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인생을 결정하고 수학이 대학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수학은 그만큼 모든 엄마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아이의 수학 교과서를 보고 있자면, ‘내가 학교 다닐 때도 수학이 이렇게 어려웠던가’ 싶을 만큼 수학 문제가 무척 어려워진 것 같다. 이 때문에 주변에 물어보면, 수학은 완벽하게 ‘조기 학원파’와 ‘자기주도학습파’로 나뉜다. 중학교 때쯤부터 벌써 ‘수포자’(수학포기자)가 속출한다고 하니, 이쯤 되면 가히 수학 전쟁이다. 나 또한 아이와 수학 때문에 온갖 에피소드를 겪으며, 이제야 아이의 성향을 알고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
얼마 전, 유치원생인 둘째 아이 친구 엄마 A씨와 함께 놀이터에서 아이들 노는 걸 지켜보다가 ‘첫째 아이 수학 이야기’가 화제가 됐다. A씨의 큰딸은 초등학교 6학년, 우리 딸은 초등학교 4학년이다. A씨는 나에게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으며, “큰딸을 반드시 사고력 수학학원에 보내라”고 충고해줬다. “우리 애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목동으로 전학 왔는데, 그때는 별로 실력 차이가 나지 않았거든요. 5학년이 되면서 수학이 확 어려워지니까 아이가 시험에서 너무 많이 틀린 거예요. 그때부터 학원에 보내고 있는데, 수학은 어렵고 흥미는 안 생기니까 책상에만 앉아 있을 뿐 ‘멍’하니 있어요. 속이 상해 정말 미치겠어요.” 이런 생생한 선배 엄마들의 고민과 충고를 들을 때마다 솔직히 마음이 요동친다. 하지만 예전에는 마음이 조급해지고, 빨리 아이를 학원에 보내야 할 것 같은 불안함이 생겼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난 4년 동안 아이를 관찰해오며 성향을 파악했기 때문에, 선배 엄마와 주변 엄마들의 충고는 단지 ‘조언’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수학의 기초 ‘연산’, 흥미 잃지 않게 해줘야 이 세상 누구도 부모 역할을 배워본 적이 없다. 최근에야 ‘좋은 부모 되기 교육’이라는 것이 있지만, 이 또한 총론만 얘기할 뿐 각론은 모두 초보 부모의 몫이다. 특히 자녀의 학습과 관련해서는 교육도, 정보도 제대로 된 게 없다. 모두가 엄마의 몫이다. 아이 수학교육에 관한 가장 큰 고민은 ‘연산’이었다.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이라는 그 연산. 어른이 되고 나서 보니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그 연산을 익히는 과정이 이렇게 험난할 줄 몰랐다. 초등학교 1학년 초, 아이가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 울먹울먹했다. “학교 가는 게 재미없다”고 말이다. 이유는 수학시간의 연산 때문이었다. 당시 아이의 반에서는 덧셈(한 자리 수+한 자리 수)을 배우고 있었는데, 선생님은 가로 10칸, 세로 10칸에 숫자를 집어넣은 후, 총 100칸에 가로와 세로를 더해 답을 적는 문제를 자주 내주었다. 일명 100칸 연산.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학습지를 통해 웬만한 덧셈과 뺄셈을 기계처럼 척척 해내는 아이들 틈에서 우리 아이는 늘 꼴찌였다. 선생님은 특히 “빨리 푼 사람은 머리에 손을 올리라”고 했다고 한다. 당연히 문제를 늦게 푸는 몇몇 아이들은 반 전체에서 ‘낙인’과 ‘주시’의 대상이 됐다. 분명 비교육적인 상황이었기에, 부모로서 우선 아이에게 ‘네가 수학을 못하는 게 아니다’, ‘빨리 연산을 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라는 자신감을 키워주는 게 급선무였다. 일곱 살 나이로 귀국하기 전, 미국 유치원에서 2년 동안 자연을 벗 삼아 매일 놀면서 자유분방하게 살았던 큰딸을 ‘연산 기계’로 만들기 싫어 방치해뒀더니 이런 사태가 터진 것이었다. 