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5일 금요일

복잡한 세상, 수학적 원리를 따르는가?

복잡한 현실을 복잡하지 않게 보여주려면




1914년 6월 28일 오전 11시, 자동차 한 대가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대로를 달려야 할 자동차가 그만 골목길로 빠졌다가 막다른 골목을 만난 것이다. 차를 다시 돌려서 나오면 그만이었을 사소한 실수였지만 누군가에게는 믿기 힘들 만큼 엄청난 행운이었다. 세르비아계 학생 가브릴로 프린시프는 자신의 앞에 멈춰 선 차를 두고 재빨리 권총을 꺼내들었다. 그는 세르비아 테러 조직 ‘검은 손’ 소속이었으며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양, 거리낌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차에 타고 있던 두명의 승객,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소피 대공비는 간단한 실수로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그리고 한 시간도 안 되어 전 유럽은 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렁으로 빠져들어버렸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은 흔히들 ‘세르비아의 총성’으로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단순히 운전기사 한 명의 사소한 실수와 사소하지는 않지만 당사국간의 관계로 매듭지어질 사건이 전쟁의 전부는 아니었다.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 사망을 세계사적인 사건으로 만든 것은 국가간의 거미줄처럼 얽힌 네트워크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이 사건을 세르비아의 중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무력 보복을 선언한다. 그러자 세르비아의 보호자를 자처하던 러시아가 나섰고 복잡한 동맹관계로 얽힌 영국, 프랑스, 투르크 등이 줄줄이 끌려들어왔다. 사건 이후 30일도 지나지 않아 동유럽 한켠의 국지 분쟁으로 끝날 수도 있었을 사건이 거대한 전화로 번져버렸다.


놀라운 것은 제2차 세계대전과 달리, 당대의 역사가들은 전쟁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20세기 초 유럽의 화려하고 찬란한 문화적 성취에서도 볼 수 있듯, 1914년은 안정적인 번영기의 한가운데였다. 외교적 암투도 있고 사소한 다툼은 있을지언정 일반인들이 느끼는 세계는 길고도 평온했다. 어째서 이런 파국이 갑작스럽게 찾아왔을까?


세계사적인 사건이 너무 부담스럽다면 조금 더 가볍게 가보자. 스웨덴의 게임제작사 중 ‘패러독스 인터랙티브’가 있다. 역사를 다루는 전략게임을 주로 출시하는 제작사인데, 이 회사 작품 중 ‘유로파 유니버셜리스’ 시리즈는 14~19세기를 배경으로 한 간판격 게임이다. 전략게임이라고 해서 스타크래프트 류를 생각하면 곤란한 것이, 이 게임의 무대는 전 세계고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플레이어가 고심해야 하는 부분도 상대방의 유닛을 때려잡는 전략이 아니라 국가의 산업구조, 외교관계, 국가재정, 각 지방의 치안과 같은 요소들이다. 게임의 형식이 형식이니만큼 외교관계도 제법 정밀하게 구현되었는데, 주 무대인 유럽의 경우 르네상스부터 절대왕정까지의 왕가와 귀족간 혈통관계가 제법 정밀하게 표현될 정도다.





이 게임을 하다보면 세계대전이 일어난 과정을 실시간으로 체험 가능하다. 여기저기 왕자와 공주들을 혼인보내고 타국의 보호국을 자처하며 심각한 고려 없이 이리저리 국가간 관계를 맺어놓으면 마음에 들지 않는 나라에게 살짝 날린 잽이 상대국의 동맹관계를 타고 집단구타가 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연히 플레이어의 우방들도 발끈해서 치고받고 하다보면 세계대전이 10년씩 가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물론 인력은 죽어나가고 재정은 곤두박질치고 20세기 초 전간기에 왜 유럽이 그 모양이었는지 제대로 알 수 있다. 이런 식의 확전이 실제 역사를 따라서 이벤트 같은 형식으로 일어난다면 모르겠는데, 역사적 제약을 과감히 줄인 3편에서도 세계대전은 왕왕 벌어진다. 순전히 수학적으로 외교관계를 표현한 관계식과 함수에 의해 일어나는 일이다.


물론 게임과 실제 역사는 다르다. 그러나 게임에 적용하기 위해 현실을 아주 단순화한 모델만으로도 작은 사건이 세계대전으로 번지는 과정을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게임의 외교 모델은 의외의 시사점을 준다. 정확한 원인을 특정하기 어려운 세계사의 많은 사건들이 실은 간단한 수학적 원리를 배경에 깔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명절 기차표는 제사준비 만큼이나 전쟁이다. 간발의 차이로 표를 얻으리라는 기약도 없이 마냥 목만 빼고 기다리는 것도 못할 노릇이다. 그래도 어쩌랴, 그나마 고속도로를 타는 것보다는 나은 것을. 아직 1/10도 가지 못했는데 한 시간 째 꼼짝달싹 못하는 절망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꽉 막힌 고속도로를 운전하다보면 대체 왜 몇 분 동안이나 차들이 한 치도 움직이지 못하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하도 서다 가다를 반복해서 사고라도 났나 싶어 보면 그런 것도 아니다. 차가 많더라도 신호등도 없는 길이면 꾸준히 천천히라도 가야 정상일 것 같은데 왜 주차장 마냥 서 있어야 하는 걸까?


