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3일 수요일

사시무사행(四時無私行) 찬 서리 내리는 상강(霜降)

세계일보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아무것도 없다. 어느덧 만추(晩秋), 늦가을에 접어든 계절의 변화를 보면서 그 말을 실감한다. 낙엽이 지고 나목(裸木)만이 신작로 양 옆에 줄지어 선 추운 겨울이 오면 그 무덥던 지난여름도 그리워질 것이고, 따뜻한 새봄의 희망을 꿈꿀 것이다. 그렇게 천지는 운행하고 있다. 차별 없이 만물을 고루 사랑하면서!

‘여씨춘추’는 이렇게 교훈을 주고 있다. “하늘은 사사로움 없이 만물을 덮어주고, 대지는 사사로움 없이 만물을 싣고 기르며, 해와 달은 사사로움 없이 세상을 비추고, 사계절은 사사로움 없이 쉬지 않고 운행하니 그 덕이 베풀어져 만물은 마침내 자랄 수 있다(天無私覆也 地無私載也 日月無私燭也 四時無私行也 行其德而萬物得遂長焉).”

찬 서리 내리는 상강(霜降) 온 산야에 불붙듯 단풍이 빠르게 남하하고 있다. 가을의 빛깔과 맛이 최절정에 이른 듯 단풍과 노란 잎 등이 어우러진 순정한 빛에 압도된다. 빛의 폭발! 아름다운 시(詩)도, 그 어떤 찬사도 대자연의 오묘함 앞에서는 무색하기 그지없다. 단풍이 들어 옷을 벗어 짜면 붉고 푸른 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 같다던 ‘산정무한(山情無限)’의 표현처럼 뼛속까지 스며드는 단풍, 단풍들!

오고 가는 길들도 아름답다. 삼나무 가로수길, 줄지어 늘어선 플라타너스와 은행나무, 잎을 떨구고 주황빛 열매만 황홀하게 출렁이는 감나무. 그리고 티 없이 높푸르게 그들의 배경이 되어주는 하늘은 더없이 맑고 눈이 부시다. 청나라 때 시인 장초(蔣超)는 ‘단풍’을 이렇게 노래했다. “녹음에다 단청칠 그 누가 했나/ 파란 하늘 흰 구름 속 붉은 구슬 향 머금었네/ 조물주가 술에 취해 붓 휘어잡고/ 가을을 봄으로 그렸음일레라(誰把丹靑抹樹陰 冷香紅玉碧雲深 天公醉後橫拖筆 顚倒春秋花木心).”

바쁜 일상이지만 계절의 순환을 느끼고, 하늘을 보며 삽상한 가을바람도 쐬는 여유를 갖자. 나와 이웃을 향한 마음결이 좀 더 부드럽고 너그러워질 것이다.



四時無私行:‘사계절은 사사로움 없이 쉬지 않고 운행한다’는 뜻.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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