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5일 금요일

새로운 길을 연 기초과학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은 준 과학은 무엇일까? 사실 하나만 콕 집어 이야기하기 어려운 질문이기는 하다. 그야말로 과학계 버전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수준의 질문. 실제로 과학자나 이공계 전공자들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면 당장 온갖 철학과 역사와 이성에 대한 토론회가 열려버린다. 과학적 방법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나 뉴턴을 언급할 것이고 20세기의 위대한 성취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이나 다윈을 꼽을 것이며 세계관을 바꾸었다는 점에서는 코페르니쿠스를 이야기할 수도 있다. 조금 마이너하게는 현대적인 ‘거대과학’의 체계를 마련한 버니바 부쉬나 컴퓨터의 구조를 창시한 폰 노이만, 수학의 대전제를 근본적으로 뒤흔든 쿠르트 괴델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정답이 없는 질문처럼 느껴진다면 범위를 조금만 좁혀보자. 지식과 정보의 양은 17세기를 기점으로 완만한 일차함수에서 급격히 증가하는 지수함수 그래프로 변모했다. 가장 중요한 변곡점은 단연 인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세기, 20세기다. 이 기간의 주요한 변화를 이끌었던 원동력은 다름 아닌 전기다. 전기의 성질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면 일상생활부터 통신망, 일기예보까지 지금 당연하게 생각하는 문명의 혜택은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사무실에서 수정도 힘든 타자기를 두들겨대고, 멀리 떨어진 동료와 의견을 교환하느라 우표에 열심히 풀칠하고, 산더미 같은 서류들을 만들고 분류하고 열람하느라 업무시간 대부분을 빼앗겼을 것이다.


이쯤 되면 질문에서 의도한 답이 ‘전자기학’임을 눈치챘을 것이다. 전기와 자기에 대한 지식은 제어하기 어려운 자연의 힘이던 전기를 대량으로 만들어내고 이용할 길을 열어 수많은 응용분야와 산업을 창출해냈다. 19세기 말 물리학의 한쪽에서 일어난 이 작은 변화는 지금까지도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현대 문명의 최첨단으로 꼽히곤 하는 전자공학의 기반 이론은 100여 년이 지나도록 거의 변한 것이 없을 정도다. 전기공학이나 전자공학과에서 가장 먼저 필히 마스터해야 하는 내용이 맥스웰의 방정식과 그 응용임을 생각해보자. 오죽하면 칼텍의 대학원생들을 묘사한 미국의 코미디 드라마, 빅뱅이론에서 생물학자 한 명이 전자기학의 창시자격인 맥스웰을 비판하자 주인공인 물리학자 4인방이 이성을 잃을 정도로 분노하는 장면이 나왔을까.








전자기학의 시작은 외르스테드(Hans Christian Ørsted)였다. 전기와 자기는 이전에도 독립적인 분야로 어느 정도 확립된 채 연구되고 있었지만 외르스테드가 1820년, 전류의 개폐에 의해 주위의 나침반이 움직이는 현상을 발견함으로써 과학자들은 ‘전기와 자기 사이에 무언가 관계가 있지 않을까?’하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다만 어디까지나 흥미로운 가능성의 영역이었을 뿐, 깊은 고민이 이어졌던 것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의 전기는 다루기도 어렵고 안정적으로 얻기도 힘든, ‘지적인 사치품’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전기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려면 전자를 공급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한데, 연구에 사용할 수 있는 도구라고는 정전기를 모은 라이덴병 여러 개를 연결한 것 정도였고 잘해야 지속시간이 길지도 않고 전압도 들쭉날쭉한 볼타 전지가 고작이었다. 이래서는 소소한 실험에 필요한 전기를 얻기에는 충분할지 몰라도 본격적인 응용을 생각해보기에는 영 안정성이 없었다.

