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0일, 전세계 천문학자와 천체물리학자의 이목을 끈 발표가 있었다.
유럽우주기구(ESA)가 우주로 쏘아 올린 과학위성 ‘플랑크’의 관측 결과다.
플랑크는 태초의 우주가 남긴 흔적을 연구했는데, 우주의 나이는 물론 구성 성분까지 기존 연구와 조금씩 다른 결과를 보여줬다. 출생부터 성장 과정, 성격까지 알려주는 우주의 지문이 바뀌는 걸까.
팽창우주 논쟁에서 대폭발까지
그의 이름이 우주 관측위성에 붙은 것은 이 위성이 우주에서 가장 큰 흑체복사를 관측하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바로 우주 전체다. 1940년대 후반만 해도 우주가 대폭발로 생겼다는 생각은 조롱의 대상이었다.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지도 20년이 지난 시점이었기에 팽창 자체는 어느 정도 사실로 받아들여졌지만, 이는 또 다른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지금 팽창하고 있다면,
먼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갈 경우 어떻게 될까. 지금보다 작게 쪼그라들지 않을까. 또 똑같은 에너지가 좁은 데 복작복작 모이면 지옥 같이 뜨거워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우주가 초기에 활활 타는 뜨거운 상태에서 작게 시작했고, 팽창하면서 지금의 크기에 이르렀다는 아이디어가 됐다.
구소련에서 망명해 미국에서 연구하고 있던 핵물리학자 조지 가모프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이 우주론을 진지하게 믿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가모프는 러시아에서 공부할 때 알렉산더 프리드먼이라는 천체물리학자에게 배웠는데, 프리드먼은 1920년대 초, 세계적인 대가 아인슈타인이 ‘우주는 팽창하지도 수축하지도 않는다’라는 정상우주론을 주장할 때 ‘우주가 팽창한다’는 팽창우주론을 주장했던 학계의 왕따였다. 물론 허블의 발견 이후 아인슈타인은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20년이 지나도록 팽창우주론은 인기가 없었다.
팽창우주론이 인기가 없는 것은 우주가 변한다는 생각이 뭔가 불안했기 때문이다. 팽창하는 우주는 에너지든 물질이든 점점 희박해질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1940년대 후반에는 특이한 정적 우주론이 유행하고 있었다. 프레드 호일 등 주로 영국 학자들이 주도한 이론으로,
이미 대세가 된 팽창 자체는 부정하지 않지만 대신 우주의 밀도도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일종의 수정된 팽창우주론이었다.
이렇게 하면 우주가 굳이 좁아터진 공간에서 뜨겁게 태어났다고 볼 필요가 없어지고, 우주에 극적인 ‘시작’이 있다는 생각도 버릴 수 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팽창에 발맞춰 멀어지고 성겨진 은하 사이에 물질이 새로 생기면 됐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 기괴해 보이지만, 당시에는 대폭발 자체도 괴상망측한 우주론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호일은 대폭발은 아예 과학이 아니라 유사과학이라고까지 했다) 이 이론을 지지하는 학자도 꽤 있었다. 아래 사진을 보면 가모프는 두꺼운 안경을 쓰고 2:8로 머리 가르마를 넘긴 꽤 고지식하고 점잖은 학자 같아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무척 발랄하고 괴팍한 성격이어서 농담도 잘 했고, 장난으로 제자를 자주 골려주기도 했다. 재주도 많아서 과학 그림책을 출판했는데, 인기가 좋아서 시리즈까지 냈다. 독창적인 과학 교양서도 냈는데, 그 안의 삽화도 직접 그렸다. 국내에도 번역돼 있는데(‘1, 2, 3 그리고 무한’), 그림 수준이 상당하다.
가모프는 약간 사무라이 같은 기질도 있어서 다른 학자들과 싸움도 잘 했다. 특히 호일을 비판하는 데 그 기질을 발휘했다. 그는 “정적 우주론이 영국에서 인기가 높은 것은 영국의 아들들이 제안했기 때문일 뿐 아니라, 유럽에서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게 영국의 정책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상당히 정치적으로 들리는 가모프의 말은 영국을 들끓게 했고, 결국 호일이 1949년 영국 BBC 방송에 나와 가모프가 지지하는 ‘시작이 있는 팽창우주론’을 비판했다. 호일은 ‘뻥!’ 이론이라고 표현하며 놀렸는데(영어로 빅뱅), 역설적으로 이 말이 유명해져서 시작이 있는 팽창우주론의 이름이 됐다. 바로 ‘뻥! 이론’, 빅뱅 이론이다.
핵물리학자가 예견한 아기 우주의 지문가모프는 1948년, 제자 랄프 앨퍼, 동료 한스 베테와 함께 빅뱅과 관련한 유명한 논문을 발표했다.
