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5일 금요일
보어와 러더퍼드의 만남
보어와 러더퍼드의 만남
1911년 덴마크 코펜하겐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보어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조지프 존톰슨 밑에서 연구를 이어가길 희망했다. 톰슨은 전자가 모든 원자 속에 있는 입자라는 사실을 밝혀내 1906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대가였다. 하지만 26살의 젊은 덴마크 청년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선뜻 장학금을 지원한 곳이 지금도 맥주로 유명한 칼스버그 재단이다.
보어가 영국에 도착했을 때 톰슨은 캐번디시 연구소의 세 번째 소장이었다. 톰슨은 너무 유명하고 바빴기 때문에 영어도 익숙지 않은 덴마크 청년에게 내줄 시간은 빠듯하기만 했다. 대신 톰슨은 보어를 자신의 제자인 어니스트 러더퍼드에게 소개해 주었다. 러더퍼드는 뉴질랜드 출
신으로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895년에 ‘1851 연구 장학금’(1851년 런던 수정궁에서 열린 박람회는 예상치 못한 대성공을 거두었고, 그 수익금 중 일부가 대영제국 식민지의 청년들이 영국에 3년 동안 머물면서 연구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장학금의 기반이 되었다.)으로 영국에 오게 된 촉망받는 물리학자였다. 러더퍼드는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톰슨의 지도 아래 연구를 진행하면서 처음 우라늄과 라듐에서 나오는 방사선에 큰 관심을 가졌고, 이를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으로 분류한 주인공이기도 했다(나중에 러더퍼드 역시 노벨상을 받는다).
1907년 영국 맨체스터대에 자리를 잡은 러더퍼드는 2년 후 한스 가이거와 어니스트 마즈덴에게 우라늄에서 나오는 알파선을 금박에 쏘는 실험을 하도록 했다. 그런데 실험 결과가 이상했다. 아주 적은 양이지만, 금박과 충돌한 뒤 정확히 반대쪽(알파선을 쏜 곳)으로 되돌아오는 알파선이 있었다. 이 결과는 원자의 질량 대부분이 아주 작은 영역에 집중되어 있다고 가정해야만 설명할 수 있었다. 러더퍼드는 이 부분을 원자핵이라 이름 붙였다. 알파선이 양전하를 띠고 있으므로 여기에 강하게 반발하려면 원자핵도 양전하를 띠어야만 했다. 원자 자체는 중성이므로 음전하는 원자핵 주변에 흩어져 있어야 했는데,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모형은 태양계를 닮은 행성 모형이었다.
그러나 러더퍼드의 태양계 모형은 원자의 안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전자기이론에 따르면 가속되거나 회전하는 전하는 복사선을 내면서 에너지를 잃는다. 따라서 러더퍼드의 원자는 전자가 회전을 하다가 순식간에 붕괴해 버리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모형이었다.
1912년 초 보어와 만났을 무렵, 러더퍼드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맨체스터대로 옮겨온 보어는 러더퍼드의 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론물리학 전공이었던 보어는 충실하게 실험을 하고 세 편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러더퍼드의 신뢰를 얻고 다시 이론물리학으로 돌아갔다. 그 무렵 보어는 ‘진짜 다윈의 손자’인 물리학자 찰스 골턴 다윈의 논문을 만나게 된다. 이는 알파선을 물질에 입사시킬때 얼마나 흡수되는가에 관한 이론이었다. 보어는 이 논문에서 그 때까지 가정하고 있는 원자모형이 잘못되어 있다고 확신했고, 대신 러더퍼드의 원자모형을 이용하여 전하를 띤 입자가 속도가 어떻게 줄 어드는지 매우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러더퍼드의 원자모형이 옳다 해도 원자핵 주위에 전자들이 돌고 있는 원자가 어떻게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느냐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보어, 코펜하겐으로 돌아가다
보어는 1912년 7월에 코펜하겐으로 돌아갔다. 1912년 9월부터 코펜하겐대 마르틴 크누센의 조교로 일하게 된 뒤에도 러더퍼드와 계속 편지를 주고받았다. 1912년 12월 23일 보어가 수학자이자 축구선수였던 동생 하랄 보어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니콜슨이란 사람의 논문이 원자모형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잘 맞는다는 대목이 나온다.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존 윌리엄 니콜슨은 1912년 영국 왕립천문학회 월간 학술지에 성운에서 나온 스펙트럼과 태양 코로나의 스펙트럼에서 보이는 흡수선 파장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일련의 논문을 발표했다.