영국의 화학자, 마이클 패러데이가 전자기 이론에 흥미를 지니던 당시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19세기 초반의 화학자와 물리학자들은 전기와 자기의 성질에 큰 매력을 느꼈다. 울러스턴(William Hyde Wollaston)이나 베버(Wilhelm Eduard Weber), 데이비(Sir Humphry Davy) 등 당대 주요 과학자들은 전기와 자기가 주고받는 힘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열띤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학술적인 관점에서였을 뿐, 대중의 관심을 끌기는 어려웠다. 1831년, 패러데이가 빅토리아 여왕을 알현했을 때 여왕의 질문도 “당신의 전기장치들은 대체 왜 필요한 것입니까?”였다. 물론 전자기유도 현상을 이용하여 초보적인 전신기가 발명되고 독자적인 산업군으로 발전할 조짐을 보이지만 ‘전기를 흘려보내면 코일이 금속을 끌어당긴다’는 관찰결과만을 경험적으로 응용한 데 불과했다.

그러나 초기 전자기 연구자들은 자신들의 연구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어떤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다. 패러데이는 여왕의 질문에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언젠가는 그것들에 세금을 물릴 수 있겠지요”라고 답했다. 현재로서는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장래 엄청난 활용가치가 있으리라는 사실을 예견한, 재치있는 답변이었다.

실험의 천재인 패러데이가 확인한 ‘전기와 자기는 짝을 이룬다’는 아이디어는 이론의 천재인 맥스웰(James Clerk Maxwell)이 깔끔하게 네 개의 수식으로 정리하여 완벽에 가까운 체계를 정립함으로써 전자기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로 탄생했다. 이론이 정립되어 정확한 예측과 분석이 가능해지면서 전자기학은 급속히 발전하고 그 응용분야도 속속 발견되기 시작했다. 전류를 흘려보낸 코일이 자성체를 잡아당긴다는 관찰결과만으로도 초보적인 전신기는 만들어낼 수 있었지만 전자기학의 이론적인 발전이 없었다면 무선전신이나 라디오 방송, 전구와 발전기 같은 세기의 발명품들은 아주 오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전자기학은 당시에는 실생활과 별 연관이 없어 보이는 기초과학이 공학과 산업분야의 새 장을 연 대표적인 사례다. 전자기학의 성립에 힘입어 ‘전기의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20세기의 문명은 전력시스템을 기반으로 완전히 재구성된다. 물론 전기, 전자 분야의 굵직한 발명품들에 늘 물리학자들이 개입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발명품들의 주역은 마르코니나 에디슨, 폰 노이만처럼 사업감각을 갖춘 엔지니어, 또는 발명가이거나 정부와 함께 국가정책 수준의 문제를 다루는 엘리트 학자들이었다. 기초과학은 개개의 발명품에 기여했다기보다 해당 분야가 자체적인 동력을 지니고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뒤집어 말하면 기초과학에서의 이론적 발전이 없었다면 현대의 여러 공학들이 애초에 별개의 분야로 등장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기초과학이 선구적인 기술을 낳아 새로운 공학과 산업분야를 형성한 사례는 현재진행형이다. 얼핏 보기에 발견할 것은 다 발견해서 전공자가 아니면 대체 무슨 내용인지도 모를 연구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도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산업분야들이 기초과학으로부터 탄생하거나 중요한 아이디어를 빌려오고 있다. 연구 목적 외에 실용성이라고는 없을 것만 같은 수학의 수론(數論), 특히 소수의 수학적인 성질도 RSA 등의 암호화 방식의 기초 원리로 활용된다. 당연히 새로운 암호방식 설계와 취약점 개선할 때에는 수학자의 두뇌가 반드시 필요하다.

