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엄마에게나 내 아이는 영재다. 그러나 아이의 재능을 키우는 교육은 말처럼 쉽지 않다. 사교육 없이 세 아이를 영재로 키운 평범한
엄마가 있다.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는’ 건 쉽지만 어려운 비법 안에 사교육에서 미처 찾을 수 없던 비밀이 숨어
있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방학이 없다. 학기 중 부족했던 부분을 보충하거나 다음 학기 혹은 내년에 배워야 할 과목을 선행 학습한다. 여기에 영어까지 배우느라 학기 중보다 더 바쁘다. 서안정 씨의 아이들은 그런 흐름에서 한참을 빗겨서 있다. 오후 3시. 다른 아이들이라면 학원에서 공부하느라 바쁠 시간이지만 현관문을 열자 현지(13)와 하윤(11)이가 달려와 낯선 손님을 맞았다. 첫째 연수(14)가 학교 대표로 출전하는 과학대회 준비를 위해 집을 비웠을 뿐 현지와 하윤이는 사교육 없는 진짜 방학을 즐기고 있다. 시키지 않아도 냉장고 문을 열어 손님에게 낼 매실차를 직접 타는 아이들에게 엄마의 잔소리는 필요 없었다.
책이 가득한 거실에는 TV가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의 방에는 갖가지 놀 거리가 넘쳤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의 유일한 보충수업은 인터뷰 중에도 두세 번은 배달된 커다란 박스 속 책이었다. 아이들의 독서량이 워낙 많아 매번 책을 사는 대신 대여업체를 통해 빌려보고 있다.
“방학이면 하루 종일 게임만 할 때도 있어요.” 웃으며 말하는 서안정 씨는 여유가 넘쳤다. 잔소리하지 않는 엄마, 자유롭게 방학을 즐기는 아이들. 평범하지만 요즘 어느 집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이 특별한 장면은 세 아이를 영재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첫째 연수는 사교육 한 번 없이 인천국제고등학교 인문영재원에 합격해 ‘공교육의 희망’이라는 가슴 벅찬 애칭을 얻었고 둘째 현지와 막내 하윤이도 단위학교 영재학급에 다니고 있다.
내성적이던 초보엄마, 수다쟁이 육아달인 되기까지
십여 년 동안 세 아이를 키우며 자연스레 육아 달인이자 남다른 철학을 가진 교육 전문가가 됐지만 처음은 쉽지 않았다. 아무리 많은 육아서적을 읽고 전문가의 강의를 들어도 쉽사리 정답은 찾아지지 않았다.
“대학 졸업 2년 후인 26살에 결혼했어요. 이듬해인 27살에 첫아이 연수를 낳았고 그다음 해에 현지, 서른에 막내 하윤이가 태어났죠. 각각 18개월, 19개월 터울로 세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벅차고 힘들었어요. 책에서 본 육아와 현실은 정말 달랐어요. 아이들을 안고 많이 울었죠.”
돌이켜보면 누구보다 욕심이 많은 엄마였다. 영재를 낳아 키우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6개월이 된 연수를 무릎에 앉혀 책을 읽히고 아직 어린 세 아이와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해 체험학습을 다녔다. 그 결과 급성 디스크가 찾아왔다. 다른 사람의 교육법을 따라하는 데 그쳤던 서안정 씨는 시행착오를 온몸으로 겪으면서 교육의 방향을 바꾸어나가기 시작했다.
“영재를 키우고 싶었어요. 보통 영재가 아니라 아이큐는 150을 넘고 조금만 공부해도 우수한 성적을 내는 그런 천재요. 연수를 키울 때는 지적인 욕심을 많이 부렸죠. 그런데 아이 셋을 키우다보니 서서히 교육관이 변했어요. 전업주부였지만 글을 쓰거나 책 집필 작업을 계속했기 때문에 육아에 매진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죠. 자연스럽게 놀이와 육아를 접목한 교육을 하게 됐어요.”
Why not? 서안정 씨가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던진 질문이다. “왜 집안일을 하면서 아이를 교육하면 안 돼?”, “왜 놀이를 통해 교육할 수 없는 거야?” 몇 번이고 되물으며 놀이에 교육을 접목했더니 학습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아이들이 걷기 시작하면서 아이의 뒤를 따라다니는 것만으로 교육이 가능했다. 욕심 내서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 대신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유도했다. 세상과 아이를 연결해주는 다리가 되려고 노력했다.
“아이의 행동을 제한하지 않고 따라 걸으면서 끊임없이 질문을 하기 시작했어요. 심지어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나이였던 막내와도 대화를 시도했죠. 우리가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하는 나이의 아이들도 분명 인지하고 이해하는 부분이 존재해요. 엄마가 수다쟁이일 때 아이가 똑똑하게 자란다는 말을 신뢰했죠. 끊임없이 말해주고 끊임없이 보여주고 싶었어요.”
