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30일 수요일

모든 문화는 인터넷 문화다

순식간 퍼지는 인터넷은 이 세상 가장 빠른 매개체
K팝 이후 유튜브 '한국 붐'… 구글도 한글 콘텐츠 관심
최고의 文化 원한다면 '문화적 인터넷' 갖춰야
조선일보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
예술가와 엔지니어는 행동 방식도 옷차림도 말투도 다르지만, 예술과 기술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만약 녹음 스튜디오나 전자기타, 트렌지스터 라디오의 발명이 없었다면 로큰롤 음악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요즘 스마트폰만 뚫어져라 들여다보는 아이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는 부모들이 많은데 꼭 걱정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모든 문화는 인터넷 문화가 되어 가고 있다. 소셜 네트워크와 삽시간에 퍼져 나가는 바이럴 비디오를 만들어낸 기술이 좋은 오케스트라 연주와 미술 작품이 전 세계로 확산되는 것을 돕고 있다. 싸이가 전 세계로 진출한 것처럼 한국의 건축이나 문학도 그러지 못할 이유가 없다.

어떤 문화가 고급 문화냐 대중 문화냐, 어떤 문화권이냐, 혹은 규모가 어떠한가는 더 이상 문화적 경쟁의 기준이 아니다. 10년 전 J팝 검색량은 K팝보다 10배나 많았다. 하지만 음악이 온라인화되고 사람들이 라디오나 음반 매장 직원의 추천에 의존하지 않게 되면서 K팝 검색량이 늘었고, 2009년 이후 K팝의 검색량이 큰 격차로 앞서고 있다. 현재 유튜브의 K팝 비디오를 보는 사람들의 90%가 한국 바깥에 있다.

인터넷 시대 이전의 기술은 한국과 같은 나라의 문화 확산을 돕지 못했다. 문화의 대역폭(bandwidth)은 영화 상영관 수, 서점 내 서가 점유율, 그리고 라디오 채널 확보 수 등에 따라 결정됐다. 미국 같은 나라나 대규모 블록버스터 영화 투자가 가능했다. 미국에서 히트하지 못한 음악은 전 세계 성공도 어려웠다. 피자를 전 세계에 대중화한 것도 결국 이탈리아가 아니라 미국이었다.

하지만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인터넷이 모든 문화에 평등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미 많은 외국인이 유튜브의 '한국고전영화' 채널을 방문하고 있다. 이 채널이 없었다면 이들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같은 영화를 비디오 매장에서 찾느라 애를 먹었을 것이다.

문화를 배우는 방식도 바뀌고 있다. 교육 분야에서 한국의 높은 성취도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한국식 교수법을 수출할 수 있다면 스마트폰 수출과 버금가는 성과를 이룰 것이다. 실제로 '클래스팅'이라는 한국 기업은 교사·학생·부모 사이의 유대감을 키우는 스마트폰 앱을 개발하기도 했다. 전 세계의 각종 요리법은 인터넷에서 먼저 전파된 뒤 부엌으로 옮겨간다.

이제 왜 구글이 국립 한글박물관과 손잡고 한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온라인 프로그램을 구축하려는지 이해될 것이다. 유튜브에서 K팝 비디오를 시청하는 사람들은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며, 유튜브에서 한국어 문법을 설명하고 K팝용 한국어를 가르쳐주며 수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이도 있다. 국립 한글박물관의 온라인 프로그램 역시 한글을 배우고 싶어하는 모든 이를 위해 만들어질 것이며, 한글을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할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문화에 대한 접근 방식을 변화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세기 초 독일 시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저렴한 인쇄 비용과 효율적인 우편 시스템 덕분에 '세계 문학'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괴테를 흥분시켰던 것은 "더 고차원적이고 유익한 성과를 위해 스스로를 헌신했던 사람들의 노력이 좀 더 쉽게, 널리 알려질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두 세기가 지난 지금, 모든 문화를 온라인에서 즐길 수 있는 변화를 목도하면서 똑같은 이유로 우리는 기대감에 차 있다.

싸이의 비디오를 본 사람 100명 중 한 사람이 한국 문화를 배우려 한다고 치자. 인터넷 이전 시대에는 이 숫자가 크게 의미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강남스타일 비디오 시청자 10억명의 1%는 1000만명이 넘는다. 이는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연간 방문객 수의 두 배다. 한국에 있는 문화유산 큐레이터는 평생 한국에 여행 올 기회가 없는 어린이들이나 한국에 가볼 생각은 없지만 갑자기 한글이라는 낯선 글자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 그리고 한글을 배우면 멋지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다가설 기회를 갖게 됐다. 모든 문화는 인터넷 문화다. 따라서 최고의 문화를 원한다면, 풍성하고 문화적인 인터넷을 갖는 데 주력해야 한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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