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30일 수요일

‘제왕의 리더십’ 정수는 ‘격물치지’ 格物致知

대학’ 번역본은 대부분 ‘예기’ 원문이 아니라 주희가 쓴 ‘대학장구’를 텍스트로 삼았다. 서울대도 ‘대학장구’를 번역한 성백효의 ‘대학중용집주’(전통문화연구회)를 추천한다. 남회근의 ‘대학강의’(씨앗을뿌리는사람)는 ‘예기’의 원문을 텍스트로 삼았는데 글자를 고치고 첨가한 주자를 질타한다.
매경이코노미

“모든 위대한 작가들은 다량의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소량의 언어를 표현했다.”

쇼펜하우어가 쓴 ‘문장론’에 나오는 말이다.

쇼펜하우어는 역사상 위대한 저술은 책의 분량이 방대하지 않았다고 얘기한다. 노자의 ‘도덕경’은 5000자에 불과하다.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도 분량이 많지 않다. 중국에서 제왕의 통치학이 돼온 ‘대학’은 ‘도덕경’의 절반도 안 되는 1751자로 이뤄져 있다. 원문 전체를 한글로 번역하면 고작 6페이지에 불과하다.

이 짧은 문장으로 이뤄진 ‘대학’은 ‘예기’(49편 중 42편)에 묻혀 있다 주희에 의해 ‘중용’과 더불어 ‘사서(四書)’의 한 체계로 끌어올려지면서 12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화려하게 제왕학의 텍스트로 부활했다. 서양의 제왕학인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대학’이 사서로 봉해진 시기보다 300년 후에 세상에 나왔다.

당대 이전까지는 중국에서 오경(시경, 서경, 역경, 예기, 춘추)이 중심이었다. 그러다 송대에 이르러 주희가 ‘대학’과 ‘중용’을 ‘예기’에서 분리해 사서 체계를 만든 이후 사서는 중국뿐 아니라 조선에서 유교 사상의 중심을 이뤄 왔다.

그런데 주희는 ‘예기’에 있던 ‘대학’에 ‘메스’를 가했다. 멋대로 128자를 추가하고 해설을 붙인 ‘대학장구’를 지었다. 이게 불경죄일 수 있지만 되레 ‘주자’로 칭송됐다.

주희는 제목이나 분류 없이 원문의 나열로만 이뤄진 ‘예기’의 ‘대학’을 경(經) 1장과 전(傳) 10장으로 나눴다. ‘경’은 공자의 사상을 제자 증자가 기술한 것이고, ‘전’은 증자의 생각을 그의 문인이 기록한 것이라고 했다. 주희는 삼강령과 팔조목으로 전 10장을 다시 분류했다. 삼강령이란 대학의 첫 문장인데 ‘명명덕(明明德) 친민(親民) 지어지선(止於至善)’이다. 팔조목이란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 등이다.

삼강령과 팔조목은 ‘장자’에 나오는 ‘내성외왕(內聖外王)’의 도를 제시하고 있다고 주희는 말한다. 내성외왕이란 개인적으론 성인이 되고, 대외적으로는 어진 지도자가 돼서 천하를 태평하게 함을 목표로 삼는다는 말이다. 즉 대학의 전체 내용을 요약하자면 군자(제왕)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격물치지로 사물을 탐구해서 앎을 확장하고, 이어 성의정심을 실천해 수양을 쌓으면 절로 집안을 다스릴 수 있고 그 연후에 치국평천하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주희는 대학의 글자가 잘못됐다며 수정을 가하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첫 문장에 나오는 ‘친민(親民)’이다. 주희는 ‘예기’ 원본에 나오는 ‘친’을 ‘신(新)’으로 바꿨다. 신민은 백성들이 도덕적인 감화를 받아 풍속이 아름답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주희는 또 격물치지(전 5장)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보망장(補亡章)’을 만들어 격물치지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첨가했다. 전 5장은 원래 6자로 이뤄졌는데 보망장 128자가 추가되면서 134자로 크게 늘어났다. 그 핵심 내용은 격물치지에 대한 해석이다.