믿고 기다리면 아이는 성장한다
영재를 만든 서안정 씨의 특별한 교육법 중 하나는 식탁 대화다. 식탁 벽면 한쪽에 스케치북이 걸려 있다. 영화를 보고 오면 포스터를 붙인 후 등장인물 위에 빈 말풍선을 그려 새롭게 이야기를 만들어본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단어를 스케치북에 적어 새로운 문장을 만들거나 동화책을 소재로 토론회를 열기도 한다. 엄마는 심판자가 아니라 충실한 참여자다. 아이들 역시 학습이나 토론이 아니라 놀이로 받아들인다.
“식탁 대화를 했더니 논리적으로 말하는 습관이 길러지고 상상력이 넓어졌어요. 물론 맹목적으로 따라가기만 해서는 안 돼요. 자아가 형성되기 전에는 부모가 반 발 정도 앞선 상태에서 아이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안내자 역할을 해야 해요.”
놀이교육의 관건은 새로운 정보를 반복해 노출하는 것이다. 강제적으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노출을 통해 원리와 핵심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다. 서안정 씨는 애니메이션이나 미드를 통해 아이들이 영어에 친숙하게 만들었다. 한글 자막을 보여줬음에도 수차례 반복하자 귀가 트였다. 식초와 베이킹파우더가 든 병 입구에 풍선을 씌운 후 풍선이 부풀어가는 모습을 보며 과학의 원리를 이해하게 했다. 굳이 식초와 베이킹파우더가 만나면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직관적인 경험 위에 체계적인 지식이 더해질 때 폭발력을 갖게 된다. “물론 개개인의 능력 차이는 있어요. 한 번만 노출해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아이가 있는 반면 열 번 반복해야 받아들이는 아이가 있죠. 그러나 아이에게 자극을 주면 분명히 결과로 나타나요. 아이를 믿고 기다리면 돼요. 늦게 성과가 나타나는 아이는 있어도 나타나지 않는 아이는 없어요.”
사교육 없이 전교 1등하는 아이,
잔소리 없이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
특별한 놀이교육은 기대 이상의 성과로 나타났다. 첫째 연수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면서 ‘영재’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현지와 하윤이도 공부 잘하는 영재들이다.
“연수는 모든 영역에서 뛰어나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어요. 현지와 하윤이도 공부를 안 하는데 1등을 하니 주위 학부모들이나 친구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많이 물어봐요. 어떤 학원을 다니느냐고 물을 때면 난감하죠. 사교육은 한 번도 받아보지 않았으니까요.”
처음부터 사교육을 배제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의 재능에 맞춰 사교육을 시키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상황이 허락지 않았다.
“초등학교 입학할 시기에 남편의 일이 없어졌어요. 자극을 조금만 더 주면 잘할 것 같은데 경제적 여유가 없으니 시킬 수 없었어요. 처음에는 아쉽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이내 마음을 바꿨어요. 할 수 없는 것을 아쉬워하지 말고 줄 수 있는 것에 집중했어요.”
아이들과 최대한 대화를 많이 나누고 놀이를 통해 관심을 끌어냈다. 잠재력과 호기심을 키우는 놀이육아의 결과는 아이들의 성적이 말해주고 있다.
“사실 아이 교육법을 물어보면 대답하기 난감해요. 사교육을 받지 않는다고 대답하면 타고난 애들이라고 생각할 테지만 그렇지는 않아요. 어렸을 때부터 가능성과 잠재력을 키우는 교육을 했고 놀이를 통해 학습과 연계했어요. 이런 훈련을 받은 아이들은 스스로 관심을 확장하고 채워나가요.”
무엇보다 아이들 스스로 공부에 대한 의욕이 생긴다는 점이 중요하다. 엄마가 나서서 학습을 강제하거나 잔소리하지 않으니 아이들이 공부를 하고 싶어 한다. 첫아이 연수는 중학교 입학할 즈음해서 스스로 특목고를 목표로 차근차근 꿈을 향해 나가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존중받고 자란 아이들이라 주관이 뚜렷하고 자존감이 높아요. 다른 아이보다 공부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저절로 하던걸요. 큰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반장이 됐는데 시험공부를 안 해 수학에서 88점을 받았어요. 저는 혼내지 않았지만 옆자리 말썽쟁이 친구가 95점을 받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처음으로 문제집을 사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스스로 공부하더니 다음 시험에서는 만점을 받았죠.”
영재를 위한 교육 아닌 아이의 미래를 위한 놀이교육
영재에 대한 욕심이 남달랐던 서안정 씨지만 지금은 교육의 정의가 달라졌다. 100점을 맞거나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아이들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영재라는 호칭은 아이들의 보답일 뿐이다.
“연수가 영재원 수업과 과학대회 준비로 방학 내내 바빠요. 여름 방학이면 매일 12시에 일어나던 아이에게는 쉽지 않은 과정이죠. 초등학교 3~4학년 때부터 학원을 다니며 특목고를 준비한 아이들과 경쟁하는 것도 부담스러워하고요.”
좋아하는 일 하나를 위해 나머지 열을 참아야 한다는 한 연예인의 말을 기억하고 있던 연수가 최근 서안정 씨에게 물어왔다. “나는 아직 14살밖에 안돼서 목표를 위해 10가지를 참아내는 일이 어렵다”고.
