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5일 금요일

달 모양에 여러 가지 도형이 가득!

달은 아래 그림과 같이 보름달부터 철월, 상현달(또는 하현달), 초승달(또는 그믐달)까지 약 한 달을 주기로 그 모양이 계속 바뀐다. 달의 모양이 바뀌는 이유는 시간에 따라 태양과 지구, 달의 위치가 변하기 때문이다.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듯이 달도 지구의 주위를 도는데, 이때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져 빛을 받지 못하는 부분이 생긴다. 이 때문에 실제로 달의 모양이 변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 눈에는 달이 점점 작아지거나 점점 차오르는 걸로 보인다.







이런 달의 모양을 수학적으로 본다면 어떨까? 먼저 가장 밝고 둥근 보름달은 평면도형인 ‘원’을 연상할 수 있다. 그리고 상현달(또는 하현달)은 원을 반으로 나눈 ‘반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초승달은 어떤 도형으로 볼 수 있을까?

수학에서는 오른쪽 그림과 같이 두 개의 원의 호로 이뤄진 초승달 모양의 평면도형을 ‘궁형(Lune)’이라고 부른다. ‘Lune’은 달을 뜻하는 라틴어인 ‘Luna’에서 유래된 영어 단어이다. 고대의 수학자들은 가장 완벽한 평면도형으로 여겼던 원을 연구하면서 궁형에 대한 성질을 밝혀내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구의 겉면인 구면 위의 도형을 다루는 ‘구면 기하학’에도 달(Lune)이 있다. 왼쪽 그림과 같이 구가 있고, 구의 지름을 포함하는 두 원이 겹쳐져 있다고 하자. 이때 노란색에 해당하는 곳을 구면 기하학에서는 ‘달(Lune)’이라고 한다. 구면 기하학에서 달의 넓이와 부피는 구의 반지름(r)과 구 내부의 두 원이 이루는 각(θ)을 알면 구할 수 있다.





달을 품은 수학의 정리, 히포크라테스의 초승달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인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기하학 <원론>의 최초 저자일 만큼 기하학에 조예가 깊은 수학자였다. 히포크라테스는 당시 유명한 수학자였던 탈레스, 피타고라스와 더불어 기하학 연구에 심취해 있었다.

히포크라테스의 업적 중에서도 단연 손꼽히는 것은 바로 ‘초승달’에 관한 연구다. 그의 이름을 따서 ‘히포크라테스의 초승달’이라고 불리는 정리는 다음과 같다.







이와 같이 히포크라테스는 초승달의 넓이와 이등변 직각삼각형의 넓이가 같음을 증명했다. 그런데 히포크라테스는 왜 초승달 모양인 도형에 관심을 갖게 된 걸까? 그 이유는 당시 내로라하는 수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던 ‘평면도형의 구적문제’와 관련이 있다. 평면도형의 구적문제란, 평면도형과 같은 넓이를 갖는 정사각형을 작도하는 문제를 뜻한다.

수학자들은 먼저 ‘직사각형과 넓이가 같은 정사각형을 작도할 수 있는가?’와 같이 단순한 다각형의 구적문제에 도전해 구적 가능함을 증명했다. 그 이후에는 불규칙한 다각형도 구적이 가능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직선으로 된 평면도형이 모두 구적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자, 수학자들은 곡선으로 이뤄진 구적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수학자가 곡선으로 된 도형 중 구적이 가능한 것을 찾았는데, 그가 바로 히포크라테스다. 당시 수학자들은 히포크라테스가 구적 가능한 초승달을 찾아내자, 최대 난제였던 ‘원의 구적문제’에도 희망이 보인다고 믿었다.

그러나 구적 가능한 초승달은 지금껏 히포크라테스가 찾은 3개의 초승달과, 2000년이 넘게 시간이 흐른 18세기에 오일러가 찾은 2개의 초승달을 포함해 5개뿐이다. 그리고 20세기에 이르러 수학자 체바토루와 도로드나우는 구적이 가능한 초승달은 이 5개뿐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한편 고대 수학자들의 최대 난제 중 하나였던 원의 구적문제는 20세기 독일의 수학자 린데만에 의해 풀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원의 넓이와 같은 정사각형은 작도할 수 없다는 뜻이다.



수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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