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30일 수요일

유추색만공산(留秋色滿空山)

세계일보
시월의 마지막 날이다. 만추(晩秋)다. 시간의 빠른 흐름을 새삼 느끼게 한다.

봄날의 화사함, 여름날의 무더위와 청량한 빗줄기, 만산홍엽(滿山紅葉)의 가을을 추억으로 남긴 채 초겨울로 접어들고 있다. 한 줄기 바람에 얼마 남지 않은 단풍 든 나뭇잎들은 힘없이 허공을 맴돌다 영겁의 세월을 살 부엽토로 돌아간다. 사계의 순환이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고, 또 흐를 것이다. 그래서 옛 시인과 문사(文士)들은 가을을 주제로 즐겨 노래했다.

원나라 때 이름난 화가인 황공망(黃公望)의 시 ‘가을 산(秋山林木圖)’은 상징적이다. “서쪽 강기슭 뉘 집 정자일까/ 바위 사이사이 앙상한 나무들 가지가 얽혔네/ 낙엽은 강물 따라 흘러가버리고/ 온 산에 가을빛만 짙게 남았네(誰家亭子傍西灣 高樹扶疏出石間 落葉盡隨溪水去 只留秋色滿空山).”라고 회한을 실었다. 늦가을 강가의 오뚝한 정자, 바위틈에 얽히고설킨 앙상한 나뭇가지들, 그리고 강물 따라 흘러가 사라진 휑한 가을 산의 모습을 한 폭의 그림처럼 사실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허전한 마음, 인생무상의 시름을 달래줄 이 계절에 술 한 잔이 없을쏜가. 당나라 때 대문장가 백거이(白居易)의 시 ‘단풍잎을 마주하여(醉中對紅葉)’를 보자. “늦가을 찬바람 을씨년스러운 나무/ 술잔 마주하고 앉은 쓸쓸한 노인/ 취한 모습 서리 맞은 나뭇잎 같아/ 불그레하지만 청춘은 아니라네(臨風抄秋樹 對酒長年人 醉貌如霜葉 雖紅不是春).”

늦가을과 노인, 취한 얼굴과 단풍잎, 단풍색 비록 붉지만 봄꽃이 아니고, 노인의 취한 얼굴 홍조를 띠었지만 청춘이 아니라는 대비법이 뛰어난 한시다. 나이는 들어도 마음은 청춘이라는데 시인 백거이는 물론 세상사람들은 노인을 황혼녘에 서 있는 인물이자 ‘마지막 잎새’로 볼 수밖에 없기에 더욱 애잔한 느낌을 주고 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초연한 자세는 원숙미를 더한다. 성장의 여름이 지나면 그 열매를 거두는 가을이 오고, 쉬는 겨울이 다가와 자연의 평형(Homeostasis)이 유지되는 게 우주 이치인 것을!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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