서안정 씨는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채찍을 들지 않았다. 그 대신 “흔들리면서 커야 단단해져. 넌 흔들리고 있으니 잘 크고 있다는 뜻이야”라고 위로했다. 설사 연수가 지금 목표로 한 특목고에 가지 못하거나 모두가 부러워하는 번듯한 직업을 갖지 않아도 흔들리며 자란 아이의 뿌리는 누구보다 단단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엄마의 욕심대로 아이를 괴롭히지 않는 것이 서안정 씨의 교육이다.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사교육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올지도 몰라요. 아이가 원한다면 사교육을 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좋은 고등학교, 대학교에 가기 위해 혹은 엄마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사교육을 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잠재력과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것이 중요하죠.”
최대한 많이 칭찬하고 행동 하나하나를 지지한다. 자존감에 상처를 주는 말은 절대 금물이다. 부모의 든든한 지지를 받은 아이는 좌절을 맛보는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돌아서 걸어간다. “아이의 긴 인생을 생각하면 지금의 1등, 100점은 중요하지 않아요. 영재는 태어나는 것이냐, 만들어지는 것이냐에 대한 학자들의 답도 반반으로 갈리더군요. 내 아이가 영재로 타고났으면 감사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영재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잠재력을 키워주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 모든 아이들은 영재예요.”
서안정 씨가 추천하는
‘내 아이 영재로 만든 초간단 놀이육아’
꼬불꼬불 지점토 꽃병
준비하기 빈 유리병, 지점토 2~3개, 찰흙판, 찰흙칼
놀이하기 찰흙판을 깔고 지점토를 떼어 양 손바닥으로 비빈 후 유리병에 감싼다. 여러 번 반복하면 예쁜 꽃병이 만들어진다. 아이가 원한다면 물감으로 꽃병을 예쁘게 색칠해도 좋다.
추천 이유 유아기는 뇌가 발달하는 시기다. 뇌의 발달은 손과 관련이 깊다. 손으로 조물조물해 만들기를 하면 뇌의 발달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찰흙놀이는 아이들에게 안성맞춤 놀이다. 보통 아이들은 한 가지에 집중하는데 찰흙을 주면 비비기만 한다. 한 가지 행동만으로 예쁜 꽃병을 만들 수 있게 지도하면 아이에게 성취감을 선사할 수 있다.
알쏭달쏭 추측놀이
준비하기 상자, 보자기, 다양한 물건들
놀이하기 커다란 상자 안에 다양한 촉감과 형태의 물건들을 넣고 보자기로 덮으면 모든 준비가 끝난다. 보자기 안으로 손을 넣어 손에 닿는 물건 중 하나만 골라 만지게 한다. 물건 이름을 외치고 상자 밖으로 꺼내 추측한 것이 맞는지 확인한다. 지시하는 물건을 손으로 만져 찾는 형태로 놀이 방법을 변경할 수도 있다.
추천 이유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로 아이들이 재미있게 놀 수 있으며 흥미를 일으킬 수 있다. 또 상상력과 이를 바탕으로 추론하는 논리적인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
이불 애벌레
준비하기 이불
놀이하기 각자 이불을 돌돌 감고 애벌레가 되어 방바닥에 엎드린다. 목표 지점까지 누가 빨리 기어가나, 또는 누가 늦게 기어가나 게임을 해본다.
추천 이유 아이들이 즐겁게 함께할 수 있는 놀이다. 자신을 특정 인물이나 생물로 상상하게 만드는 놀이는 아이의 세계를 풍부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거미줄 통과하기
준비하기 털실, 투명테이프, 꼬마풍선, 칼
놀이하기 집 안 곳곳에 털실로 거미줄을 친다. 투명테이프로 고정해도 되고 의자 다리 등에 묶어도 좋다. 거미줄 여기저기에 꼬마풍선을 매단 후 거미줄을 건드리지 않고 줄 안에 들어가 꼬마풍선을 모두 터뜨린다. 시간을 재어 누가 먼저 터뜨렸는지 게임을 해도 좋다.
추천 이유 가족과 함께 특별한 기억을 남기면 아이들의 감수성이 풍부해진다. 스릴 넘치는 게임을 통해 즐거움을 줘야 한다.
헝가리 도자기 만들기
준비하기 사발면 뚜껑, 지점토, 검은색 펜, 헤어드라이어, 물감, 붓, 팔레트, 물, 물통.
놀이하기 사발면의 커다란 플라스틱 뚜껑 안에 얇게 민 지점토를 채운다. 헤어드라이기어로 지점토를 말린 후 검은색 펜으로 지점토 위에 그림을 그린다. 물감으로 색칠해 예쁜 도자기를 만들 수 있다.
추천 이유 도자기박물관에 간 날 다양한 세계의 도자기를 보다가 아이가 만들고 싶어 하는 헝가리 도자기를 함께 만들었다. 꼭 도자기가 아니더라도 박물관 등의 체험학습을 다녀온 후 손쉽게 전시물품을 만들어보면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다.
여성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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