태양 빛을 프리즘으로 보면 빨강부터 보라까지 일곱 색이 나온다는 것을 처음 밝힌 아이작 뉴턴은 이 빛의 색띠에 ‘스펙트럼’이란 이름을 붙여 주었다. 19세기 동안 빛의 색은 빛의 본질인 전자기파동의 파장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빨간색은 보라색보다 파장이 긴 전자기파다. 19세기 초에는 빛띠에 가느다란 검은 선(흡수선)이 있다는 것이 발견됐는데, 니콜슨의 논문은 그 검은 선들의 파장을 다루고 있었다. 그런데 검은 흡수선은 도대체 왜 생기는 것일까.
니콜슨은 계의 에너지와 전자 고리의 회전진동수의 비가 플랑크상수의 정수배라고 가정하면 흡수선 스펙트럼의 파장들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전자 고리의 회전에 대한 각운동량(원운동에서 각운동량이란 물체의 질량, 속도, 반지름을 곱한 것이다.) 이 일정한 값의 정수배만 허용된다는 가정과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보어도 이와 비슷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자세히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입자의 에너지나 운동량이 연속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정수배로 달라진다는 점에 생각이 미쳤다는 점이 중요하다. 보어는 이것이 어떤 원자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자연스러운 모형이라고 생각했다.
1913년 2월 초만 해도 보어는 빛띠의 흡수선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무렵 괴팅겐대에 있다가 코펜하겐으로 돌아온 분광학자 한스 한센은 보어에게 뜻밖의 조언을 했다. “스웨덴 룬드대의 뤼드베리가 빛띠선의 규칙성에 대해 매우 상세한 연구를 했다”며, “발머의 공식을 찾아보라”고 조언한 것. 1885년 스위스의 요한 발머는 수소원자의 흡수스펙트럼선의 파장들 사이에 독특한 수열 관계가 있음을 보였다. 보어는 훗날 여러 차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발머의 공식을 보자마자 모든 것이 즉시 나에게 분명해졌다.”
1913년 2월 7일 맨체스터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인 헝가리의 화학자 죄르지 헤베시에게 보낸 편지에서 보어는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발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러더퍼드의 원자모형에서는 회전하는 전자가 복사선을 내면서 원자가 붕괴하는 것이 문제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보어의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전자의 궤적은 특정한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허용된다.
● 전자가 하나의 궤적을 돌 때는 복사선이 나오지 않는다.
● 전자가 궤적 하나에서 다른 궤적으로 갑자기 옮겨갈 때 복사선이 방출되거나 흡수된다. 이것이 바로 빛띠의 검은 흡수선에 해당한다.
● 이런 가정은 발머의 공식을 비롯해 빛띠에 대한 여러 법칙에서 증명할 수 있다.
● 이는 모든 원자에 적용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러더퍼드의 원자모형을 유지하면서도 원자가 붕괴되지 않게 만들 수 있다. 또 빛띠와 관련된 여러 법칙도 설명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원자와 분자에 대한 포괄적인 모형을 확립할 수 있다.
28세 보어, 위대한 3부작을 쓰다
1913년 3월 6일. 보어는 러더퍼드에게 수소 원자, 원자들, 분자들, 자성체 등을 다룬 그 유명한 3부작 논문의 초고를 보냈다. 러더퍼드는 논문이 너무 길다면서 영국식은 될수록 짧고 간명하게 서술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러나 보어는 받아들이지 않고 급기야 4월 초에 맨체스터로 직접 러더퍼드를 만나러 가서 논문을 줄일 수 없다고 설득했다. 그리고 4월 5일에 자신의 뜻대로 3부작 논문을 ‘철학회보’에 투고했다.