누구나 궁금할법한 이런 상황에 물리학자들이 해답을 내놓았다. 잠깐, 물리학이라고?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어린 학생들을 괴롭히고 뭔가 거창하긴 한데 알아듣지도 못할 쿼크니 입자니 하는 말이 난무하는 물리학? 당연하다. 차 한 대 한 대를 하나의 입자로 치환하면 도로의 상태는 여러 입자들이 모인 ‘계’가 된다. 계에서 입자들의 행동과 변화를 연구하는 것도 물리학의 한 분과니 교통 흐름도 당연히 물리학의 영역이다. 그리고 물리학의 방법론으로 분석한 도로상황은 고스란히 도로계획에 반영된다.

평일의 한적한 고속도로를 생각해보자. 차들은 자기 나름의 속도를 유지하면서 움직인다. 차량 사이의 간격도 넓으니 남들 속도를 의식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상태를 ‘자유흐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서다 가다를 반복하는 꽉 막힌 도로라면 차량은 제자리에서 앞뒤로 진동하며 조금씩 전체적으로 앞으로 나가는 상태를 유지한다. 위에서 보면 정체 지점이 마치 뒤로 조금씩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경우에 따라서는 느리지만 꾸준히 움직이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동기흐름’이라고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동기흐름 상태에서 운전자는 주변의 다른 차량들과 동일한 속도를 유지한다.

동기흐름의 특징은 각각의 차량이 서로에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운전자 개인의 판단이 상호작용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사실 이는 자유흐름일 때도 마찬가지다. 막힌 길도 아니고 차량도 별로 없는데 묘하게 차들이 무리지어 달리는 구간이 있다. 이는 운전자들이 전방에 차가 없으면 속도를 내고 주변에 차량이 있으면 속도를 맞추려 하여 생기는 현상이다. 교통흐름이 원활하지 못하면 이러한 성향은 더욱 강해진다. 운전들은 사고를 피하기 위해 방어운전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추돌의 위험이 높아질수록 주변 차량의 제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더 자주, 오래 브레이크를 사용한다.

이러한 ‘과반응’을 수식화하여 기존 분석모델에 포함시키자 차들이 덩어리져서 움직이는 현상이 제대로 설명됐다. 당장 나와 주변을 보면 일어날 것 같지 않은 현상이지만 다른 운전자들의 성향과 상호작용을 통해 예상치 못한 도로상황이 나타난 것이다.

사실 고속도로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은 여러 상황에서 접할 수 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선거 결과나 요동치는 주가, 예상치 못한 신용위기 도미노, 계획은 완벽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간 마케팅 플랜 같은 것들은 각 단위, 각 행위자들만 보아서는 예측하기 어려워 복잡하게만 보인다. 그러나 전체를 구성하는 요소들간의 상호작용을 고려하여 재구성하면 명쾌하게 설명 가능하다.


결국 문제는 ‘관계’다. 물리학은 오랜 시간 동안 불변하는 입자 자체의 속성과 움직임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최근 들어 관계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분야가 바로 ‘네트워크 물리학’, 또는 ‘네트워크 과학’이다. 이름에 속지 말자. ‘네트워크’라는 말이 들어갔다고 다단계같은 쌈마이스러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물리학이라고 삶과 아무 상관없을 것 같은 골치아픈 수식만 들이대는 분야가 아니다. 네트워크 물리학은 복잡한 세계를 단순하게 그려내는, 과학의 최전선인 셈이다.



글러스 애덤스의 정신나간 SF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는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이 나온다. 전 우주에서 둘째 가는 컴퓨터가 자그마치 750만년 동안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론은 ‘42’였다. 제법 컬트적인 인기를 얻어서 유명해진 문구라 영어권에서는 거의 관용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실제로 "answer to life the universe and everything="를 구글 검색창에 입력하면 계산기를 띄워서 42를 보여준다. 웹 사전인 볼프람 알파도 위 문구를 검색하면 42를 보여주고 볼프람 알파의 데이터를 활용한 아이폰의 음성인식 소프트웨어, 시리도 42라는 답을 보여준다. 문제는, 유명하긴 한데 아무도 42의 의미를 모른다. 심지어는 작가도 언급을 안한다. 몇 가지 설이 있기야 하지만 사후해석 격으로 끼워 맞춘 수준에 불과하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이라는 질문 자체가 그저 헛소리에 불과하니 답도 헛소리로 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네트워크 과학이 짧은 시간에 열광적인 반응을 얻은 데에는 심히 복잡해서 설명하기 꽤나 곤란했던 것들을 아주 깔끔하게 설명해줬다는 이유도 있다. 생각해보라. 제1차 세계대전이나 세계대공황이나 페름기의 대멸종 같은 사건들이 어떤 전조도 없이 예측 불가능하게 뻥뻥 터지는 세상에서 마음 놓고 살 수 있을까? 멀리 갈 것도 없이, 남아시아 대지진이나 도호쿠 대지진의 피해가 컸던 이유도 예측을 할 수 없었기 때문 아니던가. 심각한 피해를 입히는 대지진이나 화산폭발 예측에 성공한 사례도 전설이나 신화를 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지구에 사는 인류 전체가 슈뢰딩어의 고양이인 것도 아니고, 이래서는 이론적 완성도는 차치하고라고 현실 자체가 불안하다.

