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후반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가속 팽창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은 1929년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은하들의 움직임을 관측해 밝혀냈지만, 우주의 가속 팽창은 믿기 힘들었다. 많은 과학자들이 우주가 팽창한다 해도 우주 천체 사이에
중력이 작용한다면 서로 잡아당겨 결국 우주 팽창이 느려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주가 감속 팽창이 아니라 가속 팽창하는 것은 새로운 문제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과학자들은 밀어내는
힘(척력)을 가하는 ‘암흑 에너지’를 제시했다. 정체를 잘 모른다는 의미에서 암흑이란 단어를, 물질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에너지란 단어를 붙여
이름을 지은 것이다. 사실 암흑 에너지는 우주에서 밀어내는 힘을 가진 미지의 에너지란 뜻이다.
최근 플랑크 탐사선의 관측에 따르면, 암흑 에너지는 전체 우주에서 68.3%를 차지한다. -
위키피디아 제공
현재 암흑 에너지의 유력한 후보는 아인슈타인이 제안했던 ‘진공 에너지’다. 진공 에너지는 공간의 진공에 내재하는
속성인데, 입자물리학에서는 이런 진공 에너지가 존재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문제는 진공 에너지가 천문학자들이 관측한 가속 팽창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것보다 10의 120승 배만큼이나 엄청나게
크다는 것이다. 만일 암흑 에너지가 이만큼 크다면 우주는 별과 은하가 생성되기도 오래전에 갈가리 찢겨졌을 것이다. 실제로 이 정도라면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할 수 있다.
암흑 에너지 삼키는 뜨거운 감자?
최근 암흑 에너지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이 떠오르고 있다. 일부 우주론 학자들이 중력을 전달하는 가상의 입자인 ‘중력자’가
조금 무겁다면, 우주를 가속 팽창시키는 불가사의한 암흑 에너지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이론의 골자는 중력자가 작지만 0이 아닌 질량을 가진다면 암흑 에너지의 대부분을 ‘먹어치울’ 수 있고 그 나머지는
진공 에너지가 감당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9월 초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열린 우주론 학회에서 ‘무거운 중력자 이론’을 두고 참가한 학자들 사이의
논쟁이 뜨거웠다.
2010년 미국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소재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 물리학과 클라우디아 드람 교수는 중력자가 암흑 에너지의
대부분을 ‘집어삼킬’ 수 있다면 진공 에너지가 암흑 에너지를 설명할 수 있다는 놀라운 제안을 내놓았다.
물리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중력이란 힘을 전달하는 기본 입자인 중력자가 있어야만 한다고 믿고 있다. 자연의 다른 기본 힘
3가지, 즉 전자기, 방사성을 통제하는 약한 핵력, 핵 속의 소립자를 묶어주는 강한 핵력에는 각각의 힘을 전달하는 비슷한 입자들이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힘이 작용하는 범위는 매개입자의 질량에 의해 좌우된다. 예를 들어 질량이 없는 입자인 광자에 의해 매개되는 전자기는
무한한 범위에 전달되는 반면, 약력을 매개하는 W 입자와 Z 입자는 둘 다 질량을 갖고 있어 그 영향력이 소립자 상호작용 규모에
국한된다.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중력자가 광자처럼 질량이 없을 것이고 그래서 중력의 영향이 온 우주에 미칠 것이라고 추정했다. 드람
교수는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태양으로부터 중력을 느끼기 때문에 중력이 장거리까지 작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그리고 이것이
중력자가 얼마나 큰지 그 범위를 정한다”고 말했다.
드람 교수팀은 중력자가 10-33eV(전자볼트)보다 작은 질량을 가진다면, 이것이 여전히 모든 천문학적 관측과 잘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1eV는 1.602×10-19줄(J)로 전자가 진공 가운데 1볼트(V)의 전위차를 가진 두 점 사이를 가로지를 때마다 얻는 운동
에너지이다. 이 단위는 소립자의 질량을 에너지로 환산하여 나타낼 때도 쓰인다. 예를 들어 0이 아닌 질량을 가진 입자 중에서 가장 작은 것으로
알려진 뉴트리노는 1eV 자릿수의 질량을 가지고, 전자는 약 51만 1000eV의 질량을 갖는다.
잣대는 지구와 달 사이 거리
드람 교수팀이 무거운 중력자 이론을 처음 공개했을 때 즉시 동요가 일어났다. 암흑 에너지 미스터리에 대한 좋은 해결책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주목을 받았던 것이다. 더욱이 무거운 중력자 이론은 별난 입자를 새로 추가하거나 공간의 추가 차원을 더할 필요 없이 우주의
가장 큰 미스터리인 암흑 에너지를 풀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드람 교수는 이를 ‘단순 해법(minimalist solution)’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이론에도 문제점이 있다.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는, 음의 에너지가 들어 있는 장(field)이라는 숨겨진
‘유령’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유령이 존재한다면 어떤 이론이든 살아남을 수 없다.
이에 연구자들은 음의 에너지를 포함한 장이라는 ‘유령’이 없는 변형이론을 많이 제안했다. 예를 들어 2011년 스웨덴
스톡홀름대 사예드 하산과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레이첼 로젠이 하나는 무겁고, 다른 하나는 질량이 없는 2가지 유형의 중력자를 결합시킨 새로운
이론을 제안했다.
달을 향해 쏜 레이저가 되돌아오게 만드는 실험은 달까지의 거리를 정확히 측정해 암흑 에너지의 속성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 - NASA 제공
그렇다면 무거운 중력자 이론과 표준 우주론을 구별할 수 있는 검증 가능한 실험이 있을까. 태양계 내에서 곧 할 수 있는
실험이 있다. 무거운 중력자 이론은 지구와 달 사이의 중력장을 기존 중력에서와 약간 다르게 예측하는데, 지구 주변을 공전하는 달의 궤도의
세차운동에서 10의 12승 분의 1만큼으로 탐지할 수 있는 차이를 만들어 낸다.
흥미롭게도 미국 아폴로 우주인이 달에 반사경을 두고 왔는데, 지구에서 달의 반사경을 향해 레이저를 쐈을 때 돌아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현재 이 실험을 통해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를 10의 11승 분의 1만큼의 정확도로 측정할 수 있다.
무거운 중력자 이론을 시험할 수 있을 때가 머지않았다. 이르면 몇 개월 내에 이 이론이 실제 우주와 관련이 있는지, 단지
헛방으로 끝날지 결판날 것이다.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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