아이에게 “학습지 등록해보자”고 했다. 대교 눈높이수학, 구몬수학, 재능 스스로수학…. 학습지의 종류도 많고 특징과 장단점도 다르고 복잡했다. “학습지 회사는 같아도 교사의 수준이 다르니, 이곳 목동 교사 중 누가 괜찮은지 잘 들어보고 고르라”는 주변의 조언을 듣고 한 학습지를 선택했다. 하지만 학습지를 6년 지속한 사람을 본 적이 드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한 페이지에 (1+2), (1+3), (1+4)와 같은 문제가 10문제 나오면 이를 기계처럼 쭉 풀고 나서, 그다음 페이지에 또 이런 문제가 무한 반복됐다. 매일 하루에 3~4장씩 이 문제풀이를 계속해야 했다. 그야말로 영혼이 없는 연산 기계 만들기였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아이와 나는 “학습지 숙제 다 했냐”, “왜 빨리 안 하냐”며 싸우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그만두자”고 결론을 내리고, 과감히 학습지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됐다. 대신 기탄수학, 기적의 계산법 같은 시중 서점에 나온 계산 책을 사서, 하루에 2장씩 푸는 것으로 부족한 연산을 대신했다. 물론 ‘엄마표 학습’이 대부분 비슷하듯, 제대로 지속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내가 놓친 게 있었다. 4학년이 되면서 주변 선배 엄마의 조언으로 <(상위 1% 아이를 만드는) 초등수학 만점 공부법>(조안호 저)과 <민성원의 엄마는 전략가>(민성원 저) 등 몇 권의 책을 읽어보니, 기초가 필요한 초등수학의 기본은 ‘반복 연습’이었다. 자동차 운전과 연산을 비교한 대목을 읽고 무릎을 쳤다. “운전방법을 이해했다고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기능을 외우지 않으면 자신이 필요할 때 라디오를 켜기도 어렵다. 매번 사용설명서를 봐가면서 운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자동차 기능을 다 외웠다고 운전을 할 수 있을까? 역시 아니다. 이처럼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익숙해지는 것만이 수학 점수를 높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민성원의 엄마는 전략가> p.159) 수영 선수도, 핸드볼 선수도, 축구 선수도 아침마다 달리기를 하듯이 ‘달리기’가 수학에서는 ‘연산’이라는 것이었다. 딸아이의 경우에는 초등 2학년, 3학년을 거치며 연산 실력이 자연스럽게 늘었지만 속도와 정확성은 부족했다. 초등 3학년 겨울방학 때, 주변의 추천을 받아 목동의 한 오피스텔에 있는 수학학원을 찾아갔다. 원래 고등학생만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이었지만, 낮 시간대를 이용해 초등학교 고학년생을 받는다고 했다. 선생님은 A4 용지에 프린트된 수학 연산문제를 내주며, 아이가 다 푸는 동안 시간을 쟀다. 테스트가 끝나고 선생님은 “수학 연산은 암산으로 풀 만큼 속도가 나와야지, 숫자 위에 반올림해서 써놓고 하면 나중에 수능시험 볼 때 시간이 모자라서 문제 못 푼다”며 “암산을 통해 바로 계산이 나올 만큼 속도를 빨리 내야 한다”고 말했다. “학원 등록하자”고 했더니, 아이는 “무서워서 싫다”고 했다. 사실 나도 오피스텔식 학원을 처음 접한 상황이라 좀 무서웠다. 초등학생 학원이야 대규모 학생들이 들락거리니 안전하고 밝은 곳이었지만, 이곳은 낮에도 약간 어두컴컴했다. 결국 “이 학원은 좀 이르다”고 결론 내리고, 우리는 다시 눈높이러닝센터에서 연산을 시작했다(오피스텔 학원은 25만 원이었지만, 이곳은 가격도 3만3천 원으로 저렴했다 ^^). 방문 선생님이 집으로 오는 대신, 일주일에 한 번씩 집 근처 러닝센터에 가서 수학 연산문제를 풀고 오는 것이다. 4학년인 이번엔 달랐다. 아이 스스로 연산을 필요로 하니, “문제 푸는 재미가 있다”며 즐겁게 다니고 있다. 초등 1~2학년부터 사고력 수학 하는 사례도 많아 사실 딸아이는 목동의 일반적인 유형과 좀 다르다. 