복잡해 보이는 세상이 실은 아주 간단한 수학적 원리를 따른다는 명제는 이러한 점에서 안도감을 준다. ‘왜 그런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는지 몰랐는데 이젠 좀 알 수 있을 것 같아. 앞으로 벌어질 일도 더 잘 예측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다보면 미리 대비해서 피해를 줄일 수도 있겠지.’ 물론 네트워크 과학 연구자들을 포함하여 과학자들이 저런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 세간의 인식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러한 생각은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혼동한 데서 나온 것이다. 어떤 사건을 일으키는 원인은 사건과 인과관계에 있다. 원인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과관계에 대한 지식은 미래를 예측하고 피하고 싶은 사건을 예방하는 데 꼭 필요하다.


그러나 상관관계는 통계적이다. 통계상으로 유의미한 관계가 있을 때 상관관계가 있다고 표현한다. 예를 들어 저 유명한 ‘기저귀 판매고가 늘어나면 맥주 판매고도 늘어난다’는 명제다. 1990년대, 미국에서 월마트 영수증을 분석하여 기저귀와 맥주 매상 사이에 통계적 관계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체 연관성이 없을 것 같은 정도가 아니가 상당히 불건전한 조합처럼 보이는 맥주와 기저귀가 관계를 맺은 연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귀찮은 기저귀 심부름 나온 아빠들’이 원인이었다. 대개의 경우 엄마가 아이들 돌보느라 급하게 기저귀를 살 때 아빠들이 사러 가다 보니 기저귀 사면서 꼬박꼬박 자기가 먹을 맥주를 챙겨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맥주와 기저귀의 관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저귀로 엎질러진 맥주를 닦을 생각이 아니라면 둘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 기저귀를 사면서 당연히 맥주를 사야 한다는 당위성 따위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두 품목은 구매 목적, 즉 원인이 완전히 다르다. 맥주는 부모의 소변을 만들어내고 기저귀는 아이의 소변을 받아낸다. 그러함에도 겉보기로는 두 품목이 함께 판매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월마트는 이를 근거로 패키지 상품을 내기도 했다.

맥주와 기저귀는 정식 논문으로 발표되지는 않은 터라 단순한 마케팅 담당자의 판단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지만,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상관관계는 현상이 중요한 분야에서 매우 유용하다는 것이다. 마케팅이나 정치분석, 경제학, 심리학 등에서는 상관관계를 중요하게 다룬다. 사람들의 행동과 관련된 분야고 사람들은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바에 기초하여 행동하다보니 겉으로 드러난 지표로서 상관관계가 중요하다.

그러나 과학의 영역에서는 조금 다르다. 네트워크 과학은 상관관계를 읽어내려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포착된 징후가 현실은 반영하되 ‘진실’에는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세기 통계학에서 논의되었던 ‘황새와 아기의 관계’다. 당시 영국에서 통계적으로 황새의 개체수와 출생률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조사된 바 있었는데, 그렇다면 아기는 황새가 물어다 준다는 말인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주인공인 아서 덴트는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이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제대로 된 궁극적 질문을 찾는다. 물론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 따라서인지 튀어나온 질문도 뜬금없는 ‘6과 9를 곱하면 무엇이 나오는가?’ 그마저도 외계인의 간섭으로 연산과정에 오류가 있어 42라는 이상한 답이 나왔지만.

네트워크 과학은 ‘42’가 아니라 ‘궁극적인 질문’에 가깝다. 네트워크 과학은 과학에서 구하려는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해답을 제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견지에서 보자면, 네트워크 과학은 네이게이션에 가깝다. 인과관계를 직접 알려주지는 않지만, 인과관계의 가능성이 높은 곳은 알려줄 수 있다. 네트워크 과학과 이를 기반으로 한 ‘빅 데이터’의 역할도 딱 이 수준이다.

‘42’를 만들려는 시도가 다 그렇지만, 네트워크 과학이 궁극적인 해답을 제시하리라는 양 데이터를 이리저리 수집하고 관련 담론이 성행하는 지금의 상황도 과열된 감이 있다. 크리스 앤더슨은 빅데이터가 결국 자료와 알고리즘, 컴퓨터만 있으면 만사 OK인 세상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며 이론에 종언을 고할 것이라고 했지만 글쎄, 과연 그럴까. 완벽한 알고리즘이 있더라도 이를 통해 알아낸 상관관계가 실제로는 어떤 의미인지, 다시 고민해보아야 한다. 상관관계만으로 인과관계를 잘못 파악한 탓에 낭패를 보는 일은 숱하게 많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이는 상호관계가 아니라 물리적인 실체를 다루고 설계하는 과학자와 엔지니어라면 더더욱.
KOITA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