한 쪽짜리 보고서의 제목은 ‘화학 원소의 기원’이었다(일명 ‘알파-베타-감마 논문’. 저자의 이름을 보라). 일종의 연구 요약본인 이 논문에서 가모프와 앨퍼는 원시 우주에서 원자핵이 중성자를 하나씩 포획해 우리가 아는 원소들이 연쇄적으로 나타났다고 밝히고, 이를 이용해 우주에 존재하는 원소의 비율까지 예측했다. 나중에, 이 논문에서 예측한 것과 달리 많은 원소들이 빅뱅이 아니라 별 안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밝혀져 그의 이론이 완전히 옳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원소인 수소와 헬륨의 비율을 거의 정확히 맞춰서(둘이 합쳐 물질의 99%를 차지한다), 빅뱅이라는 우주의 시작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증명해 줬다. 현재는 이들을 포함해 가벼운 원소 일부(리튬 동위원소)는 빅뱅에서 만들어졌다고 보고 있다. 이 과정을 ‘빅뱅핵합성’이라고 부르는데, 나중에 베릴륨보다 더 무거운 다른 원소가 항성 안에서 만들어졌다는 ‘항성핵합성’과 함께 물질의 기원을 알려주는 중요한 이론이 됐다. 이후 연구를 종합해 보면, 빅뱅핵합성은 빅뱅 이후 약 3분 뒤 일어난 일이다(아래 인포그래픽 참조).
빅뱅핵합성은 꽤 정교한 이론으로 발전했다. ‘뻥’이라는 조롱까지 들은 빅뱅 이론은 신이 났다. 빅뱅핵합성 덕분에, 이제 공상 같은 면을 벗고 뭔가 예측과 관측, 증명으로 이어지는 ‘이론다운 이론’이 되는 듯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진척은 느렸다.
빅뱅핵합성 이후의 우주는 극적인 사건 없이 비교적 잔잔한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우주는 수소, 헬륨 원자핵과 전자, 광자 등이 뒤죽박죽 섞인 상태로 혼탁하게 있었다. 천문학자들은 당시 우주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태였다고 본다. 빛을 이루는 광자가 있지만 원자핵과 전자 밀도가 높아서 빛이 조금도 뻗어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해에서 흙이 가득 섞인 물을 한 컵 떠서 안을 들여다보면 안을 볼 수 없다. 그나마 산란된 빛이 있어 밝은 느낌은 받을 수 있지만, 초기 우주에서는 산란 정도가 심해 아예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빛의 입자는 존재했지만, 빛은 없는 이상한 암흑 시대가 이어졌다. 38만 년이 지나서야 드디어 플랑크 관측위성이 관심을 갖는 우주의 ‘지문’이 등장한다.
우주의 알에서 빛이 태어나다
38만 년 전, 온도가 3000K(약 2727°C) 정도로 낮아지자 드디어 원자핵과 전자가 결합했다. 갑자기 우주의 물질 밀도가 확 낮아졌다(암흑물질은 광자와 전혀 상호작용이 없어 상관이 없다). 빛의 입장에서는 우주의 안개가 걷힌 것과 같았다. 드디어 물질을 뚫고 직진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광자가 최초의 빛을 낸 순간이다. 이 빛은 사라지지 않고 우주에 계속 남아 있고, 관측도 가능하다. 이게 바로 플랑크 위성이 관측한 우주마이크로파 배경복사다. 그런데 왜 ‘마이크로파’ 배경복사일까. 마이크로파는 에너지가 낮은 저주파 전자기파다. 전자레인지에서 음식을 데우는 데나 쓸 정도다. 여기에 다시 가모프가 등장한다. 그와 제자 앨퍼는 함께, 혹은 따로 각각 최초의 빛의 온도를 예견한 연구를 했다.
그들은 입자의 혼탁한 바다를 뚫고 빛이 탄생한 뒤에도 우주가 계속 팽창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우주가 팽창하면, 관찰자인 우리 입장에서는 우주가 멀어지는 것으로 느껴진다. 우주의 나이인 138억 년 동안 멀어졌으니 광자가 있는 공간 역시 멀어지고 있다. 광자는 도플러효과를 겪어 파장이 길어지고 에너지는 낮아진다(적색편이). 가모프 팀의 계산에 따르면, 우주의 나이(당시는 우주의 나이가 아직 138억 년이라는 사실을 몰랐으니 더 짧았다) 만큼의 시간을 지나 관찰자에게 도달한 빛은 에너지가 낮아져 온도가 5K(약 영하 268°C)까지 떨어졌을 것으로 예측됐다(이 값은 제자 앨퍼가 한 연구 결과였다).
