할 수 있다.
학급당 학생수가 40명에 가까워서 좁디 좁은 교실에서 고생하는 어린이들은 학급당 학생수가 25명 정도 되는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어린이들보다 영재교육을 받기 위한 원서를 쓰는 상황에서도 불리한 차별까지 받고 있는 것이다.
영재는 1등을 뽑는 것이 아니다. 영재성이 있는 아이들을 판별하여 영재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C학교에 영재가 5명이 될 수도 있고, D학교에 영재가 없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학급 수를 기준으로 학교 별로 아이들 수를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영재성에 대해 판별받기를 원하는 아이들에게 모두 기회를 주어야 한다.
학교에서 영재를 추천하고 사실상의 선발을 하고 있는 실태를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대부분의 학교는 영재추천을 한다고 가정통신문을 발송한다. 영재교육을 희망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동의가 들어오면 그 아이들을 담임교사가 관찰하고 순위를 매겨 학교에 제출한다.
학교에서는 보통 각 반에서 담임교사가 추천한 1~2명을 데리고 관련된 과목의 수업을 몇 번 진행한다. 그리고는 그 수업에서 관찰한 결과를 가지고 최종 추천을 한다. 그런데, 큰 문제는 담임교사가 바라보는 영재의 관점과 영재 전문가가 바라보는 그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담임교사들은 영재 특성이 아닌 시험성적(학업성취도), 수상실적, 교실에서의 수행 정도로 영재성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영재의 특성을 가진 학생이 시험 성적이 좋지 않거나 수상 실적이 부족하여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영재성을 가진 학생이 담임교사의 눈에 들지 않아, 마치 에디슨이 담임교사에게 부진한 아이로 인식됐듯이 영재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120명 중에 한 명을 선발해야 하는 실정에서 영재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여러 명의 아이들은 교육지원청에 지원조차 하지 못한다.
영재 선발을 왜 교사가 하나
이 글을 쓰는 본인 역시 3년 전에 학년부장을 맡아 최종 추천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교육지원청이 원하는 기준대로 학년당 3명씩 영재추천을 했다. 그저 눈에 보이기에 영재같이 보이는 아이들, 학습지를 풀어서 제출한 자료를 보고 결정을 했다.
과연 시험 잘 보는 아이들을 위한 영재선발인지, 선행학습을 잘 한 아이들을 위한 영재선발인지, 말 잘 듣고 착실한 아이를 뽑기 위한 선발인지 알 길이 없었지만, 업무의 하나로 일을 이렇게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대다수의 학교가 이런 현실이다. 객관성, 타당성, 신뢰도가 없는 선발을 학교에서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영재교육의 취지와 목적을 보면, 영재성을 보이는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판별하고 그들에게 영재교육의 기회를 주고자 함에 있다. 그러나 지금 서울시교육청이 진행하는 방식은 영재성을 보이는 아이들을 찾는 게 아니라 영재성을 보이지 않는 학생들을 잘라내는 방식이다.
영재성이 보이는 아이들을 최대한 영재교육 전문가나 영재판별 전문가에게 보여야 한다. 그리고 영재전문가가 판별해야 한다.이미 대학의 영재교육기관에서는 수많은 학생들이 지원해도 자체 심사를 거쳐 영재교육 대상을 선발한다.
그러나 교육지원청에서는 영재교육 대상 선발을 학교에 넘기고 있다. 이는 학교에서 걸러진 아이들 몇 명 중에서만 선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뿐, 영재성을 가진 어린이들을 하나라도 더 관찰하겠다는 의지는 없다.
영재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아이들이 스스로 지원을 해도 그 아이들을 만나는 것조차 꺼려한다.
메이저리그의 스카우터들은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을 찾기 위해 독립리그, 일본야구, 한국야구, 대학까지 직접 돌아다닌다. 반면 서울시교육청은 영재를 하나라도 더 찾아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그저 40여억 원의 예산을 집행하기 위해 움직일 뿐이다. 이는 영재교육 도입의 철학과 취지에 전혀 맞지 않다.
또한 많은 교사들이 수업에 집중하고 수업 준비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영재교육 대상자 선발로 인해 과부하가 걸려 있는 실정이다. 각 학교에 영재업무에 대해서 혀를 내두르는 교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좋은 수업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영재업무로 피해를 받는 교사와 아이들이 많다.
이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교육지원청에서 시행령에 맞게, 영재교육의 취지에 맞게 선발 업무를 진행하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영재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아이들을 관찰해 인원 제한 없이 추천하면 된다. 교육지원청에서는 영재전문가가 판별이나 선발을 하면 된다. 이것이 영재성이 있는 아이들에게도 기회를 줄 수 있는 길이며, 교사들에게도 명분도 없이 진행되는, 수업의 질적 저하까지 우려되는 과도한 업무를 줄이는 길이다.
이런 이야기를 지난 2년간 교육지원청에 공문으로 보냈고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 서울시교육청의 연구진들이 모여 있는 공청회에서도 "선생님 말씀이 맞다. 내년에는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답변을 들었지만 결국은 달라진 것 하나도 없이 똑같은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진정한 영재성을 가진 어린이들이 피해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도 선발은 교육지원청에서 영재전문가가 선발해야 한다. 더 이상 학교 위에 군림하지 않는 정말 교육을 지원하는 교육지원청이 되길 바란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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