보어의 ‘위대한 3부작’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먼저 이 논문의 목표는 플랑크의 복사 이론을 러더퍼드의 원자모형에 적용하는 것이다. 1부는 러더퍼드 원자모형의 문제점을 지적한 뒤,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가 궤도를 바꿀 때 나오는 빛이 플랑크의 복사공식을 따른다고 하면, 다양한 빛띠의 관측결과를 다 설명할 수 있음을 보인다. 수소원자의 스펙트럼, 뤼드베리의 법칙, 연속 흡수스펙트럼, 광전효과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방정식 등이 그것이다. 2부는 본격적으로 원자이론과 주기적인 계의 이론을 다루고 있다. 3부는 분자 구성의 이론과 분산 이론이다. 여기에서는 빛의 복사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제안하고 설명하는 동시에 원자와 분자를 고전역학에 따라 다루고 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2부와 3부가 중요한 까닭은 바로 원자와 분자에 대한 보편적인 이론을 상세하게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1부가 가장 간단한 수소원자의 모형을 제안하고 그 증거로 스펙트럼의 관측결과를 제시한 것이라면, 2부와 3부는 이를 일반적인 원자와 분자의 구성으로 확장해 새로운 이론을 확립했다. 따라서 스펙트럼뿐 아니라 모든 물질현상에 대해 새로운 이론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새로운 이론은 영구적인 전자의 궤적과 운동을 서술하고 있다.
원자핵이 하나일 때, 즉 분자가 아닌 경우에는 원자핵의 양전하와 같은 수의 전자가 일정한 궤적을 가장 안쪽부터 바깥쪽으로 마치 양파껍질처럼 싸고 있다. 모든 궤도가 허용되는 것은 아니고 1부의 논의를 바탕으로 하면, 회전하는 전자의 각운동량이 플랑크 상수의 정수배가 되는 궤도만 가능하다.
전자가 돌고 있는 고리의 수 N에 따라 원자들의 성질이 결정된다. N=1이면 수소원자, N=2이면 헬륨원자, N=3이면 리튬 원자 등으로 원자들의 성질이 고리의 수에 따라 어떻게 정해지는지 알 수 있다. 그러면 화학적 성질에 따라 원소들을 배열한 주기율표도 왜 그렇게 배열되어야 하는지 더 근본적인 원자모형으로부터 유도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1913년에 헨리 모즐리가 만든 현대적인 주기율표는 보어의 원자모형을 실질적으로 확증해 줬다.
위대한 3부작, 그 후
그렇다면 보어의 ‘위대한 3부작’을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1913년 9월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헤베시가 아인슈타인에게 보어의 3부작에 대해 묻자, 아인슈타인은 “엄청난 성과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라고 추켜세웠다. 독일의 아르놀트 조머펠트도 축하 인사와 함께 새로운 원자모형을 제만 효과 등 당시에 설명하기 어려웠던 현상들에 적용해 볼 것을 제안했다. 영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진즈는 영국과학진흥협회에서 보어의 새로운 이론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가장 뛰어나고 통찰력 있는 이론”이라고 불렀다. ‘더 타임즈’와 ‘네이처’는 보어의 이론이 수소 스펙트럼을 뛰어나게 설명했으며 설득력 있고 영민하다고 평가했다. 조머펠트는 보어의 이론을 확장해 사실상 모든 원자에 적용할 수 있는 체계적인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보어-조머펠트 이론은 1920년대 중엽에 본격적인 양자역학이 등장하기까지 원자현상을 설명하는 기본적인 이론 틀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13년 12월 보어 자신은 아직 가설적인 준비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평가했다. 자신의 이론은 단순히 스펙트럼 법칙을 해명하려고 제안한 것이 아니라 “현재 과학의 토대 위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원소들의 여러 성질과 스펙트럼 법칙을 연관시킬 수 있음을 밝히는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보어의 원자모형이 등장하기 전에 막스 플랑크는 흑체복사에서 허용되는 에너지의 값이 특정한 값의 자연수 배가 된다는 가설을 도입했고, 아인슈타인은 형광이나 광전효과 현상에서 빛의 양자 개념을 도입했다. 이러한 세부 이론들을 모아서 통일된 원자와 분자모형으로 완성한 것이 바로 보어의 업적이다. 특히 에너지만이 아니라 각운동량의 양자화를 제안했고,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 소위 정상상태뿐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 변하는 복사 현상까지 설명할 수 있는 포괄적 이론이란 점에서 보어의 이론은 더 우월하다.
보어의 ‘위대한 3부작’을 꼼꼼하게 읽어보면 이후 50여 년 동안 진행된 양자역학의 물리학 및 철학 문제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보어는 몇몇 물리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 아니라, 일종의 자연철학으로서 물질세계에 대한 올바른 그림을 그려내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사유의 영역에서 최고의 음악성”이라고 평가한이 논문은 물리학과 철학이 만나는 가장 멋진 장면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피드 구독하기:
댓글 (At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