목동에서는 초등학교 1~2학년부터 사고력 수학학원에 보내는 경우가 많다. 일명 CMS 사고력 수학학원, 소마 사고력 수학학원, 와이즈만 수학학원 등이다. 근처에 사는 대학 동창이 집에 놀러 왔기에 ‘수학 고민’을 털어놓았다. 친구는 “우리 집에 가서 CMS 교재를 한번 보여줄게. 같이 보자”고 했다. 문제집을 열어보고 ‘허걱~’ 했다. 수학문제집에서 일명 ‘심화문제’라고 불리는 서술형 문제들로 가득했다. 이런 식이다. <다음 숫자 카드를 한 번씩 사용해 만의 자리 숫자가 5인 6자리 수를 만들려고 합니다. 만들 수 있는 가장 작은 수를 구하시오. ③ ⑧ ① ⑦ ⑤> (정답은 150378) 이런 유형은 딸아이가 가장 어려워하는 심화문제다. 끊임없이 생각을 해야 하고, 또 생각하는 과정에서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금방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 문제 유형이다. 물론 초등학생 때는 집중력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매주 2~3차례씩 학원에 가서 이런 유형의 문제를 푸는 아이들이 목동에는 매우 많다. 물론 이 친구의 아들은 CMS 수학학원을 즐기는 경우지만, 그렇지 못한 케이스라면 ‘가정불화’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딸아이 친구 엄마 B씨가 그렇다. “첫째 아이 때 수학학원에 제대로 안 보내서인지, 좀 어려운 사고력 수학은 제대로 못 풀어요. 그래서 둘째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사고력 수학학원에 보냈는데, 애가 ‘학원 다니기 싫다’고 떼를 써서 정말 괴로워요. 싫다는 애를 억지로 보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만둬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사실 우리 엄마들도 정답을 모른다. 첫째 아이 때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둘째 아이 때는 좀 다른 방식을 사용해보지만 아이마다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접근방식은 아무 소용이 없을 때가 대부분이다. 사고력 수학학원에 다니면 좋다는 걸 나 또한 모를 리 없건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 건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기본적으로 영어학원에 다니기 때문에, 수학학원까지 다니기 시작하면 아이의 삶에 너무 여유가 없어질 것 같았다. 풍선도 너무 팽팽해지면 터져버리듯이, 힘들게 학교 공부를 마치고 귀가한 아이를 또다시 전쟁 같은 수학학원으로 밀어 넣는 것은 가혹해 보였다. 앞으로 대학 입시를 보려면 중·고등학교 과정이 6년이나 더 남아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주변 상황을 둘러보면 조급해지기 십상이다. 1년 전쯤인가. 이웃집에 살던 C씨와 함께 차를 마셨는데, C씨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줬다. “조카가 초등학교 6학년인데, 거의 매일 새벽 1시에 귀가해요. 특목고를 준비 중이라서, 수학 선행을 일찍부터 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대요. 그래도 아이가 버티니까 잘 유지하는데 너무 위태로워 보여요.”(C씨는 나와 성향이 비슷해 보였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아들은 바둑학원을 즐겨 다녔는데, 초등학교 고학년생이 영어·수학학원이 아닌 바둑학원을 그렇게 즐기며 다니는 경우는 처음 봤다. 결국 C씨는 목동을 떠난다고 했다.) 새벽 1시까지는 아니더라도, 고학년이 되면 저녁 7~8시부터 시작해 밤 10시까지 하는 수학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있다. 