“그러므로 ‘대학’을 처음 가르칠 때는 반드시 학자들에게 천하의 모든 사물에 나아가 이미 알고 있는 이치를 더욱 궁구해서 극진한 데까지 이르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힘쓰기를 오래 해 하루아침에 환하게 깨달아 모두 알게 되면 모든 사물의 겉과 속, 정밀한 것과 거친 것에 이르기까지 도달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요, 내 마음의 온전한 본체와 큰 쓰임이 밝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을 사물의 이치에 도달했다고 하며, 이것을 앎이 지극하다고 하는 것이다.”

60세에 과거 시험에 합격한 조선 후기 김득신이라는 선비는 이 보망장을 2만번 읽었다고 한다. 주희가 ‘대학’에서 말하고자 한 핵심 내용인 격물치지에 대한 해석이 여기에 들어 있다고 본 것이다. 격물치지는 바로 ‘성리학’의 핵심이 되는 내용이다. 이는 명대에 과거 시험의 텍스트가 되면서 필독서가 됐다.

왕수인은 격물치지를 달리 해석해 양명학을 창시했고 이후 청대의 양무운동(서양문물을 수용해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한 근대화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왕수인은 인간의 의지를 성실하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함으로써 격물치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주희의 격물치지에 대한 해석을 맹종한 결과, 중국 역사상 무려 600여년에 걸친 사상적 암흑시대가 초래됐다는 비판도 있다. 조선도 주희의 해석 이외에는 그 어떤 주석도 용납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중국이든 조선이든 과거 시험에서 ‘격물치지를 논하라’는 과제가 제시됐다면 주희의 해석을 충실히 써야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왕수인의 해석을 따른다면 ‘영점’ 처리되고 심지어 이단으로 몰려 과거 시험 응시 자격조차 박탈될 수 있었다.

이처럼 ‘대학’은 중국뿐 아니라 성리학을 숭상한 조선에서까지(중기 이후) 양 국가의 사상계와 정치계를 지배했고 통치학의 근간이 됐다.

필자는 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신독(愼獨)’이라는 말을 접하고 이를 항상 마음에 새기고자 했다. ‘대학’에는 신독을 설명하는 이런 구절이 들어 있다.

“자신의 의지를 성실하게 한다는 것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선을 좋아하기를 마치 예쁜 여자를 좋아하듯이 하는 것,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홀로 있을 때 신중해야 한다.”

‘대학’에서는 ‘진실로 마음속에 있는 것은 밖으로 드러난다’고 엄중하게 말했다. 이를 두고 증자는 “사방에 눈이 있어 자신을 지켜보며 사방에 손이 있어 자신을 가리키고 있으니 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라고 했다.

제왕의 통치학이 담긴 ‘대학’의 최종 목적지는 ‘수신제가’에 이어 ‘치국평천하’다. 격물치지에 이어 성의정심으로 실천을 해서 수신에 이르면 집안을 능히 다스릴 수 있고 치국평천하의 자질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리더, 즉 군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로 ‘대학’의 마지막 장에선 ‘혈구지도(絜矩之道)’를 든다. 혈구지도는 ‘곱자를 갖고 재는 방법’이라는 뜻으로, 자기의 처지를 미뤄 남의 처지를 헤아리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군자에게는 ‘자신의 마음으로 미뤄서 헤아려 보는 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아랫사람의 위치에 있을 때 윗사람에게서 본 싫어하는 모습으로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며, 아랫사람에게서 본 싫어하는 모습으로 윗사람을 섬기지 마라.”

말하자면 군자는 혈구지도의 단계에 도달해야 제가치국평천하에 이른다는 의미다. 그때 군왕은 ‘백성의 부모’가 될 수 있다.

‘혈구의 도’는 재물에서도 드러나는데 “어진 사람(仁者)은 재물을 흩어서 백성을 얻고, 어질지 못한 사람은 자신을 망쳐서 재물을 늘린다”고 했다. 재물을 흩는다는 의미는 재물을 베푼다는 말이다. 자신을 망쳐서 재물을 얻는다는 말은 뇌물 등을 주고받으면서 검은 부를 축적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혈구의 도는 또한 논어에 나오는, 자신의 처지를 미뤄 남의 처지를 헤아린다는 점에서 ‘추기급인(推己及人)’과,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과 상통한다. 결국 증자의 ‘대학’은 스승 공자의 가르침으로 환원된 셈이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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