이것을 증명하는 방법은 측정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모프 팀이 이 계산을 한 1940년대 말에는 불가능했다. 복사에너지를 측정해 우주의 온도를 재면 되지만, 도대체 어떻게? 온도계를 들고 우주로 나가서? 인공위성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이 이론은 그 후 거의 15년 동안 잊혀졌다.
제임스 피블스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1960년대 중반, 잊혀졌던 가모프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동료 로버트 디케 교수와 함께 우주마이크로파 배경 복사를 관측하기 위한 실험에 몰두했다. 하지만 실제 최초의 관측은 벨연구소 연구원 둘이 우연히 해냈고, 나중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급팽창의 미스터리와 우주 관측위성의 등장
빅뱅이 일어나고 10-32초 뒤까지, 우주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 중 하나인 급팽창이 일어났다. 이 이론에는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플랑크 관측위성과 관련이 있다. 바로 우주의 지평선 문제다.
급팽창 이론은 앨런 구스 미국 MIT 교수(당시 스탠퍼드선형가속기센터 연구원)가 1980년 내부 세미나에서 발표한 논문(이듬해 ‘피지컬리뷰 D’에 실림)이 시작이다. 이 논문의 제목은 ‘급팽창이론: 지평선과 편평도 문제에 대한 가능한 해결책’이었는데, 이 중 지평선 문제가 플랑크 임무와 관련이 있다. 우주의 지평선은 우주 안에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범위다.
빛을 이용해도 약 460억 광년이 한계다. 460억 광년의 공간 바깥은 우주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어떤 수를 써도 정보를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주마이크로파 배경복사를 통해 알아낸 우주의 온도(에너지) 분포는 거의 전체가 균일했다. 우주는 처음에 태어났을 때 균일했지만 이후 팽창하면서 공간 사이가 크게 벌어졌고, 서로가 서로를 ‘참조’할 수 있는 한계를 크게 벗어났다.
부산에서 나룻배 두 개를 띄웠다고 해보자. 둘은 서로 손짓 발짓을 하며 속도를 통일시키기로 했다. 그런데 두 배는 가는 방향이 서로 달라서 결국 멀어지게 됐고 수신호를 교환할 수 없게 됐다. 그 상태로 각각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서 갈라파고스에서 만났다. 그렇게 만났는데 두 배의 속도가 똑같을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우주마이크로파 배경복사가 균일하다는 점은 이보다 더 수수께끼다. 구스의 논문을 보면 “초기 우주는 균일했지만, (현재) 우주는 서로 정보교환을 할 수 없는 1083개의 지역으로 돼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균일하다는 것은 우주의 가장 큰 우연 아닐까. 급팽창 이론은 바로 이런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고안됐다. 우주는 균질한 초기에 급속도로 커졌기 때문에 현재 처음의 균일한 상태를 간직하더라도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게 된 것이다.
태초에 지문이 있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전 우주에 걸쳐 균일한 우주마이크로파 배경복사에 아주 미세한 ‘얼룩’ 같은 온도 차이가 있을 거라는 예상
이 이론에 의해 나왔기 때문이다. 10만분의 1K 정도로 아주 작은 온도차였다. 이론에 따르면, 이 온도차는 우주 초기에 있었던 물질의 아주 작은 밀도 차이 때문에 생겼고 급팽창으로 굳어졌다. 이 얼룩은 나중에 우주의 거대한 구조에 영향을 미쳤다.
우주의 역사를 담은 ‘지문’인 셈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이론을 관측으로 검증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 미세한 온도 차이는 온갖 복사에너지가 넘쳐나는 지구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학자들은 우주로 섬세한 탐사선을 보내 이 작은 차이를 찾기로 했다. 1989년 우주 관측위성 하나가 발사됐다. ‘코비(COBE)’라고 부르는 위성이었다. 플랑크의 할아버지 위성인 코비는 이론으로 예측한 우주마이크로파 배경복사의 미세한 차이를 관측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그리고 원하던 ‘지문’을 찾아냈다. 우주는 정말로 이론과 같은 미세한 온도차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추가로, 코비는 그 과정에서 지금껏 인류 역사 이래 가장 완벽한 측정 결과 하나를 밝혀냈다.
바로 우주배경복사가 이론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흑체복사라는 사실이다. 이로써 막스 플랑크의 흑체복사 이론은 우주에서 가장 거대하고 오래된 흑체를 아름다울 정도로 완벽하게 설명해주는 물리 이론이 됐다. 코비의 뒤의 뒤를 잇는 유럽우주기구(ESA)의 탐사선이 ‘플랑크’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필연이었다.
* 과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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