수학자인 가우스(Johann Carl Friedrich Gauß)가 생전에 수론을 두고 ‘실용적으로 사용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수학의 여왕이다’라고 평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최신 과학이자 비전공자가 알아먹기 힘든학문의 대표주자, 양자역학도 실용적인 응용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반도체. 반도체의 성능은 제한된 면적의 기판에 얼마나 많은 회로가 집적되었는지로 결정된다. 자연히 반도체 제조사들은 회로를 최대한 작고 세밀하게 만들어서 집적도를 높이려고 노력하는데, 이 미세함이 10여나노 정도 수준으로 작아지자 이전에는 나타나지 않던 문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회로의 세밀함이 원자와 견줄 수준에 이르면서 미시세계에서나 나타나는 양자적 특성들이 실제 회로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던 것이다.

대표적인 문제가 양자터널링 현상이다. 거시 세계에서는 실체가 분명한 입자처럼 행동하는 전자가 확률분포의 효과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미시세계의 영역에서는 위치가 요동친다. 흔히 하는 비유로, 컵 안의 구슬이 중간에 어떤 과정도 없이, 갑자기 컵 밖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이를 ‘벽에 터널이라도 뚫어 놓은 것처럼’ 입자가 장벽을 뚫고 옮겨다닌다 하여 양자터널링 효과라고 부른다. 정확히 말하자면 실제로 옮겨다니기보다 입자가 주어진 장소에 존재할 확률에 따라 위치가 달리 결정되는 것이지만, 너무 복잡해지니 이렇게만 알아두기로 하자.

전자의 흐름으로 정보를 표현하는 현재의 실리콘 기반 반도체는 양자터널링 현상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실제로 공정이 양자적 수준으로 미세해짐에 따라 반도체의 발전 속도도 이전보다는 다소 완만해졌다. 더 큰 문제는 실리콘 결정의 격자 크기인 약 0.54nm 이하의 미세공정은 아예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반도체공학이 현재의 발전속도를 유지한다면 대략 20년 이내에 이 정도 수준의 미세함에 도달할 수 있다고 예측한다. 그렇다면 길어봐야 20년이면 더 이상의 빠른 처리속도를 지닌 반도체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말인가?

이에 대한 대안 중 최근 관심을 받는 분야가 ‘스핀트로닉스’다. 이름 그대로 ‘회전’을 다루는 공학으로, 전자의 회전이 이 분야의 핵심이다. 현재 전기를 사용하는 거의 모든 일상용품들은 전자의 성질 중 전하를 이용한다. 그러나 전자는 전하 외에도 소립자로서 ‘스핀’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스핀은 회전하는 입자가 갖는 각운동량에 의해 나타나는 물리량으로 1/2, 또는 –1/2라는 불연속적인 두 가지 값만 존재한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성공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면 스핀은 디지털 신호를 표현하고 처리하는 데 최적의 물리량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전자공학이 스핀의 특징을 이용하지 않았던 까닭은 전자기 이론이 확고하게 체계가 잡혀 예측과 제어가 용이한 데 비해 전자의 스핀을 정확하게 제어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노 수준의 다층박막, 초전도체와 강자성체 등 스핀 제어에 필요한 기술들이 고도화되면서 스핀트로닉스도 실용화가 가능한 단계까지 발전했다. 현재 사용중인 고밀도 하드디스크도 스핀트로닉스가 적용된 제품이다. 스핀트로닉스를 응용한 논리 트랜지스터는 전하를 이용한 방법과 달리 나노 단위의 크기에서도 신뢰성 높은 작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현재보다 집적도가 훨씬 높은 회로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초과학은 산업 뿐 아니라 국가정책에도 직접 영향을 미치곤 한다. 대표적인 분야가 해양지질학이다. 지질학은 대표적인 고전과학으로 인력 수요가 많지 않은 편이라 ‘비인기 학과’로 꼽히곤 한다. 그래서인지 지질학에 실용적인 가치가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기껏해야 몇몇 사람들이 지하자원이나 광물자원 개발에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정도다.
그러나 해양지질학은 영토분쟁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 다시 논쟁이 점화된 한일 공동개발지역(JDZ)의 영토권 분쟁에서도 지질학적 정보가 주역이었다. JDZ는 제주도 남쪽, 오키나와 해구 인근의 해역으로 한중일 3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곳이다. JDZ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한국 정부에서 영토로 선포한 바 있었다. 국제법상 대륙붕은 육지 지각의 연장이므로 대륙붕이 이어진 곳까지를 영해로 인정한다는 점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입장은 JDZ가 일본에 훨씬 가까운 해역이니 공유 대륙붕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해안선으로부터 200해리라는 기준으로 보면 JDZ는 절반 이상이 한일 양국의 공유지역이다. 결국 당시에는 차관의 문제도 있고 국력 차이도 커서 이 지역을 공동개발구역으로 묶는 조약을 맺고 마무리했지만 조약 만료가 다가옴에 따라 최근 영해권 분쟁 장소로 급부상했다.