평소에는 선행학습을 하다가, 시험기간에는 심화문제 풀이를 해주는 식이다. ‘자기주도학습’이냐 ‘조기 학원’이냐, 선택은 엄마의 몫 결국 내가 선택한 방법은 ‘자기주도학습법’이다. 틈날 때마다 내가 가르쳐주고 스스로 문제집을 풀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워킹맘이 이런 선택을 하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지속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몸이 피곤하고 힘들 때면 학습이 계속 뒤로 밀리게 된다. 하지만 이건 엄마만 각오를 제대로 하면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다. 지난 주말, 아이의 기말고사를 앞두고 함께 수학 공부를 했다. 1만부터 1조까지 있는 큰 수를 읽고 크기를 비교하는 것, 곱셈과 나눗셈(세 자릿수×두 자릿수, 세 자릿수÷두 자릿수), 각도를 재고 삼각형의 종류와 성질을 알아보는 것, 분수의 덧셈과 뺄셈까지 함께 공부했다. 예상문제를 풀게 한 후 채점하고, 딸아이가 틀린 부분을 다시 복습해봤다. 딸아이가 어려워하는 유형이 뭔지 금방 파악됐다. 그걸 짚어주고,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내가 즉석에서 내니까 답을 맞혔다. 아이는 “와~ 풀었다” 하며 기뻐하고 뿌듯해했다. 아직 수학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한 건 아니지만, 두려움을 없앤 것만 해도 큰 수확이다. 결국 ‘자기주도학습파’가 될지 ‘조기 학원파’가 될지 선택은 엄마와 아이의 몫이다. 다만 엄마는 아이의 성향을 파악해야 하고, 그걸 모니터링하면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올해 큰딸을 연세대에 합격시킨 주변 선배 엄마한테 “아이 공부를 어떻게 시켜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다행히 내 방식이 그리 크게 틀리지 않았음을 얘기해줬다. “수학학원은 한번 보내기 시작하면 끊기가 힘들어. 결국 학원에 의지해서 문제를 풀 수밖에 없고, 그러면 점점 아이의 자기주도학습 능력이 떨어지기 마련이야.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공부 습관이 잡힌 다음에, 부족하거나 심화·보충이 필요할 때 학원을 다녀야 효과가 있어. 우리 애는 초등학교 때는 수학학원 안 다니고, 중학교 때부터 다녔어. 물론 특목고에 들어가서 초창기에는 어려워했지만, 스스로 문제를 푸는 습관을 잡아놓으니까 고등학교 가서는 힘들어도 이겨내더라고. 운 좋게 고등학교 3학년 때 만난 수학학원 선생님이 애를 잘 잡아줘서 성적이 많이 올랐지.” 학원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말고, 아이와 의논해가며 내 아이에게 맞는 스타일의 학습방법을 개척해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선배 엄마의 말 중 정말 인상적인 대목이 있었다. “주변에 사고력 수학학원부터 해서 심화학원까지 다닌 경우를 많이 봤지. 그건 결국 수학 만점을 바라보면서 고난도 한 문제 안 틀리려고 보내는 거잖아. 그렇게 하려고 초등학교 때 내내 수학학원을 보내는 건 아이한테 못할 짓 같아. 그 문제는 그냥 틀려버리기로 마음먹었지 뭐.” 결국 선택은 또 엄마의 몫이다. 내 아이를 걸고 도박을 할 수는 없지만, 세상은 점점 엄마들이 도박을 하지 않을 수 없게끔 변해가고 있다. 경쟁의 틀을 깨부수고 대안학교를 선택할 수 없다면 경쟁하되 되도록 아이와 즐겁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삶의 균형을 잘 유지하는 수밖에 없다. 나 또한 매일 그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여성조선 |
2014년 9월 18일 목요일
수학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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