JDZ의 문제는 한일 양국이 ‘영해’에 대한 해석을 서로 다르게 하고 있다는 데 기인한다. 또 한편으로는 대륙붕과 대륙사면의 명확한 경계를 정하고, 어느 육지로부터 연결된 대륙붕인지 지질학적인 근거를 확보하는 것 역시 중요한 논점이다. 최근에는 중국까지 가세해서 지질학적인 정보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JDZ가 동중국해에 있고 중국과도 연결되어 있어 중국이 한국과 동일한 논리로 영해권을 주장하면 반박이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JDZ의 지질학적 특성이 한반도와 중국 대륙 중 어느 쪽에 가까운지도 중요한 관심사다. 현재 한중일 3국이 유엔 대륙붕한계위원회에 소명자료를 제출하여 다투고는 있는 상황이지만 대륙붕한계위원회는 권고만 할 뿐, 강제력을 행사하지는 않으므로 결국 3국의 협상으로 해결할 문제다. 다만 과학적인 근거를 많이 갖추어 두면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선진국의 상당수가 해양 연구에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최근 주목받는 사례가 북극해다. 온난화로 영구빙산의 영역이 줄어들고 북극해 주변 항해가 가능해지면서 이 지역의 통행권과 개발권을 두고 러시아, 캐나다, 미국이 첨예하게 대립하기 시작한 것이다. 근래 들어 북극해에서의 탐사활동이 눈에 띄게 늘어난 까닭도, 빙산이 줄어든 상황에서 북극해의 활용가능성을 찾아보려는 목적도 있지만 영해권 확보를 위한 물밑작업으로 해양학적, 지질학적 근거를 확보하려는 의도도 크다.

‘기초과학을 왜 지원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흔히들 ‘기초과학은 다른 과학의 근간이 된다’는 말로 답하곤 한다. 이를 그저 실용성 없는 학문 전공자들이 하는, 궁색하고 추상적인 변명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구체적으로 기여하는 곳은 없으니 막연하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라는 정도의 주장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기초과학이 다른 분야의 근간이 된다는 말은 가벼운 의미가 아니다. 모든 기술은 ‘생애’를 지닌다. 미약하게 시작했던 기술이라도 점차 발전하여 한 시대를 주도하기에 이르기도 하고, 몇 세대를 풍미하다가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대에 뒤처져 쇠락하기도 한다. 이를 기술주기라고 하는데, 기초과학은 바로 이 기술주기의 시작점 역할을 한다. 선도형, 창조형 연구가 강조되면서 기초과학 육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착각하면 안 될 것이 있다. 공학이 과학을 위해 존재하지 않듯, 과학도 공학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 지식은 그 자체로 사물에 대한 이해라는 측면에서 가치를 지닌다. 과학은 인류가 만들어 낸 지식체계 중 가장 객관적이고 정교한 지식일 뿐 아니라, 주장의 근거로 강력한 힘을 지니기 때문이다. 기초과학 산업적, 공학적으로 커다란 기회를 만들어내기는 하지만 꼭 그런 효용성이 아니더라도, 기초과학은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KOI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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